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집 -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아무튼 시리즈 44
김혜경 지음 / 제철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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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 님의 [아무튼, 술집]을 읽었다. 부제는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이다. 아무튼 시리즈 44번째 책이다. 얼마전 오랜만에 외식 약속이 있어 식당에 먼저 도착해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10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아서 응근 부아가 치밀어 오르며 어서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약속 시간을 정했던 카톡 대화방을 여는 순간 약속 시간이 1시간 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 마이 갓!! 내 인생에 약속 시간을 착각해서 이렇게 일찍 나온 게 처음인 것 같았다.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라는 허탈함과 더불어 남은 시간을 어정쩡하게 남들 먹는 모습을 지켜볼 수 만은 없어 잠시 후에 다시 오겠다는 어색한 인사를 남기고 근처의 독립서점을 가보았다. 읽고 싶은 책은 이미 대부분 사놓은 터라 서점만 구경하고 오려고 했는데, [아무튼, 술집]이 눈에 띄었다. 책 분량도 무게도 남은 시간 동안 읽기에는 최적화된 책이라 생각하고 일행을 기다리며 술집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약속을 마치고 읽던 책들을 보느라, 다른 신간을 읽느라 젖혀 놓았던 책이 드디어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올 차례가 되었다. 

약속을 착각했던 덕분일까? 책의 부제도 ‘기억도 마음도 신발도 놓고 나오는’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 치고 술집을 적게 다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모임은 식사와 더불어 이루어지는 술자리 그리고 이어지는 2차 술자리는 새로운 맛집과 새로운 분위기 또는 익숙하고 특색있는 맛집과 술집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딱히 술을 좋아하지 않아도 술집의 분위기와 왁자지껄함은 긴장된 사회생활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풀어주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보다 오히려 학생 시절에 술집을 많이 다닌 것 같다. 당연히 돈은 없고 시간은 많은 대학생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매번 끌려다녔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술집을 따라가는 시간은 거의 군복무만큼이나 당연하고 해내야만 하는 거대한 숙제였다. 무슨 쌍팔년도(여기서 말하는 쌍팔년은 1988년이 아니라 1955년으로 당시에는 단기를 사용하던 시절로 단기 4288년이라 쌍팔년이라 불렀고 흔히 지금이 쌍팔년도 시절도 아니라고 하는 말은 한국전쟁 후 열악한 상황을 지칭하는 것이다)의 시절도 아니었지만 술로 군기를 잡는 문화는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나는 거의 십여년 동안 그 시절의 마지막 희생양으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지금도 가끔 나이드신 신자들과 식사를 하다 내게 권한 술을 마다하면 한결같은 조언을 듣곤 한다. ‘이제 술 좀 배우셔야겠네요. 자꾸 마시면 늘어요. 제가 술 좀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잊고 있었던 술자리의 폭언과 추악한 기억들이 떠올라 갑자기 혈압이 오르며 불같은 화를 추스르느라 억지 웃음을 짓게 되다. 그분들이야 당연히 아무런 악의없이 어쩌면 진심으로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건넨 말일 수도 있음을 알기에 정말로 화를 낼수는 없다. 그래서 한때는 진짜 나도 술 좀 잘 마셔서 싸나이들의 세계를 평정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아무리 그런 큰 야망을 가진다 한들 나는 영원히 술꾼이 될 수 없다. 

그래도 [아무튼, 술집]은 재미있다. 저자가 소개한 술집을 다 가보고 싶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맛이라도 한 모금 머금고 싶다. 망원동이 그리 핫하다는데 나도 망원동의 새벽길을 걸어보고 싶다. 쿠바의 럼주도, 영화 덕분에 더 유명해진 모히또의 몰디브도, 파인애플이 화살표로 꼿힌 피냐 콜라다도 마셔보고 싶다. [아무튼, 술집]을 읽고 났더니 코끝에 알콜향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만 같다. No, No 재팬이지만 올림픽 기간이니 조만간 하이볼이나 한 잔 하러 가야겠다. 

“기실 술자리에 대한 기억은 ‘우리 어제 좋았지’ 정도의 대략적인 느낌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다. 취기가 무르익을수록 술자리는 지나친 동어 반복, 통제를 벗어난 감정 표출, 행위예술 수준의 보디랭귀지 등으로 범벅되니까. 그런 자리를 거듭해본 분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망각은 괜히 선물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품위 유지를 위해 적당히 흘려보내는 미덕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술자리, 그런 의식 있는 자리들의 집합소가 술집이다.(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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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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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신 작가의 [개 다섯 마리의 밤]을 읽었다.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이다. 역시나 문학상 수상작답게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어딘가 모를 깊숙한 곳에 남겨진 영혼의 상흔들이 들춰져 살아남기 위해 악한 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연결되어 잠시도 곁눈을 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야기의 큰 맥이 되는 주인공인 박세민은 알비노 환자인 초등학생으로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능력많은 아이지만,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아 새롭게 전학을 온 상태이다. 세민은 태권도장에서 권 사범을 만나 그가 알비노로 받은 상처를 위로받게 되고 권 사범인 요한에게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요한은 세민을 괴롭힌 친구들을 연쇄적으로 죽여 살인범으로 잡히게 된다. 요한은 세민과 마찬가지로 육손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었다. 


알비노라는 증후군은 일명 백색증이라고도 하며 선천성 색소결핍증을 말한다. 소설에서 안빈의 엄마가 잔인하게 말하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서 알비노에 해당되는 흑인의 신체 일부를 갖고 있으면 부자가 된다는 그릇된 믿음으로 살아 있는 알비노 흑인의 팔과 다리를 사냥하는 이들이 있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세상에 이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어떻게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는데, 안빈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세빈과 세빈 엄마인 혜정에게 몹쓸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 그런데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 자식 밖에 모르는 안빈 엄마의 속사정에 그려질 때는 그녀의 잔인한 말과 행동이 오히려 더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안빈 엄마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자기 밖에 모르는 언니가 무용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어머니가 밤새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자 어머니를 돕는 헌신적인 작은 딸로 고생을 한다. 자신은 어머니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동지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는 분명 자신을 특별한 딸로 생각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그녀에게 대학 등록금도 대주지 못하겠다는 어머니에게 불평을 하자 어머니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누가 너한테 그러라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 안에서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215)"


바람끼가 다분한 남편과는 애초에 소원한 관계가 되어버렸고 안빈만은 자신과 같은 삶의 전처를 밟아서는 안된다는 다짐에 안빈 엄마는 안빈보다 월등히 공부를 잘하는 세빈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세빈과 안빈 및 학교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학예회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으로 연극을 하기로 결정하며 클라이막스를 향해 간다. 세빈은 뛰어난 글짓기 실력으로 초등학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연극 각색을 만들어내고 안빈과 안빈 엄마의 질투심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그에 반해 세빈의 엄마 박혜정은 세빈이 거짓말을 해도 그 이유를 물어보지 않고 티비와 라디오 소리에 파묻힌채 술에 취해 어디론가 도망가려는 삶을 보여준다. 혜정이 이렇게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이유는 병에 걸린 언니의 병원비를 위해 어머니가 새아버지의 방에 자신을 들여보냈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혜정이 일기에 남긴 내용을 안빈 엄마가 보게 되고, 안빈 엄마는 세빈과 혜정을 망가뜨리기 위해 세빈이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알비노가 되었다는 폭언을 내뱉고 만다. 


이야기의 중간에 김장미라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요한에게 전하는 편지와 같은 고백이 삽입된다. 김장미는 에스더라는 이름으로 요한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요한과 부모의 이야기는 실제 우리나라에서 발생된 1993년에서 94년까지 연쇄살인에 인육까지 먹은 것으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던 지존파의 내용을 연결시킨다. 소설에서는 의리파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들은 백화점에서 부유한 고객 명단을 빼내 그들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실제로 지존파 범인들은 그들의 계획과는 무관하게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살해한 반면 소설의 의리파는 그 부자들을 납치해 의자놀이로 한 명씩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순간에 요한의 부모는 자신들이 의자에 않게 되고 그로 인해 아들이 죽게 되는 끔찍한 일을 겪게 된다. 그로 인해 에스더와 요한의 부모는 이단 종교에 빠져 그들이 모두 구원된다는 휴거설을 믿으며 성별자를 찾아다니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세빈이 각색한 동물농장이 연극으로 구현되고 세빈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는 일기를 미리 써 놓는다. 세빈의 갑작스러운 애드립 대사로 무대에서 바보처럼 행동한 안빈은 광분하여 세빈을 옥상에 데리고 올라고 맥가이버 칼로 그를 위협하지만 세빈은 마치 그들을 비웃듯 연극 속의 주인공이었던 복서가 되어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된다. 이후 세빈 엄마 박혜정은 자신의 아들이 정신이상으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집단 괴롭힘 때문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안빈 엄마와 그녀이 남편을 제물로 삼는다. 안빈 엄마는 혜정의 시나리오에 그대로 걸려들게 되고 김장미가 요한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가의 말에 나왔듯이 각자 상처를 지고 살아온 이들이 남겨진 삶을 견뎌내기 위해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을 포스트잇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놓고 이 소설을 썼다.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273)"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으 밤'이라고 불렀대.(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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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통조림
사쿠라 모모코 지음, 권남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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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모모코의 [복숭아 통조림]을 읽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원숭이의 의자]와 함께 출간된 에세이 3부작 중의 첫 번째 책이다. 역시나 엉뚱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저자의 스펙타클한 일상이 적잖은 웃음을 선사해준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저자의 인터뷰 내용이 첨부되는데 에세이 내용에서는 볼 수 없는 더욱 솔직한 저자의 고백이 더해져 사쿠라 모모코란 작가가 어떤 사람일지 조금은 상상이 되고 더 알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나 ‘마루코는 아홉살’이라는 만화가 유명해져서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채소 가게를 하던 부모님 집 앞에 관광 버스로 사람들이 몰려와 저자의 어머니를 당황케 한다던지, 아버지 히로시의 이름을 부른다는 이야기는 꽤나 당혹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유명해진다는 것은 그만큼의 부채를 감당해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지 않나 싶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집중할 때는 심지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하는데, 아마도 그런 생활 태도로 꽤나 많은 잔소리를 들으며 살았겠지만 외부의 평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할 수 있는 마음을 굳건히 지켜나갔기에 아마도 유명한 만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해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할 때 느껴지는 급우들의 비웃음에 자괴감을 느끼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남들보다 아주 월등하지는 못해도 적당한 선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가는 것이 좋은 거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면 독불장군처럼 보이는 독특한 행동들은 너무나도 쉽게 비판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살아오면서 그런 특출난 일탈의 일상을 살아온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무색무취의 시간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게 되는 것 같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에서 익준과 송화가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다음에 뭘 먹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송화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다음에 먹을 음식을 나열하자, 익준은 송화를 놀라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막 영감처럼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냐고 감탄한다. ‘뭐 먹으러 갈까?,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라는 질문은 내가 싫어하는 질문 중의 하나이다. 그냥 누가 결정해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도 분명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게 명확히 있을텐데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일까란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극중 송화처럼 자신의 색깔을 명확히 드러내며 만족스러운 모습이라면 꽤나 매력적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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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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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었다. 일본은 표면적으로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처럼 보이지만 실제 그들이 제례 예식처럼 행하는 신사에서의 예절은 신도라는 이름의 종교에서 비롯된 행동들이다. 신도라는 일본의 종교를 알아갈수록 여타의 대표적인 종교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과 그들의 신도에는 다신교적이고 다분히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토테미즘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소설의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인 오쓰가 가톨릭 사제가 되고자 하면서도 중세 스콜라 철학 사상을 중요시하는 교수들의 질문에 범신론적인 대답을 한 이유는 아마도 신도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심지어 중세 이후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파리외방전교회의 가장 뛰어난 선교사들이 일본을 기점으로 복음 선포를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일본에 보낸 수많은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기점으로 삼았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유럽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은 일본의 무참한 박해로 인해 수많은 순교자들이 죽음을 맞이했고, 그 당시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켜나간 이들을 기리시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일본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가사키에 가면 순교자들의 흔적이 남은 성지를 방문할 수 있다. 

이렇듯 유럽 가톨릭 교회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복음화율은 거의 0.1%정도에 불과해 실제 일본 사람들은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를 봐도 어떤 사람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신자들은 대를 이어 신앙을 지켜왔고, 엔도 슈사쿠와 같은 위대한 작가가 탄생된 것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침묵]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사해 부근에서]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깊은 강]은 오로지 가톨릭적인 시선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심연의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지속되는 선과 악,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으로 규명해 나가고 있다. 

[깊은 강]의 주인공들은 크게 4명으로 황혼의 나이에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는 슬픔을 간직하며 아내가 남긴 유언을 따라 환생할 아내를 찾아 인도 순례를 떠난 이소베, 작가 연보를 살펴보니 실제 저자의 경험이라고 폐 수술을 세 번이나 이겨낼 때 대신 죽음을 맞이한 구관조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인도 순례를 떠난 동화작가 누마다, 이소베의 아내를 간병하는 역할로 등장하지만 오쓰라는 어리숙하고 순진한 대학 동창을 골탕먹이기 위해 가짜 사랑의 유혹을 건네고 나서도 오쓰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해 그의 발자취를 쫓는 미쓰코, 미얀마에서의 전투에서 퇴각하며 죽음을 목전에 둔 전우들을 들판에 남겨둔 채 배고픔에 지쳐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기구치가 바로 이야기의 주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인도의 불교 성지 순례라는 투어에 신청하여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조우할 수 있는 게 된 곳은 바로 갠지스강에서 유유히 흐르는 물로 목욕하고 입을 헹구며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이들이 머물고 죽은 이들의 재와 시신을 강에 띄어보내는 바라나시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4명의 주인공들의 마음 속에 감춰진 관념적인 고통과 내면의 갈등은 신부가 된 오쓰가 공동체에서 벗어나 힌두교도들의 시신을 짊어지는 아이러니한 삶과 마주치게 된다. 

저자가 오쓰의 삶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이 구절이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으니, 비참하고 초라하도다.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겨, 버렸고 마치 멸시당하는 자인 듯, 그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의 조롱을 받도다. 진실로 그는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떠맡았도다.(313-314)” 오쓰가 믿는 예수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미쓰코에게 오쓰는 토마토나 양파라는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을 대체하며 그가 믿는 신은 이성적인 사고로 완벽한 결론을 맺을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장소에 어이없는 모습으로 실추된 한 마디로 실패한 모습이었다. 오쓰는 미쓰코의 외침에도 나오는 것처럼 도대체 당신 혼자 그렇게 바보같은 희생을 감수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냐는 물음에 목이 꺾이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힌두교들의 들것에 실려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저자가 오쓰의 삶을 대변하는 구절로 선택한 내용은 이사야서 53장 2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이 원문이다. 바로 예수님이 장차 겪게 될 운명에 대한 예언자의 선고인 셈이다. 여전히 지속되는 종교 분쟁과 폭력이 난무하는 갈등 속에서 어쩌면 여전히 범신론적인 신앙에 국한된 오쓰의 선택은 양파라고 불려도 그의 숭고한 사랑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것이기에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마더 데레사의 수녀회 수녀들이 데리고 가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라는 인간 심연의 당위를 통해 미쓰코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게 된다. 

“믿을 수 있는 건, 저마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깊은 강에서 기도하는 이 광경입니다.”하고, 미쓰코의 마음의 어조는 어느 틈엔가 기도풍으로 바뀌었다. “그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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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주파수를 찾습니다, 매일 -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보낸 단짠단짠 16년 일하는 사람 2
차현나 지음 / 문학수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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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나 피디의 [당신과 나의 주파수를 찾습니다, 매일]을 읽었다. 문학수첩에서 발간된 '일하는 사람' 두 번째 시리즈이다. 부제는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보낸 단짠단짜 16년'이다. 노안이 와서 그런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면 멀미가 나는 것처럼 어지러움이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처럼 유튜브를 즐기지 못하는 비겁한 변명을 대고 싶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은 포털사이트이 검색창에서 모르는 것을 묻기 보다 유튜브에서 찾아본다고 하니 IT 세계의 속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척되는 것 같다. 


더 이상 아파트 후미진 곳에서 친구들을 사귈 수 없는 상황이기에 현대의 아이들은 학원에 비싼 돈을 내가며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게 된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 또래 집단에 속해야 하는데 학원을 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같은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의 아이들이(물론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에 중독되어가는 것은 웹상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놀이가 형성되고 거기에 끼지 않으면 도태되고 때로는 왕따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는 요샛말로 레트로 감성이 풍부한 아재들이나 라떼는 말이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들이 들었던 오래전 대중문화로 여겨지는 듯 하다. 요즘 라디오를 즐겨듣는 청소년들이 있을까?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그 내용이 방송되어 다음 날 학교에서 주목받는 일이나,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 얼른 카세트 공테이프에 녹음 버튼을 누르고 잡음이 들어가지 않기를, 노래가 끝날때까지 DJ가 아무말도 하지 않기를 바랬던 마음을 요즘 아이들이 상상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요즘 라디오는 일하는 사람들과 출퇴근 중에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청취자일 것이라 생각된다. 하루종일 반복되는 일을 하며 다른 곳에 눈을 둘 수 없고 오로지 작업하는데 집중해야 하지만 귀 만큼은 어디론가 향할 수 있고 무료하고 지루한 작업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게 라디오 방송의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출퇴근 시간에 막히는 길목에서 활기찬 댄스가요나 적절한 발라드가 흘러나오면 내 앞으로 가로막는 새치기 차량도 가끔은 너그럽게 끼워주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잠들지 않는 늦은 밤 차라도 한잔 우려내 좋아하는 DJ의 나긋나긋한 위로의 말들을 듣고 있으면 누군가 나를 묵묵히 위로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제, 어제 우리 방송을 들어주었던 그 청취자가 오늘도 문자로 인사를 보내왔다면, 적어도 그분에게는 오늘 아주 시급하거나 안 좋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그저께처럼, 어제처럼, 라디오를 켜고 문자 하나를 보낼 만큼 그분에게는 평범한 하루였을 거라는 생각, 얼굴도 모르는 그 청취자의 평범한 안부가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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