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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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 작가의 [이완의 자세]를 읽었다. 창비 소설Q 시리즈 작품이다. 때를 밀러 공중목욕탕에 간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뜨거운 김이 지속적으로 솟아나와 천장에 맺힌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떨어질 때 갑작스레 머리 위에 찬기운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거대한 욕탕을 가진 공간에서 초록색 때타올을 장갑처럼 손에 껴고 살가죽이 벗겨지기 전까지 죽어라 몸에 학대를 가하는 것 같은 노동의 무위를 느끼고 난 다음부터인지, 아니면 이제는 물장구치며 냉탕과 온탕을 함께 왔다리 갔다리 할 유년시절의 친구가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한 번씩 온천이 유명한 곳에 여행을 갈 때야 물이 좋다니 몸을 담그고 샤워를 하는 정도로 즐긴 것이 전부인 것 같다. 목욕탕을 정기적으로 갔었던 어린 시절에도 세신사에게 몸을 맡긴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탕비 말고도 따로 세신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한 몫 했겠지만, 알몸으로 플라스틱 침대위에 벌러덩 누워 생전 처음보는 타인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이들 때에는 때를 밀때 엄청 아프기 때문에, 대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거나 때릴 밀고 난 다음의 시원함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주인공 유라의 엄마 오혜자는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내고 타고난 몸매와 피부 덕분에 피부 관리실을 성공적으로 키워나가지만 사기꾼 남자에게 된통 당한 이후 하나뿐이 딸과의 생계를 위해 선녀 목욕탕의 때밀리로 취직하게 된다. 이후 엄마와 유라의 거주지는 여탕의 탈의실과 휴게실이 되었고, 유라는 엄마의 세신 실력 향상을 위한 희생양이 된다. 어린 나이의 유라는 엄마의 때밀이 대상이 되어 무한히 반복되는 신세 한탄과 더불어 때타올과 가만히 있으라는 엄마의 손지검으로 인해 벌겋게 얼룩지게 된다. 이후 유라가 무용의 세계에 들어서 지도자의 손길에 몸이 더 굳어지거나 점점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나, 만수 이전의 애인들과도 육적 친밀함을 나눌 수 없었던 것은 어린 시절 여탕에서 알몸으로 느꼈던 수치심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유라 엄마 오혜자의 억척스러움과 세신일에 있어서의 철두철미한 영업원칙등으로 인해 집과 차도 사고 딸도 명문여대에 보내는 인생역전의 강건함을 보여주지만 그럼에도 엄마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때밀이 아줌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생각해보면 목욕탕에서 남의 몸의 때를 벗기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엄청난 체력 손실을 요하고, 알몸으로 누워있는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도 해야하며, 피로에 쩔은 상대의 몸을 적절히 이완시키는 마사지 실력 또한 필요할 것이다. 분명 정당한 노동을 통해 수입을 얻는 일임에도 아주 오랜 시간 목욕탕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때밀이라고 폄하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몸으로 들어와 머무는 것이 탕 안에서의 룰임에도 불구하고 세신사들만이 유독 속옷을 입고 머무는 특권을 갖고 있다. 그렇게보면 탕 안에서는 세신사가 일반 손님들보다 권력의 상층이 아닐까. 


목욕탕은 화려한 겉옷을 벗고 알몸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누구에게나 공평한 장소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소설 속에 드러난 것처럼 오회장이 유방암 수술을 받고 한 쪽 가슴을 절제한 상태에서 아무렇지 않게 알몸을 보여주는 것을 기이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이 나온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오회장의 모습에 그제서야 외회장처럼 유방암 수술을 한 사람, 자궁을 적출한 사람, 또 다른 신체 부위를 수술하고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며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목욕탕은 조금 위험한 곳이다. 뜨거운 수증기와 물 때문에 타일 바닥은 항상 미끄럽고, 뜨거운 욕탕물은 갑작스러운 심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곳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나 또한 목욕탕에서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난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반 대중들이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라 여겼던 목욕탕마저 정상이라는 개념의 차별이 아주 오랜시간 지속되어온 장소였다는 것을 이번 소설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때서야 여탕이 온갖 사람들이 구별 없이 드나드는 곳처럼 개방되어 있어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멀쩡한, 나무나 멀쩡한 몸을 가진 사람들만 자신 있게 벌거벗은 채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란 게 눈에 보였다. 목욕탕에서는 체력 소모가 컸다. 대중탕은 그것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오갈 수 있었다. 여탕 입구 유리문에는 전염병 환자와 음주자의 출입을 금하고 뇌심혈관 질환자와 노약자의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84)”


유라가 엄마에게 있어서 때밀이의 세계에서 벗어나 유라가 배우는 무용의 고고한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저버리며 무용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엄마는 평소의 습관처럼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데’라는 레퍼토리를 읊어댄다. 홀몸으로 힘겹게 아이를 키워낸 엄마들의 진부한 한탄인지만 누구보다도 엄마의 지난 고된 삶을 잘 알기에 유라와 같은 자녀들은 진절머리 나는 그 대사에 함부로 토를 달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그 감사한 마음과는 반대로 ‘누가 그렇게 살라고 했냐고’ 대들며 엄마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유라는 진부한 막말과 더불어 남자와 모텔에 갔다는 커밍아웃으로 욕탕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온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이때 엄마의 대답은 막돼먹고 싶은 유라의 막말을 단숨에 들어가게 만드는 기막힌 응대이다. 


“오늘 못하면 다음에 하면 돼. 인생은 지겹도록 기니까. 이제 잠 좀 자자. 너도 집에 들어가 잘 거 아니면 옷 벗고 편하게 누워서 자. 잠 안 오면 온탕에 한번 들어갔다 오고.(165)”


꿈을 포기하는 것으로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의 원천인 목욕탕이라는 장소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유라의 고뇌 또한 극심한 육체적 노동에 길들여진 지친 엄마에게 있어서는 별 것 아니라는, 그까이꺼 다음에 또 하면 된다는 초연함을 보여준다. 정말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유담 #이완의자세 #창비 #소설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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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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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십여년 전에 더블린에서 공부하고 있던 친구 덕분에 아일랜드를 여행하게 되었다. 이제는 하나의 여행 루틴이 되어버린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에 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아일랜드 관련 여행책자를 검색해보았다. 서유럽의 유명한 나라들은 도시 이름으로만 된 여행책들이 주르륵 열거되었지만, 아일랜드를 다녀와서 쓴 여행기나 여행 정보를 담은 안내서들을 거의 찾을 수가 없었다. 최신의 여행 정보를 얻고자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래 전에 쓰였던 여행기를 읽으며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정보란 더블린에 있는 기네스팩토리에 불과했는데,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오색찬란한 오래된 성경이라든지, 제임스 조이스의 동상이라든지, 코크를 지나 블라니성에 올라 허리를 젖혀 금구의 언변을 얻기 위한 성벽에 입맞춤하는 전통이라든지, 골웨이의 클리프모허와 같은 어마어마한 절벽 아래의 바닷가를 벌벌 떨며 바라본 순간이라든지, 그리고 아일랜드 특유의 펍문화를 즐기고 왔던 기억이 난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의 세계에서 가장 큰 주상절리를 못 보고 온 것이었다. 


아일랜드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 중의 하나는 꽤 근래에 이르기까지 신교와 구교의 충돌로 오랜시간 반목하며 지내왔다는 점이다. 그냥 의견충돌이나 목에 핏대를 세우는 논쟁 수준이 아니라 피를 흘리며 서로 죽고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신교의 지역과 구교의 지역이 나눠져 있을 정도라니, 이건 단순한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종교가 정치문화 및 그들의 삶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내려 도저히 화합이나 관용을 찾아볼 수 없는 끔찍한 과거의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나라처럼(사이비만 아니라면) 종교에 관대한 나라에서 지내다보면 어차피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하나의 종교이면서도 갈라진 믿음의 형식으로 인해 서로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유럽 사회를 바라보게 되면 아주 오랜 시간 거의 그들의 역사 전체에 걸쳐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채 연결되어 있었고, 심지어 종교지도자들이 정치지도자와 같은 역할을 동일시하여 많은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그들의 힘은 너무나도 막강했고 절대자인 하느님의 축복과 저주까지 선별하여 내릴 수 있었으니 일반 대중들의 두려움과 맹목적인 복종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얘기가 아니냐고 치부해 버렸을 때,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 여전히 어느 수녀회가 운영하던 세탁소가 착취와 폭력이 난무했다라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이 알면서도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라는 소설 속 식당 여주인의 말처럼 10대의 어린 소녀가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음을 외면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형제복지원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역시나 유사한 노동과 폭력에 시달리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나갔던 사건과도 유사한 일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적인 배경이 아닐까 싶다. 


석탄 목재상인 주인공 빌 펄롱은 아내 아이린과 다섯 명의 딸을 둔 아빠다. 펄롱의 탄생과 유년시절은 순탄치 않았는데,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에 가까웠다. 나중에 어렴풋이 자신을 아끼고 돌봐준 네드가 아버지일 것이라 짐작하게 되지만, 열여섯 살에 펄롱을 나은 엄마는 미시즈 윌슨이라는 여유있는 집안의 가사일을 하다가 아이늘 낳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 미시즈 윌슨은 개신교도로 나오고 펄롱이 땔감을 납품하는 큰 고객인 수녀원은 가톨릭을 상징하며 큰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아비없이 윌슨 부인 집에 얹혀 살수 있도록 허락되지 않았다면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보아 거리의 부랑아나 어딘가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병에 걸려 죽음을 당할 수 있는 애처로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윌슨이 결혼을 하고 석탄 목재상의 일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다섯 딸이 배를 곯지 않도록 먹이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원하는 선물을 사줄 수 있었던 것은 윌슨 부인의 자비로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임을 펄롱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비로운 모습의 대명사인 윌슨 부인의 아량과 따뜻함과는 정반대의 매몰찬 모습으로 등장하는 수녀원장은 석탄광에 갇히 맨발의 어린 소녀를 발견한 펄롱에게 마치 그 소녀를 아끼고 돌보는 것처럼 위선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그리고 펄롱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그 위선적인 행위에 속아넘어가기를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펄롱의 딸들은 그 수녀원과 담벼락 하나로 붙어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딸들이 앞으로 더 잘 되기 위해서는 그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그 도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펄롱이 수녀원에서 착취 당하는 소녀를 보고 와서 아내에게 연민에서 비롯된 괴로운 마음을 토로하지만, 아내는 너무나도 현실적인 대답을 건넨다. 어찌보면 아내 아일린의 대답이 여느 사람들이 생각하는 답일 것이다.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린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 하나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그 덤태기를 내가 다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지금 당신의 어줍지 않은 동정의 마음이 다섯 딸의 인생에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암시까지. 펄롱은 아내의 말에 위압감을 느끼며 거리를 나서게 된다. 과연 이렇게 모른척, 못본척 하는게 옳은 걸까, 하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 속 어딘가에 엄청난 돌덩어리가 들어앉은 것처럼 답답함이 지속되는데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고뇌하게 된다. 


펄롱의 고뇌와 갈등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내와 딸들의 설레이는 분주함과는 또 다른 대척점을 이루며 자신을 돌봐주던 네드를 찾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네드가 머물던 윌슨 부인의 집에서 그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과 더불어 처음보는 낯선 여자에게서 네드와 닮았는데 친척이 아니냐는 물음을 듣게 된다. 아 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알게 되다니, 조금은 당혹스러운 상황이지만, 네드와 윌슨 부인과의 추억을 곱씹는 펄롱은 자신을 이렇게 살게 해준 그들의 따뜻한 애정을 되물림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리고 그 맨발의 소녀를 석탄광에서 데리고 나와 보란듯이 시내를 거닐며 앞으로 자신과 가족에게 닥칠 불운한 일들을 기꺼이 감내할 것임을 다짐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제목은 그 사소해 보이는 관심과 애정이 결국은 한 사람의 인생을, 사회를, 세상을 바꿀 것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우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개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119-121)”


#클레어키건 #이처럼사소한것들 #다산책방 #홍한별 #clairekeegan #smallthingsliketh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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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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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완벽한 생애]를 읽었다. 창비 소설 Q 시리즈 작품이다. 심각한 문제를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속에서 떨쳐내고 싶지만 찰나의 순간 일뿐 지속적으로 걱정과 불안이 앞다투어 지금처럼 가만히 있어도 되는거냐고 채근질을 해댄다. 당장 일어나 뭔가를 하려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꾸만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단죄하려는 태도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책감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그렇게라도 자신을 학대하는 순간 찰나의 자유를 느끼기에, 그 단죄의 자유에 중독되어 나와 너의 삶을 갉아먹는다. 


윤주와 시징과 미정은 모두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 이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인내하게 된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인 살갗을 벗겨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고통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그러한 고통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들의 죽음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삶을 온통 휘젓고 다닐 때 파고가 높아진 마음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며 다 괜찮다는 납득이 절실하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회복될 수 없다. 


미정과 함께 제주도의 제2공항 건설을 반대는 집회에 누구보다도 앞선 활동가인 보경 언니라 칭하는 중년의 여성에게 숨겨진 사연 또한 이런 고통의 순간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형태의 인재로 인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생사를 달리한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 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된 모든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한 이들이 있다면 그에 응당한 벌을 받는 과정과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포용의 연대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어서 빨리 그 이별을 종결시키라고 명령하듯 윽박지르는 모습에 인간 존재에 대한 하염없는 섬뜩함이 밀려온다. 과연 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그렇게 쿨하게 일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윤주는 오랜시간 선우와의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로 방송작가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미정이 머무는 제주로 떠나게 된다. 제주로 떠나면서 자신의 방을 에어비엔비에 올려 시징을 손님으로 맞이하게 되고 시징에게 의도치 않게 메모를 남기게 된다. 시징은 홍콩에서 만난 은철과의 우연한 재회를 기대하며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에 도착한다. 윤주와 선우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는 가난에 대한 대물림의 두려움이었다. 

“돈 걱정 없이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를 배우러 해외에 나가고 비싼 영상 제작 강의를 듣는 스터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외로웠다. 자꾸만 끈이 풀리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절대로 아이는 낳지 않을 거라고, 잘 달리고 싶고 잘 달릴 수 있는데도 패배가 결정된 경기를 물려줄 수는 없다고, 다른 선수들이 매끄럽게 달리는 동안 끈을 다시 매기 위해 수시로 주저앉아야 하는 경험을 세대에 걸쳐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비참하다고, 비참하게 이용당하는 것뿐이라고.(57-58)”

선우의 끝없는 말에 언제나 그가 혼자일 것이라 믿었지만, 윤주가 다시 취업한 독립 프로덕션의 신입 피디 제안을 위해 선우를 찾아가지만, 금속 공장에서 퇴근한 후 배가 부른 아내의 함께 장을 보고 행복하는 얼굴을 보며 윤주는 완전한 이별을 깨닫게 된다. 


윤주와 미정 그리고 시징이 이별이 이유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애써 붙잡고 있던 죄책감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말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도록 인고해온 시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보기 싫은 못난 모습을 자꾸만 투영시키는 서로의 존재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전해온 포용 덕분에 윤주와 미정과 시징은 손을 흔들며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33-34)”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삶의 상실과 실패는 마치 누군가의 미안함을 반드시 양산해내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상실과 실패로 인해 불완전해진 것만 같은 삶의 단면 또한 생애의 한 과정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151)”


“이별에도 만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

한때 나는 시간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시간이야말로 신의 몸이며 신의 언어라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에게 간절한 방식으로 시간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차피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벗어날 수 없는 어느 시절이 무거워서, 하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그때에 더 머물러야 한다면… 아무리 덜어내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남아 나의 오늘을 가로막는다면… 나는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시징처럼, 윤주처럼, 그리고 미정처럼.

그들은 과거를 그저 사라지는 시간으로 두지 않았다. 과거를 외면하는 방법으로 현재를 훼손하지도 않았다. 현재도 과거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애를 충실하게 살아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과거를 돌보면서 현재를 지켜내는 사람. 함부로 끝내지 않고 떠밀리듯 시작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나의 생애를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 - 최진영 발문 중에서(159-160)”


#조해진 #완벽한생애 #창비 #소설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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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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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입국심사". "캠벨타운 임대주택", "골드러시", "졸업 여행", "헬로 차이나", "한국인의 밤", "외출 금지", "배영" 이렇게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얼마 전 읽은 문지혁 작가의 소설집이 미국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배경으로 했다면,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은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민자들이 이야기가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국과 호주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영어가 공용어인 곳이 두 나라에게 아마도 가장 많은 교민과 유학생이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본 적은 없지만 두 나라에서 한동안 머물다 온 동료들이 있기에 그곳의 이야기를 자주 듣곧 했다. 전해들은 얘기들로는 각 나라의 특성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기에 장점을 들을 때는 '아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공감하게 되고, 인종차별과도 같은 어이없는 일들의 예를 들을 때면 '대체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까'라는 막연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단정적일수 있겠지만 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과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고 보니 미국에는 유학을,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의 비율이 높은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유학이든 워홀이든 일정기간이 지나면 비자발급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게 아니라면 결국은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비자 갱신을 위한 서류 준비와 발급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지난하고 짜증나는 일인지. 비자 발급 관공서 직원의 갑질과 행여라도 책 잡힐까 두려워 온갖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비자 연장이 수락된 날 마치 엄청난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파티라도 벌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일부 잘사는 나라들의 횡포라 단정지으며 우리나라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국뽕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자를 연장하려는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비자발급 기관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친절하거나 인격적인 대우가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정치불안이 지속되다보니 곳곳에서 자국을 탈출하여 보다 안전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난민이 속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 덕분에(?) 육로가 차단되어 불법밀입국자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지만, 배를 타고 밀입국하거나 워홀비자로 입국하여 자취를 감취는 불법체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농업 및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과의 삶은 불가피하고 더욱 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분위기가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에서 받았던 인종차별을 대물림하듯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 시선이 팽배한 것 같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제주도에 머물던 예맨 난민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놀랍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 사는 곳 어딜가나 마찬가지라고, 혹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내보면 괜찮다'고 한다.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순순혈통인 것처럼 떠벌였지만 막상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심지어 저 멀리 유럽과 남미의 피가 섞인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인종, 언어, 문화 등이 다른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과 수단일 뿐 그것이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의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 가장 많은 판단기준을 설정하는 인간의 편협한 뇌기능은 특히나 우리날에서는 피부색으로 적대와 호의를 순식가에 갈라치게 만든다. 


문지혁 작가가 추천사에 "이민자가 꼭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만을 부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결국에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므로, 따라서 서수진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국의 인물들은 단순한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뒷표지)"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처럼 먼 곳으로 이주하여 사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학교와 직장 등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고 그리워하기도 몸서치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서수진 작가의 단편 속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행여나 좌절감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이 무한한 해결책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지속할 뿐이니까 말이다. 


#서수진 #골드러시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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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편의점 -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
유철현 지음 / 돌베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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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현 님의 [어쩌다 편의점]을 읽었다. 부제는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이다. 제목은 아무튼 시리즈 같기도 하고, TV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짝퉁같기도 했는데, 읽다보니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니 회사에서 아무리 홍보글을 자주 썼을거라 예상해도 이렇게 전문작가 빰치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깨알같은 개그와 시대의 흐름을 적절히 읽어내는 통찰력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테니스 선수 나달의 루틴을 예로 든 부분에서는 카페에서 읽다가 혼자 미친사람처럼 큭큭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혼자 집에서 읽었다면 그렇게 많이 웃지 않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책을 읽다가 소리내서 웃은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웃음이 터지며 갑자기 무안함이 밀려오고 혼자 실실 쪼개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그만 웃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저자분이 평소에 정말 많이 꽤나 웃기는 분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생 때에는 편의점을 곧잘 가곤 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가서 저자가 열거한 내용 중에 처음 접하는 부분도 많았다. 저자의 직장은 아마도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민기 배우가 분한 극중 직업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 편의점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이렇게 직접 매장마다 나와서 점주들과의 관계를 맺는구나 싶었는데, 책에서도 편의점 기업에 입사한 저자의 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본사에 입사한 정직원도 한 동안 매장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고 손님 응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편의점 본사 직원도 각 매장에서 점원으로서의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어느 곳이든 손님을 응대하며 판매 수익을 얻는 회사들은 유사한 정책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포스기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매장 관리를 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기는 하니 말이다. 


7-8년 전인거 같은데, 1월 말에 제주도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서 며칠 동안 비행기가 뜨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스 보도에는 결항의 연속으로 결국 불륜이 발각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에피스도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후쿠오카 여행 중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후쿠오카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게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후쿠오카에서 벳푸까지 전용버스로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고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는 아예 폐쇄가 되었고 국도로만 거의 40키로 이하의 속도로 달려 무려 8시간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일정은 다 무너졌지만, 눈길을 천천히 달리는 버스는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이 있어 일행들 중에 불평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일본의 편의점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눈이 왔음에도 예약한 버스 기사님이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다 주기 위해 운행을 지속했는데, 대신 1시간에 무조건 15분 정도의 정차 시간을 갖았고 그 장소는 바로 편의점 주차장이었다. 


아니 편의점 주차장들이 뭐 그리 쓸데없이 넓은지, 아님 공용주차장 옆에 편의점이 있는 것인지 항상 편의점 앞에 주차를 하고 용변을 해결하고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사서 다시 차에 오르곤 했다. 1시간 마다 정차할 것이라 공지했기에 화장실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일행들은 편의점에서 쉴세없이 팩에 담긴 사케를 사가지고 와서 마시다 잠들기의 반복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불만이 사라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아무튼 그때 일본이 왜 편의점 왕국이라 불리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편의점이 늘어나는 이유가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편의와 편리를 중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개인중심주의의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란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시장과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대형마트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의점들이 거의 모든 지역을 망라하는 것 또한 각박한 세상에 추진력을 달아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또한 젖어들 수 밖에 없는 문화의 일부인 것 같다. 특히나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편의점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구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1 판매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막상 그 문구를 보고 나서는 구매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편의점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고 진하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원에 있는 편의점은 단순히 편의점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급하게 필요한 용품과 잠깐의 쉼을 갖게 해주는 안식처라는 사실이 편의점을 킹인정케 만든다. 


“먹고 사는 일은 그렇게 심오한 겨를이 없는 그 외의 더 무수한 심오함으로 점철된 불가피한 관성과 반복이었다.(40)”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왜 이렇게 항상 초라하고 힘겨울까? ~~ 재선이에게 바나나맛우유는 긴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었고, 나에게는 친구의 부재를 선명하게 인화하는 현상액 같은 것이었다.(57)”


“‘어떤 인간’으로 인식된다는 건 한 사람의 사회적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더 넓게는 그 사람의 인생을 포괄하는 것이고 더 깊게는 그 사람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 ‘어떤’은 대개 성격, 직업, 소속, 취미, 관심, 가치관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 대상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 뜨겁게 몰입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어떤 인간’이라는 타이틀은 지나온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기에 소중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202-203)”


#유철현 #어쩌다편의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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