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구병모

자음과 모음(이룸), 2011년 7월





  2009년에 '위저드 베이커리'로 등단한 작가의 첫 소설집. 얼마전 '단 하나의 문장'(소설집)을 읽으며 작가의 타고난 입담과 세세한 묘사력, 특유의 시니컬함을 맛보았지만 이 소설집은 그때의 느낌보다 헐씬 더 강렬하고 으스스하다. 

  그래서인지 대개의 소설집을 읽고 나면 기억에 남는 제목이 서너 개밖에 되지 않지만 이 '고의는 아니지만'은 7개 단편 전부가 뇌리에 남는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특징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뚜렷하게 독립된 하나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조리한 세계를 하나의 참혹한 사건으로 상징화하고 있기에 주제적으로는 서로 자매처럼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는 점이다. 


  마치......같은 이야기

  언어에서의 비유법을 금지한 한 도시, 문화와 예술뿐 아니라 여타의 사회적 기능까지 마비되며 퇴보적인 상황에 이른다. 어느날 한 시인이 이 도시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술집에 나타나 술집 주인에게 그간의 사정을 듣는다. 시인은 주인의 만류를 뒤로 하고 시장을 만나러 가는데, 사실 시장은 미무르라는 괴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비밀(괴물인 미무르라는)을 지키고 시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아 비유를 금지시킨 터였다. 시인은 마침 시민의 날을 맞아 모든 공공 기관들이 문을 열어둔 것을 기회로 시장실에 들어가 죽어가는 괴물, 시장을 만나게 된다....


  타자의 탄생

  이 작품은 어느 순간 카프카를 떠올리게 한다. 화자이면서 주인공인 '나'에게 벌어진 끔찍한 상황과 나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다양하면서도 일률적인 행태들이 변신의 '잠자르'와  비슷해 보여서이다. 

  어느날 갑자기 정신이 들어보니 인도 한가운데에 무처럼 하반신이 땅속에 박혀있는 자신. 어젯밤 기억은 '밤의 허리를 면도칼로 베어낸 듯 그 시간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후로 그는 그 자리에서 구조를 기다리지만 전문가도 이해할 수 없고 본 적 없는 금속붙이와 흙이 얽혀 그의 몸은 그 곳에서 떼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의가 좋지 않았던 아내는 도시락을 한 번 싸다주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고 이혼서류를 남긴 채 떠나간다. 시일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문명화된 인간에서 동물을 거쳐 버섯처럼 그리고 곰팡이만도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그리고 마지막, 그는 어쩌다 현장에 나타난 리포터에게 구멍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구멍은 어디에나 있다고.

  이 작품은 두 번 읽었다. 의미나 주제적으로도 훌륭하지만 강렬하면서도 세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뿐 아니라 소설집에 실린 나머지 작품들도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가까운 사건을 시발점으로 하지만 그 후의 상황은 너무나 리얼하고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이다. 

  황광수 문평가는 이렇게 추천글에 썼다. "이 작품들의 괴기스러운 광경들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환상'으로 불릴 수도 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 한 발도 빼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고통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허황한 상상물이 아니다."라고 

  

  고의는 아니지만

  유치원 교사 F.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사명감과 성실함으로 일관하던 F는 어느 날 극도에 다다른 스트레스로 인해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날 밤! 고의는 아니지만 잘못 뱉어진 말로 인해 그녀는 비극적인 일을 당하고 만다. 


  조장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보육도우미 일을 하게 된 나는 사람을 공격해 온 몸을 뜯어먹는 새떼들을 보게 된다. 원인 불명의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나는 새들의 공격이 절망의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는 풍설에 시달리게 된다. 아무리 긍정하려 해도 '나'가 하는 보육도우미의 일은 가사도우미를 넘어 간병인의 역할을 떠안게 되자 나는 새떼들을 의식하게 되고.... 


  어떤 자장가

  석사논문 대필로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는(남편도 13시간 노동을 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끝내지 못한 박사논문 때문에 더 우울하고 피곤하다. 한데 아이는 밤새 자지 않고 엄마의 작업을 방해한다. 여자는 떼를 쓰는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 오븐에 넣고 굽고 냉장고에 집어 넣는다. 

  아침에 피곤함에 간신히 일어난 남편은 잠든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삶에서 어린 자식이란 얼마나 애궂은 운명적인 존재일까. 


  재봉틀 여인

  선생에게 두들겨 맞고 간신히 학교를 나온 소년은 재봉틀로 뭐든지 꿰매준다는 수선집을 들어간다. 몸집이 거대한 수선집 여자는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희고 부드럽고 고운 손으로 그의 세포들을 꿰매준다. 눈물이 흘러내리는 눈물샘 아래와 감각과 지각을 일으키는 모든 세포들을 하나하나. 

  청년이 된 그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의 무감각과 무심함 때문에 배신을 당하고.... 그리고 그는 재래시장 수선집을 찾아가 불을 지른다. 경찰과 감식반이 와서 수선집 긴 커튼을 열어보지만 그곳에 커다란 몸집의 무언가에 수많은 바늘이 꽂혀있을 뿐, 수선집에 그런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곤충도감

  이 소설집에서 처음 만나는 감성적인, 러브스토리이다. 하나 여기서도 성범죄자들의 뇌에 심겨진 어떤 칩이 폭발한다는 점에서는 SF적이고 그 칩이 폭발할 때 날개 달린 거대한 곤충이 남자의 몸을 찢고 나타난다는 점에서는 판타지이다. 

  우연히 배다른 남매가 서로를 사랑하다가 그 순간을 부모에게 들키게 된다. 여자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아들을 고발한다. 그는 무작위적으로 성범죄자의 뇌에 칩을 넣는 일에 선택당하고, 영원히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그런 감정을 가질 수도 없게 된다. 

  3년 후, 배다른 오빠이면서 사랑했던 남자를 만난 여자아이는 그의 뇌 안에 들어있는 무서운 곤충이 될 칩을 꺼내주고 싶지만 방법은 전무하다. 여자아이는 그의 뇌에서 그 칩을 제거하기로 작정한다. 단 한 번의 사랑도 허락하지 않는 운명!! ㅠㅠ


  구병모의 '아가미', '단 하나의 문장',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었다. 언제나 너무나 부족하지만 일단은 구병모를 거쳐간다. 갈 길이 멀고 멀어서 구병모 작가를 이쯤해서 지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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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제5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이형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5월


  몇년 전에 읽은 책인데 또다시 읽게 되었다. 목록을 보면서도 기억을 하지 못해 읽지 못한 책으로 분류해놓은 결과이다. 그렇다고, 두 번 읽는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나를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단편소설집을 읽을 때 간혹 엄청난 놀라움과 통찰을 가져오기는 해도 그 여운이 장편만큼 오래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나 조해진의 '번역의 시작'과 '사물과의 작별'은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다. 특히 얼마전 방영된 '너를 닮은 사람'의 정소현 작가의 '어제의 날들' 역시 좋았다. 작가의 특기인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어딘가 아슬아슬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이 작가처럼 쓸 수만 있다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더 나을 것도 같다. 



  루카 (윤이형)

  동성애자인 화자의 회상과 루카의 아버지의 고백을 통해 루카라는 한 남자가 커밍아웃하고 그 후에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같은 동성애자인 화자에게서조차 떠나야했는지, 그리고 지금 루카는 어떻게 어디서 또 헤매이고 있을지...... 를 보여준다. 


  정지돈 (미래의 책)

  별로 남는 것도 없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싶다. 이국과 모국을 드나들면서 동성애를 했고 글을 썼고, 그리고 죽었다? 물론 그 원고들을 엮는다면 책은 책이겠지만 그건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아픈 사랑과 마찬가지일 뿐, 별다른 게 아닐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지성을 장착해 스스로에 과시적이고 스스로에 취해 형이상학적 사랑을 흉내낸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정지돈 작가에게는 특별한 냄새가 있다. 지나치게 지적이고 실험적인... 나는 그의 미래의 책을 뭐야, 이게 뭐야? 하면서도 끝까지 읽었다. 


  이상우의 '888'은 더 위로 올라간다. 더 '위'가 아니라 더 '아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정지돈과는 또 다르고 실험정신 또한 험악해진다. 몇년 전 그때에도, 이번에도 몇 장 읽다가 건너뛰었다. '실험은 실험일뿐......' 이라는 명제에 과격하게 맞아떨어진다.


  김덕희의 '급소'와 정용준의 '개들'도 읽다가 덮었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지만 폭력적인 장면을 읽으면 이미지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실제적으로 느껴져 견디기 고통스러워서다. 그러나 정말 좋은 작품들이다. 일상에 만연된 폭력과 야만에 대해 누군가는 그대로 그려주어야 하기에, 다른 이들이 외면하는 세계에 대해 예술이라도 회피하지 않고 보여주어야 할 일이기에.

  

  번역의 시작 (조해진)

  영수 씨와(정확한 설명이 없지만 아버지인 것 같다) 안젤라의 꿈을 꾸는 화자, 철커덩철커덩 기차는 끝없이 달리고 기차 안에는 영수 씨와 안젤라만이 앉아있다. 

  '나'는 한때 연인이었던 태호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태호는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 그에게서 돈을 받으면 여행을 하며 영수 씨를 찾을까 했던 화자는 옛 애인의 주택에 얹혀 살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때 만나게 된 안젤라, 안젤라는 내게 처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되고... 그러나 얼마간의 만남 뒤에 안젤라는 나타나지 않고 안젤라를 찾아다닌 끝에 그녀의 불우하고 비극적인 삶을 나는 알게 된다.

  비자기간이 만료돼 미국을 떠나기 전 나는 안젤라를 만나러 가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 채, 춥고 어두워지는 카페에서 영수 씨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찾을길 없는 영수 씨와 안젤라.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공항에 도착해서야 그 소리가 내게만 들리는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아직 번역할 수 없는 먼 곳의 언어였지만, 뚜렷하게 감각되는 위로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달리는 기차 소리, 사라진 사람들을 싣고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기차가 있다면 그 기차에 올라타 두손을 잡아 함께 내려야 하기에 '나'는 매일 철커덩철커덩, 기차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배후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를 번역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웃는 남자(황정은)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다. 황정은은 정확하면서도 격식 있는 문장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작가가 근래의 작가 중에 가장 모범적인 문장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놀라운 반전이나 기괴한 사건은 없다고 느꼈는데- 물론 작가의 작품을 전부는 고사하고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짧은 판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작품은 조금은 결이 다른 작품인 것 같다. 괴이한 인물이 서두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괴이함은 금새 비통한 고뇌로 바뀌어 보인다. 그가 곱씹어 되뇌고 있는 사유는 양식있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빠져 본 적 있는 죄의식으로써 독자가 쉽게 수긍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습관대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문득 저질러버린, 사소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거나 그의 운명을 함부로 재단해버린 일들. 어떻게 후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죄악이 아니라해도 가슴에 남긴 한스러운 통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기이한 행위로 자신을 벌주고 있는 남자는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배려 없음의 매너리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해왔던 방식, 패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자기 안에 갇히고 만다는 것. 그안의 매너리즘으로 인해 나와 남의 허심탄회한 소통은 요원할 수밖에 덦다는 것."(279쪽)

  "'웃는 남자'에서 보이는 실소가 서늘한 이유는 참으로 깊다."


  어제의 일들(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의 작가 정소현, 그 작품과 이 작품도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다르지만 과거를 불러오고 그 과거의 일들이 천천히 펼쳐지면서, 놀라운 반전과 두렵기까지 한 악의의 부상.... 

  작가는 처음에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 다른 인물이 나타나고 그 인물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두 인물이 마주치면서 점차 드러나는 과거, 그 속에 숨어있던 악의, 그리고 그 악의로 인해 부러지고 꺾여져버린 사람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 아주 능하다. 감추어져있는 인간의 악마적인 면을 파고드는 솜씨가 탁월하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읽는 내내 긴장을 가져오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독서가들의 킬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여름의 정오(백수린)

  참, 이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사야겠다. '여름의 정오', 이 제목은 작품 자체적인 내용은 생각나게 하지 않고 '여름의 빌라'를 떠올렸고 그 책을 사야겠다고 나를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의 정오'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시간이니 줄거리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떠들어보니 스무살 시절, 오빠가 있는 파리에 가서 육개월을 지냈던 날들 중, 오빠의 친구였던 타카히로를 만났고 그를 사랑했던 이야기가 주다. 그리고 어느날 타카히로는 자살을 감행했다.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고. 

  귀국하기 전, 나는 타카히로를 만났고,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말했다. "그래도 죽지는 마."

  내겐 고등학교 때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j가 있었다. 나는 5층 문과대 건물 창틀에 앉아있다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파리로 갔던 것이었다. 

 젊다는 말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어리고 어리숙한 시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희미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들, 앞으로의 생의 한 자락도 떠올릴 수 없는 나날들, 그럴 때 늘 보던 친구가 세상을 등져버리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면 나 또한 죽어야한다는 당위성에 포위되고 만다. 

  남편이 세미나 차 영국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파리에서 나는 타카히로와 만났던 카페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제는 변해버린 카페와 시위대와 소나기를 만난다. 타카히로는 국립오페라 근처의 일본 식당 밀집지역에서 작은 일본 식품점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오빠로부터 들었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는 살아있었다. 나도 살아있었다."


  사물과의 작별(조해진)

  나는 지하철 유실물센터를 관리하는 직원이다. 

  이모는 요양원에 있고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모는 5년 전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고 바로 주변을 정리해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화자는 이모가 오래전에 말했던 바를 이뤄주기 위해 이모를 모시고 차를 운전해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군을 찾아간다.

  서군은 오래전, 이모가 여고생이던 시절,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레코드점에서 우연히 만났고 서군이 갖고있던 원고를 이모가 보관하게 되면서 이모의 일생이 서군에게 온전히 연루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군은 이 나라에서 한때 기승을 부리던 이념의 희생자가 된 적이 있었고, 이모는 그것이 자신의 과실 때문이라고내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군은 늙고 병들어 돌이킬 수 없는 환자가 되어 병원 휴게실에 비치된 TV를 보고 있다. 그 곁에 내가 밀고간 휠체어에 이모가 앉아있고... 그러나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이모는 휴게실 가의 ATM기에 서있던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며 머리를 수그린다. 이모의 치매가 이제는 늙어버린 서군을 알아보지 못하고 젊은 서군의 모습을 상관없는 이름모를 남자에게서 본 것이다. 그렇게 해후는 실패한다.

  나는 이모가 내게 맡겼던 주인잃은 서군의 원고를 지하철 유실물 보관함에 넣는다. 

  "고모가 유기한 쇼핑백이 이곳에 있는 한, 유실물 센터는 세계의 그 어떤 곳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공간으로 남게 되리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세계를 구성하는 데 없어도 무방한 덧없는 조각일 뿐이란 것도,"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을 허물어뜨리는 이념이나 체제, 그리고 이것보다 더 무서운 세월의 잔혹성에 대해 작가는 슬프게, 노련하게 자신의 말을 온전하게 전하고 있다. 


  임시교사(손보미)

  이 소설집에 마지막으로 실린 단편인데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외출할 때 밖에서 보기 위해 찢어서 호치캐스으로 묶어 가방에 넣어다녔을 것이다. 몇년 전, 손보미를 유독 좋아했었다. 임시교사는 기억으로 '임시'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는 유한한 직업이기 때문에 일반교사보다 더 선생다워야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 자신에게 유별나게 엄하고 반듯한 한 임시교사를 그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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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이 책도 예선이 언니가 준 것이다. 이건 내가 쓴 '너를 기다리는 집'이라는 졸작을  예선 언니가 읽은 후 이 작품을 참고해 보라면서 선물한 책이다. 

  매일 4시면 화자의 집을 찾아오는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사건이 시작되는데, 일견 평범해 보이는 시작에 비해 그 결말은 비극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의 내면과 배후에 도사린 불합리하고 어두운 그늘을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밝고 환하고 아름다운 것을 인간은 지향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환한 빛만을 향해 전진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리고 종내는 미움과 증오, 체념과 죽음에의 유혹이 그 사람을 덮어버린다.... 사람에게 달라붙는 끈질기게 불행한 운명의 끈을 가차없이 잘라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이름은 몇 번 들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녀가 천재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페이지 몇 장 넘기자 단번에 알게 되었다. 그녀의 책을 두어 권 더 주문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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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이 책 표지 안쪽에 쓰인 작가 소개를 그대로 옮기면, 1999년에 태어나 가나가와현에서 자랐다, 2019년 데뷔작인 <엄마>로 56회 문예상을 수상했고, 2020년 33회 미시마 유키오상을 사상 최연소로 수상했다..... 이런 구절들이 짧게 나열되어 있다. 그러니까 작가 우사미 린은 만 20세 전에 작가가 되었고 쓰는 것마다 수상작이 되고 있으며 장담할 일은 아니지만 앞으로 작가로서 살아갈 사람이다. 
  참 대단한 일이고 대단한 작가이지만, 이 작품이 23살의 작가로써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고는 믿지만, 그리고 연예인이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우상시되는 현재에 의미있는 작품이라고도 믿지만, 나는 그렇게 열렬한 마음으로 한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가지는 않았다. 밑줄도 그었지만(책 읽을 때의 습관일 뿐이다) 오래오래 기억될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내 안에 깔려 있었다.  
  작가가 젊다는 것은 한편으로 엄청난 재산이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만 잘 해도 시의성 있는 젊은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은 이 작가와 너무나 멀리 있다. 그래서 나는 예선 언니가 선물해준 따끈한 젊은 작품을 그저 얼른 읽어치웠다.
  그래도 작품 얘기를 해보면,
  그룹에 속한 우에노 마사키라는 남자가수를 쫓고 좇는, 평범한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목적도 가질 수 없던 한 여자가 마사키를 본 순간 자신이 좇아야 할 목적이 생긴 다. 화자인 나는 그의 팬이 되고 그를 모니터링하며 그의 앨범과 사진을 사고 SNS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 방은 마사키의 물건들로 쌓이고 마사키는 나의 최애가 된다. 
  그리고 어느날,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의 최애인 마사키가 한 여자를 때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어린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얼마 안 있어 팀은 해체되고 나의 최애였던 마사키는 연예계를 완전히 은퇴한다. 나는 어느 날, 그의 집을 찾아나서고 어느 맨션, 그의 집쯤으로 여겨지는 집에서 한 여자가 나와 이불을 터는 것을 목격할 뿐이다. 

  "그냥 평범한 맨션이었다. 이름은 확인할 수 없는데 분명 인터넷에서 본 건물이다. 딱히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그저 멈춰 서서 그곳을 바라봤다. 만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갑자기 오른쪽 윗집의 커튼이 젖혀지더니 끽끽 소리를 내며 베란다 창문이 열렸다. 쇼트커트 여자가 빨래를 품에 안고 비틀거리며 나와 난간에 걸쳐놓고 숨을 내쉬었다. 
  눈이 마주칠 뻔해 시선을 피했다. 우연히 지나가는 척 걷기 시작해 서서히 걸음을 빨리했고 마지막에는 뛰었다. 어느 집이든, 그 여자가 누구든 상관없다. 설령 그 맨션에 최애가 살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나를 명확하게 아프게 한 것은 그 여자가 안고 있던 빨래였다. 내 방에 있는 엄청난 양의 파일과 사진, CD, 필사적으로 긁어모은 수많은 것들보다 셔츠 단 한 장이, 겨우 양말 한 켤레가 한 사람의 현재를 느끼게 한다. 은퇴한 최애의 현재를 앞으로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현실이었다. 
  이젠 쫓아다닐 수 없다. 아이돌이 아니게 된 그를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해석할 수는 없다. 최애는 인간이 됐다. 
  최애는 왜 사람을 때렸을까, 이 질문을 줄곧 회피했다. 회피하면서 계속 그 질문에 끌려다녔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답이 저 맨션 밖으로 보일 리 없다. 해석할 방법이 없다. 그때 그 노려보는 듯한 눈빛은 리포터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최애와 그 여자 이외의 모든 인간을 향했다."(128~129쪽), 참고로 이 책은 132페이지의 경장편이다. 

 막상 필사를 하고 보니 참 잘 썼다. 젊고 어린 화자의 마음이, 한 여자아이가 서있다가  서서히 걷다가 마지막에는 뛰는 모습이, 그 정황이 너무 잘 보인다. 내가 지레 지나치게 젊은 작가를 얕잡아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어떤 글에도 그 작품만의 고유한 빛과 무늬는 살아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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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깊은 곳

하오징팡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2월





  하오징팡은 중국의 SF 소설가이다. 중국의 젊은 여작가! 여러 생각이 든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큰가. 그나라 대도시의 부자들은 얼마만한 부자들인가. 엄청난 인구를 지닌 도시에 교육열이 높은 시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들의 자식들이 오직 공부에 매진한다면 그 지식의 총량은 놀라울 것이다. 하니 중국이 비록 공산주의 나라라 해도 지식인들의 면모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성장해 있을 것이다. 
  왕 웨이렌의 책을 읽었을 때도 정말 놀라웠다. 내가 그동안 읽은 어떤 단편보다 왕 웨이롄의 작품은 다채로우면서도 차원 높았다. 그래서 독후감을 쓰는 게 흥분되었었고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도 첫 단편으로 들어있는<접는 도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 상상력에 탄복했다. 서사를 따라가보면, 접을 수 있는 도시(베이징)는 몇십 년 간 체계적으로 지어졌고 시민들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느 면에 사는지가 정해진다. 신분에 따라 주거지가 배당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능력으로 택해진다는 면에서 강제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주거지가 정해지고 나면 자유란 없다. 여기서의 자유란 행위와 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일상이 완전히 통제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그리고 그런 체계는 물리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한다. 3면의 시민들은 일상의 시간이 다르다. 
  도시의 1면에 사는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매일을 살아간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저녁에 부는 바람을 맞고 산책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잠들 시간에  도시는 접혀진다. 
  그러나 2면에 사는 사람들은 16시간만 깨어있을 수 있다. 나머지 시간은 커다란 캡슐에서 분사되는 수면가스를 마시고 누구나 똑같이 잠들어 있다. 그 시간에 캡슐에 있지 않다면 그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리고 3면의 시민들, 그들은 8시간만 깨어있을 수 있다. 그들은 주로 쓰레기를 분류하고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16시간을 자야한다. 도시 전체에서 볼 때 3면의 시민들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일테면 그들은 일하는 시간 외에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일개미쯤 되는 사람들이다. 
  결국 '접는 도시'는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파생시킨, 신분이 고착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전체가 알레고리여서 주제가 선명하고, 그래서 2016년 휴고상을 받았을 것 같다. 
  이 <접는 도시> 뒤의 다른 단편들도 좋았지만 자세히 쓰고 싶을 만큼 좋지는 않았다. 단지 작가가 물리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나로선 상상할 수도, 디테일을 갖출 수도 없는 소재를 끌어오고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에 부러움과 질투를 느꼈을 뿐이다. 
  총 열 편의 단편 중에 여섯 개를 읽었는데 읽은 작품을 쓰지 않으려니 서운해서 제목이나마 언급하고 독후감을 마친다. 

접는 도시
현의 노래
화려한 한가운데
우주극장
마지막 남은 용감한 사람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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