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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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록작에는 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김지연 [사랑하는 일], 김혜진 [목화맨션],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서이제 [0%를 향하여], 한정현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 이렇게 일곱 작품이다. 이번 작품들도 인간 성에 대하여, 퀴어와 차별에 대한 소재들이 많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몇 년 째 비슷한 형태의 소재들이 반복되며 다양한 분야의 시도가 이어지는 이유는 새롭게 불거진 문제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 부터 인간 삶 안에서 중요한 화두였다는 점이다. 심각하게 논의되고 깊이 있게 들여다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게 뻔하고 행여나 감정만 상하는 논의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애써 멀리하며 애둘러 감춰왔던 고민들이 여기 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이제는 숨긴다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잊혀진다고 치부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허구임에도 어디선가 마주칠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주인공 나와 연수는 대학교 2학년 때 수강했던 교양과목의 젊은 교수 장 피에르에게 푹 빠져 그가 유학했던 파리로 배낭여행을 떠나 흠모하는 교수와의 만남을 갖는다. 하지만 장 피에르는 나와 연수가 생각하듯이 애수에 가득찬 매력만점의 남자가 아니라 그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생운동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은 부모에 의해 유학을 떠나 공부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험버트 험버트처럼 연수에게 보인 행동으로 나는 더 이상 장 피에르를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고 훗날 비슷한 광경을 행정직원으로 일하는 연구소에서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장 피에르와 같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가정의 형태에 대한 고착된 생각을 주인공 나의 시선으로 철저히 부정하려 한다. “그들은 아침밥을 차려주는 전업주부 아내와 두 명의 자녀로 구성된 4인 ‘정상 가족’을 이상적인 삶의 형태로 여기는 2020년대의 희귀종이었다. 하얗고 천진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특권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당연한 권리인 양 여겼다.(12)” 

[나뭇잎이 마르고]에서 앙헬과 체는 대니를 중심으로 알게 된 사이다. 대학교 선후배이지만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옥상에서 ‘마음씨’라는 이름으로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체는 어릴 때 할머니가 안고 있다가 떨어뜨려 한 쪽 다리가 짧은 장애와 부정확한 발음을 갖게 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걸을 때도 체는 상대의 속도에 맞추려 애쓰지 않았다.(85)” 라는 구절처럼 언제나 당당했다. 사실 당당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짓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소설 속이 체가 조금 멋져 보였다. 체는 동성인 앙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앙헬은 체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체와 지내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를 ‘힘의 우위’에서 찾는다. 

“타당한 이유없이 나무를 마르게 한 존재는, 마찬가지로 마땅한 이유 없이 병든 사람을 낫게 합니다. 그 이유의 공백 앞에서는 원인을 밝히려는 것, 이유를 찾으려는 것, 그걸 알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어쩌면 교만일 수 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소설을 쓰는 마음가짐과도 관련된 일입니다. 저에게 소설은 ‘왜’라는 질문의 소용돌이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세상의 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그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저에게 되돌려줍니다. 이유를 묻고 그 답을 찾으려는 간절함만큼이나 답을 모르고 사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답이 없다는 것의 기쁨을 배우라고 합니다.(112)”

[사랑하는 일]에서는 동성커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과의 갈등이 그려진다. 빌라를 물려받기 위해 억지스레 아빠와와의 만남을 가진 은호와 영지는 술을 마시며 아빠를 발라버리려고 하지만 결국 터진 아빠의 잔소리와 현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에 그만 은호는 패륜아같은 독한 말을 내뱉으며 상처를 입게 된다. 엄마와 아빠는 이혼하고 엄마는 이모가 있는 캐나다로 떠나며 은호와 영지에게 이곳에서 살기 힘들면 자신에게 오라는 말로 은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은호는 그것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목화맨션]에 나온 만옥과 순미는 김혜진 작가의 주된 과제인 사회적 약자들의 대한 시선을 다시 한 번 집중시킨다. 어떻게 한 번 인생역전은 아니더라도 넉넉한 살림살이를 바라며 구입한 목화맨션 101호는 좀처럼 재건축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세입자 순미와의 재계약을 연장하고 종국에는 파기하며 가냘픈 이웃의 정 또한 끊어지고 만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환경을 가진 아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울고불며 때를 모습에 당신이 어린 시절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아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엄마의 간절함이 결국에는 아들의 경쟁자는 쨉도 안될 만큼의 게임실력을 얻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그런 당신의 노력에도 엄마라는 단어가 사랑하는 아들의 세계에서는 욕으로 쓰이는 감당못할 현실을 마주하는 씁쓸한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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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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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T]를 읽었다. 그야말로 반은 글이고 반은 티셔츠 사진이 다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는 작가들이 이런 책을 낸다면 과연 얼마나 팔릴 수 있을 것인지란 생각이 먼저 들게 만드는.. 그럼에도 하루키니까 용서가 된다는, 그리고 하루키만이 이런 식의 에세이에서도 하루키스타일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정반대의 생각도 들었다. 하루키스트들에게는 맹목적으로 그의 책을 구입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있기에 앞 뒤 재지 않고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하루키의 신간이 나왔다고 하면 무조건 주문을 누르게 되지 않나싶다. 그럼에도 본국에서는 어떻게 출판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하루키 신간이 나왔으니 뽕을 뽑듯이 양장커버에 두꺼운 고급 종이를 사용한 것은 오로지 티셔츠 사진을 잘 보이기 위함이려나? 양장본이기에 책장에 꽂아두면 그럴듯한 폼이 나기는 하지만 페이지 수에 걸맞게 문고본으로 간출하게 나왔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는 하루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티셔츠를 모아놓을 생각을 했을까? 얼마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유퀴즈에 나와서 2만권에 달하는 책과 그 외 수집품을 놓을 아카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새로운 책을 구입해 책장에 꽂으려고 했는데 똑같은 책이 있음을 발견할 때의 아쉬움 또한 토로했다. 그런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느 작가는 소장하고 있는 책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책을 찾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알고 그 책을 소장하고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책을 새로 사서 본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중독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부럽고 존경스럽다. 


하루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티셔츠 중에서 자동차, 음악, 술, 음식, 동물, 운동 그리고 책 등과 구분지어 분류하고 이야기를 전해준다. 하루키가 구입한 티셔츠의 상당 부분은 하이와 섬에서 1달라 정도의 값을 지불하고 산 것이라 전한다. 그가 소개한 티셔츠는 명품은 단 하나도 없고 어떤 행사의 기념품이나 단체티 같은 것들도 상당수이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그가 한 번도 입지 못하고 그저 상자 속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도 대다수이다. 하루키의 책 중에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 기념으로 받게 된 그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는 하루키 자신이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몹시나 난처한 일이라고 말한다. 독자인 나는 어디서든 그런 티셔츠를 하나 구입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말이다. 


책의 표지로 사용된 티셔츠의 문구는 "KEEP CALM AND READ MURAKAMI"라고 씌어 있다. 어디선가 하루키의 출판 기념회를 갖는 곳이 한적하게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고 싶어지는 최상의 환경 중의 하나는 의외로 에메랄든 빛 바다물결이 너무나도 투명해 육안으로도 작은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해안가의 모래사장 앞에 놓여진 썬베드에서 그늘진 오후가 아닐까 싶다. 또 하나의 그럴듯한 곳은 추적추적 비가 내려 어두컴컴해진 어느 카페의 구석진 곳에서 빗물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느릿느릿 페이지를 넘길때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다면 스탠드 불빛에만 의지해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제일 좋기는 하다. 이러나 저러나 하루키가 마우이섬에서 1달러에 산 티셔츠에 새겨진 'TONY TAKITANI'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생각하다 소설을 쓰고 나중에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기이한 운명은 누구라도 그가 천상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위스키와 달리기를 좋아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하루키가 일흔이 넘도록 롱런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소피스티케이션(sophistication), 트와이스 업, 라프로익, 데포르메, 디거맨, 비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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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이정은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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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플로리스트의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를 읽었다. Like-it 시리즈 8번째 책이다. Paris 라는 말만 들어도 에펠탑이 떠오르며 왠지 모르게 낭만이라는 단어도 연상되는데 더불어 꽃을 다루는 플로리스트 라는 제목이 붙었으니 그야말로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대체 하루만 지나면 금방 시들어버릴 꽃 같은 것에 돈을 왜 쓰는 거냐는 근검절약의 새마을운동 정신을 가진 사람도, 꽃은 여자들이나 좋아하는 게 아니냐는 전근대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도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을 축하하는 이가 전해준 꽃다발을 받게 되면 알게 된다. 아 꽃이 단순히 풀때기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공간과 의식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꽃장식은 있을 때는 잘 모르더라도 불필요한 지출 같아서 없애버린 후에는 꽃이 맡았던 영역이 꽤나 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수시로 들여다보는 딸이 엄마 폰 사진첩에는 볼게 없다며 투덜거리다 엄마가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오자 이번에는 분명 볼만한 게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살펴보지만 여전히 온통 꽃 사진 투성이라고 툴툴댄다는 사연이 흘러나왔다. 왜 엄마를 찍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엄마는 다 늙은 얼굴 뭐가 예쁘다고 찍냐고 이 꽃을 보라고 얼마나 예쁘냐고 나이가 들면 꽃들이 왜 이렇게 예쁜지 모르겠다며 아주 오래전 자신도 딸과 같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딸이 조금만 천천히 자신과 같아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젊고 혈기가 왕성할 때는 스스로를 꽃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온통 또래의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갖곤 했다. 그런데 서서히 사람을 둘러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세월의 변화에 상관없이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떨꾸는 자연을 바라보게 된다. 봄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초여름을 알리는 매미 울음 소리와 더불어 울창해지는 잎사귀를 바라보며 독한냄새를 풍기는 은행을 밟을까봐 조심하며 노랗게 변해버린 인도를 걸으며 어느덧 앙상한 가지에 차가운 눈을 굳건히 견뎌내고 있음을 바라보며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우리의 삶을 그려보게 된다. 

저자와 같은 상황과 결정은 아니더라도 타지에서 공부하고 지내본 경험 때문인지 그녀가 보냈을 시간들이 적잖이 공감되며 그래도 그렇게 굳건히 지내온 삶을 이렇게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음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모험과 새로움과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낸 어쩌면 지독히 견뎌왔을 시간을 세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저자 스스로 말했듯이 일상의 평온함에서 행복을 찾아온 이들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의 정체성은 그녀가 플로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도쿄와 파리에서의 유학과 이민 생활 적응기를 통해 일상의 변화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무모한 용기와 싱그러운 동기를 전해주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코로나 19가 마무리 되면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못한 크로와상과 바케트의 거리를 마음껏 거닐고만 싶다. 

“파리지앵의 솔직함은 자유로움을 대변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 더 쿨하다는 인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도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면 거침없이 참견하여 의견을 낸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정치와 철학, 예술과 문화를 시작으로 주제를 막론하고 본인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것이 내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이고 가장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오랜 역사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다. 이 감정선이 뚜렷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표현 방식은 ‘눈치 문화’에서 자라온 내게 부러움과 충격을 동시에 안겨주었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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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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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작가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읽었다. 기후변화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어울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저자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놀람을 금치 못하며 책장을 넘기다 어쩌면 실제로 일어날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에 섬뜩함과 책임감이 몰려왔다. 스웨덴에서는 십대 소녀인 그레타 툰베리가 벌써 몇 년 전부터 환경운동가로서 기후변화의 심각함에 대해 토로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해마다 경이로운 날씨 변화를 체감하면서도 오히려 너무 강력한 변화를 일찌감치 겪어서인지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하며 여전히 환경파괴를 일삼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제 뉴스 보도에서 다회용 컵에 대한 인식개선과 더불어 스타벅스에서는 2025년까지 일회용 컵을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를 듣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집집마다 배달음식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덕분에 수익을 올려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배달음식을 한 번만 시켜보면 깨닫게 된다. 대체 나 하나 배부르자고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동안 특별히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하더라도 순식간에 플라스틱이 쌓이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대체 저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런데도 플라스틱 사용의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내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마치 마약처럼 우리의 몸을 중독시켜 플라스틱 사용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도덕적 양심과의 저울질에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기후변화를 악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때로는 나 자신을 별종으로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자동차 광고에서 ‘용기맨’이라는 카피를 쓰며 어느 기업의 간부가 불편해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각종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은 퍽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그렇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용기 자체가 음식을 담기에 그럴듯한 미적 품격을 지녀야 할테지만 말이다. 

저자가 열 개의 단편에서 보여주는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시대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상황이 너무나도 심각해져 특별한 장치(커다란 돔시티 같은) 안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시대를 그려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지금 사랑 같은 걸 운운할 때냐고 누구가가 한심한 투로 말을 건넨다 하더라도 사랑은 피어나고 지속된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니까 말이다. 결국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져온 삶의 행태들을 반성하고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편리함에 익숙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나의 온전한 몸을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을 사랑하고, 을씨년스러운 축축함을 안겨주지만 어떤 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을 정도로 안심하고 맞을 비를 사랑하고, 산길을 걷다 마주친 짐승이 물을 마시다 놀란 눈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이다.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벚꽃 눈을 맞고 봄햇살을 즐기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없이는, 초록이 없이는 우리의 본성도 사라질 것만 같다. 추천의 말에서 나온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걸까. 대체 누구를 위하여”라는 구절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안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 ‘기후 변화’의 경종을 울릴 때 당신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안다. ‘환경 보호’라는 말이 당신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그것은 맞지만 지겨운 말. 옳지만 무미건조한 말. 
머리로 이해하는 건 쉽다.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면, 참여해야 한다면, 그래서 바꾸거나 변화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캠페인이 일상의 등을 떠밀 때, 구호와 선전이 동참과 참여의 언어로 바뀔 때, 듣는 자는 망설이게 된다. 올바른 그 말이 싫어진다. 부담스럽다. 번거롭기만 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다 적당히 죽고 싶은 마음뿐. - 정용준 작가의 서문 중에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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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커버 개정판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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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작가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읽었다. 퀸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2018년에 개봉되어 꽤나 큰 인기를 누렸고 이미 오래전 노래임에도 다시 한 번 퀸의 저력을 느낄 만큼 꽤나 자주 들려왔다. 이 소설이 영화 개봉 이후에 출판되었다면 영화와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제목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겠지만, 개정판 이전의 출판은 이미 2014년에 이루어졌기에 저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퀸의 노래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책의 제목이면서도 소설 한 가운데에 추억의 턴테이블 또는 늘어지도록 들은 공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로 빈번히 등장한다. 그리고 노래 가사까지도 인용되어 소설의 복선을 암시한다. 

개정판을 내며 저자가 추가적으로 쓴 앞부분을 읽게 되면 소설의 내용이 대충 그려지며 자발적인 스포일러의 경향이 농후해서 김이 새는 기분이 적지않게 들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의 말도 안되는 일들이 어쩌면 정말로 저자가 판사로서 겪은 억울하고도 원통한 일이 아닐까란 의구심을 폭증시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저자처럼 역시 판사이다. 하지환 판사는 그의 고향인 신해시로 내려가서 추억을 더듬다 대학 후배를 만나게 되고 고향집에서 우연히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후배는 돌아가신 엄마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은 사람의 손가락이 아닌 것 같다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후배의 이야기가 귀에 맴돌던 지환은 신해성모병원을 찾아 엄마를 진료했던 우동규라는 류마티스 전문의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류마티스 환자도 아닌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오랜 시간 항류마스티제를 투여했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격분한 지환은 우동규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만 든든한 뒷백이 있었던 우동규를 처벌하기란 쉽지 않은 어이없는 현실이 묘사된다. 

소설속에 나오는 우동규란 인물은 자신의 말을 동전 뒤집듯이 손쉽게 바꾸는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의 전형으로 나온다. 자신이 이뤄놓은 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여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이를 매장시키려 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우동규가 그렇게 철면피의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잘못을 알고도 눈감아 주는 법원의 관행이 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는 그를 범죄자로 간주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행한 거짓말과 악행이 너무나도 뻔하게 증거로 남아 있음에도 그를 변호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핑계들은 그들만의 논리를 내세우며 지환의 분노를 부추겼다. 

지환이 판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우동규의 계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힘없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억울한 일을 겪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과연 법이 정말로 정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지, 아마도 요즘 사람들은 더더욱 깊은 회의를 갖지 않을까 싶다. 지환은 우동규의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게 되자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게 된다. 지환의 내면적 두려움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엄마와의 분리불안에서 시작되고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이별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연인과도 이별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지환은 두려움과 상처를 극복하는 심리적 상담을 통해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게 되고 민사 소송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환은 그의 어린 시절 친구를 통해 조금은 과격하고도 반전인 일을 저지르게 된다. 과연 그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본질이 달라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죠. 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과거에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 심리적 패턴에 빠지는 것에 불과해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은 꾸준히 근육 운동을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지만 사랑에 빠지는 데는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이 필요치 않죠. 정신적으로 홀로 설 힘이 부족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사람들은 늘 외로움과 허기를 느끼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구걸하는 데만 급급해요. 이들은 상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에게 기생하려는 것에 불과하죠.(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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