유럽의 죽음 - 다문화의 대륙인가? 사라지는 세계인가?
더글러스 머리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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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 Death Of Europe 

유럽의 죽음

더글러스 머리







저자는 영국의 젊은 언론인이자 정치 논평가이다. 주로 이민, 젠더, 종교, 저널리즘 등 유럽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논쟁에 과감히 뛰어들어 바른 소리를 내는 책을 여러 권 썼다. '유럽의 죽음'이라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다문화의 대륙인가? 사라지는 세계인가?



런던 거주자 중에 스스로를 백인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인구의 44.9퍼센트라고 한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영어를 주요 언어로 쓰는 성인이 한 명도 없는 가정에서 사는 사람은 3백만 명에 육박한다. 영국에서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비중도 72퍼센트에서 59퍼센트로 감소했다. 이민 덕분(?)에 무슬림의 인구는 거의 두 배 늘었다.  노동자들의 이주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오래 머물 것이며 이 기회(?)를 활용해 고향에 있는 대가족을 불러들일 것임이 분명해졌다.




의외인 점은 이민의 대규모 급증과 영국 일부 지역의 빠른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이례적으로 너그러웠다는 것이다. 이후 10년 동안 인종 차별 정서나 폭력이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분출되는 일은 없었고, 영국 유일의 인종주의 정당인 '영국 국민당'은 이후 치러지는 선거에서 족족 패했다. 이처럼 영국인이 인종적인 반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이슬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그 이전에 기독교나 가톨릭의 쇠퇴가 있었다. 또한 개방과 관용, 관대함이라는 보기 좋은 모종의 합의로 자기 나라의 문화적 관대함을 지나치게 믿은 결과랄까? 젊은 백인 유럽인은 점점 소수화되고 이슬람은 거대해지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읽다 보면 책의 도입부에서부터 이 한 권만 읽을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난민에 관한 정보나 정책도 들여다봐야 한다. 유럽 각 나라별 이주민에 대한 정책이나 범죄도 검색해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관심은 우리나라 난민정책에 가게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이민정책과 그 실태는 어떤가? 2000년대 부족한 노동력을 아시아인들로 대체했다. 일이 끝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숫자는 적다. 그들은 가족들을 데려오고 점점 세를 넓힌다. 한 반에 다문화 학생의 숫자도 점점 늘어난다. 한국의 다문화 1세대 아이들이 지금 성인이 되었다. 그들의 삶을 취재하는 기자가 꼭 나오기를 바란다. 그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 사회와의 갈등은 심각하다. 일부 동네는 마치 중국인의 거리 같다. 밤에 귀가하다가 공원 벤치에 한무리 지어 앉아있는 그들을 보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민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도, 맹목적인 수용도 모두 경계해야 하는 양날의 칼과 같다. 

 




 

현대 유럽인의 원죄 유럽의 식민주의, 인종 차별, 신항로 개척을 가장한 미국 창건의 배경 등이 서구 유럽인들의 뇌리에 박힌 건가 생각이 든다. 난민을 포함해 외국인 범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이상이라고 한다. 영국에 사는 사람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영국 백인 여성이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이야기였다. 뉴스에서는 왜 이를 축소 보도할까? 이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유럽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급증하는 이민자, 테러의 상황, 유럽 정치와 언론의 은폐 등의 문제점을 발로 취재했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이슬람 혐오라는 식의 과거 우리가 했던 비난과는 다르게 보아야 할 핑요가 있다. 






유럽인들은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2세, 3세로 가면 통합이 쉬워질 거라 예측한다. 그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다문화 2세, 3세가 세월을 거듭할수록 우리에게 흡수될 거라 판단한다. 하지만 오산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다문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다문화 교육을 아무리 해도 아무리 많은 예산이 들어가도 그들은 그들이도 우리는 우리다. 이유는 분명하다. 내 생각에는 그들을 '흡수'의 대상으로 보는 탓이다. 그들은 흡수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과 '통합'의 대상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본 작은 프리즘 속의 일면이다.




세 살짜리 시리아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이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9월 초를 잊지 못한다. 몇몇 유럽의 신문이 뽑은 헤드라인은 [유럽의 수치]였다고 보도했다. 세 살짜리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캐나다의 실책을 한껏 비난했다. 이런 죄책감과 부끄러운 감정에 의해 다른 이민 가족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한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이 뒤로 밀려났다. 유럽 각국이 세 살짜리 아이의 죽음을 양심의 가책으로 받아들인 반면, 이 아이의 고향인 아랍 세계는 냉정을 유지한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럽의 원죄 의식은 한몫한다. 




2050년이 되면 기독교는 소수 종교가 될 거라는 예상을 한다. 이런 가정은 맞을 수도 있고 빗나간 예측일 수도 있다. 저자는 성폭력, 강간과 같은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가 찾은 자료들은 상당히 자극적이다.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것도 이런 글을 읽어야 하는 순간도. 저자는 다루기 힘든 주제를 유럽의 이주민, 급진적 다문화나 난민 정책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유럽은 정치인들의 소망처럼 더 젊고 포용적인 대륙이 될 것인가? 무슬림의 맹목적인 믿음도 큰 문제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그도 리뷰를 올리는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용기 있는 결단과 냉정함이 필요하다.




문제가 쟁점을 벗어나 이슬람 혐오로만 치부한다면 이민자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전 세계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명이다. 이민자의 수용 규정을 정하는 명확한 정책이 필요하다. 유럽 정치인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 그들 스스로가 [유럽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한다면 빠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비단, 유럽에 해당되는 일만은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패를 거울삼아야 한다. 세계는 한배를 탔지만 다 함께 한 목적지로 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할까?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우리의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닫는다. 







도서를 지원해주신 네이버 카페 리딩투데이와 

함께 읽은 리꿍 모리아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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