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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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의 [나인]을 읽었다. 주인공 유나인은 고등학생으로 어느 날 손톱 사이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인은 이모인 지모와 함께 살고 있고, 지모는 화원을 운영하며 나인의 숨겨진 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나인은 갑작스레 나타난 승택을 통해서 자신은 지구인이 아니라 누브라는 행성에서 온 이들과 같은 종족으로 땅에서 피어났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전해준다. 미래와 현재와 함께 평범한 학생으로 지내온 나인은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바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나인을 혼란스럽게만 만든다. 


이러한 찰나에 나인은 2년 전에 실종된 박원우라는 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고 원우를 찾기 위해 손가락이 갈라질 정도로 전단지를 붙이고 다니는 원우의 아버지를 마주치게 된다. 원우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통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설의 초반부는 나인이 누브 행성의 파멸로 인해 지구에 정착하게 된 공상과학적인 요소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특히나 나인은 나무와 꽃과 풀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나인을 비롯한 누브족이 땅에서 피어나고 새싹이라는 형태로 그들의 생명체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인은 자연과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후 원우의 실종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나인은 승택의 도움으로 원우가 묻힌 곳으로 추정되는선원산의 풀들에게 2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내막을 듣고 보게 된다. 원우는 단순히 가출한 것이 아니라 원우의 친구였던 도현에 의해 피살되었고, 도현의 우발적인 사고를 감추기 위해 도현의 아버지인 권목사는 경찰까지 매수하며 원우를 선원산에 매장하게 된다. 도현은 나인의 등장으로 점점 환각 증세가 심해지고 죽은 원우가 항상 옆에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나인은 도현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현재와 미래에게 자신이 누브족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에 갈등하게 된다. 나인은 승택과 현재와 미래의 도움으로 진실을 밝힐 용기를 갖게 되고 미래와 현재는 나인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어준다. 결국 도현은 자신이 잘못을 자백하게 되고, 사건이 종결되기 전 나인의 이모인 지모는 승택에게 비밀의 문을 열어주며 누브족의 슬프고 잔혹한 역사의 진실을 알려준다. 이후 나인은 또 다른 외계인을 만나게 되며 이야기가 이어질 것을 예고하게 된다. 


단순히 외계행성의 소녀가 지구에서 피어나 또래의 친구들과 실종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이러한 스토리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부조리함과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외계인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설파한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누군가를 보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호등 초록불이 삼 초 정도 남았는데 뛰지 않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을 볼 때도, 길가에 핀 꽃을 찍기 위해 기꺼이 땅에 누워 버리는 사람을 볼 때도, 아이와 강아지에게 친절한 사람을 볼 때도, 너무나도 당연했던 선의를 잃은 인간들 속에서 그 원초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 중에서(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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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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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문진영 [두 개의 방], 윤대녕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손홍규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 안보윤 [완전한 사과], 진연주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 정용준 [미스터 심플], 황현진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띠지에 ‘블라인드 심사가 발견해낸 문진영이라는 낯설고도 준비된 이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나도 이번에 대상을 받은 문진영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여타의 소설도 그렇겠지만, 문학상 작품집에 수상작으로 나온 단편들을 읽다보면 뭔가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나보다 하는데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를 단숨에 알아채기가 힘든데, 이어지는 문학평론가나 다른 작가들의 리뷰를 통해서 궁금증이 풀리곤 한다. 


대상을 받은 [두 개의 방]은 편집자인 ‘나’와 저자인 ‘그’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산책을 하자며 중간에 만나 술 친구가 되어가는 평범한 이야기의 흐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갑자기 ‘나’의 동창생인 은미가 등장하고, ‘그’는 이제는 철거되어 없어진 예전에 자기네 집에 ‘나’를 데리고 간다. 전혀 상관없고 어떤 교차점도 찾기 힘든 등장인물과 이야기의 전환은 과거의 어떤 사건과 내가 알고 만났던 이들과의 관계가 오늘을 살아가는 지금의 나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얘기해주는 것만 같다.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는 화인 ‘나’가 출근하는 길에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일한 사람을 보게 되고, 그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 우산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다음에 오는 버스를 타게 되고, 그곳에서 대학시절 썸을 타던 해옥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우연한 해옥과의 만남을 흐지부지 만들고 싶지 않아 각자의 업무가 끝난 다음에 다시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지만, 해옥은 ‘나’의 제안에 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 다시 우연히 포장마차 안에서 둘은 해후하게 되고, 얼마 후에 ‘나’와 해옥은 고성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해옥과의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나’는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라는 정거장 이름의 기원을 알기 위해 시청 민원 콜센터에 전화를 걸게 되고, 해옥과의 추억이 담긴 강원도 고성의 도자기별 카페가 등장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지명들은 실제로 저자가 머물던 곳들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언젠가 고성에 가면 도자기별 카페에 가보고 싶어졌다. 


대상작품보다도 내게는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이 더 인상적이었다. 화자인 ‘나’에게는 삼촌이 한 명이 있다. ‘나’가 어릴 때에는 곧잘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주던 삼촌은 어느 덧 지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화자는 소설가가 되고 화자의 누나는 ‘나’와 함께 삽화를 그리는 작가가 된다. 삼촌은 소설가가 된 ‘나’에게 지루한 소설을 소개받고 주류에서 도태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삼촌과 정반대의 인물로 그려지는 ‘나’의 아버지는 삼촌을 한심한 녀석으로 생각하지만 이복동생인 삼촌이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혼란에 빠졌을 때 삼촌이 놀러다니던 이웃마을 놀이터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동생을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폭언을 던지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며 스스로가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꼰대의 전형이 되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낭만적인 요소를 잃지 않고 있다. 남편의 무뚝뚝함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지쳐갈 때마다 삼촌의 다정한 말 몇 마디가 어머니의 삶을 구원하였기에, 어머니에게 삼촌은 덜떨어진 존재가 아니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삼촌은 재력가 집안의 딸이지만 노동운동을 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희숙씨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며 삼촌이 희숙을 설득하여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후 희숙은 사라지게 되고 삼촌은 희숙을 찾아내어 동거를 시작하지만 갑작스럽게 내린 폭우로 노동자들을 구하다 희숙은 죽고 만다. 이후 삼촌은 지루한 소설을 읽으며 삶을 견뎌낸다. 


“삼촌은 콘크리트를 사랑했고 어떤 점에서는 운명적인 사랑이기도 했다. 콘크리트가 양생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삼촌 역시 무언가를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삼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탓에 삼촌은 오해를 받았다.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반응이 느려서 무심하거나 무정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어머니의 눈에 비친 삼촌의 일부일 뿐이었다. 삼촌과 콘크리트가 진짜로 닮았다고 할 만한 부분은 콘크리트가 양생되는 시간보다는 그것이 절정에 도달하는 시간과 관련이 있었다. 창고를 짓거나 담을 쌓을 때 흔히 쓰는 시멘트블록은 양생되기까지 닷새 정도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무얼 짓는 데 쓰더라도 상관없을 만큼 단단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시멘트블록이 단단해질 수 있는 한계치의 구십 퍼센트 정도라고 할 수 있었다. 닷새면 충분히 단단해질 수 있지만 나머지 십 퍼센트를 채우려면 삼십년 동안의 양생 과정을 거쳐야 했다. 삼촌도 그와 비슷해서 어떤 고통을 고통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기까지 열흘이 걸렸다면 그 고통의 최대치를 느끼기까지는 백 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 유사성의 절정은 결국 시멘트블록이 대부분 삼십 년을 버티기 전에 재개발 등으로 사라져버리듯 삼촌 역시 그렇게 될 때까지 살수 없다는 데 있었다. 삼촌이 아무리 오래 산다 해도 백 년 이상은 못살 테고 삼촌이 죽는 순간 그때까지 삼촌이 겪었던 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일마저도 구십오 퍼센트 정도에 멈춰 있을 거였다.(1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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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
김민주 지음 / 제철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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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작가의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을 읽었다. 부제는 "어느 이탈리아 가이드 가족의 팬데믹 일상을 여행하는 방법"이다. 얼마 전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저자 가족의 일상을 본 적이 있었다. 팬데믹 상황으로 전 세계가 마비만 상태에서 여행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니, 여행 가이드의 일상이 어떻게 변해버렸을지는 말해 뭐하겠는가? 로마에 살 때 남쪽을 가보고 싶긴 한데, 개인적으로 가는 게 엄두가 안나서 자전거 나라의 남부 투어를 신청한 적이 있다. 그동안 일명 패키지 여행을 통해 몇 번 경험한 가이드로 인해서 인지, 기대를 별로 안하는 편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가며 쉴세없이 이탈리아와 일정에 대한 설명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가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진짜 가이드를 만난 기분이었다. 특히나 아직도 잊히지 않고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말을 전해주었던 가이드! 아말피 해안도로에 들어섰을 때, 수신기를 통해 김동률의 '출발' 노래를 들려주며 전해주었던 말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아름다운 곳을 볼 때마다 떠올랐다. 그리고 감동에 젖은 나를 순식간에 무너뜨리기를 작정이라도 한듯이 '거기 오만식 닮으신 분'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던 기억도~ 내가 만났던 가이드가 이 책을 쓴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생계의 위협을 느끼는 가운데에도 로마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음에 응원을 보내드리고 싶다. 


유튜브 '로마 가족'을 통해서 한산한 로마 시내를 볼 때면 팬데믹이 가져온 그 여유로움이 너무나도 신기하게 다가온다. 새벽 시간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한산한 로마 시내를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바티칸 박물관의 복도에서 주저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이건 정말 기적같은 일이 아닐까? 멋지고 아름다운 곳과 유서깊은 유적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에 치이다보면 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만 싶어지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별로 시행하기는 했어도 봉쇄라는 상태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한 달 넘게 집에 갇혀 외출이 불가능했던 이들이 어떻게 이 시기를 견뎌냈는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봉쇄가 풀리고 집 앞의 BAR가 열리는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갔다는 말에 '그렇지'라고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 살면서 BAR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나 있을까? 카페와 카푸치노와 꼬르네또 없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당연했던 수순들을 단숨에 앗아가버린 바이러스의 만연은 누구에게라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나 이번 사태를 통해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폭력이 발생했다는 뉴스 보도를 들을 때마다 어쩌면 체면과 우월함이 가득한 자만에 감춰진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의식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나온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되곤 했다. 인종 차별적인 말투와 작은 행위에도 막상 그 대상이 될 경우에는 꽤나 큰 상처를 받게 되는데, 거기에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폭력까지 당할 때에는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저자의 가족이 이탈리아에 사는 이방인으로서 언제든 당할지 모를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의 두려움을 고백한 내용은 점차 이주민이 늘어나는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런 혐오의 마음과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팬데믹이라는 불가항력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이 어려운 시기가 단지 고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코로나19는 지금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잖아. 바꿀 수도 없고 바뀔 수도 없는 사실이야. 그런데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과 속도로 살 수 있는 순간이 아닐까? 우리가 등반할 준비가 되었음을 믿어 보자. 어려움과 함께 머물 용기가 있음을 믿어야 해. 자, 그럼 네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은 뭐야? 후회도 두려움도 없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뭐지? 멀리, 빨리 날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답게 날기 위해 지금 네가 도전하고 싶은 것이 뭐야?(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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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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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영 작가의 [나나]를 읽었다. ‘나’에게서 ‘나’로 돌아갈 시간, 단 일주일! 이라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제목 [나나]는 바로 자기 자신을 뜻한다. 지금은 때와 장소에 따라서, 아니 웬만해서는 멍석을 깔아줘도 ‘진지빤다’는 요샛말처럼 ‘삶의 의미’와 같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내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아서 새로운 친구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에는 의외로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성당 고등부 교리 시간에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이사를 가고 성당이 바뀌면서 교리반 친구들이 모두 바뀌어서 어색하고 재미없었고 무엇보다도 양아치 같은 애들이 너무 싫었다. 친해진 애들이 거의 없었음에도 꾸준히 교리반을 나갔다. 그리고 나눔 시간이 되면 다른 애들이 말을 하던지 말던지 나의 솔직한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기 위해 머리속으로 미리 준비하곤 했다. 심지어 어서 내 차례가 와서 나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인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히려 반대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실없는 말과 행동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느라 어린 철학자의 모습의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앞으로 과학이 얼마나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검증은 절대로 완벽하지 이루이지 않을 것이다. 형이상학적 존재에 대한 완벽한 수학적 결론이 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육체적 죽음 이후에 인간 영혼에 대한 문제는 논리적 접근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신앙이라는 또 다른 길로 다가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불가지론자들도 귀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재수와 운명을 따르는 기복적인 행태를 보이곤 한다. 그리고 도저히 우리가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참담한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절대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곤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때로는 잘못된 신념이 되어 인간관계를 망치고 기함을 금치 못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만 하는 우리에게 믿음은 신뢰의 바탕이 되고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 하나만으로 죽음의 구덩이에서 벗어날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 


살아있는 영혼을 사냥하는 ‘선령’이라는 신선하면서도 섬뜩한 조력자를 등장시켜 주인공 한수리와 은류가 자기 자신을 찾아나서는 일주일 간의 에피소드는 10대 때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떠오르게 만든다. 완벽한 여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리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유행에도 민감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러울 정도이지만 실제로 수리는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란 회의감이 밀려온다. 은류는 동생 완이를 먼저 떠나보내며 자책하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다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릴때부터 아팠던 완이를 돌보는 엄마를 위해 일찌감치 철이 들어 예스맨이 된 류는 자기 자신에게도 노우 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크리스마를 앞둔 일주일 동안 수리와 류는 영혼이 떠난 육체만 남은 수리와 류 자신을 바라보며 영혼과 육체의 만남을 가로막는 결계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유체이탈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내가 누군가를 험담하고 비판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쥐구멍이 당장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비겁한 나와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모르고 사는 게 편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자주 든다. 하지만 선령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은 수리와 류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이, 편한게 좋다고 남의 눈치 볼 필요 없다고 뻔뻔하게 자기 행복만 찾으면 된다며 생각하고 선택한 삶은 결국 언젠가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영혼이 1도 없다’라는 요샛말이 진짜 나의 삶이 되면 안되겠지!


“인간은 느낌을 사실로 여기는 멍청한 오류를 자주 범해. 귀신이 나올 것 같으면 멋대로 흉가라고 단정 짓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속았다고 해. 나랑 통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배신감을 느끼지. 모두 사실이 아닌 느낌인데 그 느낌이 진실이라 굳게 믿는다고.(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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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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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읽었다. 저자의 두 번째 소설집으로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 “로라”,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인지 공간”, “캐빈 방정식” 이렇게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소설집에서도 그랬듯이,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우주와 물리학의 소재들이 대부분이라 어려울듯 하지만 과학의 문외한이라도 이야기의 맥락을 따라가는데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우주와 과학에 대한 소재들로 마치 공상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설의 배경들은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인류는 지구를 벗어나 달에 발을 딛어 본 것 외에는 그 어떤 우주의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그저 막연한 상상으로 우주의 어딘가에 우리와 비슷한 인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종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려볼 뿐, 그래서 그런지 SF영화에는 유독 새롭게 발견한 행성에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귀나 눈이 이상하게 생긴 우주인이 등장하곤 했다. 그렇게 만난 우주인과 갈등을 겪기도 하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아직 그 누구도 그 가상의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기에 그저 우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주인을 그려낼 뿐이다. 


이번 소설집에도 지구와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행성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통적으로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고, 지구를 기억하는 사람마저 다 죽게 되어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도서관과 같은 곳에서 자료를 통해서만 희미해져 가는 지구를 기억해 낼 뿐이다. 사실 요즘처럼 환경오염과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는 것을 보면 영화에서처럼 우리가 더 이상 지구에서 살지 못하는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란 두려움이 생겨난다. 특히나 “숨그림자”라는 단편에서 원형 인류라는 말이 나오고, 인류는 더 이상 지표면에 살지 않고 지하의 어느 곳에 머물며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더 이상 소리를 통해 소통하지 않고 입자를 통해 의미를 해석한다는 설정이 무척 독특했다. 단희와 조안의 안타까운 우정의 만남은 비록 의미통역기를 통해서만 가능했지만, 원형 인류에 해당되는 조안이 입으로 소리를 내고 냄새를 맡은 입자의 의미가 단희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공통된 인간 본성으로부터 비롯된 유사한 감각들을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다른 “오래된 협약”에서도 이정과 노아의 안타까운 이별을 그려내는 근원 또한 전혀 다른 종의 모습으로 우주의 어딘가에서 만난다 하더라도 소통이 가능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인식이 불가능한 여타의 비인간 종들과는 다르게 소멸되는 순간까지 서로를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오브의 행성인 벨라타에 살고 있는 노아와 같은 이들이 일찍이 생을 마감하고 마지막에는 정신적 착란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이 처한 상황에 순응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삶의 공간을 내준 오브와 공존하기 위함이었음을 끝내 이정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캐빈 방정식”은 작년에 테마 소설집[시티 호텔]에서 한 번 읽었던 것이었음에도 현지와 현화 자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아려왔다. 그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가 같은 시간을 살고 있음에도 누군가에게 무미건조하고 쓸모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육체적 생존을 위한 전쟁과도 같은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어. 난 여기 속할 수 없는 사람이야.

네가 우주로 떠나서, 다른 인간종을 만나면. 다른 세계로 가면. 그러면 그곳에는 속할 수 있을 것 같아?

단희가 따져 물었다. 조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해? 어차피 우린 다 비슷한 본성을 지녔어. 어떤 세계가 너를 받아주는 게 아니야. 그저 그곳에 너를 받아주는 어떤 사람이 있는 거야.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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