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이인애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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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애 작가의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를 읽었다. 브런치북 9회 대상 수상작이다. 코로나 19 발생 이후에 팬데믹과 관련된 여러 편의 소설들이 나왔는데, 이번 소설처럼 우리나라의 현실을 밑낯처럼 드러낸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부의 방역 정책으로 결정된 여러 가지 규정들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담았기에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려왔다. 뉴스에서 방역 단계를 재조정할 때마다 언급되었던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담아내었기에 그동안 수많은 자영업자 분들이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마다 고작 QR코드를 찍는 것을 귀찮아하고 행여나 마스크를 제대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언짢아졌던 기억들이 떠올려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이렇게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니, 이렇게나 사람이 이기적일 수 있다니. 소설 속에서 스터디 카페를 운영하는 대한을 비롯한 다른 업종의 사장님들을 힘들게 했던 손님은 특정한 소수의 진상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에 나 또한 그런 몰지각한 손님은 아니었을까 되돌아보게 된다. 


주인공 이대한은 8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서 권고 사직을 하고 자영업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아버지가 IMF 시기 하던 사업이 망해 오랜 시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대한은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부모님을 뿌듯하게 한 장한 아들이었다. 비록 대출을 많이 받기는 했으나 18평 짜리 아파트도 얻었고 할부가 끝난 차도 있는 퇴직금 5천만원이 전부이 30대 미혼 남자였다. 대한은 어떤 업종을 선택할 것인가 시장조사와 더불어 임대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다, 관리비가 많이 들지 않는 어느 건물의 3층에 스터디 카페를 하기로 결심한다. 대한의 퇴사와 더불어 시작된 스터디 카페를 개업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독자인 나마저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위태롭게 느껴졌다. 임대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카운팅되는 월세에 대한 압박과 더불어 스터디 카페 인테리어를 위해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순식간에 호갱님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은 세상이 왜 이러 각박한 것일까란 순진한 생각마저 철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똑바로 정신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눈탱이 맞고 거리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은 대한에게 극도의 스트레스를 주어 결국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만든다. 


대한은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며 의사로부터 치료를 위한 과제로 주변의 또 다른 자영업자 사장님들을 인터뷰 해서 블로그에 글을 작성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이후 대한은 가까운 횟집 사장님부터 양장점, 미장원, 백반집, 카페, 치킨집 사장님들을 만나 그들이 이 영업장을 시작한 계기와 코로나로 인해 겪는 어려움과 각 영업장만이 갖고 있는 특징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대한이 인터뷰한 영업장들은 사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원하는 삶의 터전의 환경적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이렇게 편의시설이 가깝고 잘 정비된 소위 인프라가 잘 조성된 곳을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습관적으로 이러한 영업장들을 드나들었으면서도 정부의 자영업자 보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소설 속에서 올해 들어 자영업자들에게 500만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한다는 기사가 나오자, 횟집의 손님 중 누군가가 마치 들으라는 듯이 자기들이 낸 세금으로 지원금 받으니까 좋냐고 비아냥거리며 자기도 500만원 받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도 화내 거나 따지지 못하고 그저 다시 찾아주십사 인사를 건네는 것이 몹시도 씁쓸하게 느껴졌다. 


‘백신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료 검색 중에 캐나다의 어느 자영업자가 보낸 편지라는 내용을 접하고,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들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팬데믹 사태로 인해 식당처럼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을 수 밖에 없는 영업장들의 영업 금지는 우리나라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2주, 2주, 2주 이렇게 지속되는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은 일주일만 영업을 안해도 월세 및 각종 공과금 걱정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에게는 치명타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캐나다를 비롯한 일부 부유한 국가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영업장을 열지 못하게 하는 국가의 명령으로 인해 얻지 못한 수입을 대부분 그대로 보상해 주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거의 없다는 소식으로 편지를 마무리 된다. 마치 꿈같은 얘기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느 나라의 국가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가 편안하고 안락할 때에는 손쉽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여유가 있고 건강할 때에는 봉사할 시간도 낼 수 있고 금전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내코가 석자이거나 한두푼이 아쉬울 때에는 오로지 자기만 바라보게 된다. 일단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타자를 위한 시야가 열린다. 보통 사람들은 모두가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간혹 송곳처럼 이런 보편적인 이기심을 뚫고 나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마치 타인을 위해 세상에 보내진 성자처럼 인간의 공존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놓는다. 그들의 숭고함은 너무나도 바보같고 멍청해보여 시장논리에 길들여진 보통 사람들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먼지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송곳같은 단 한 사람이 있었기에 우리가 인간다움을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세상은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스크를 써야 했고 생활에 제약을 좀 받기 했지만 사람들은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켜 먹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집콕이 길어지다보니 인테리어가 지겹다며 가전과 가구를 바꾸었고, 이 시국에도 갖고 싶은 명품 가방을 사려고 이른아침부터 백화점에 장사진을 쳤다. 스타벅스 프리퀀시는 여전히 인기였고, 새로 나온 휴대폰이나 스마트워치를 사는 데에도 사람들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부품 수급이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신차를 사려면 몇 개월씩 기다려야 했다. 집값은 이미 천장을 모르고 치솟은 후였다. 10억이 올랐는데 고작 1억 떨어졌다고 집값이 안정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기꾼이었다. 진짜 집값이 잡혔다고 믿는다면 그건 멍청한 사람들이었다.(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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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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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 님의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를 읽었다. 부제는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이다. 스페인 반년살이를 꿈꾸고 계획했던 모든 것이 코로나 인해서 한 순간에 날아간 아쉬움 때문인지, 제목을 보는 순간 마치 나보다 먼저 실행에 옮긴이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처럼 느껴졌다. 6개월 동안 지낼 숙소와 어학원도 예약을 하고 무엇보다도 10년 동안 모은 항공사 마일리지로 생애 처음 비지니스석을 탄다는 생각에 가슴 설레이며 비자까지 받으러 스페인 대사관에도 갔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비자를 수령하러 갔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나아지겠지란 생각을 했었다. 예약한 출국 날짜를 늦추며 하루 빨리 상황이 호전되길 바랬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모든 예약을 취소해야했다. 다행히 금전적인 손해는 얼마 되지 않았기에 속쓰림은 그나마 심하지 않았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해외 여행을 준비하는 지인들이 저가항공의 요금을 하나도 환불받지 못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불행 중 다행인 것인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십여년 전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을 우연히 접하고 그 길을 걸은 사람들의 책을 여러 권 섭렵하며 언젠간 나도 꼭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했었는데, 이렇게 반년살이의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리니 스페인은 이루지 못할 꿈처럼 로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로마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스페인 소녀에게 들은 맛집 정보를 믿고 람블라스 거리를 지나며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알려준 주소를 찾다가 맛본 타파스는 그야말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했다. 더군다나 계산을 마치고 나와보니 상그리아 한 병이 카운팅 되지 않아서 공짜로 마시고 나온 행운도 따라줘서 스페인에 대한 기억이 더 좋게 남아있다. 슈퍼에서 산 바게트 빵과 하몽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검은 성모님을 만나러 몬세라트에 갔을 때, 왜 그런지 그날따라 식당을 못 찾아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성지의 난간에 기대어 수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나서야 식당가를 발견했었다. 아직 초봄이라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바게트와 하몽이 어찌나 맛있던지 입천장이 다 까지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체하지 않고 든든하게 한 끼를 때웠던 기억은 스페인에 대한 향수를 몽실몽실하게 남겨주었다. 


저자의 스페인 반년살이에는 여행 중에, 어학원의 동료로, 숙소를 계기로, 파티와 같은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꽤 많이 나온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우연적인 만남이 애틋함을 남길 정도로 순식간에 정을 나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그게 바로 여행의 힘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더 빨리 마음의 문을 여는 것도 아닐 것이고, 축제나 파티의 현장이라도 해도 친밀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아닐텐데 언제 다시 볼지 모를 그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마음이 부럽기도 하고, 지금껏 그렇게 여행을 하지 못한 내 자신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인연과 도움이 되는 인연을 많이 만들 수 있었음에도 놓쳐버린 만남이 많은 것 같아 항상 후회와 미련이 남곤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는 보지 못함에도 기약없는 만남을 상상하며 이렇게 활자로 기록된다는 것을 통해 그동안 부질없는 사람에 대한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살다보면 그렇게 물 흘러가듯이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내가 사람 관리를 잘 못하는 것이 아닌가란 죄책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만남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는 것. 결국은 이렇게 우리 삶이 흘러가야 하는 것이리라. 


“자기계발 서적이나 어록에 자주 등장하는 명언이 하나 있다. 일본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가 쓴 [난문쾌답]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그는 인간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 시간을 다르게 쓰는 것.

둘, 사는 곳을 옮기는 것.

셋,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이 세 가지가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감히 이 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넷, 여행을 떠나는 것.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조금씩 바뀌어 있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말이다. 

그러니 일단 떠나시기를!(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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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노운
이진 지음 / 해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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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작가의 [언노운(unknown)] 읽었다몇년  무한도전에서 남극에 가지 않고도 펭귄을   있다는곳으로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라는 곳을 방문해 그곳에서 라면집을 하시는 분을 만난 장면이 떠오른다남극은 연구원이 되어서 지원하지 않는다면 아예 가볼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지 그나마 펭귄을 직접   있는 푼타 아레나스라는 곳의 이름이 잊히지 않는  같다판다코알라처럼 펭귄은 생긴  자체가반칙이라고  정도로 귀엽다세상에 너무나도 귀여운 동물들을 사람들 손을  멸종될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처럼 개체수가 많지 않고 좀처럼 쉽게   없다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귀여운 동물 중의 하나인 펭귄으로부터 시작된다주인공 우현이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펭귄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며 무리와 이탈되혼자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는 외톨이 펭귄이 흡사 자신과 비슷하다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많은 상황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자 하는 내용이 담겨 있겠지만 차별금지법에 내포된 가장 핫한 이슈 중의 하나는 당연히 성소수자에 대한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자는 내용이다어릴 때에는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주  나라의 사정일 거라고만 생각했다서유럽 사회가 성적으로 너무 개방되어 있다보니 그런 일이 자주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란 안이한 생각도 했었다하지만 커밍아웃으로 당당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사람들을 나오고 그들이 어떤 병에걸린 이들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성향을 인식하고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지 않아 용기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점점 의문이 쌓여갔다도대체 이러한 현상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그리고이러한 문제는 비단 현대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사에 지속적으로 유지된 현상임에도 과거에는 감히 목소리를   없었기에 현대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것이 아닐까 싶다


성적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비단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성은 공개적으로 나누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이다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도 성에대한 심각한 고민은 나누기 힘들다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성을 갖고 태어날  밖에 없는 존재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물학적 성을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하지만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의 다름을느낀 이들은 이미  사회가 적응하고 받아들여온 성별을 거부할  없어 두려움을 느낄  밖에 없다성에대한 고민은 누구에게도 쉽게 나눌  없는 중대한 문제이기에 더욱 감출  밖에 없고 나이를 불문하고 성에대한 이야기를 꺼려하는 이들은 어설픈 농담과 치기어린 훈수로 성에 대한 고민을 한낱 가십거리로 만들어버린다이러한 문화적 유치함을 우리는 어릴때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그래서 더욱 깊이 감춘다얘기해봐야 나만 바보가 되거나 이상한 사람이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소설의 주인공 우현이 그랬듯이우현의 엄마 영주가 그랬듯이 얘기해봤자 ‘그러니 뭐하러 일하러 갔어혹은 그러니 뭐하러  자신을 밝혔니?’라는 대답을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너무 비정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공동체 같지만의식의 전환은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기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소설의 말미에 우현이 우발적으로 자신이 퀴어임을 밝혔을  밥을 먹던 아빠가 ‘퀴어 뭐냐고 딸에게 묻는 장면처럼 누구도 자신의 자녀가자신의 형제가자신의 부모가 성소수자라는 고백을 듣게 된다면 놀라지 않을 자신이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퀴퍼에 가려고 지도 어플을  엄마 영주처럼 남일이 아니라  자식의 일처럼 바라본다면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에 고등학생 특유의 자신감은 성별 이분법의 간단한 기반 위에 쌓아 올려지는 것이다성별 이분법은 사람의 성별을 여성과 남성  가지로만 구분하는 것을 뜻한다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파란색은 남자 색깔핑크색은 여자 색깔’ 이라는 고정관념이 대표적인 성별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어디 그뿐일까 짧은머리 남자 머리 여자’, ‘울지 않는 남자툭하면 우는 여자’ …. 성별 이분법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그러니까 절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단어로  자르듯 설명해 낸다.(12)”


사람의 마음이 라디오 전파처럼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다면 나의 주파수는 박시우 같은 인싸들하고는완전히 다른 종류일 것이다내가 발신하는 신호는 돌고래의 초음파가 인간에게 들리지 않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내가 좋아하는 것들특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아이들은 이해  한다 갈래머리 아저씨처럼 놀림거리로나 삼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입을 다문다나의 소중한 것들을 비웃음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입을 닫고  존재를 지운  사는 것이 힘들지는 않다워낙 어릴 때부터 그렇게 지내와서 익숙하니까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교실의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채로 집에  재미있지도 웃기지도 않은  억지로 재미있는 척하려고 노력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외롭다슬프거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짬도 없을 만큼 크고 무거운 외로움이나를 집어삼킨다.(49)”


“‘당신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그런 사실을 알리는  얼마나 어려운지무지개가 아닌 지예는 이해할  있을까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존재애매함과 망설임  자체가 바로 나라는 것을이렇게 넓고 복잡한 세상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의 창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있을까그런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있도록 말할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면 얼마나좋을까그런 능력을 어디서 배울  있는 걸까그리 생각하자 문득  앞에 앉아 있는 지예가 오늘 전시장에서 만난 어른들보다  낯설고  사람처럼 느껴지고가슴속에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97-98)”


피와 살을 나누고  목숨과도 주저 없이 맞바꿀  있는  하나뿐인 존재일지라도 아이는 어쩔  없는 타인이다타인에게서 자기 존재를 찾으려 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공허한 짓이라는 것도 안다 아는데도알면서도.(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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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즐랜드 자매로드 - 여자 둘이 여행하고 있습니다
황선우.김하나 지음 / 이야기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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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김하나 작가의 [퀸즈랜드 자매로드]를 읽었다. 부제는 “여자 둘이 여행하고 있습니다”이다. 전작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함께 써서 그런지 이번 여행기는 이어지는 후속편을 읽는 기분이었다.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변해가는 한 가운데에 어쩌면 도발적이고 그렇게 자유롭게 선택하여 살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이 있었을텐데도 여자 둘의 삶은 남자 둘의 삶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남자들의 의리라고 말하는 허세보다 여자들의 연대가 더욱 더 강력한 생존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여자 둘이 동남아의 휴양지에 가서 즐기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남자 둘이 가면 상상하지도 못한 일을 겪게 된다. 


어쨌든 이번 책은 여행기 이니까 그것도 호주라는 우리와 시차가 거의 없음에도 1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미지의 땅이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직도 잘 보존된 곳이기에 누구나 한 번 쯤은 여행을 꿈꾸지 않을까 싶다. 호주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주변에 다녀온 사람도 많고, 살다온 사람도 있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몇 번은 다녀온 거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호주의 지명들이 낯설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지도 상에 어디 있냐고 하면 미국의 여러 도시들처럼 서쪽인지 동쪽인지 모르겠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들은 왠지 나와는 인연이 없는 듯 하다. 광활한 대지를 갖고 있어 지금처럼 스마트 크루즈가 장착된 차라면 100킬로 이상 눌러 놓고 딴짓을 해도 될 정도로 가도가도 끝이 안 보이는 도로가 있다던데, 그런 길을 그다지 달려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행여나 가다가 사막 한가운데에서 차가 멈추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보다 미쿡 또는 호주 경찰들이 쏼라쏼라 질문하며 우물쭈물하는 나의 팔을 뒤로 꺾어 바닥에 눕히고 수갑을 채우면 어쩌하는 무서움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책의 구성도 이야기의 시작과 마침에 여러 사진들을 화보집처럼 나열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챕터마다 황, 김 이렇게 번갈아가며 여행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면 저자들이 본 풍경과 동물들이 연상되고 챕터가 끝날무렵 마치 답안지처럼 마무리하는 사진들을 보며 나의 상상과 견주게 되어 흥미로웠다. 팬더를 좋아해서 그런지,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유일하게 호주에서만 서식하는 코알라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로마의 학교 식당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코알라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본적이 있는데, 마치 아기가 아빠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묘하게 편안함이 느껴져 한참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역시나 김하나 작가도 코알라를 어찌나 귀엽게 표현하는지 아마도 실제로 본다면 한동안 그 귀여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다. 호주의 퀸즈랜드 지역은 소개하는 여행기를 잃다보니 여전히 마스크를 써야 하는 팬데믹 시기가 아닌, 과거 또는 미래의 어느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저자들도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인 2019년에 다녀온 것이라고 하니, 한동안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현상들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몇십, 몇백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마스크도 쓰지 않고 먹고 마시며 재채기를 하고 지내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마스크를 벗고 지내다보면 언제 또 그랬냐는듯이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기도 하고. 퀸즈랜드 여행기는 호주에 대한 동경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 뿐만 아니라 언제든 그렇게 원하면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시기에 대한 애틋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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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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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작가의 [고독사 워크숍]을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36번째 작품이다. 제목부터 현대 사회의 씁쓸함을 적확하게 표현한 문구가 들어가서 어떤 사회 풍자의 사건이 전개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마치 정말 어떤 일을 도모하기 위한 아주 비밀스러운 워크숍이 열리는 것처럼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여러 명의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은 전혀 상관없는 관계인 듯 하면서도 우연을 가장한 연결점이 드문드문 엿보인 옴니버스식 소설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의 전개를 따르지 않고 워크숍에 참가한 주인공들의 사연이 전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워크숍이 이어지기에 때로는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앞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도 지금 워크숍의 주인공의 사연에 집중하는 방식을 따랐다. 그리고 매 순간 고독사의 워크숍의 숨겨진 포스트잇을 찾아 초대에 응답하는 이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추천사를 쓴 정이현 작가는 고독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소멸의 순간을 나눌 수는 없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죽고 개별적으로 죽는다. 임종을 홀로 맞을 때와 타인에 둘러싸여 맞을 때의 감정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산 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않는다. 아직 살아 있는 자는 이렇게 결심할 뿐이다. ‘누구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고독사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고독의 코어를 단련’할 필요가 있다고.(383-384)”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죽기 직전까지는 죽을 것 같이 고독하고 외로울 수 있으나 죽는 순간이 고독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말해줄 수 없다. 그럼에도 마치 죽음의 종류가 있기나 한 것처럼 현대 사회는 ‘고독사’라는 말을 만들었다. 출퇴근을 위해 운전을 하다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으면 온갖 생각에 머리 속이 몹시 번잡스러워진다. 특히 쓸데없이 내뱉은 말이 떠오르거나 허무하게 보내버린 시간들의 아쉬움에 머리를 콕콕 쥐어박고 싶어진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렇게 홀로 고독하게 보내는 시간이 무한정 길어진다면 나는 언제까지 이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란 생각의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차가 밀려서 수없이 브레이크를 밟으며 도로 위의 그 수많은 차를 운전하는 이들과 함께 있음에도 마치 ‘신 앞에 선 단독자’처럼 그렇게 쓸쓸하다. 워크숍의 초대장을 받은 이들은 분명 어떻게든 살며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어른이 되면서 중요한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것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거였다. 평정심에서 나오는 상냥한 태도, 사려 깊은 경멸과 친절로 가장한 경계심.(133)”


“돌이켜 보면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다만 값싸게 취급된 어떤 죽음에 대해서 슬픔이 제거된 자리에 악취 나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채움으로써 그 죽음이 야기할 수 있는 작은 슬픔조차 느끼기를 거부했던 것 같았다. 스스로를 혐오의 상태에 가두고 고립시키는 행위가 슬픔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리란 어리석은 기만. 그렇게 전이된 슬픔은 이전에도 있었고 이번이 마지막도 아닐 터였다.(210)”


“선배도 참 지겨웠겠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불행 앞에서 다행을 챙기는 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과 자꾸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246)”


“할머니, 나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할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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