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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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43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은 이승우 “마음의 부력”이고, 우수작은 박형서 “97의 세계”, 윤성희 “블랙홀”, 장은진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천운영 “아버지가 되어주오”, 한지수 “야심한 연극반”이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교에는 그 옛날 우리의 모습이 있지”라는 노래 가사가 떠오르며 새학기가 시작되면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곤 했다. 책을 많이 읽던 때가 아니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문학상을 받은 단편소설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보다 내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에 박힌 대상 수상자의 이름이 가진 무게가 무진장 부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런 수상집에 대상으로 선정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막상 대상을 받은 소설을 읽고 나서는 별고 공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대상을 받은 작가는 항상 문학적 자서전을 첨부했는데, 나는 그 부분이 좋았다.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냈다면, 문학적 자서전에서는 어떤 필터링도 없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새학기를 시작하는 내게 어쩌면 그 문학적 자서전이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 위한 롤모델로 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은 그가 신학대학을 나와서인지 저자 스스로도 밝히고 있지만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많이 담겨 있다. 예전에 읽었던 [지상의 노래]에서도 높은 산 꼭대기에 세워진 천산 수도원을 배경으로 수도자들의 삶을 그려내서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마음의 부력”은 목소리가 비슷한 형을 둔 주인공이 아내에게 돈에 대한 추궁을 받으며 시작한다. 화자인 성식은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다는 아내의 말에 완강히 부인하지만 아내는 행여나 남편이 자기 몰래 어머니께 돈을 빌린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성식의 형 성준이 죽은 이후에 어머니는 예전과 다르게 성식을 살갑게 대하지 않고 홀로 지내는 어머니는 아내와 자주 통화를 했기에 아내의 의심은 더욱 짙어졌다. 성식은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뵙기로 약속한 날 어머니 집을 방문하지만 어머니는 부재중이었다. 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보니 기도원에 들어가셔서 저녁 늦게나 집으로 돌아오신다는 말에 목사님의 전화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지만 차마 아내에게 말한 돈의 사정을 묻지는 못한다. 어머니는 아들 성식의 목소리를 듣고 죽은 아들 성준이냐고 묻지만 이내 그럴리 없지 라며 자신의 말을 수정한다. 저자는 아들 성식과 성준의 삶을 성경에 나오는 이사악의 아들 에사우와 야곱 형제에 빗댄다. 불콩죽 한 그릇에 장자로서의 권리를 내어던진 에사우의 불운한 선택은 마치 결혼도 하지 않고 직업도 변변치 않은 채 무용해보이는 것들을 삶의 낙으로 삼다 세상을 떠난 형 성준의 모습으로 오버랩 된다. 그에 반해 레베카의 사랑을 받아 아버지의 장자권을 얻게 된 야곱은 안정된 직장을 얻고 싹싹한 며느리까지 얻어 아들 노릇을 제대로 하는 성식의 모습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말미에서 치매 증상이 두드러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며 성식은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받는 아들로서 인정받는 순간 형 성식은 그 사랑의 공간에서 밀려나 자꾸만 멀어져 간 것은 아닌지 자책하게 된다. 친척들이 주변 사람들이 형을 앞에 두고도 자신을 칭찬하고 두둔할 때 성식은 오히려 자신이 삶에 정직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때때로 나와 다른 형의 그런 기질을 부러워했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했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하고 싶은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었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없는 것 같았다. 그것들은 겸연쩍어서 숨은 거라고 할 수 없으니 내가 귀찮아한 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어 하거나 하기 싫어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적극성을 피한 거라고. 그렇다면 나야말로 태만한 사람이 아닌가. 삶에 대한 의욕도 사랑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내 어쭙잖은 이른바 ‘출세’가 실은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의 결여, 즉 태만의 결과며, 따라서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도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형만이 아니라 삶을 망신 주는 것이고, 내 마음까지 할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41)”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 상실감과 슬픔은 특정 사건에 대한 자각적 반응이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무자각적 반응이어서 통제하기가 훨씬 까다롭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상실감과 슬픔은 회한과 죄책감에 의해 사라질 수도 있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상실감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히려 그것들에 의해 더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가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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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 냥이문고 5
편성준.윤혜자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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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준, 윤혜자 님의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읽었다. 부제는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이다. 책 표지를 장식한 고양이 순자는 한옥집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뒷모습으로 아련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마도 어쩌면 한 달 동안 글쓰는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선뜻 남편에게 제주살이를 허락한 아내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일단 무척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남편이 제주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의 일기가 지속되다가 중간에 삽입된 아내의 짧은 일기 또한 적절한 양념처럼 독서를 맛깔나게 해주었다. 


제주 한 달 살기는 마치 유행처럼 번져서 시간과 비용만 허락한다면 손쉽게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한 달이 아니라 석 달 해본 경험자로서 한 달은 아마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한 달 살이를 웹상에 공유했을 때 심지어 한의원 원장님조차도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하면 안 부러울텐데, 제주 살이라는 부럽다고 하니 석 달이나 제주에서 살아본 나는 어쩌면 로또 세 번 당첨된 복을 받은 것이려나? 제주에 살러 가기 전에는 석 달이면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고 웬만한 맛집은 다 섭렵하고 근사한 카페도 다 가보고 다양한 박물관도 방문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연히 생각한 그런 액티비티한 계획을 다 완수하려면 엄청난 바지런함과 체력이 필요했다. 석 달 동안 무작정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고 연수로 마련된 강의에 참석해야 했기에 앞서 말한 생각한 무모한 계획이었다. 함께 연수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제각각 제주를 즐겼다. 어떤 분은 올레길 종주를, 어떤 분은 한라산을 수차례 등정하고, 어떤 분은 나처럼 오름 도장깨기를, 어떤 분은 제주의 더 작은 섬 투어를, 어떤 분은 제주에서 탁구 레슨도 받았다. 


근사한 카페에서 그 카페만의 시그니처 음료를 맛보고 경험하는 것을 즐겨왔기에 제주에 셀수없이 많은 카페를 꽤나 많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내 상상은 그동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만 봐왔던 그림같은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몇 번 그런 시도를 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대부분의 괜찮은 카페마다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 없는 카페만 찾아서 다닐 수 도 없고, 결국은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는 포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고독의 시간은 카페가 아니라 오름 정상에서 맛볼 수 있었다. 제주에는 오름이 무려 360여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사람들이 카페처럼 바글거리는 유명한 곳도 있고,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내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올라가는 한산한 오름도 있고, 일정 기간 방문이 유예된 오름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대표적인 오름은 50여개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10개 정도는 너무 유명해져서 오르는 내내 그리고 정상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 외에 한적한 오름을 오를 때에는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도 나 혼자 그 오름을 전세낸 것처럼 마음껏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오름의 매력은 이제 다리가 좀 당기고 숨이 차서 땀이 송글송글해질 무렵이면 어느덧 정상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하루 운동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것이다. 


오름을 혼자 오르내리며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짧은 기간 제주 여행을 와서 조금은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등산을 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오르내리며 들려오는 그들의 수다가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얘기할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어느날인가 오름 중에서는 꽤나 높은 편에 속하는 노꼬메오름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내게 숨을 헐떡거리던 산을 오르던 중년의 아저씨 한 명이 무릎이 아픈지 잠시 숨을 돌리며 “아 부럽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누군가에게 대놓고 부럽다는 말을 들었던 게 언제였나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고독 살이 일기를 읽으며 잊고 지냈던 제주 살이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언젠가 다시 그곳에서 자유롭게 오름을 오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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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독립 : 부엌의 탄생 띵 시리즈 15
김자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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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혜 님의 [식탁 독립: 부엌의 탄생]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15번째 책이다. 정확한 레시피로만 요리하던 저자가 도시 생활을 접고 지리산의 시골 마을로 이사한 후 스스로 세 끼니를 챙겨 먹을 수 있는 능력치 만렙 도전기라면 너무나도 전투적일까? 하지만 저자의 요리부심 성장기를 읽으며 왜 제목에 ‘식탁 독립’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격하게 공감하게 되었고, 에필로그에 나온 것처럼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 수 밖에 없었던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래전 외국에서 머물 때 대학생들과 함께 알아서 끼니를 해결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하나마나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한식에 특화된 입맛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루 아침에 서양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양식을 좋아하고 먹성이 좋다고 해도 김치나 밥 없이 일주일 정도 보내면 거의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시름시름 흥미를 잃어간다. 더군다나 입까지 짧은 나에게 한식도 아닌 파스타를 매일 처음보는 그것도 말도 안통하는 학생들과 공용 주방을 사용해서 만들어 먹으라니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명령처럼 들려왔다. 다행히 나의 고뇌를 눈치 챘는지 낮에는 멘사 식당과 저녁에는 공동체 식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요리무능이라는 전투력 제로의 자세도 문제였지만, 내 방에는 그 어떤 것도 조리에 가까운 기능이 있는 도구가 없었기에 무작정 파스타에 적응해야만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쌀도 파스타 면도 어차피 탄수화물이지만 나의 위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는지, 낮에는 멘사에서 준 파스타를 남기기가 일쑤였고, 저녁에는 속이 더부룩해서 잠도 잘 오지 않았다. 한달이 지날 무렵 엄청난 선물인 작은 전기밥솥이 도착했고, 타국에서 만난 지인분이 컵라면 한 박스를 선물로 주셨다. 컵라면에 말아 먹는 밥은 삶의 질을 천퍼센트 상승시켰고 파스타에 대한 저주의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혔다. 


궁하면 요령이 생긴다고 없는 도구에 그나마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로 커피포트에 짜파게티를 끓여서 먹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호텔에서는 조리를 전혀 할 수 없기에 여행을 갈 때면 한국에서 보내준 전투식량을 가지고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냄새를 빼며 봉지째 먹던 기억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체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그전까지 나는 그냥 살기 위해서 먹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가 다가왔다. 식사 약속이 잡히면 무조건 웹서핑을 시작하는 모습이 그랬다. 한 깨 때우는 것이 아니라 먹는 행위 그 자체에 행복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에 말이다. 아마도 우리를 먹여 살린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알을 보면서 확신했을 것이다. 나는 저 아이를 먹이기 위해서 살아가는 거라고…


“도시에서 유급노동자로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 집에 머무는 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원시로 돌아갔고, 나는 자연스럽게 요리라는 세계에 접속하게 되었다. 하루 세끼는 왜 이리 자주 돌아오는가, 하루는 왜 세끼인가. 아니, 인간은 왜 이리 자주 먹어야 살 수 있는 걸까! 이 책은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세 끼니를 지어 먹게 된 사람의 분투기다. 조리대 앞에 서서 느꼈던 솔직한 마음을 썼다. 무력감과 외로움, 피로와 분노, 그리고 사랑과 자부심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 밥을 짓는 일이란 깊이 침전된 기억들을 휘젓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11)”


“그때나 지금이나 왜 어떤 물건들은 저런 식으로 존재하나?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대로인가? 총량은 변함없이 양상만 조금씩 달라지는 걸까? 이곳은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진리가 구현된 현장인가? 왜 이리도 끈질기게 줄기차게 구차한가! 갈피마다 포진되어 있는 하찮은 물건들을 보며 나는 환멸을 느꼈다. 악착같이 따라붙어 추억이라는 말로 나를 설득하며 산뜻한 출발을 방해하는, 만고 쓸데없는 찌꺼기들!

남들이 포장해서 옮긴 뒤 나 대신 은폐해줄 때에는 잘 안 보이던 그것들을 맞닥뜨리는 건 벌거벗는 일과 비슷했다. 부끄러웠다. 어쩌면 ‘맨 아래 서랍’은 우리 모두의 집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직접 열어 대면하는 일 역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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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김겨울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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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을 읽었다. 부제는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이다. 김겨울 “접시 안에는 행복이 있지”, 김현민 “시절과 함께 통과하는 맛”, 김혼비 “자기만의 맛의 방식”, 디에디트 “좋은 사람과 함께 먹는다면”, 박서련 “의식의 흐름의 흐름”, 박정민 “밥 한술에 행복, 또 한술에 극락”, 손현 “누군가가 누군가를 먹이는 일”, 요조 “먹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임진아 “‘나’라는 손님을 대접하는 중입니다”, 천선란 “오늘의 한 끼를 신중하게 고르는 마음”, 최민석 “소문호의 먹고 사는 이야기”, 핫펠트 “맛은 늘 가까이에 있어” 라는 소주제로 저자들의 다양한 먹거리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릴때부터 먹을 것으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저자들의 글감에 적절히 공감이 가며, 나이들수록 먹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지만 그만큼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특히나 ‘배달의 민족’을 비롯한 여러 개의 배달 매니저업이 상승 곡선을 이루며 우리나라는 가히 배달이 안되는 음식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코로나 시국에는 배달의 의존도가 더욱 상승하여 어마어마한 일회용 쓰레기를 양산해 내었고 더불어 음쓰의 대란과 과도한 양의 조미료를 섭취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얼마나 TV프로그램 중 톡파원 25시에서 프랑스에 있는 현지인이 미쉘링 레스토랑에서도 배달을 해 준다며 기본적인 코스 요리를 주문했는데, 음식값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배달비가 무려 2만원이 넘는 것으로 영수증에 찍혀 있었다. 우리나라 배달 어플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2천원에서 3천원 정도 인 것 같은데 파리를 생각한다면 천원 더 오른다고 불평하면 안 될 것만 같다. 


벌써 제작년이 되어버린 안식년을 지내면서 먹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 삼시세끼를 내 손으로 차려 먹다보니 물리기도 하고 하루 종일 차리고 먹고 정리하고 반복된 일상이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을 질리게 만들었다. 대체 엄마들은 어떻게 그 많은 식구들을 먹이고 살림까지 하신건지 나는 다른 건 다 해도 그건 도저히 못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며 집안일을 하고 식구들의 입에 밥을 먹이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이렇게 밥을 차려 먹는 것에 질렸을 정도면 가끔 배달앱을 통해 세상의 모든 음식을 맛보는 시도를 해볼만도 한데, 1년 동안 한 번도 배달앱으로 주문한 적이 없다. 혼자 사는데도 각종 택배박스로 인해 가뜩이나 좁은 현관이 신발을 벗어둘 틈도 없어지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분리수거장을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음식물 쓰레기의 대량 유출과 더불어 각종 플라스틱 그릇까지 양산될 생각에 아예 배달앱에 가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한 결심 덕분에 요리실력이 출중해졌다면 정말 귀감으로 삼을 결말이겠지만,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음식 만들기에는 잼뱅이다. 


저자들이 대부분 글을 쓰는 것을 주된 업으로 삼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규직의 직장인들과는 다르게 대부분 프리랜서이기에 먹는 것에 대한 어떤 강박이나 규칙성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규칙적인 식사 시간과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고 때로는 강요당해 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철저히 식습관을 유지한다고 해도 강력한 스트레스 한 방에 모든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나면, 내가 이럴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세끼를 챙겨 먹었나 하는 무력함이 밀려온다. 어쩌면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몸에 좋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는 것이 오히려 몸에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당분섭취이든, 채소를 경멸하는 고기 매니아든, 완전한 비건을 결심한 채식주의자든 스스로가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먹는 일이라면 안그래도 내 몸을 호시탐탐 노리는 스트레스를 이겨낼 에너지가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한 입 두 입 계속 먹을 때마다 몸속을 세차게 흐르는 뜨겁고 진한 국물에 심장에 박혀 있던 비난의 가시들이 뽑혀 나가는 것 같았다. 마음의 틈새마다 눌어붙어 있던 자괴와 절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국물이 흘러들어오면 눈물이 흘러나가며 내 눈에 옮아 있던 날 선 눈빛들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것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J의 사리곰탕면이 새겨 넣은 메시지는 이랬다. ‘너는 누군가가 이틀을 꼬박 바쳐 요리한 음식을 기꺼이 내어줄 정도로 소중한 존재야. 잊지 마.’-김혼비 편(69)”


“그렇게 짧은 비건생활을 거쳐 느슨한 채식생활로 돌아왔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찾아왔다. 그것은 감사함이었다. 무슨 종교도 아니고 뜬금없이 웬 감사함이냐 싶은데 정말 그런 기분이 우르르 몰려왔다. 비건 놀이를 하며 먹지 못했던 하나하나의 익숙한 식재료가 그렇게 새롭고 감사할 수가 없었다. 생선도, 계란 프라이도, 된장찌개에 들어간 바지락도 너무 맛있어서, 먹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버터 범벅 크루아상이 내 입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되게 감격스러웠다.(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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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아파트먼트 - 팬데믹을 추억하며
마시모 그라멜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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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그라멜리니의 [이태리 아파트먼트]를 읽었다. 부제는 “팬데믹을 추억하며”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2년 전 이맘 때, 전세계 사람들은 처음 맞이한 바이러스 공황 상태에 어쩔줄 몰라하며 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서유럽의 잘 사는 나라들이 하나 둘씩 바이러스에 봉쇄와 록다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는 것에 반해, 그나마 우리나라는 마스크 대란을 제외하고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 마티아가 2080년이 되어 손주들에게 옛날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2080년이면 2020년 9살로 나오는 마티아 또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이 세상을 떠났을테니, 팬데믹을 기억하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그저 한때 그런 악몽같은 일이 몇년 간 지속되었다고 기억했으면 하고 바랄뿐이다. 


사실 나에게도 2020년은 평생에 딱 한 번 주어진 안식년이었기에 아주 오랜시간 준비해왔던 계획을 펼치려는 생각에 설레며 기다리던 때였다. 한동안 외국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준비하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언어도 공부하며 그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뜨거운 햇살을 고대했다. 1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가 점차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고도 이미 2015년에 메르스 사태가 일찍 종식되었기에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가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 달라졌고,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 하루 종일 인터넷 사이를 뒤져 비싼 돈을 주고 주문을 하고 며칠을 기다려 마스크를 받고서야 안심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배급제처럼 주민번호 뒷자리가 해당되는 요일에 약국 앞에 줄을 서서 5장씩만 구입할 수 있었다. 마스크 대란이 일단락 되고도 팬데믹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 겨울이 되자 바이러스는 때를 만난 것처럼 기승을 부렸고 QR코드 확인이라는 방역수칙이 생겨났다. 코로나가 무서워 벌벌 떨던 초기에는 확진자가 나오면 개인정보나 사생활 보호와 같은 기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의 동선을 무작위로 공개해버렸다. 어떤 사람이 성정체성이 드러날까 두려워 거짓말을 한 것을 두고 마녀사냥에 버금갈 정도로 파헤쳐 결국 그 사람은 아웃팅되었고 직장도 잃게 되었다. 


처음에는 마치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이 마비된 것처럼 일단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들이 벌어져도 무신경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부터 완강히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지 않거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제네들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란 의문과 더불어 선진국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에 가려진 부실한 체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냐고 으스대기도 했다. 하지만 팬데믹을 2년이상 보내며 과연 우리가 대응한 방식이 정당한 것이었는지, 그저 코로나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자문할 때가 온 것 같다. 백신 패스와 같이 접종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건강상의 이유로 접종이 불가한 사람은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사고가 지속될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팬데믹은 어떤 식으로는 비참한 결과와 슬픈 결말을 가져다 주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언제 다시 마스크를 벗고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며 재채기를 해도 사람들은 눈총을 받지 않을 날이 올 것인지 좀처럼 예상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홀로 보낸 2년여의 시간 동안 팬데믹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심각하게 환경에 대해서, 한 사람의 인권에 대해서,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헤아려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소설의 주인공 마티아의 엄마와 아빠가 멀고도 가까운 부부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팬데믹의 구름이 지나가면 우리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마티아의 가족처럼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은 거실, 주방, 방, 발코니와 아파트의 옥상이 전부였습니다. 집에서의 시간이 길어지자 맞닥뜨린 어려움이 바이러스에서 우리 서로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우린 가족이었지만 단 한 번도 온전히 가족으로만 존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겐 학교가 있었고 아빠에겐 직장이 있었고 엄마에겐 직업이 있었습니다. 록다운 전의 우린 하루 중 반 이상을 가족이 아닌 이름으로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았습니다. 록다운이 시작되고 한 달이 넘게 가족의 공간과 시간만이 우리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건 마치 처음으로 가족으로 살아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김민주 추천사 중에서(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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