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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평점 :
채영신 작가의 [개 다섯 마리의 밤]을 읽었다.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역시나 문학상 수상작답게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어딘가 모를 깊숙한 곳에 남겨진 영혼의 상흔들이 들춰져 살아남기 위해 악한 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연결되어 잠시도 곁눈을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큰 맥이 되는 주인공인 박세민은 알비노 환자인 초등학생으로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능력많은 아이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 새롭게 전학을 온 상태이다. 세민은 태권도장에서 권 사범을 만나 그가 알비노로 받은 상처를 위로받게 되고 권 사범인 요한에게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요한은 세민을 괴롭힌 친구들을 연쇄적으로 죽여 살인범으로 잡히게 된다. 요한은 세민과 마찬가지로 육손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었다.
알비노라는 증후군은 일명 백색증이라고도 하며 선천성 색소결핍증을 말한다. 소설에서 안빈의 엄마가 잔인하게 말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알비노에 해당되는 흑인의 신체 일부를 갖고 있으면 부자가 된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살아 있는 알비노 흑인의 팔과 다리를 사냥하는 이들이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는데, 안빈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세빈과 세빈 엄마인 혜정에게 몹쓸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 그런데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 자식 밖에 모르는 안빈 엄마의 속사정에 그려질 때는 그녀의 잔인한 말과 행동이 오히려 더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안빈 엄마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자기 밖에 모르는 언니가 무용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어머니가 밤새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자 어머니를 돕는 헌신적인 작은 딸로 고생을 한다. 자신은 어머니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동지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특별한 딸로 생각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녀에게 대학 등록금도 대주지 못하겠다는 어머니에게 불평을 하자 어머니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누가 너한테 그러라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 안에서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215)"
바람끼가 다분한 남편과는 애초에 소원한 관계가 되어버렸고 안빈만은 자신과 같은 삶의 전처를 밟아서는 안된다는 다짐에 안빈 엄마는 안빈보다 월등히 공부를 잘하는 세빈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세빈과 안빈 및 학교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학예회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으로 연극을 하기로 결정하며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세빈은 뛰어난 글짓기 실력으로 초등학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연극 각색을 만들어내고 안빈과 안빈 엄마의 질투심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그에 반해 세빈의 엄마 박혜정은 세빈이 거짓말을 해도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 티비와 라디오 소리에 파묻힌채 술에 취해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삶을 보여준다. 혜정이 이렇게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병에 걸린 언니의 병원비를 위해 어머니가 새아버지의 방에 자신을 들여보냈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혜정이 일기에 남긴 내용을 안빈 엄마가 보게 되고, 안빈 엄마는 세빈과 혜정을 망가뜨리기 위해 세빈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알비노가 되었다는 폭언을 내뱉고 만다.
이야기의 중간에 김장미라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요한에게 전하는 편지와 같은 고백이 삽입된다. 김장미는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요한과 부모의 이야기는 실제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1993년에서 94년까지 연쇄살인에 인육까지 먹은 것으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던 지존파의 내용을 연결시킨다. 소설에서는 의리파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백화점에서 부유한 고객 명단을 빼내 그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실제로 지존파 범인들은 그들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살해한 반면 소설의 의리파는 그 부자들을 납치해 의자놀이로 한 명씩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요한의 부모는 자신들이 의자에 않게 되고 그로 인해 아들이 죽게 되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에스더와 요한의 부모는 이단 종교에 빠져 그들이 모두 구원된다는 휴거설을 믿으며 성별자를 찾아다니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세빈이 각색한 동물농장이 연극으로 구현되고 세빈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는 일기를 미리 써 놓는다. 세빈의 갑작스러운 애드립 대사로 무대에서 바보처럼 행동한 안빈은 광분하여 세빈을 옥상에 데리고 올라고 맥가이버 칼로 그를 위협하지만 세빈은 마치 그들을 비웃듯 연극 속의 주인공이었던 복서가 되어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된다. 이후 세빈 엄마 박혜정은 자신의 아들이 정신이상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집단 괴롭힘 때문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빈 엄마와 그녀이 남편을 제물로 삼는다. 안빈 엄마는 혜정의 시나리오에 그대로 걸려들게 되고 김장미가 요한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가의 말에 나왔듯이 각자 상처를 지고 살아온 이들이 남겨진 삶을 견뎌내기 위해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놓고 이 소설을 썼다.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273)"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으 밤'이라고 불렀대.(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