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몇년 전 이언 매튜언을 읽은 생각이 난다. 당시 <속죄>와 <넛셀>과 <솔라>를 내리 읽었었다. 로쟈 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읽었었는데, 솔직히 <속죄>만 좋았고 넛셀과 솔라는 별로 와 닿지 않았다. 그때 나는 <속죄>를 읽으면서 언젠가 본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갘은데, 지금은 도대체 책을 보기 전에 <어톤먼트>라는 영화를 먼저 본 건지,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본 건지 헷갈린다. 

  그런데 아무튼 속죄는 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인간의 어리석은 추측이, 비록 텍스트에서는 어린 소녀가 추측한 거지만, 지금 현재에도 말도 안되는 추측과 비방으로 상대방을 생매장시키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 생각을 하면 진짜 악인과 선인의 탈을 쓴 어리석은 악인들의 숫자가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이후에(소행성에서) 매큐언의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읽었는데 젊은 매큐언의 상상력이 놀라웠고, 한편한편마다 뿜어져나오는 음울함과 잔혹함이 내 두 손을 들게 했었다. 


  그리고 이번엔 어쩌다 우연히 많은 독자들이 남긴 리뷰를 보고 <이런 사랑>을 택했다. 이 장편은 처음에 media2.0에서 <이런 사랑>으로 출판되었다가 올해 3월에<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복복서가에서 번역가를 바꿔 새로이 나왔다. 처음에 <이런 사랑>의 황정아 번역자와 <견딜 수 없는 사랑>의 한정아 번역자가 이름이 비슷해서 같은 번역자가 수정을 거쳐 새롭게 출판하는 줄 알았다. 하나 두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었다. 조금 싱거웠고 조금 신기했다. 

  나는 리뷰를 참고하기도 하고 책값을 고려하기도 해서 중고서점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매큐언은 또다시 내게 <속죄> 이상의 감동과 짜릿함을 선물했다. 선물이란 누군가 주기도 하지만 스스로 받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어쩌다 일어난 사건을 직접 겪은 목격자(당사자)들이 그 후에 직간접적으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삶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 과정을 치밀하게 좇아가며 묘사하고 있다. 

  첫 페이지부터 작가는 우연히 마주친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 로즈를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그려낸다. 들판 위 기구에는 아이가 타고 있고 기구에 매달린 할아버지는 기구를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거기로 달려가는 다섯 남자들이 있다. 작가는 이 부분을 장장 43페이지까지 묘사한다. 그리고 이 우연한 사고를 만난 탓에 로즈는 패리와 얽혀들게 되고, 기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잡고 있었던 남자(존 로건)는 떨어져 죽게된다. 황당한 사고가 또다른 참담한 사고를 불러들이고 만다. 

  어찌보면 단순하게 끔찍하고 놀라운 사건이 될 뻔한 사건은 공교롭게도 그 곳에 있던 로즈를 패리와, 그리고 존 로건의 아내와 그 가정에 씻을 수 없는 불행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것은 운명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분명 모른체 지나쳐 가버리면 어떤 일도 겪지 않고 평범했던 일상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선량함과 의로움 때문에 한 일로 인해 이로움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경우가 때론 발생한다. 그렇다해서 인간이 내 주위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모른체 지나쳐 가버릴 수 있을까. 도덕이나 윤리라는 덕목에 매어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곁에서 일어난 일을 무시하고 지나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그게 인간일 테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불행을 겪게 된다면... 이 작품은 그런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패리를 통해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하고 있다고도 보여진다. 사랑이 병이라면, 하나의 증후라면, 지나친 집착과 광기와 공상이 사랑에 들러씌워져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진실한 사랑이란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어리석고 광기를 띠게 되고 집착과 슬픔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패리의 사랑을 무조건 범죄시하고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랑은 온전하게 건전하게 셈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런 면에서 어쩌면 패리의 사랑이 클라리사나 존 로건의 아내보다 더 진실한 사랑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가슴 아팠고 가여웠다.

 이언 매큐언은 여러 면에서 정점을 찍은 작가인데, 묘사로나 서사로나 지식으로나 치열함으로나 현재 영어권 문학에서 거의 탑에 가깝지 않나 싶다. 정말 놀라운 묘사와 박식함으로 독자를 기죽이는 사람이다. 한 번은 아까워 두 번 내리 읽었다. 그래도 모자라다 싶지만 다른 작가를 만나기 위해 리뷰를 남긴다. 다음에는< 체실비치에서>를 읽을 예정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빠른 시일 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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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차례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굴 드라이브

결로

작정기

그런 나약한 말들

마음에 없는 소리

내가 울기 시작할 때

사랑하는 일

공원에서


  이 소설집은 퀴어 문제와 페미니즘,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여자가 부딪히는 사소하지만 타격감이 큰 일들에 대해 두루 짚어낸 단편의 모음집이다. 

'우리가 해변에서...''와 '작정기' '사랑하는 일'은 동성간의 사랑이 가져온 고통스런 일들이 펼쳐진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래서 사랑하는 일이 쓸모없는 일처럼(표면적으로는) 흩어질 때를 다룬다. 그중 조금 희망적인 작품은 '사랑하는 일'인데 이 작품은 현실에서보다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보다 훨씬 어두우리라는 전망은 누구라도 할 수 있기에 성소수자이면서 약자를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결의 작품들은 삼십대 여성의 고뇌와 좌충우돌을 그린 작품들로 분류할 수 있는데, '굴 드라이브'와 '그런 나약한 말들' '마음에 없는 소리'가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제대로 사회에 뿌리 내리지 못한 삼십대 중반쯤에 접어든 여성들이 자신의 미래와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며 모색을 시도해보려는 이야기들이다. 결혼하지 않고 뎌자 혼자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이 도처에 깔려있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인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굴 드라이브'와 '마음에 없는 소리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삼십대쯤의 여자들의 현주소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읽을 때 가장 재미있었던 '결로'를 빼놓을 수 없다. 동생의 피규어를 사기 위해(중고) 낯선 서울 깊숙한, 조용한 동네를 찾아간 주인공이 치매 할머니들과 주고 받는 이야기가 일품이다. 할머니들은 한 여름 길거리에 의자를 놓고 앉아 지나온 세월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하고 아주 엉뚱한 얘기를 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죽지 않은 동생을 죽었다고 할머니들에게 말하고 한 할머니가 준 스웨터를 골목길 의류수거함에 버리고 온다. 희비극과 초연함이 전부 녹아난 풍자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또 '공원에서'는 여자에게만 유난히 시비를 거는 남성들과 사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사람들의 오해와 시비를 당하게 되고, 남자처럼 생겼다는 이유로 술취한 남자에게 "개 맞듯" 폭행을 당한다. 이 일로 그녀는 불륜관계의 남친에게서 위로보다 훈계적인 비난을 받게 된다. 남친은 정말 그녀를 사랑한 걸까. 사랑한다고 해도 여자친구는 자신이 훈계할 여자 이상이 아닌 걸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여자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작품이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특이한 작품은 죽음에 대해 다룬 '내가 울기 시작할 때'인데, "몸이 마음의 심연" 이라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마지막 문장이 이 작품의 제목이 어째서 '울기 시작할 때'인지를 보여준다.

  "나를 발견한 사람이 어쩌면 삼인지도 모른다. 그는 어딘가 전화를 건 다음에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이제 달리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는 듯 울기 시작한다. 딱딱한 것이 녹아 뜨겁게 흘러내리는 울음소리에 마음을 의탁하고 싶어질 때, 나였던 것은 산산이 흩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때에는 마음 둘 곳이 몇 있어서 사람들은 잘 살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떠올렸다."



 작가의 사유란 빠르게 쓰기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천천히 생각을 하고 그것을 진득하게 작품에 녹여내야 한다.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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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으로 하는 독서가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책을 읽자면 몸과 눈이 피곤해지고 어느 순간 뇌세포가 무뎌지면서 마비될 것만 같다. 소설이라고 해서 쉽지 않기는 어떤 학문적인 서적과 견주어도 마찬가지다. 화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은 기실 작가의 사유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독자마다 이해도가 다른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창의적이고 남다른 사유와 그 사고에의 깊이가 일반인들보다 깊고 다채로워 독자로서는 집중하고 몰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 집중과 몰입을 내공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독서가 힘들 때, 유튜브로 단편소설을 부담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대부분 최신작보다는 좀 지난 작품들을 읽어주는 것 같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좋은 목소리로 단편 하나를 누군가가 한 시간 안팎으로 읽어준다. 누워서 귀로만 들을 수 있으니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 파피루스의 책읽는 하루라는 유튜브에 구독을 눌러놓았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친히 하는 독서는 패스하고 동영상을 세 개나 들었다. 

 서하진의 '농담' 과 하성란의 '기쁘다 구주 오셨네', '옆집 여자'


서하진의 '농담'

평범한 한 주부의 자아찾기가 주제일 것 같다. 매일 출근해서 똑같은 일을 하는 것에 지친 여자가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채 회사를 관두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한다. 남편은 아내의 갑작스런 행동에 화가 나 집을 나가 한참을 들어오지 않는데, 아내는 남편에 대해 처음으로 헤어질 생각을 가지게 된다. 절대 이혼할 수 없다던 그녀가 이혼조차도 가능한 한 방법으로 생각하게 될 줄이야. 

친구가 너도 그럼 집을 나와서 본때를 보여주라고 하며 자기 집에서 잠시 지내라고 한다. 그런데 이웃집 남자가 공연이 없지만 연습삼아 그녀에게 마술을 보여주고... 그녀는 자기도 마술을 배울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설레는 생각을 품는다. 그녀는 남편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익히고 있는 중. 남편을 만난 여자가 말한다. 로또에 당첨되어 상가 건물 위에 자리한 집 하나를 구입했다고. 그녀는 입지 않던 화려한 옷과 휘황한 보석을 차고 있다. 남편은 태도가 변하더니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자신들이 함께 계속 살아갈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농담!!! 삶은 어느 순간 농담으로 진실을 드러낼 때가 있다. 


하성란의 '기쁘다 구주 오셨네'

  3년의 연애 끝에 약혼한 여자가 처음으로 자신이 결혼할 남자에 대해 알게 된다. 단 한번도 의심하지 못했던 약혼자의 끔찍한 정체. 그녀는 약혼자의 생일에 나타난 (14년만의 모임이라고) 세 명의 남자와 생일 파티를 하게 되는데, 그녀는 결국 임신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이 네 남자 중 누구의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날밤, 자신을 임신시킨 남자는 누구일까.    

  그날밤 그들 중 은행원인 남자가 만취해 15년 전의 일을 발설하고 마는데, 그녀는 한쪽에서 자다가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15년 전, 한 소녀가 그들의 강제에 의해 그들을 따라왔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네 명의 남자는 그 사건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쓰레기인 그들의 우정은 그런 것이었다.

  약혼녀는 남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자기 뱃속의 아이의 아빠를 찾으려 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에게 어떤 성적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네 번째 남자를 만나지 못하고 헤매다 성당으로 들어간 그녀가 성전의 뒷쪽 의자에 앉는데, 그러고 보니 내일이 크리스마스다. 성가대의 기쁘다 구주오셨네,라는 성가가 들려온다. 

  책을 읽어준 파피루스가 마지막에 주관적 해설을 덧붙이는데, 아마 이 약혼자가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은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친구들과 계획적으로 벌인 일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 여자는 간혹 잠을 깨기도 하면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듣기도 했고 그들의 행위를 얼핏 본적이 있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약혼자가 그녀의 술에 무언가를 탔겠다 싶은 것이다. 그런 일이 오늘 밤에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너무나 끔찍하다. 

  하지만 그런 치졸하고 파렴치한  범죄자와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헤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 구세주가 오신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말도 피해자에게는 함부로 뱉어내서는 안되는, 죄악에 가까운 말이다. 오! 주여!


하성란의 '옆집 여자'

  옆집 507호로 이사온 여자의 가스라이팅이 시작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녀가 그런 짓을 하는지. 나는 507호의 친절과 명랑함에 이끌려 그녀에게 우정을 느끼고 있었는데, 결과는 자신이 완전히 바보가 되고 환자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있다. 그녀는 자신이 점점 더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게 507호 여자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간의 그녀의 교묘한 행위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러고 보니 남편도 아이도 자신보다 그녀를 너무 좋아하고 따른다. 혹시 나는 그녀에게 남편과 아이마저 뺏기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이제야 그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들으면서 하성란이나 서하진 작가의 필력에 신뢰가 갔다. 평범하게 시작된 전개가 차츰 불안감과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는 문체가 좋았다. 그러나 요즘 단편소설들의 흐름과 비교해보니 이전의 작가들은 확실히 단선적인 플롯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임현 작가님에게 플롯을 배웠기 때문에 금방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고, 더 확장시켜보면 요즈음의 젊은 작가들은 레이어드를 여러겹 쌓는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임현 작가, 지금 거의 다 읽고 있는 김지연 작가, 또 다른 작가들이 여러겹의 인물과 공간과 사건을 만들어 배치하는 것은 단편소설이 넘쳐나는 지금, 진화된 단편의 양상인 것 같다. 

내일은 김지연 작가의' 내가 울기 시작할 때'를 리뷰해야한다. 내게 화이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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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거지 소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작가가 헤어지기 전에 소개해준 작품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쩌다 왜 만나게 되었는지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시연과 딸아이에게는 그즘에 이미 발설하고 만 상태다. 가장 가까운 그들에게는 부끄러울 것도 수치스러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고전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고 나의 실패에 비웃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유머처럼 농담을 던지듯 그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했다. 나의 소설을 향한 절망이 무수한 망설임 끝에 그 작가를 만나는 길에 이르렀다는 걸 토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이야기를 계속할 수는 없다. 그건 소설로 써도 짧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그 작가를 만난 일이 진짜 일화가 된다면 그 이야기는 에피소드로 내 작품에 등장할 것이다. 그 때에는 코믹스럽고 아이러니한 삽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이 곧 올 거라는 기대를 하며, 그가 너무나 좋은 작품이라고 찬사했던 이 작품의 리뷰를 쓴다.  정말 내 눈을 뜨악, 뜨게 한 소설이었다. 그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조차 생겨나는 소설집이다.


장엄한 매질

   새엄마의 고자질로 아버지에게 로즈는 매질을 당한다. 아버지는 벨트를 풀어 딸을 응징한다. 그의 매질은 아내의 편에 서야하는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을 때리는 일에 진심인 것 같다. 혐오와 분노가 눈에 서리고 일종의 쾌락이 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다. 

  로즈는 계단을 올라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는다. 매질은 어떤 형식을 띠고 진행된 것이다.  아버지와 딸과 새엄마는 자신들이 맡은 연기를 한 것이다. 새엄마 플로는 지나친 폭력을 행한 남편을 비난하고 로즈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플로는 가장 맛있는 샌드위치를 정성껏 차려 로즈의 침대 맡에 놓고 계단을 내려간다. 한참 후, 로즈는 그 샌드위치를 먹는다. 세 식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어색함을 감추고 평화로운 일상을 지어낸다. 

  제목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 가족이 벌이는 이 장엄한 매질은 단순히 교육용 폭력이나 미움이 만들어낸 폭력이 아니라 어느 정도 매뉴얼화된 이 집안 특유의 가족간의 관계 때문에 생겨난 의식 같았다. 제목이 주는 아이러니와 삐꼬는 작가의 솜씨가 멋지게 탁월하다. 


특권

  오래전 시골에 가면 언제나 추문과 지저분한 이야기들이 번번이 들려오곤 했다. 아마도 앨리스 먼로가 살았던 캐나다의 시골 마을 온타리오주 윙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 이 작품의 주요 소재가 아닐까 싶다. 남학생 변소와 여학생 변소, 변소에 들어간 노인 번스 씨, 남매인 쇼티 맥길과 프래니 맥길의 잔혹한 이야기. 이렇게 잔혹하고 더럽고 원시적인 마을과 학교에서 로즈는 성장한다. 코라라는 같은 또래의 소녀를 동경하고 호감하는데, 그러나 코라는 결국 너무나 평범하고 단순한, 좀 성숙하기만 했던 시골 여자아이에 지나지 않았음이 얼마 안가 드러난다.

  전쟁이 나면서 이 가난하고 원시적인 마을은 새 문명으로 탈바꿈하고 지저분한 것들은 어느새 사라진다. 이제 로즈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그녀는 마치 여왕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어린 시절의 다양한 추문과 지저분한 얘기들을 그들에게 들려주곤 했"다고, 작품 첫머리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평범하게 잘 자란, 부르주아적인 사람들에게 그녀는 특권적인 화젯거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자몽 반 개

  로즈는 자라서 다리를 건너 시내의 고등학교에 다닌다. 시내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은 생활방식이 다른데, 로즈는 아침을 어떻게 먹느냐는 물음에(가정생활 과목 시간) "자몽 반 개"라고 대답한다. 시골 아이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루비 캐루서스라는 빨간 머리에 사시가 심하고 문란한 여학생이 등장한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와 일을 벌이기도 한다. 전형적인 시골이나 변두리 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또 로즈의 새엄마 플로의 불우했던 어린시절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 모든 것이 시골 마을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내가 살았던 포천이나 변두리인 싸릿말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비윤리적인 일들이 늘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재에는 제한이 없다는 말이다. 어떤 소재를 만나도 작가의 사유와 상상력은 현재와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현재의 독자에게 말할 수만 있다면 소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이 소설집이 증명해준다. 


야생 백조

  로즈가 처음 기차를 타고 토론토로 가던 중에 옆에 앉은 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이야기가 놀랍게 펼쳐진다. 목사는 진짜 목사였을까, 그는 목회자의 까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목회자였을지도 모른다. 하나 내용의 백미는 로즈가 차츰 그의 추행에 의도적으로 반발하지 않고 그를 제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수치였다. 비루함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순간에 자문한다. 해될 게 뭔가, 우리가 탐욕이 일으킨, 탐욕스러운 승인이 일으킨 차가운 파도를 타고 있는 동안에, 나쁜면 나쁠수록 좋은 그것이 뭐가 되었든, 해될 게 뭐란 말인가."


거지 소녀

  패트릭 블래치퍼드와 로즈의 연애와 결혼, 이혼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 똑똑하지만 가난하고 진취적이지만 출구가 봉쇄된 로즈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지닌 가문의 패트릭을 만나 갈등하다 결혼을 하고 만다. 패트릭은그런 그녀에게 거지소녀라는 낭만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둘의 결별은 정해진 순서에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절, 로즈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다면, 후회라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장난질

  이 단편부터는 어른이 된, 이혼을 한 후의 로즈의 사생활이 중심으로 펼쳐진다. 친구의 남편과 잠시 사랑했던 순간이 지나고 로즈는 그들 부부와 함께 밤을 보낸다. 셋이서 하는 정사라니....


섭리

  사랑하는 남자를 맞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그는 다시는 로즈에게 오지 않는다. 사랑은 진실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으로 인해 중단되고 실패한다. 그리고 로즈는 결국 그것은 섭리였다는 걸.


사이먼의 행운

  '섭리'와 아주 비슷한 내용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이먼과의 어긋난 사랑 때문에 로즈의 앞날이 뜻하지 않게 다른 도시에서 성공하는 삶으로 전환되었다는, 불행이 행운을 아무도 모르게 가져다주는, 쉽게 셈할 수 없는 삶의 다층적인 면이 오랜 세월 후에 드러난다. 


스펠링

  플로를 양로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먼저 답사하는 로즈가 보게되는 장면이 스펠링의 모티브다. 스펠링을 읽고 그 뜻을 암기하는 양로원 노인, 플로는 양로원에서 일생을 마감할 것이다. 마음이 가장 아픈 단편이었다.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

  동네의 공식적인 지체장애자인 밀턴 호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또 로즈와 같은 동기인 랠프 길레스피도 등장하는데, 추억담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수와 그리움 같은 걸 공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로즈가 중년에 다시 찾은 핸래티에서 어린 시절 친구 랠프를 만나 비로소 자기와 닮은 영혼을 찾았다고 느끼는 것도 궁극적으로 자신과의 화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마지막 결말이(해설에서) 이 제목을 멀리에서 찾은 상징인 것 같다. 



전에 먼로의 작품집을 두 권 읽었는데 그때는 그냥 수많은 작가들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이 '거지소녀'를 읽으며 먼로가 왜 단편소설의 거장인지, 왜 그녀에게 노벨문학상을 주었는지 확실히 이해되었다. 여기의 이야기들은 가난하게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수치와 열패감 따위의 감정들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느 소설보다 마음에 각인되고 공감하게 된다, 저절로. 정말 훌륭한 작품을 읽었고, 내게도 쓸 이야기들이 많다는 확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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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헨리 제임스는 현대 영미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작가로, 전통적 리얼리즘 사조가 지배하던 19세기 미국 문단에서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의식 세계를 언어로 형상화해 내며 후일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책날개에 적힌 글을 옮기다가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에서 멈췄다. 헨리 제임스의 유럽 여행기 같은 단편이 이 책에 꽤 있기 때문이다. 헨리 제임스가 겪은 유럽에 대한 인상과 인식이 소설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짚어내는 것은 아주 유용한 일일 것이다. 8편의 단편 중에 나는 4편만을 읽었는데, 그 4편 전부가 유럽이라는 대륙에 대한 동경과 또 그 정반대의 유럽에 대한 환멸이 주요한 소재로 취급되고 있었다. 


'네 번의 만남'에서는 유럽을 여행하던 한 여자와 만난 '나'가 그녀의 짧은 유럽에서의 체재기간 동안의 어이없는 상황과 미국으로 돌아와서의 그녀의 이후의 삶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녀는 유럽에 대한 동경과 그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했으나 어리석을 정도로 동정심이 많고 선한 성격으로 인해 닳아빠진 친척에게 속고 끝내는 정체가 모호한 프랑스 여자를 백작으로 받아들여 하녀같은 삶을 살다 스러져갔다.

 '나'는 그녀와 네 번의 만남을 통해 그녀의 전 생애를 아주 간략하게나마 스케치할 수 있다.  젊고 아름답고 너무나 선량하고 청순했던 그녀를 유럽으로 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만남, 파리에 살고 있는 친척에게 어이없이 사기를 당해 유럽 여행을 포기하게 된 파리에서의 두 번째 만남, 유럽여행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살던 시절의 우울하고 창백한 그녀를 만나게 된 일, 마지막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을 때 어떤 동경도 희망도 없이 하녀처럼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잠시 보고 뒤돌아 나와야 했던 일.

 유럽이라는 이상과 그 이상이 안겨준 수치스런 삶을 저항없이 살아가는 한 여자의 삶을 통해 미국인이(헨리 제임스가) 느끼는 극과 극의 유럽을 독자도  실감하게 한다. 우리의 삶도 순진한 한 시골 처녀의 순수와 동경이 치졸하고 가학적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사기를 당하는 것과 일면 흡사해 보여서 안타까웠다. 


'데이지 밀러'는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밝은 미국인 처녀 데이지의 로맨스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작품의 길이도 중편정도로써 데이지 밀러의 심리와 행위가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힌 것처럼  선명하다. 데이지는 남들의 구설을 염려하지 않는 지극히 밝고 쾌할한 아가씨이다. 그녀는 자신이 순수한 것처럼 타인들도 그러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녀는 밝고 환하고 맹목적이고 순정하다. 그런 그녀가 세련되고 허식적인 유럽땅에서, 그 이면은 추하고 약아빠진 세계에서 과연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을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헨리 제임스는 데이지 밀러를 미국인으로 작품 속 화자를 유럽인으로 설정하고 데이지를 거의 성녀화하고 있다. 너무나 밝고 솔직하고 아름다워서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성녀라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출생은 미국에서 했지만 유럽에서 삶의 대부분을 산 헨리 제임스가 써야 할 작품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데이지 밀러는 소설의 주인공으로서는 한번쯤 다루어 볼 만한 인물인 건 확실하다.  


'실제와 똑같은 것'은 모델이 되기에 부적합한 부부를 만난 화가가 화자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실제와 똑같다는 것은, 그리고자 하는 인물상에 너무나 똑같이 들어맞는 바람에 그 전형성은 쉽게 획득할 수 있지만 매력적인 여타의 이미지는 창조하지 못하게 되는 모델을 가리킨다. 잘 생기고 훤칠하며 전형적인 느낌의 부부는 그 외적인 완벽함 때문에 인물의 이면에 깃든 생동감과 고뇌 등이 표현되지 않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화가는 끝내 이 부부를 내치고 마는데 그 과정까지가 참으로 화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나사의 회전'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신비스럽고 매력적이다. 한 시골 아가씨가 엄청난 부잣집의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다. 남매를 둔 젊은 아버지의 묘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이 용기있고 무모한 아가씨는 고풍스런 성채에서 살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교사는 점점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고 자기가 오기 전의 가정교사였던 여자와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그 성안에서 일하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지는데, 어디까지가 환상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거기에 두 아이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이 불길하고 악마적이기까지 한데...  

이 작품은 수많은 서로 다른 해석이 난무하다고 한다.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상상력과  추측으로 작품을 달리 보고 있기 때문일 텐데, 작품으로써의 매력은 있겠지만 왠지 아무것도 모르고 기만당한 느낌 또한 들었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것도 나름 괜찮은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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