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부터의 수기 열린책들 세계문학 12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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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 / 계동준 옮김





지금 나는 한 발짝도 꼼짝할 수가 없다. 며칠간 나는 이 책과 마주하고 있었다. 열어놓은 모니터 화면에서 마우스 커서가 비웃듯 껌뻑인다. 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어렵다는 말을 익히 들어 각오를 했었다. 그의 작품은 어렵다는 선을 넘어 내 영혼을 주무르는 느낌이다. 나는 이미 그가 설계해놓은 지하에 갇혔다.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간신히 손을 뻗어 그의 발자국을 더듬어보지만 그는 형체가 없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나는 약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생각건대』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나를 끝없이 무너지게 했다. 이 상태로 며칠을 더 지내다가는 나역시 지하에 잠식당할 것이다. 주절주절 밑도 끝도 없는 지하 생활자의 혼잣말에 숨이 막혀 탁 소리가 나게 책을 닫아본다. 형체도 없는 그의 문장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나를 끌어당긴다. 지하로.




1장을 반쯤 읽다가 건너뛰어 2장으로 갔다. 2장을 다 읽은 후 다시 1장의 중간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스스로 지하 생활을 택한 그에게 동정하는 마음이 들다가 또 어느 부분에서는 그를 비웃기도 해봤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마저도. 당구대 옆에 서 있는 그를 번쩍 들어 옮긴 장교, 그의 유일한 이웃인 안똔 안또니치, 그의 친구들 즈베르꼬프 무리, 그를 태워준 마부, 하인 아뽈론, 유곽에서 만난 리자. 그들과의 대화는 나로 하여금 마치 미로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책을 덮었다 열었다 안절부절못하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이 두려움의 이유를 알고 있다. 지하 생활자의 모습에서 나를 들여다봤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망상과 이랬다저랬다 하는 양면성과 모순,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향한 그의 의지처럼. 나 역시 내 나름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늘 그것을 배신하고 현실에 기웃거리고 탐닉하고 때론 아부까지 하기 때문이다. 지하 생활자와 나의 역할은 바뀌어 그는 나의 삶을 꿰고 있었던 것 마냥 끝도 없이 현실을 내뱉았다. 잠시 중단하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면 그는 또 내게 비웃듯 말했다. 여러분은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겠지만이라고.    




책의 줄거리를 살짝 이야기해 보자면 그는 마흔 살 언저리, 9등관 관리였다. 어느 날 친척으로부터 얼마간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 이후로 그는 이십 년째 지하 생활을 한다. 그 누구와의 접촉도 없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도 그는 제대로 된 교우관계를 하지 못했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경멸과 혐오감이었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 고상하고 인상적인 표정을 지어 보이려 했다. 그러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마치 없는 존재처럼 그를 무시하거나 비웃었다. 그는 끈임 없이 복수를 계획하고 자신의 무시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 한다. 문득 그는 자신의 이십 대 시절에 있었던 두 가지 일화를 들려준다. 갑자기 지난날을 이야기 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마냥 자신이 소외된 사람은 아니라는 것. 한때는 자기도 사회에 적응자로 살아가려 노력했다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9등관이라는 직위는 일반인보다 위치적으로 높고 집안도 좋아야 오를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자리를 박차고 나와 지하로 들어가야 했던 이유에 대한 반박이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의 생각과는 반대로 사회 부적응자, 획일화된 기준에 못 미치는 자는 바로 그다. 그는 세상을 진흙탕에 비유한다. 장교가 된 친구 즈베르꼬프의 송별회에 참석하는데 그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였다. 저학년이었을 때부터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영리하고 발랄한 소년이었다. 다소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연줄이 있어 그는 무사히 졸업했다. 2백 여명의 농도들을 포함한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고 친구들은 어떤 이득이라도 보려고 그를 따라다닌다. 단지 그에게 사람을 끄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즈베르꼬프의 송별회에서 따돌림을 받는다. 이 또한 그의 과대망상일지 모른다. 하여튼 그는 시노모프에게 돈을 빌려 그들을 따라나선다. 유곽에서 그는 창녀 리자를 만난다. 그녀에게 대화를 유도하고 집이 어딘지 부모님을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 꼰대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인생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식의 말로 타이르다가 반응이 없자 그녀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다 그녀에게 집 주소를 알려준다. 그날 이후 그녀를 몹시도 기다리면서도 한 편으론 그녀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양면성을 보인다. 참 아이러니다. 




막상 그녀가 찾아왔을 때 그는 추레한 몰골의 자신을 비하한다. 지난번 만남에서 자신이 독설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구 내뱉는다. 그의 광기 어린 행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자는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담담히 그의 말을 들어준다. 그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떠나는 그녀의 손에 청색 5루블 지폐를 억지로 쥐여준다.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이런 똘아이가 있나정말 황당했을 상황이다. 리자는 떠난다. 그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그리고 수기를 여기서 끝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 교화시키기 위한 처벌이다. 더 이상 지하에서 쓰지 않겠다고 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혹시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삐뚤한 루저의 독설이라며!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추구하는 가치 그대로 살기란 힘들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은 어쩌면 그럴싸한 핑계일지도. 얼마 전 모임에서 지인의 새로 산 고가 수입차 자랑을 들으며 '속물'하고 속으로 비웃었지만 나의 시선은 내내 그녀의 명품 백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겉멋만 추구하는 너희와는 달라! 나는 고매한 독서가다'! 라 속으로 부르짖으며 교양을 떨었다. 환경운동 모임에 나가고 지구의 오염에 눈물을 흘리다가 집에 돌아와 밀린 설거지하며 한 움큼의 세제를 짜서 그릇을 박박 닦는다. 이런 내가 그를 비웃을 수 있을까? 그럼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를 비웃을 수 있을까요?? 




도스토옙스키 삶의 4가지 키워드를 추려보자면 가난, 8년간의 유형생활, 죽음의 공포 간질, 운명에 대한 시험으로써의 도박을 꼽을 수 있다.  이미 그의 여러 작품에서 본 가난이 주는 정서, 사형 선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갔다가 해방된 감옥 생활, 언제 생긴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삶을 옥죄어 온 간질발작, 그의 삶을 구원하기도 하고 절망으로 빠지게도 하는 도박, 그는 폐동맥 파혈로 60세의 일기로 사망한다. 단 몇 줄로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자판을 두드릴수록 그의 작품에 감히 누가 될 뿐이다. 늘 추운 나라, 흰 피부에 파란 눈, 거친 말투, 마트료시카, 내가 알고 있던 러시아의 이미지다. 이제 러시아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도스토옙스키의 삶이 자동 소환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전작 읽기 첫 번째 책이다. 참 무겁고 눅눅하고 거칠고 야비하지만 나를 끝없이 돌아보고 되새김질 시키는 작가다.




과연 이상과 현실 중 무엇이 중요한가? 직분, 돈, 지식 등 맹목적인 세상의 이익을 말하다 가로막힌 절벽 앞에서 갑자기 '지하 만세'를 외친다.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삶, 그것은 실체가 없다. 이 책에 대한 평은 나뉜다. 그는 '사회 부적응자'도 '루저'도 '우울증 환자'도 '대인기피증'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변명거리를 찾기 위한 '추레한 인간의 혼잣말'이 아니다. 그가 스스로 굴을 파고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는 가만히 지하에 앉아서 관조하듯 세상을 바라본다. 아름답고 숭고한 것을 부르짖다가도 가장 천하다고 여기는 창녀의  발아래에서 구원을 갈망한다. 이성 불변의 가치를 알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끝없이 추악한 욕망을 품는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 아름답고 숭고한 세계의 가치를 높이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실제의 삶』을 사는데 매우 서투르다고 비하한다. 스스로 지하를 택한 것인가? 어쩔수 없는 행동이었는가에 대한 묘사도 정확지 않다. 다만 각자 다른 기준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할 뿐이다.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좋다. 하다못해 자기 자신 앞에서만이라도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의 책은 '그동안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임에 분명하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대작은 없을 것이다.




▶▶남기고 싶은 명문장은 너무나 많다. 몇 줄을 적어보다가 차라리 통으로 필사를 하는 편이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들은 어떤 파멸에 빠지더라도 그것으로부터의 부활과 구원, 그리고 모든 재생의 기회를 사랑 안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은 이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p191  



결국 구석에서의 도덕적 타락과 적당한 환경의 결핍, 살아 있는 것들로부터의 소외, 그리고 지하에서의 자신의 과장된 악의 때문에 어떻게 내가 내 인생을 소진했는가에 관하여 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신에게 맹세코 흥미롭지 않다. p195







감히, 내가 남기는 한 줄 평은 


『인간은 모순덩어리, 

양면성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사유한다.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내게 '도스토옙스키' 그의 책이 있는 곳은 어디나 러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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