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읽은 책인데 또다시 읽게 되었다. 목록을 보면서도 기억을 하지 못해 읽지 못한 책으로 분류해놓은 결과이다. 그렇다고, 두 번 읽는다고 특별한 무언가가 나를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단편소설집을 읽을 때 간혹 엄청난 놀라움과 통찰을 가져오기는 해도 그 여운이 장편만큼 오래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도 이장욱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나 조해진의 '번역의 시작'과 '사물과의 작별'은 두고두고 기억해두고 싶다. 특히 얼마전 방영된 '너를 닮은 사람'의 정소현 작가의 '어제의 날들' 역시 좋았다. 작가의 특기인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어딘가 아슬아슬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매혹적이었다. 이 작가처럼 쓸 수만 있다면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이 더 나을 것도 같다.
루카 (윤이형)
동성애자인 화자의 회상과 루카의 아버지의 고백을 통해 루카라는 한 남자가 커밍아웃하고 그 후에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같은 동성애자인 화자에게서조차 떠나야했는지, 그리고 지금 루카는 어떻게 어디서 또 헤매이고 있을지...... 를 보여준다.
정지돈 (미래의 책)
별로 남는 것도 없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싶다. 이국과 모국을 드나들면서 동성애를 했고 글을 썼고, 그리고 죽었다? 물론 그 원고들을 엮는다면 책은 책이겠지만 그건 수많은 사람들이 겪는 아픈 사랑과 마찬가지일 뿐, 별다른 게 아닐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사랑은 지성을 장착해 스스로에 과시적이고 스스로에 취해 형이상학적 사랑을 흉내낸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정지돈 작가에게는 특별한 냄새가 있다. 지나치게 지적이고 실험적인... 나는 그의 미래의 책을 뭐야, 이게 뭐야? 하면서도 끝까지 읽었다.
이상우의 '888'은 더 위로 올라간다. 더 '위'가 아니라 더 '아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정지돈과는 또 다르고 실험정신 또한 험악해진다. 몇년 전 그때에도, 이번에도 몇 장 읽다가 건너뛰었다. '실험은 실험일뿐......' 이라는 명제에 과격하게 맞아떨어진다.
김덕희의 '급소'와 정용준의 '개들'도 읽다가 덮었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지만 폭력적인 장면을 읽으면 이미지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실제적으로 느껴져 견디기 고통스러워서다. 그러나 정말 좋은 작품들이다. 일상에 만연된 폭력과 야만에 대해 누군가는 그대로 그려주어야 하기에, 다른 이들이 외면하는 세계에 대해 예술이라도 회피하지 않고 보여주어야 할 일이기에.
번역의 시작 (조해진)
영수 씨와(정확한 설명이 없지만 아버지인 것 같다) 안젤라의 꿈을 꾸는 화자, 철커덩철커덩 기차는 끝없이 달리고 기차 안에는 영수 씨와 안젤라만이 앉아있다.
'나'는 한때 연인이었던 태호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태호는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 그에게서 돈을 받으면 여행을 하며 영수 씨를 찾을까 했던 화자는 옛 애인의 주택에 얹혀 살며 시간을 허비한다.
그때 만나게 된 안젤라, 안젤라는 내게 처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되고... 그러나 얼마간의 만남 뒤에 안젤라는 나타나지 않고 안젤라를 찾아다닌 끝에 그녀의 불우하고 비극적인 삶을 나는 알게 된다.
비자기간이 만료돼 미국을 떠나기 전 나는 안젤라를 만나러 가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한 채, 춥고 어두워지는 카페에서 영수 씨의 흔적을 더듬어본다. 찾을길 없는 영수 씨와 안젤라.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공항에 도착해서야 그 소리가 내게만 들리는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아직 번역할 수 없는 먼 곳의 언어였지만, 뚜렷하게 감각되는 위로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달리는 기차 소리, 사라진 사람들을 싣고 어딘가를 떠돌아다니고 있을 기차가 있다면 그 기차에 올라타 두손을 잡아 함께 내려야 하기에 '나'는 매일 철커덩철커덩, 기차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배후에서 살다가 어느날 사라진 사람들의 언어를 번역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웃는 남자(황정은)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과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다. 황정은은 정확하면서도 격식 있는 문장을 보여준다. 나는 이 작가가 근래의 작가 중에 가장 모범적인 문장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놀라운 반전이나 기괴한 사건은 없다고 느꼈는데- 물론 작가의 작품을 전부는 고사하고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짧은 판단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작품은 조금은 결이 다른 작품인 것 같다. 괴이한 인물이 서두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괴이함은 금새 비통한 고뇌로 바뀌어 보인다. 그가 곱씹어 되뇌고 있는 사유는 양식있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빠져 본 적 있는 죄의식으로써 독자가 쉽게 수긍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의 습관대로, 깊게 생각해보지 않고 문득 저질러버린, 사소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거나 그의 운명을 함부로 재단해버린 일들. 어떻게 후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죄악이 아니라해도 가슴에 남긴 한스러운 통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기이한 행위로 자신을 벌주고 있는 남자는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배려 없음의 매너리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 해왔던 방식, 패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자기 안에 갇히고 만다는 것. 그안의 매너리즘으로 인해 나와 남의 허심탄회한 소통은 요원할 수밖에 덦다는 것."(279쪽)
"'웃는 남자'에서 보이는 실소가 서늘한 이유는 참으로 깊다."
어제의 일들(정소현)
'너를 닮은 사람'의 작가 정소현, 그 작품과 이 작품도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다르지만 과거를 불러오고 그 과거의 일들이 천천히 펼쳐지면서, 놀라운 반전과 두렵기까지 한 악의의 부상....
작가는 처음에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 다른 인물이 나타나고 그 인물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두 인물이 마주치면서 점차 드러나는 과거, 그 속에 숨어있던 악의, 그리고 그 악의로 인해 부러지고 꺾여져버린 사람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런 류의 이야기에 아주 능하다. 감추어져있는 인간의 악마적인 면을 파고드는 솜씨가 탁월하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읽는 내내 긴장을 가져오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독서가들의 킬러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여름의 정오(백수린)
참, 이 작가의 '여름의 빌라'를 사야겠다. '여름의 정오', 이 제목은 작품 자체적인 내용은 생각나게 하지 않고 '여름의 빌라'를 떠올렸고 그 책을 사야겠다고 나를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은 '여름의 정오'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시간이니 줄거리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책을 떠들어보니 스무살 시절, 오빠가 있는 파리에 가서 육개월을 지냈던 날들 중, 오빠의 친구였던 타카히로를 만났고 그를 사랑했던 이야기가 주다. 그리고 어느날 타카히로는 자살을 감행했다. 오빠의 말에 의하면 그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고.
귀국하기 전, 나는 타카히로를 만났고, 하고 싶은 수많은 말들을 하지 못한 채, 느닷없이 말했다. "그래도 죽지는 마."
내겐 고등학교 때 아파트 15층에서 뛰어내린 j가 있었다. 나는 5층 문과대 건물 창틀에 앉아있다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파리로 갔던 것이었다.
젊다는 말조차 사치스러울 만큼 어리고 어리숙한 시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가 너무나 희미해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던 날들, 앞으로의 생의 한 자락도 떠올릴 수 없는 나날들, 그럴 때 늘 보던 친구가 세상을 등져버리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면 나 또한 죽어야한다는 당위성에 포위되고 만다.
남편이 세미나 차 영국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파리에서 나는 타카히로와 만났던 카페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제는 변해버린 카페와 시위대와 소나기를 만난다. 타카히로는 국립오페라 근처의 일본 식당 밀집지역에서 작은 일본 식품점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오빠로부터 들었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어쨌든 그는 살아있었다. 나도 살아있었다."
사물과의 작별(조해진)
나는 지하철 유실물센터를 관리하는 직원이다.
이모는 요양원에 있고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이모는 5년 전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고 바로 주변을 정리해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화자는 이모가 오래전에 말했던 바를 이뤄주기 위해 이모를 모시고 차를 운전해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서군을 찾아간다.
서군은 오래전, 이모가 여고생이던 시절,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레코드점에서 우연히 만났고 서군이 갖고있던 원고를 이모가 보관하게 되면서 이모의 일생이 서군에게 온전히 연루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서군은 이 나라에서 한때 기승을 부리던 이념의 희생자가 된 적이 있었고, 이모는 그것이 자신의 과실 때문이라고내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서군은 늙고 병들어 돌이킬 수 없는 환자가 되어 병원 휴게실에 비치된 TV를 보고 있다. 그 곁에 내가 밀고간 휠체어에 이모가 앉아있고... 그러나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이모는 휴게실 가의 ATM기에 서있던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하며 머리를 수그린다. 이모의 치매가 이제는 늙어버린 서군을 알아보지 못하고 젊은 서군의 모습을 상관없는 이름모를 남자에게서 본 것이다. 그렇게 해후는 실패한다.
나는 이모가 내게 맡겼던 주인잃은 서군의 원고를 지하철 유실물 보관함에 넣는다.
"고모가 유기한 쇼핑백이 이곳에 있는 한, 유실물 센터는 세계의 그 어떤 곳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공간으로 남게 되리란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 세계를 구성하는 데 없어도 무방한 덧없는 조각일 뿐이란 것도,"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을 허물어뜨리는 이념이나 체제, 그리고 이것보다 더 무서운 세월의 잔혹성에 대해 작가는 슬프게, 노련하게 자신의 말을 온전하게 전하고 있다.
임시교사(손보미)
이 소설집에 마지막으로 실린 단편인데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았다. 외출할 때 밖에서 보기 위해 찢어서 호치캐스으로 묶어 가방에 넣어다녔을 것이다. 몇년 전, 손보미를 유독 좋아했었다. 임시교사는 기억으로 '임시'라는, 정해진 기간이 있는 유한한 직업이기 때문에 일반교사보다 더 선생다워야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 자신에게 유별나게 엄하고 반듯한 한 임시교사를 그렸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