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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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언더월드_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까치글방, 2025, 초판 1)



이 책은 일종의 사랑 고백서이다.


저자는 깊은 바닷속(심해)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곳저곳에 펼쳐 놓는다. 나 같은 T가 읽어도 그 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절절하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는 연인의 과거를 조사하고(심해의 역사를 다룬 1장 망누스의 괴물들), 상대를(심해(深海))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잡으려고 동분서주 한다.(2~7장까지) 그리고 그렇게 고대하던 상대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가슴 벅찬 감정을 토해낸다.(8장 이제 박광층(심해)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곤 분노를 터뜨린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대상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을 향해(9장 심해를 팝니다.).

 

이렇게만 보면 저자가 심해를 상대로 처절한 스토킹(?)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저자의 깊은 애정이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는 그 애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독자가 그녀처럼 심해를 사랑하게 만들려는 전략이다. 아마도 평범한 해양학자였다면, 독자에게 심해가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심해를 보호해야 하는지 설명하는데 지면을 더욱 할애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우리가 심해를 사랑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사실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 관심갖기 어렵다. 게다가 이론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 당장 심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랑하는 마음'을 활용했다.

 

 

-심해(心海), 지표면에서 가장 넓은 미지의 공간-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저자의 애절한 마음에 공감하지 못했다. 저렇게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실 나는 심해에 내려갈 용기도, 돈도 시간도 없다. 그래서 그녀가 그토록 심해에 대해 알리려고 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다. 심해는 왜 중요할까. 우리는 그곳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심해는 마치 공기를 닮았다. 우리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지만, 정작 그 존재의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는 존재 같은 것이었다. 심해가 우리 삶에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이 책 이곳저곳에 잘 드러나 있었다. 내가 그 일부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했다면, 심해는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심해에 있는) 케스케이디아 섭입대가 다시 파열된다면, …… 높이가 최대 30미터에 달하는 쓰나미가 800만 명이 살고 있는 해안 지대를 덮칠 것이다. …… 만약 바닷가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피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132,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예측은 바로 심해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재난은 주기적으로 닥칠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더욱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연구와 함께 다양한 센서들이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그곳에 관심이 없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낼 의향은 더더욱 없다.

 

지구 내부의 이러한 생물들에 대한 연구는 과학계가 새롭게 개척해야 할 분야이다. …… 극한 생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종류의 생물이야말로 …… 또다른 해양 세계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유형의 생명체이다. …… 지구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품은 장소라는 사실이다.”(146,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환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와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본 적 없는 수많은 생명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산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육지 생명체에게 독극물인 황화수소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에게는 독극물이지만, 그것을 양분으로 살아가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랍지 않은가. 또한, 지구에서 처음 생명이 생성되었을 당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많은 생명에 관한 비밀이 저멀리 우주가 아니라 바로 근처 심해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우주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는 것보다 심해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한다.

 

“1970년 이후로 바다는 우리가 화석 연료를 태우면서 발생시킨 열의 93퍼센트와 이산화탄소의 30퍼센트를 흡수해왔다.”(151, 포세이돈의 보금자리)

 

심해의 탄소 흡수량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뒤에서 저자가 직접 방문한 박광층에 사는 생명체에 의해 수면에서 흡수되고, 심해에 갇히는 탄소량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렇듯 심해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대다수를 조절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당면한 기후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심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손에 의해 파괴되지 않은 마지막 남은 지구의 자정 기능이 심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부분들이 심해와 나의 삶이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일 것이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놀라운 사실들이 이 책에 나온다. 해양 생태계는 물론 전 지구적인 모든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고, 현재 가장 최신의 연구 성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많은 사람에게 심해의 중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난파선, 해양 고고학과 역사학의 보고(寶庫)-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두게 된 부분은 ‘6장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였다. 특히 산 호세 갈레온 선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진진했다. 바닷속에 수많은 배가 원형 그대로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누누이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들을 그대로 인양해 박물관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인근에도 분명 수많은 난파선이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비밀들을 파헤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심만 있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것을 저자는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심해의 역사를 발굴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해양고고학자들은 전문 지식을, 정부는 권리를, 기업은 로봇과 돈을 가지고 있지만 공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266, 모든 난파선의 어머니)

 

결국, 돈이라니. 앞으로 심해 탐사와 관련된 장비와 기술이 더욱 발전하겠지만, 결국 그것들을 움직이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가슴 아픈 현실일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더 많은 지원을 얻어서, 더욱더 자유롭게 연구하고 탐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바란다. 나도 그런 관심을 두게 된 한 명의 독자이니까 언젠가는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

 

사물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음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이다. …… 황홀경처럼 느껴졌다. ……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가 세계를, 세계 자체의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328, 이제 박광층으로 들어갑니다.)

 

저자의 탐험을 따라가다 보면 아주 단순한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자연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우리가 가진 시야(관점)가 매우 좁다는 것을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지만 지구 생명체의 대다수는 빛이 없는 심해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육지는 지구 표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바다다. 우리가 인식하고 절대적이라고 믿는 세계는 얼마나 비좁은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저자는 심해에서 광물을 채굴할 권리를 판매하겠다는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을 단지 돈을 위해서 파괴하겠다는 사람들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그녀가 느낀 분노가 ‘9장 심해를 팝니다에 아주 잘 드러나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 같다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기 바란다. 알면 알수록 더 황당하니까 말이다.”(337, 9장 심해를 팝니다.)

 

개발과 보존에 대한 논란은 심해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된 문제다. 그런데 그 문제가 심해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다. 인간은 참으로 조악한 기술만으로 세상을 파괴할 능력을 갖춘 특이한 존재다. 그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돈 몇 푼을 위해 스스로 파괴한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이 케케묵은 것 같은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항상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멈춰요. 기다려요. 우리가 대안을 생각해볼 기회를 줘요. …… 한번 사라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요.”

메탈스 컴퍼니(심해 채굴을 위한 기업)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359, 9장 심해를 팝니다.)

 

 

솔직히 저자가 조금은 부러웠다. 무언가에 매료되어 목숨을 걸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웠다. 나는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처럼 다시 가슴이 뛰어서 견딜 수 없는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떻게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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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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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하승민을 비롯한 19명의 작가가 짧은 글을 담았다. 모두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1996년부터 시작되어 올해로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한겨레문학상은 총 서른 번의 수상작과 작가를 남겼다. 책의 맨 뒤를 보면 제2회부터 29회까지 수상작과 작가가 기록되어 있다. (1회와 30회는 빠졌는지 의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집을 읽으며 ‘30(서른)’힌트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 짧은 글을 보면서 수상작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9회 수상작인 하승민의 멜라닌을 읽어서 그런지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글이 수상작의 확장된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가 수상 이후 갖게 된 생각이나 경험을 알게 해준 작품들도 있어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여기 실린 19편의 작품 중에서 특히 강화길 작가의 종이탈과 최진영의 무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진영의 작품은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짧은 글이었지만 읽고 난 후 역시 최고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30(서른), 힌트-

 

그렇게 서른 번째”(150, 강화길, 종이탈)

서른!”(179, 강태식, 모든 고릴라에게)

일단 ‘30’이라고 번호를 쓴다.”(253, 서진, 웰컴 투더 로스트앤드 파운드)

서른!”(312, 권리, 어나니)

그러기에 서른 살 전후가 되면 고난이 닥친다.”(371, 한창훈, 홍합, 이시죠?)

 

이 책은 한겨레문학상 수상자들이 보내온 30주년 기념 글들이다. 30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를 작가마다 개성 있게 풀어냈다. 30이라는 숫자를 보면 뭔가 긴 시간 같기도 하고, 나이 서른을 의미하는 것 같다.(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떠오른다.) 내가 어릴 때 나이 서른은 매우 큰 숫자였지만, 지금은 서른이 그다지 많은 나이가 아니다. 한겨레문학상이 달려온 30년이라는 긴 세월 작가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한겨레출판은 한겨레문학상 30주년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세대는 <한겨레>에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362, 한창훈, 홍합, 이시죠?)

 

작가, 출판사, 독자에게 한겨레문학상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아마도 나의 선배 세대들에게 한겨레는 뭔가 뜨거움을 느끼게 만든 상징이었는가보다. 출판사나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 의미가 모두에게 동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힌트를 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출판사, 작가, 독자는 아마도 저마다의 의미를 힌트 속에 감춰 공유하려고 한 것 같다.

 

힌트인가?”(96, 김유원, 힌트)

 

 

-한겨레문학상의 역사-

 

이 책의 차례를 보면 역대 수상자의 글이 수상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나는 이 점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30년간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에게도 시간의 무게가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제29회 수상자인 하승민 작가의 글이 가장 최근의 한겨레문학상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고, 2회 수상자인 김연 작가의 글은 아마도 시간의 무게와 함께 작품의 의미가 약간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대체로 최근 수상자의 글은 수상작의 세계관을 확장하거나 반영했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오래전 수상자들은 한겨레출판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의 의미에 대해 돌아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된 글을 통해 힌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승민의 글에서는 이 갖는 차별적 시선을, 김유원의 글에서는 좋아함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수진의 글에서는 소수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 집단 안에서 받는 역차별을 생각해볼 수 있었고, 박서련의 글에서는 나이를 먹으면서 갖게 되는 생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넘겨버릴 수 없는 생각들이 이 책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나는 이런 것들이 바로 한겨레문학상의 역사를 담고 있는 힌트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래서 그만큼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할 수 없는 가벼운 소재를 소설로 무겁게 다루고 있다. 나는 그렇게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158)’ 그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길-

 

한겨레문학상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중요성만큼 인정받고 대접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겨레문학상은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조두진의 표범에 나오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한겨레출판도 아마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겨레문학상을 30년간 지켜온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했을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아니라 집에 사는 흑돼지이고 싶었다. …… 킬리만자로에 무슨 놈의 자유가 있어? 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고, 천적을 피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는데……”(297, 조두진, 표범)

 

쉴 새 없이 달려온 한겨레문학상.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30년을 버텨온 그 길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킬리만자로의 눈 덮인 평원을 호령하는 표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아빠다.”(335, 심윤경, 너를 응원해)

 

한겨레문학상은 아빠와도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뭔가 허술해 보이지만 아이들을 든든하게 보듬어 주어야 하는 존재.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만큼은 꼭 지켜내야 하는 존재. 나는 한겨레문학상이 아빠와 같은 존재로 지금처럼 계속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은 든든한 아빠를 믿고 두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도 더욱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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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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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파이트 (이라야, 창비청소년문학, 2025, 초판 1)

어쩌면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된 발상일지 모른다. 한편으로 내가 전달받은 위로의 힘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할 방법을 찾고 싶었다.”(201, 작가의 말)

 

어릴 적 상처로 인해 마음을 완전히 닫아버린 하람이가 주인공이다. 그녀의 상처는 어쩌면 부모를 닮았는지 모른다. 사람을 어려워하고, 마음 터놓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빠도, 엄마도, 하람이에게서도 잘 드러나는 모습이다. 지독히도 닮은 가족들이다. 아빠는 아내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캄보디아로 떠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아내의 상처를 보듬는 데에만 최선을 다한다. 엄마는 가족의 상처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만 한다. 하람이는 그런 엄마를 보살피며, 엄마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달려간다. 격투기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이다. 하람이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엄마의 시선이 머물렀던 그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람이를 바라봐주던 유일한 존재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다.

 

 

-투정부리지 않는 아이-

 

하람이의 어려운 상황보다도 더 가슴이 아팠던 것은 그녀가 투정조차 부리지 않는 아이였다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잘 보살피지 못한다고 탓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위안이었던 한국으로의 도피 과정에서도 엄마를 놓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어른인 척 살아야만 하는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이럴 거면 왜 나를 낳았느냐고 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억울할 이유도 없다. 임신과 출산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니라 엄마가 선택한 일이고, 그 선택권자인 엄마가 나를 외면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또한 엄마의 마음 아닌가. 그 결과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건 불합리하지만 내 선택이 아니니 따지고 들 일도 못 된다.”(111, 엄마의 생일)

 

그래서 하람이는 격투기 선수(파이터)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속에 꽁꽁 감춰둔 투정을 온몸으로 쏟아낼 수 있었을 테니까. 격투기 덕분에 하람이는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격투기는 하람이에게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파이트인 이유도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마음을 두드리는 위로-

 

캄보디아(아빠가 있는 보금자리)를 떠나 돌아가신 한국 할머니의 집을 찾아왔을 때, 하람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수중에 돈은 없었고, 한겨울임에도 두꺼운 외투조차 없었으며,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못해 혼자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람이가 어떻게 이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 SNS에서 만났던 무하는 시시콜콜 묻지 않고 그저 도움을 주었으며, 이웃집 할머니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들의 겨울옷을 내주었다. 심지어 원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오갈 데 없는 하람이의 엄마를 덜컥 받아준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모습이다.

 

단단하고 철벽같은 내 감정선 사이를 얇은 실금처럼 깊게 파고든다.”(59, 방심은 금물)

 

하람이는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결국 마음을 연다. 마음의 문은 꼭꼭 닫혀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려주길 기다렸을 뿐이다. 주변의 가벼운 두드림(위로)만으로 하람이의 마음은 열릴 수 있었다.

 

 

-어른의 역할-

 

하람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주변의 어른들이 그녀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을 뿐이다. 하나님을 모시는 아빠가 하람이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는 것은 큰 아이러니였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 했지만 아빠는 사람이라 똑같이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만 절실히 깨달았다.”(92, 찾아오는 사람들)

 

하나님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 혼자 버티게 내버려 둔다는 거. 살든지, 나가떨어지든지, 죽든지.”(144, 울지마, 제발)

 

아마도 하나님은 아빠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하람이가 원한 것은 매우 간단했다. 아이니까, 당연히 바랄 수 있는 것. 바로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죄책감에 빠져 아이를 외면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하람이를 방치했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준 것은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아주 가끔 다녀가시는 할머니뿐이었다. 그런데 그 할머니마저도 돌아가셨으니 하람이에게 남은 어른은 이제 없는 셈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한국에서는 하람이 편에 서주는, 그녀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어른을 만난다. 하람이가 어린아이였고, 그녀가 바란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 어른들이 제대로 확인시켜준다. 그들은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이었다.

 

하람이는 안 불쌍해요? 왜 얘가 엄마의 상처, 고통을 모조리 뒤집어써야 하냐고요, 왜요? …… 얘 아픈 건 누가 알아줄 건데요. 누가요!”(157, 울지마, 제발)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좀 풀렸다. 나의 가능성을 평가해주는 거, 지금은 그것도 내게 필요한 양분이었다.”(167, 파이트!)

 

하람이의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두드려준 것은 또래 친구 무하와 원지였다. 그런데 권 경위와 체육관 관장님은 하람이가 받은 상처를 치유했다. 하람이가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것. 그녀가 온전히 자기 힘으로 설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그녀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평가해주었다. 하람이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이 어른들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매우 감동적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떤 부모이고 어떤 어른일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살필 수 있는 부모인지, 학생의 든든한 한편이 되어줄 수 있는 어른인지 말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하람이의 성장 과정은 매우 눈물겹다.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그녀의 마음을 두드려주는 친구들,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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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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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한겨레출판, 2025, 초판 1)


작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독창성 하나는 세계 최강이다.

 

호불호를 떠나서 작가에게 독창성이란 최고의 미덕이니까.”(242, 마트료시카)

 

작가에게 아부할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로 독특함을 뿜어내는 짧은 소설책이다. 우선 작가의 독특함은 차례에서부터 드러난다. ‘작가의 말이 뜬금없이 책의 중간에 나온다.

 

…… 목차는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다. 작가의 말을 포함해서.”(114,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포함해 독창성을 아주 강력하게 뿜어내는 16편의 짧은 소설들이 엄격한 질서에 의해 조성된 혼돈에 오점을’(114, 작가의 말 / 245, 마트료시카) 남기는 방식으로 등장한다. 마치 자극적인 숏츠를 여러 편 몰아쳐 본 느낌이다. 하나의 소설에 온전히 몰입하기도 전에 숨 가쁘게 다른 장면으로 내던져진 기분이 든다. 그러면서도 각 소설이 가진 매력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작가가 그냥 쓰고 싶어서, 그냥 좋아해서 자유롭게 쓴 소설은 정말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를 찌그러진 탱탱볼을 닮았다.

 

 

-상상할 수 없는 결말-

 

일단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스릴러보다는 호러(공포)라고 생각한다. 소설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작품인 아뇨, 아무것도’(67)는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무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끔찍하고 잔인한 묘사는 거의 없다. 그저 사소한 일상 속에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소재로 시작하여 슬그머니 소름 돋는 공포를 보여준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81, 아뇨, 아무것도)

 

정말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결말이다. 대부분 소설이 이렇다. 사소하게, 평범하게 흘러갈 것만 같은 내용이 뜬금없이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 오른다. 처음에는 그것이 당황스러웠지만, 서서히 나도 작가가 된 것인 양 제목만으로 그 다음 내용을 상상하게 되었다. 누가 이기는지 두고 보자는 식으로 작가의 상상력에 덤벼들었지만, 번번이 작가의 결말을 넘어설 수 없었다. 진정 우주 최강 독창성은 인정해야만 한다. 게다가 작가는 의도적으로 마트료시카’(231)을 맨 마지막에 넣는 오점(汚點)-엄격한 질서인 가나다순을 파괴한 오점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 의도가 약간 얄밉게 느껴졌다. ‘마트료시카는 작가가 가장 자신 있게 독창성을 드러낸 작품으로 앞의 15편의 소설에서 독자가 연습해보고, 마지막 작품에서 결말을 상상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려는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마치 광고 글처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작가의 상상력은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독창성의 벽이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 거대한 벽 앞에 상상력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대가 없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끝까지 추구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114, 작가의 말)

 

작가는 그냥 쓴 소설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단어 그냥에서 엄청난 자유와 해방감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은 진정한 자유다. 나같이 직장에, 가정에 얹혀사는 사람은 절대로 작가가 누리는 자유의 경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작가라는 직업이 이토록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단어는 없었다. ‘그냥’, 이 단어가 이토록 강력할 줄이야.

 

물과 숨’(33)은 작가가 글쓰기를 통해 자유와 해방감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주인공 재희는 그냥갑자기 물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리라 생각했던 숨(호흡)이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막는 족쇄였다는 점이다. 교사였던 재희는 교사로서 책임감, 학생에 대한 의무감을 고민 없이 내려놓는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도 손쉽게 떨쳐낸다. 마지막까지 포기하기 어려웠던 숨(호흡)을 극복하면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주인공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시작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이것이 공포다. 놀라운 결말이지 않은가.

 

마트료시카’(231)에서도 해방감을 언급한다. 사실 이 소설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작가는 이 해방감을 느끼기 위해 서로 다른 차원을 넘나드는 존재를 만들어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영원할 것만 같은 반복 속에서 작가는 해방감을 느끼기 위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다. 아마도 작가의 상황을 잘 드러내는 소설이 아닐까. 창작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이 미저리에 대한 단상’(55), ‘48시 편의점’(205)에 잘 드러나지만, 결국은 마지막 마트료시카에서 그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창성-

 

나는 엄격한 질서에 의해 조성된 혼돈에 오점을 남기는 것’(245)이 작가만의 독창성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작가는 모두가 진화를 옳은 방향이라고 믿고 있는 엄격한 질서 속에 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11)을 통해 퇴화를 지향하는 존재들을 내세운다. 또한, 영화 미저리에서 피해자인 여자 주인공 미저리를 교묘하게 타인을 조종하는 가스라이터’(63)으로 재정의하기도 한다. 엄격한 질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가는 소설을 창조했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남긴 이 오점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독창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의 연인의 친구들’(121)에서 장미의 친구인 주인공 는 결국 친구에 대한 오해를 풀지 않는 쪽으로 오점을 남긴다. 그것이 더 좋은 결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157)에서 인도인 구루는 명상이나 선문답을 하지 않는 오점을 남기지만, 결국 주인공 티미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하이델베르크의 동물원’(183)은 동물원 자체가 오점이지만, 그덕에 두 주인공은 인연을 발전시켜 나간다.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다. 쉽게 몰입할 수 있지만,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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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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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25, 개정판 1)

이 책은 오웰이 썼던 수많은 에세이 가운데 옮긴이가 31편을 뽑아 쓰인 순서대로 엮은 것입니다.”(일러두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웰이 생계형 작가였다는 점이다. 오웰은 죽기 직전까지도 수많은 글을 남겼다. 그래서 오웰은 󰡔동물농장󰡕󰡔1984󰡕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지만,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수많은 속살을 드러낸다. 특히 내가 관심이 생긴 부분은 세 지점이다.

그는 매우 정치적이었다. 그의 정치적인 지향점을 글로 드러내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 그 현장에 들어가 행동했다. 파시즘에 반대하기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으며,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허상을 드러내기 위해 직접 부랑자로 살았다. 이 사실은 멀끔한 복장에 향긋한 차를 마시며 비싼 타자기로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던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는 매우 역사적이었다. 그는 1903년에 태어나 길지 않은 생을 살았다. 정확히 20세기 초입을 살았다. 격동의 시대, 1, 2차 세계 대전을 겪었으며, 인도 식민지에서 관료로 근무했으며, 모로코 식민지에서 부랑자 생활을 했다. 내게는 교과서 속 시대이지만, 그에게는 삶이었다. 나는 역사이지만,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그는 매우 미래지향적이었다. 자기 시대를 매우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하고자 노력했고, 행동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자 했다. 󰡔동물농장󰡕󰡔1984󰡕는 현실에 기반한 소설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예측하고자 시도했던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글을 장미 묘목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심었던 장미 묘목은 그다지 큰 가치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장미는 자라서 큰 나무를 이루고, 매년 아름다운 장미를 피워낸다. 그는 장미나 과실수를 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자본주의적 아름다움과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작은 행위로 인해 후손들에게 큰 결과를 남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직접 체험하고 묘사하는 작가-

 

오웰이 쓴 글 대부분은 그가 직접 체험한 것이다. 그는 경험을 묘사하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아마도 이 능력이 그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비결이지 싶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아마도 글을 쓰고 싶어질지 모른다. 그처럼 평생에 걸쳐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는 그처럼 위대한 소설을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사람은 특히 어느 서평자의 고백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첫 글인 스파이크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는 매우 충격적이다. 그는 직접 부랑자의 삶을 경험한다. 그리고 당시 부랑자를 수용하는 시설이나 하층민들을 위한 무료 병원을 찾는다. 솔직히 그가 왜 이런 경험을 하려고 했을지 궁금하다. 정말 돈이 없었을까. 아니면 그가 언급했던 인도의 간디처럼 단지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싶어서였을까. 그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의 묘사는 정말 탁월하다. 단선한 체험의 수준을 넘어 그 상황 속으로 완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정도의 설명이 뒤따른다. 마치 그들의 삶을 내가 겪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그가 직접 체험을 통해 묘사한 글은 생생한 현실감을 주는 동시에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감정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나는 이 방법이 당시 권력의 더러운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부랑자)는 이 병원에(가난한 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 오래 있으면서 강의의 단골 교재 노릇을 한 게 분명해 보였다.”(370,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빈부격차가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자본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는 저 한 줄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오웰의 글이 갖는 매우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는 작가-

 

오웰은 영국 제국주의의 하급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는 기득권이 행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들인 일종의 모범생과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나 착취에 대해 전면적인 저항을 하지 않는다. (마치 간디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그의 글이 간디에 대한 평가여서 조금 놀랐다) 영국 제국주의가 있기에 그가 이런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그 뒤로는 날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며 따분한 5년을 보냈다.”(86, 좌든 우든 나의 조국)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처한 상황에서 영국 제국주의를 비롯한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는 글로 그것을 알리려 노력했으며, 그것을 위해 당시 현실을 가장 냉철하고 철저하게 분석하고자 시도했다. “교수형코끼리를 쏘다에서는 영국의 식민 지배의 허상을 폭로하는 동시에 무기력한 식민지인의 모습을 묘사한다.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를 통해서는 파시즘과 영국 자유주의, 공산주의와 소련의 독재 권력에 대한 처절한 비판을 쏟아낸다. 당대인이라면 거의 관심이 없었을 주제에 대해 그는 글로써 그토록 맹렬히 저항했다. 나는 그 어떤 신문 사설보다도 그의 글이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인도의 식민지 관료로 생활했으며,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외국인 병사였다. 그래서 그의 현실 분석은 다른 곳에서 전해 들은 사람에 비해 더 냉철하고 정확할 수 있었다.

 

시와 마이크”, “당신과 원자탄”, “과학이란 무엇인가”, “행락지같은 작품은 그가 당시 현실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시를 읽지 않는 세태를 보고 시인들을 위해 라디오 방송에 나와 마이크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고, 과학만을 중시하는 풍토에 대해 인문학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 행락지를 마구잡이로 건설하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며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할 수 있었기에, 그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마치 󰡔동물농장󰡕과 같은 현실에 관심을 두고 비판하지 않으면 󰡔1984󰡕와 같은 미래가 닥칠 수 있다고 그는 경고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을 왜 어떻게 쓰는지 분명한 작가-

 

오웰은 40대 후반에 죽었다. 지금으로 치면 그다지 긴 생을 산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작가였다. “나는 왜 쓰는가에는 그 목표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바로 정치적 목표와 예술적 목적을 융합시키려 한 것이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325,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그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작가다. 그래서 그는 이와 같은 글을 평생에 걸쳐 남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243, 문학예방)

 

나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재능이 없을 뿐이다. 그런데 오웰의 글을 보며 무언가 분명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왜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처럼 나도 무엇을 어떻게 왜 써야 하는지부터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연히 글을 쓰려고 앉아 있을 때의 감정에 대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서점의 추억”, “어느 서평자의 고백”, “작가의 수입은 정말 현실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도 책을 좋아해서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었다. 지금도 솔직히 돈만 충분히 있다면 생계형이 아닌 취미형 서점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또 서평은 어떤가. 책을 읽고 싶지만,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서평단에 도전하는 것이다. 읽고 쓰고 하는 행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약간의 강제력이 있어 좋다. 기한이 정해져 있으므로 게을러질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작가의 수입은, 글쎄. 지금 글을 쓰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다. 오웰이 했던 경험과 고민이 이런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모든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아닐까 싶다.

 

정말, 정말 좋았지”, “간디에 대한 소견은 나에겐 정말 두고두고 계속 읽어야 할 글이다. 앞의 글은 학교를 부정적으로 경험하는 학생의 경험담이고, 뒤의 글은 영국인 식민 관료가 인도인 피식민 민족지도자를 평가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나는 교사이면서 역사를 가르친다. 두 글에는 내게 정말 소중한 내용이 담겨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위 두 글만을 가지고 새로 서평을 써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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