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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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글, 조안 스파르 그림의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를 읽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마지막 저자의 글에서 조안 스파의 그림을 극찬했던 것처럼, 이야기 속 상상의 장면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삽화들이 절묘히 배치된 작품이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일 뿐이 아니라, 어른들도 오랜만에 아빠, 엄마 미소가 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주인공 오로르는 자폐성향을 지닌 발달 장애 11살 짜리 어린이다. 오로르는 입으로 소리내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사람들의 눈을 보고 생각을 다 읽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오로르는 첨단 시대에 걸맞게 태블릿으로 아주 빠르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오로르에게는 에밀리야라는 3살 많은 언니가 있고,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빠를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애인이 있다. 오로르는 엄마와 아빠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지만, 그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오로르에게는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알 수 있는 신비한 힘도 있지만, 아빠가 동전을 숨기는 마술을 보여주며 ‘나타나라 참깨’라는 말을 한 것으로 계기로, 별을 바라보고 응시하다가 ‘참깨 세상’으로 넘어가는 능력도 갖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힘든 세상’이고, 오로르가 별을 보고 넘어갈 수 있는 곳은 ‘참깨 세상’이다. 참깨 세상에서는 차별도 불의도 없고 온통 밝은 색으로 모두가 웃는 행복한 곳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특히나 오로르는 말을 하지 못해 장애아이라는 시선을 받는 세상 속에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특별한 곳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야기는 오로르의 언니 에밀리야의 친구 루시가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루시는 수학을 아주 잘하는 똑똑한 학생이지만 아주 뚱뚱해서 엄마에게도 무시를 당하고 학교에서 놀림을 받기 일쑤다. 오로르는 루시에게 용기를 주지만 의기소침한 루시는 자꾸만 움츠려들려고 한다. 오로르, 에밀리야, 루시는 엄마와 함께 괴물 동산에 놀러가게 되고 그곳에서 신나는 놀이기구를 타고 수영을 하는 도중에 평소 학교에서 에밀리야와 루시를 괴롭히던 애들을 만나게 된다. 도로테와 잔혹이들은 뚱뚱한 루시가 ‘햇빛에 내놓은 치즈 덩어리 같다’고 놀리며 오로르에게는 말도 못하는 바보라고 무시한다. 루시는 창피함과 두려움에 그들을 피해 도망가고 결국 실종된다. 오로르의 엄마는 루시가 실종되자,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과연 루시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야기는 결국 오로르의 신비로운 힘으로 루시를 찾아내고 불의와 편협한 시선 속에서 차별을 겪는 이들의 고통과 남들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강조하고 있다. 오로르의 당찬 모습과 참깨 세상에서 오브와 함께 노는 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워 그림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지만 잿빛인 데에는 좋은 점도 있어. 잿빛인 날이 많기 때문에 푸르른 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밝고 행복한 날만 계속될 수는 없어. 잿빛도 삶의 일부야.(224)”
“나에게 소설가로서 자폐증 문제를 다뤄보지 않겠냐고 물어본 사람은 이전에도 있었다. 친구들도, 동료들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물론 그것은 내 아들 맥스가 자폐증 스펙트럼 안에 있으며, 다섯 살 때 이후로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맥스의 인지 능력 가능성을 테스트한 ‘전문가’ 두 명은 맥스가 독립적이고 지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제 스물여섯이 된 맥스는 런던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며, 공연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이것은 이른바 ‘전문가’라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심한 장애를 초월하려는 맥스의 엄청난 의지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작가의 말 중에서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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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 번역가 권남희 에세이집
권남희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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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번역가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읽었다. 일본 문학에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들어본 이름일 수 밖에 없는, 더군다나 하루키 매니아라면 더욱 더 이분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귀국을 하고 갑작스럽게 강의를 시작해야해서 급하게 강의록을 만들게 되었다. 기존에 출판된 책으로 강의를 하자니, 너무 오래되었고 구태의연해보여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배운 내용과 맞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로마에서 들은 강의록을 토대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사전을 찾으며 정독을 하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말로 바꿔 그것도 학생들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대충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번역이라는 작업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나 번역은 그냥 이나라 단어를 저나라 단어로 바꾸는 단계가 아니라, 의미와 뉘앙스를 전달해야 하기에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강의록을 번역하면서 점점 의문가는 내용들이 많아지다보니, 관련된 다른 서적들을 공부해야만 했다. 대체 이 내용이 여기서 왜 나오는거야? 단지 내용을 번역해서 나눠주기만 하면 조금 수월하겠지만, 그 강의록을 토대로 수업을 진행해야하니 번역된 내용의 근거와 부연설명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지난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지 일주일 내내 준비를 해도 5장 이상을 나눠주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첫 학기 강의 때에는 신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쪽대본이라고 들어봤냐? 나는 쪽강의록을 준비하느라 강의 직전까지 번역하고 왔으니 오늘 이것만 배우면 강의 끝이다.” 학생들이라 뭐가 좋은지 나쁜지 그저 일찍 끝나면 환호성을 지른다. 
아무리 직업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그동안 이 지난한 작업을 무려 28년째 해왔고, 무려 300권의 책을 번역했다고 한다.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언어에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다 하더라도 웬만한 끈기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당연히 생계가 달려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탁월한 동기부여가 된다. 그동안 저자의 번역물만 보다가 직접 쓴 에세이를 읽으니 그 긴 시간을 묵묵히 걸어온 자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스스로를 은둔형 외톨이라고 말하지만 외로움을 견디는 데는 누구보다 자신있는 삶을 사랑하는 저자의 당당함과 내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특히나 그동안 번역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전해주니 소개된 책들을 찾아보게 되고, 장바구니에 열심히 넣어두게 된다. 오가와 이토, 미우라 시온, 무레 요코 등 이들의 신작이 궁금해진다. 
“내 일상은 늘 그렇지만 바쁘면서도 무료하다. 메일 한 통, 카톡 한 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전화는 싫어해서 잘 받지 않는다.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메일이 올 텐데’하고 송구스러워하며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일은 없다. 많아 봐야 일과 관련된 메일 다섯 통 이하다. 태생이 집순이인데다 직업까지 마감, 마감하는 일이다 보니 인간관계 황폐하다. 외출 준비의 귀찮음보다 외로움이 낫지, 나쁜 일로 연락 오는 것보다 휴대전화 조용한 게 낫지, 즐겁고 신나는 일 없지만 심심했던 어제처럼 별일 없는 오늘이 낫지. 내일도 무료한 오늘과 같은 날이면 좋겠고, 다음 달도 밍숭맹숭했던 이번 달과 같은 달이면 좋겠어.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어차피 내 성격이나 직업이 달라질 일은 없으니, 집순이에게 최적화된 사고방식이다.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부터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굴려 온 행복회로인지도 모른다.-에필로그 중에서(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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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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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를 읽었다. 하루키의 아주 짧은 동화같은 이야기에 우리나라 이우일 님의 그림이 더해져 묘한 재미를 선사해주었다. 그냥 텍스트로만 읽는다면 10-20분이면 충분히 읽을 정도로 짧은 내용이지만, 하루키의 묘사로 만들어진 신기한 인물들을 쉽게 떠올리도록 도와준 그림 감상을 통해 양 사나이라는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상상의 나래에 금방 빠져들게 된다. 눈이 내리는 어느 겨울 밤,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혀가 데일 정도로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을 후후 불며 하루키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어떨런지? 양 사나이는 참 착한 사람같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성 양 어르신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도넛을 만들고 파느라 작곡할 시간도, 여유가 있을 때 피아노를 치며 악상을 떠올리려고 하면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찾아와 시끄럽다고 하는 통에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덧 크리스마스 나흘 앞으로 다가오고 초조해진 양 사나이는 양 박사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양 박사는 양 사나이에게 작곡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어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며,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 양 어르신 전기>에 따르면 성 양 어르신은 203미터의 구덩이에 떨어져 돌아가셨는데, 백분의 일로 줄여 구덩이에 빠지면 그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양 사나이는 집 뒤 공터에 구덩이를 파고 빠진다. 구덩이 속에서 양 사나이는 오른 ‘꼬불탱이’와 왼 ‘꼬불탱이’, 208과 209, 바다까마귀 부인, 부끄럼쟁이 그리고 양 박사를 만나게 된다. 양 사나이는 저주를 풀고 성 양 어르신을 위한 추모곡을 만들 수 있을까? 
하루키는 우물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도 우물은 아니지만 구덩이가 나오고 주인공은 그 구덩이에 들어가 닥친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그닥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최근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난데없이 구덩이 속에서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등장한 이데아가 나온다. 우물이든 구덩이든 땅 속 어딘가에 하루키 만의 이야깃거리들이 가득차 있나보다. 난 어디에서 그걸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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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고양이
김경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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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작가의 [남은 고양이]를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내용을 보고 오랜만에 만화가 보고 싶어졌다. 기본적인 플롯은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마찬가지로 화자인 고양이에게 의인화를 하여 스토리가 진행된다. 화자인 고양이는 현재의 상황이나 심리적 상태, 고양이의 의견들을 혼잣말처럼 내뱉지만 고양이의 주인인 인간은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단지, 냐옹, 미욤 등등 소리로만 들릴 뿐. 이번 작품에서의 주인공 고양이의 이름은 고선생이다. 고선생의 집사는 작가 오은수. 은수는 최근 고선생과 함께 지내온 고양이 이름은 고양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극심한 슬픔에 빠져있다. 고선생은 은수가 시름에 빠져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어떻게 하면 은수에게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고심한다. 은수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평소 은수의 영양분이 되어준 것들도 남겨지게 된다. 이름하여 남은 밥은 바비, 먹다 남은 사발면은 며니, 한 입 물고 만 빵은 앙꼬, 그리고 짝을 잃어버린 한 켤레의 양말 양마리. 이들은 고선생의 주도하에 ‘남존모’를 결성한다. 남은 존재들의 모임! 특별한 사건 없이 은수의 집 안에서만 벌어지는 남존모 회원들이 은수를 바라보며 일어나는 에피소드 들이지만, 고선생의 시선으로 인간의 삶에 대해서 생객해보게 된다. 만나고 밥먹고 얘기하고 웃고 울며 함께 지내온 정든 사람들과 시간의 순서만 다를 뿐 우리는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을 예상치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먼저 떠나는 이는 아쉬움과 미련을 남길지 모르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남겨진 자들의 슬픔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이기에 또 다른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고선생이 인간의 말을 못하면서도 행동으로 그리고 남존모 회원들의 독려하여 은수를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준 것처럼, 남겨진 이들에게 그런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저는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고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의 고단함에 관해 때때로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을 고양이에 담아 ‘친구가 죽었다’로 시작해서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로 끝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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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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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연 님의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을 읽었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로 런칭한 Like-it의 다섯 번째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처럼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시리즈인듯 하다. 이번 책은 MBC 라디오 피디로 일해온 장수연 님이 라디오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그녀가 피디로 성장하기까지의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과 삶에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일상의 지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준다. 라디오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라디오가 마치 저물어가는 해의 노을처럼 은은한 빛깔만 내뿜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유투브와 같은 개인 방송의 전성시대에, 특히나 보여지는 것이 아닌, 단숨에 임팩트 강한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아닌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라디오의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는 시대이다. 지금은 마치 분주한 일을 할때나, 반복된 일을 하는 BGM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상태이지만 그래도 경쾌한 시그널송과 함께 시작되는 DJ의 희망찬 격려는 고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잊고 지냈던 힘의 원천을 떠올리게 해주고, 잔잔하고 때로는 슬픔이 밀려오도록 만드는 엔딩곡과 더불어 잘자라는,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DJ의 인사는 쓸모없는 말과 행동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후회조차도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습관적으로 어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멈출 수 없다. 
“매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지겹고, 정도든다. 매일 하기 때문에 결국엔 들킨다. 매일같이 차곡차곡 만들어진 이미지, 흐름, 기세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라디오가 무섭다.(38)”
“인생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이 와중에’가 아닐까. 상중에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한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고, 이 와중에 애는 보채고, 이 와중에 돈은 벌어야 하고, 저 남자는 잘 생겼고, 버스 놓칠까 봐 뛰어야 하고 ... 그렇다, 언제나.(51)”
“‘모든 사람은 나빠질 가능성을 품고 산다’는 것. 나는 정말로 이 사실이 무섭다. 누구나 언제든 내가 증오하고 경멸했던 사람들,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한두 번만 눈감으면 된다. 외면은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그게 맞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늙어가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 자체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들이다. 나는 내가 추하게 나이 들까 봐, 조직의 적체된 기성세대가 될까 봐 두렵다. 나빠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거라는 걸 안다.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 핵심은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에 있다. 지적으로 연마할 것, 선택의 순간에 숨지 말고 행동할 것.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처럼 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137)”
“프랑수아즈 사강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 태풍처럼, 해일처럼, 폭우처럼, 폭설처럼,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무지마지한 것들처럼 쏟아져내리는 시간들을 지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에는 딴짓을 하자고 다짐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자고. 내 일과 조금과 관련 없는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오늘의 나를 구원해주길.(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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