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가파도에 가다 - 비움과 낮춤의 지혜를 배우는 노자 철학 소설 사계절 지식소설 18
김경윤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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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노자, 가파도에 가다 (김경윤, 사계절, 2025, 11)

 

참 신기하다. 어릴 적 아까워 먹지 못하고 감춰두던 사탕 같은 책이다. 남은 부분이 줄어들수록 이야기가 끝나버릴까 봐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주인공 이백양을 응원하면서, 또 그처럼 은퇴 후 살아갈 내 미래를 생각하면서 읽다 보면 어느새 내 삶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은퇴는 끝이 아님을, 지금 내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어서다.

 

학교는 디지털화하고, 도서관은 사라진다는 가정. 결코, 상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이다.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더라도 아이들로부터 외면당할 것만 같다. 이미 도서관은 책을 읽기보다 공부하는 공간이 되었고, 동네 서점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서점에 들어가면 문제 풀이집만 가득하다. 도서관장인 주인공 이백양은 자기 은퇴를 종이책의 소멸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도 비슷한 걱정거리가 있다.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걱정이 쉽게 가슴에 와 닿았다.

 

 

-말 없는 가르침(不言之敎)-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9, 프롤로그)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았다. 노자의 이름이 이백양이라는 것을. 저자는 도덕경 속의 노자를 현실에 불러내려 했다. ‘노자 철학 소설로 소개된 이 책은 2500년 전 노자의 목소리를 지금 이 시대에 직접 소환하기 위해서 소설을 썼고, 주인공을 우리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은퇴자의 모습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주인공이 2500년 전 그 성현(聖賢)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평범한 은퇴자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주인공 1인칭 시점으로 그의 생각과 고민이 잘 드러나는 이야기와 그날을 정리하는 일기 형식으로 그의 생각 흐름을 잘 보여준다. 노자의 현신(現身)이지만 이번 생은 처음인 이백양은 처절하게 흔들리며, 고민한다. 저자는 그의 모습을 통해 삶에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고 생각했다. 마치 말 없는 가르침(36)’같았다.

 

노자라고 처음부터 존재와 변화의 이치를 깨달았겠는가? 아니, 흔들리지 않고 존재와 변화의 이채를 깨달을 수가 있는가? 노자도 평생을 흔들리며 살았을 것이다. 흔들리며 살았기에 말년에 담담히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91~2, 5. 고양이 청년을 만나다.)

 

그래서 주인공의 삶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억지로 삶의 방향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주인공 이백양이 살아간 방향은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깨닫게만 해 주었다. 저자는 이백양을 통해 이런 삶이 있다는 것을 단순히 보여주었다. 이백양은 도시에서만 살아왔지만, 농촌에서, 섬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었다. 또한, 은퇴 이후에도 얼마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생기있는 삶을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도 보여주었다.

 

백양은 가파도에 도서관을 만들려고 이런저런 일을 준비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자기가 의미 있어 하는 게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118, 7장 고양이 도서관을 만들다)

 

 

-()한 위로-

 

1장에서부터 주인공 이백양은 지인의 죽음을 겪는다. 그리고 곧바로 길고양이의 죽음도 마주한다. 그런데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참 나한테는 낯설었다. 사실 나는 죽음을 꺼리고 두려워해서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조차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백양은, 가파도의 노자는 좀 달랐다. 죽음을 데면데면(37)’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른바 고양이가 집사에게 보여주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그 적당한 거리감이 묘하게 날 위로했다. 격하게 슬퍼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전혀 모른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긴장 관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깨닫게 되었다.

 

외면하지는 않지만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삶, 홀로 지내고 싶을 때 마음 편히 혼자가 되는 상태가 지금 나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식인 것 같다.”(37, 2장 고양이의 가르침)

 

위의 관계처럼 이백양이 가파도에서 살아가면서 배운 그 모든 모습이 내겐 위로였다. 그가 건네는 말이 내가 가진 강박과 두려움, 고민 같은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직접 살아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 삶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얻을 수도 있었다.

 

애써 마음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무심한 노동, 무심한 친절, 무심한 생활!”(47)

 

이백양은 매표소 직원의 삶을 통해 애쓰지 않아도 노동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너무 애쓰며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무심하게 살아가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파도 사람의 인심은 이렇게 은근하다. 오래도록 관찰하다가 필요한 것을 슬쩍 주는 것이 섬사람의 인심이다.”(48, 3장 천천히 살다)

 

가파도 사람의 모습을 통해 무엇이 친절인지를 깨닫는다. 두드러지는 행동보다 은근한 것이 더 큰 친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책에는 참으로 묘한 위로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내 삶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지만 위로를 받는다.

 

 

-교사를 위한 도덕경-

 

주인공 이백양은 교사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 교재를 쓴다. 이른바 교사들을 위한 도덕경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젊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이 강의가 진행되었지만, 나같은 나이든 교사도 참여할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그리고 학생도 함께 있었다면 더 의미가 살아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건 그 강의 교재 전체가 책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강의 교재를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 나도 제주도로 내려가 인문학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책 말미에 보면 수강생 중 누군가가 출간을 하시던데.. 실제로 저자가 다음 작품으로 이 내용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절히 바란다.

 

노자가 교육자였다면 어떻게 썼을까 생각했더니 글이 써지기 시작했다. 됐다. 교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구나.”(133,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인간에게는 소통 능력이 있다. 이 소통 능력 안에는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감정에 대한 소통 능력도 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공감하면서, 서로 기대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이 찾아온다. 교육의 목표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바로 이 공감의 소통으로까지 나아가는 것, 그래서 진정으로 지혜롭고 강하고 자족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142,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주인공의 일기를 통해 대강 그 내용을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구상했을까. 교육자로서의 노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통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으면 좋을까. 지식의 전달을 넘어설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이백양을, 아니 노자를 만난다면 이런 질문들을 무차별적으로 마구 쏟아낼 것만 같다.

 

 

이 책이 딱 내 책이라는 느낌을 준 구절이 있다. 바로 주인공 이백양이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날이 바로 88일이라는 점이다. 그날은 내 생일이다.

 

고양이도서관의 개관일은 88일로 정했다. …… 세계적으로 고양이를 위한 행사가 열리는 날에 고양이도서관을 개관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126, 8장 노자를 강의하다.)

 

주인공 이백양에게도, 내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내 삶의 의미를 그렇게 쉽고 가까운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거창한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갈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백양처럼 티베트로 떠날 수도, 1년 간 가파도에서 살 수도 없지만, 나도 내 삶을 조금은 바꿔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볼 용기를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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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뚱 2025-09-1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입니다. 우리교육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관점에서 새로 쓴 노자 도덕경>이라는 책을 이미 출간했습니다. 복시면 좋을 것 같네요. 좋은 서평 고맙습니다.
 
흙의 숨 - 흙과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만들어왔는가
유경수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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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흙의 숨 (유경수, 김영사, 2025, 11)

 

생태학자의 시선에 과학과 사회학의 접점을 찾아 나선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저자는 토양()’20년 넘게 연구한 학자다. ‘토양학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면서도 낯선 개념이다. 나의 어린 시절 가장 친숙한 놀잇감은 집 앞의 흙이나 모래였다. 하지만 그 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있을 거라 생각조차 못 했다. 아마 저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그곳에 정착하게 된 것도 우리나라가 토양학에 관심이 부족한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저자는 하와이부터 북극권까지 지구 곳곳을 탐험하며 흙을 연구했다. 흙은 지구 표면에 얇게 분포하며, 아주 아슬아슬하게 존재하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또한, 흙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자연권이지만 문명권과 뗄 수 없다고도 한다. 이 책은 자연권보다는 문명권으로, 인간 삶의 토대가 된 흙으로서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특히 인간이 오랜 세월 어떻게 흙에 몸을 부대끼며 살아왔는지, 그것이 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 덕에 나는 역사를 다르게 해석할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바로 역사 발전의 주인공이 다수의 이름 없는 농부였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발명품이 쟁기였다는 관점이다.

 

저자가 풀어내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는 흙이 태어난 수백만 년 전부터 미래 우리가 맞이하게 될 흙의 변화까지를 포함한다. 그가 직접 파내고 측정하며, 심지어 그 구덩이 안에 누워보기까지 하면서 발견한 생생한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저자도 학문과 연구보다 이야기로부터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소포리 땅 구석구석의 역사와 자연, 사람들의 부엌살림에서 상장문화와 말까지 꿰뚫고 있던 김병철 이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학문보다 크고 깊은 것이 이야기라고 믿게 되었다.”(363, 10장 땅)

 

 

-삶의 근원인 흙-

 

저자는 흙이 삶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전근대 농부들에게 흙은 공기만큼이나 소중하고 또 당연한 대상이었을 것이다.(물론 지금 도시 사람은 흙을 밟을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출퇴근할 때 밟는 숲속 흙이 전부다.) 그래서 흙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것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저자는 잘 보여준다.

 

1장에서는 전근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었던 을 다룬다. 제목을 보고는 우리 막내 아이의 얼굴부터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똥은 절대적인 웃음 버튼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그 실물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그저 놀잇감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농사를 위한 절대적인 자원이어서 삶의 모습에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자면 똥을 돈 주고 사가야 하는 모습을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집 밖에 멀리 나갔다가도 대소변을 집으로 돌아와 누는 행위가 농사와 가족을 위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또한, 동양이 인분(人糞) 문명권이었고, 서양이 가축 분뇨 문명권이었다는 설명은 동서양의 삶의 모습이 왜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쉽게 설명해주는 틀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저자가 1장에서 을 살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균형이었다. 전근대 똥은 탄소와 질소의 균형을 통한 자원 순환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현대로 넘어오면서 오염원으로 전락하고, 농지에는 인공 질소 비료만 남게 되었다. 탄소(유기물) 없는 질소는 농작물에 전량 흡수되지 않았고, 흙과 함께 빗물에 쉽게 쓸려나갔다.

 

2장에서는 화전(火田)을 다룬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약탈 화전이고, 보존 화전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예전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이지만, 우리가 산불을 조심해야 하고, 화재 진압을 위해 임도(林道)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산에 주기적으로 불이 나야만 오히려 대형 산불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아마도 저자가 본 보존 화전이 이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을까 기대했다. 저자는 보존 화전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 전략으로 오래된 인류의 지혜라고 평가한다. 역시 여기서도 자원 순환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경작할 때는 식량을, 숲으로 돌아가는 묵밭(묵히는 밭)의 시간 동안에는 물, 버섯, 과일, 약재, 목재, 땔감을 제공하며, 야생 동식물에게는 먹이와 삶의 터전을 선물하는 화전은 단순한 농업 생산기지가 아닌 인간과 자연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잡은 공존 전략이기도 하다.”(74, 2장 화전)

 

3장에서는 쟁기를, 4장에서는 무논(물을 채우는 논)을 소개한다. 둘 다 농사에서 매우 중요한 잡초를 제거하기 위한 인류의 소중한 지혜를 담고 있다. 특히 3장에서 쟁기의 혁신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켰다는 설명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 북유럽의 도시 성장, 그리고 미국의 농업 발달 등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점이었다. 역시 이 부분에서도 저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 농법이나 무논의 마법과도 같은 기술을 통해 균형을 지켜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현대 농업이 토양을 약탈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방식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흙을 만드는 존재, , , 그리고 지렁이-

 

오랜 세월 삶의 근원이 되어준 흙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저자는 흙을 만드는 요소로 5장에서 물을 소개한다. 물은 얼음에서부터 수증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데, 그 다양한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으로 흙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

 

빙하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얼음과 물 사이의 변용만이 아니었다. , 얼음, 수증기 사이를 건너며 광물과 유기물질로 이루어진 흙 속의 미로를 타고 이동하는 물. 대기와 흙과 몸을 비비면서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물. …… 똑같은 극지이지만 이끼와 관목 사이에선 습지를 만들고 매머드 스텝에선 생산성 높은 풀의 광합성을 따라 얼른 증발해버렸던 물.”(207~8, 5장 물)

 

물의 다양한 역할을 살펴보는 과정은 상상력이 필요했다. 수만 년 전 빙하가 몰로 내려온 흙. 엄청난 양의 매머드가 밟고 지나갔던 흙.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엄청난 과정을 저자는 과학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준다.

6장 강에서는 물줄기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골짜기에 자리잡은 우리나라의 동네, 물과 물이 만나는 신성한 강물 주변, 폭포 주변에 자리를 잡은 산업 도시 등은 매우 흥미로운 사례였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강과 주변, 인간의 활동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저자는 강과 하천의 복원이 쉽게 결정할 수도, 실행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7장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바로 지렁이다. 우리가 지렁이에 대해 가진 편견이 어떻게 극지의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 부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렁이가 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생생하게 설명한다.

 

세상의 흙을 둘로 나누라면, 난 먼저 지렁이가 있는 흙과 지렁이가 없는 흙으로 나누겠다. 지렁이가 있는 흙을 바탕으로 하는 온대와 열대 지중해의 숲과 초지에서는, 두루뭉술하게 말하자면 10년마다 모든 흙 알갱이가 지렁이의 내장을 통과한다.”(255, 7장 지렁이)

 

인간이 주로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지역에서 지렁이는 인간에게 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지렁이가 정반대로 생태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들이 무심코 가지고 간 지렁이가 캐나다에서, 알래스카에서 생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저자가 잘 보여준다. 저자는 경고한다. 지렁이와 사람이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렁이의 침투가 끼칠 영향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인간의 숨 그리고 흙의 숨-

 

저자는 8장에서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흙도 몸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하와이에서 새로운 흙이 생성되는 모습을, 그것이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을 설명한다. 9장에서는 인간이 숨을 쉬듯, 흙도 숨을 쉰다고 설명한다. 흙 속에 살아가는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고 몸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에너지원으로 산소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배출하는 탄소는 토양이 호흡으로 배출하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다.

 

행성 지구의 이산화탄소 토양 호흡량은 연간 3400억 톤 정도다. 인간으로 환산하면 13500억 명의 인간이 내쉬는 숨과 같다. 현존 인구의 무려 170여 배다.”(338, 9장 흙의 숨)

 

그렇다면 혹시 토양 호흡량을 줄여서 탄소 중립을 이루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아예 그런 가정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이 탄소 중립인 것처럼, 토양 호흡도 탄소 중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것은 인간의 몸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 때문이다. 화석 연료를 태워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가 그것이다. 저자는 탄소 중립을 위해 인간의 몸이 아닌 활동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양 호흡에 손을 댈 것이 아니라 우리의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 10장에서 땅을 소개하면서 깨달음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저자는 흙을 연구하고,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을 만나면서 땅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인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진도와 남해의 사례를 통해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 간절한 마음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준다. 간절함이, 절실함이 있어야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온 가족이 매달려 갯벌을 논으로 바꿔냈던 힘은 그 간절함 덕분이었다. 이제 우리는 논을 다시 갯벌로 되돌리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상황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흙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슬아슬하게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흙을 지키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을 모아 우리의 행동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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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수 2025-09-0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꼼꼼한 리뷰에 감사드립니다. ˝흙의 숨˝ 한 장 한 장을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저 또한 ˝흙에 대한 과학˝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많이 놀랐답니다. 제 페북에도 링크했습니다. 고맙습니다.https://www.facebook.com/kyungsoo.yoo.5
 
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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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우리는 왜 싸우는가 (크리스토퍼 블랫먼, 김영사, 2025, 11)

 

저자는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행운아다. 그는 나이로비에서 우연한 사건으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고, ‘우리는 왜 싸우는가를 연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사랑과 진심을 담아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고, 그래서 내용과 구성이 너무나도 완벽하다.

 

1부에서는 전쟁이 발생하는 근원을 게임이론에 근거해 다섯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저자는 과거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부터 시작해 최근 라이베리아 폭동까지 다양한 갈등과 폭력 사태를 사례로 들어 자신이 제시한 기준으로 진단했다. 그가 제시한 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부터 최근의 생생한 경험까지 담고 있어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이었다. 또한, 우리가 폭력과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에 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추론이나 편견을 바로잡고, 근원을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이 매우 인상적이다.

 

2부에서는 1부에서 진단한 기준을 바탕으로 평화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평화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철저히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는 홉스의 관점을 수용하고 있어 세계가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면서, 평화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평화로 가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본다.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그 해결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하더라도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저자는 우리가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왜 싸우‘(지 않)’는가-

 

이 책의 제목은 우리는 왜 싸우는가이지만, 저자의 진단은 우리는 왜 싸우지 않는가에서 시작한다. 전쟁은 매우 극적이다. 폭력을 허용한다는 점도, 살인과 광기가 영웅시된다는 점도 그렇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전쟁에 대해 매우 편향적이라 주장한다. 실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잔혹함이 전쟁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고, 우리는 이것을 쉽게 설명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싸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와 같은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인간은 폭력을 갈망하고, 사회적 제재가 없다면 얼마든지 잔혹해지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쟁의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전쟁이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종교적, 민족적, 지역적 갈등과 증오는 분명 존재하지만, 모두가 전쟁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선택하지 않는다. , 우리가 전쟁이라는 극적인 장면에 너무 주목한 나머지, 전쟁을 피했던 나머지 사례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집단, 심지어 적대적인 집단도 싸우지 않고 함께 나란히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적들도 평화롭게 살아가며 서로 증오하는 쪽을 선호한다. …… 이처럼 타협의 실패(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현상은 일종의 선택 편향으로, 우리 모두 쉽게 범하는 논리 오류다.”(22~3, 서문)

 

저자는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전쟁의 근원을 진단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는 인간 집단이 대체로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가정한다. 주의할 것은 인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인원이 증가할수록 집단은 합리적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인간 집단이 평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게임이론, 전략학으로 분석한다. 저자가 제시한 전쟁 발생의 다섯 가지 기준은 견제되지 않은 이익(2)’, ‘무형의 동기(3)’, ‘불확실성(4)’, ‘이행 문제(5)’, ‘잘못된 인식(6)’이다.

 

 

-사례 분석을 통해 본 전쟁사-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사례 분석이다. 저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기준을 활용하여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의 폭력 사태까지 폭넓은 사건을 분석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례는 2003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다. 저자가 제시한 다섯 기준을 모두 활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편향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뿐만 아니라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던 정보까지 다양한 기준과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어서 매우 매력적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매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더욱 매력적인 부분은 저자가 제시한 다섯 가지 논리를 적용하면, 기존에 일어난 전쟁을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섯 가지 요건이 충족된다고 해서 반드시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섯 가지 요건이 합쳐지면 합쳐질수록 전쟁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교훈을 잘 이해한다면, 우리가 전쟁을 피하고 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저자는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을 평화라고 보지 않는다. 저자가 보는 평화는 오래도록 거대한 폭력과 살육이 지속되는 전쟁을 막는 것이다.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평화로운 수단으로 갈등을 다스리는 힘이다.”(258, 7장 상호의존)

 

 

-평화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엔지니어(403)-

 

저자는 1부 전쟁의 근원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2부에서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상호의존(7)’, ‘견제와 균형(8)’, ‘규칙과 집행(9)’, ‘개입(10)’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해법이 모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갈등과 분쟁은 그 지역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매우 복잡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11장에서 평화를 위해 지금껏 들여온 노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꼬집는다. 평화를 위한 해법 또한 전쟁의 근원만큼이나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고, 잘못된 진단을 바탕으로 내린 처방은 더욱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결론에서 우리가 모두 지켜야 할 십계명을 제시한다. 저자는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위대한 영웅이나 강력한 집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평화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엔지니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의 십계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아이디어이자 지침이다. 십계명은 국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우리는 그의 주장을 바탕으로 조금씩 각자의 영역에서 노력하는 엔지니어가 되어 국제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저자가 국제 평화를 위해 독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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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팔을 잃은 비너스입니다
김나윤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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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저자는 왼팔을 비롯해 많은 것을 잃었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상실은 깊은 좌절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모든 상실을 이겨내고 있다. 마치 절대 쓰러지지 않는 오뚝이 같은 모습이다. 그 안타까운 모습에 내가 저자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로 내가 저자의 따뜻한 말로부터 위로를 받고 있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저자이지만, 인생의 깊은 굴곡으로 인해 나보다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어려운 일을 이겨낼 힘이 있다고 말한다. 그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는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 속에 많은 힌트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그녀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내 삶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내 삶은 그야말로 감사한 것투성이다."(25)

 

나는 이것이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기보다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는 힘이 저자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저자는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어야만 했던 그 견딜 수 없는 시간마저도 '하늘이 보태준 시간'(72)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부정적인 기억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남는다고 하지만, 저자는 매순간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저자 주변에는 좋은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이 매우 많다. 나 같아도 저자처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변에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매우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 긍정적인 에너지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다음으로 그녀는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있다.

 

"슬픔과 두려움에 갇히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이 빛나는 나의 두 번째 정체성을 비로소 찾아내 준 뜻 깊은 날이었다."(44)

 

저자도 분명 알고 있었다. 현재의 아픔을 외면하는 선택이 순간의 행복을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가장 어렵지만 바람직한 길을 선택한다. 두려움에 맞서기로 한 것이다. 비참하겠지만, 두렵겠지만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행위는 앞으로 자신이 발전해나갈 방향을 보여줄 수 있다. 숨기고 외면하는 것은 당장의 고통을 피할 수 있게 하겠지만, 그 고통은 언젠가 더 큰 파도로 나를 덮치게 될 것이란 것을 누구나 잘 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욕심이 있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210)

 

저자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 욕심이 나쁜 방향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한다. 저자는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작하고 나면 책임감을 가지고 깊이 있게 공부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 나가야하는지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답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그 욕심이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욕심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멈출 수 없다.

 

저자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동시에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력은 단순히 외모만으로 만들어질 수는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사람은 분명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가장 부러운 점은 저자의 찐친들이다. 결국 사람이 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 겉모습이야 어떻든 여전히 친구 김나윤으로 나를 대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힘이다."(79)

 

나는 그녀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 이 찐친들이라 믿는다. 사고의 순간에도, 사고 이후 겪었던 좌절의 순간에도 그녀의 찐친들은 늘 곁에서 함께 울고 웃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일 수 있었다. 또한 어떤 좌절의 순간이 찾아와도 그녀의 삶은 안정적인 궤도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삶의 안정감은 언제나 곁에 사람들이 함께일 때 마련된다. 따뜻한 대표님과 한결같은 미용실 직원들, 나를 잊지 않아준 고객들 덕분에 나는 그날 다시 한번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90)


저자는 스스로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기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162)

 

같은 것들이다. 나도 이 사실을 깨닫는데 무려 사회생활 20년이 필요했다. 내가 그토록 애쓰며 살아왔던 지난 삶의 대부분은 불필요했던 행동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깨닫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저자는 쉽게 그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동시에 저자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로부터도 쉽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유난히도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친구들을 좋아했다. ... 그들에게는 시야를 함께 넓혀줄 사람이 있었던 거다."(169)

 

저자는 스스로, 또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내가 이 지점에서 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런 깨달음은 사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깨닫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교과서로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기에 어쩌면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누군가 가르쳐줄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이, 그리고 저자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담담하게 주변에 전해주는 사람. 저자는 그런 사람이다.

 

저자는 스스로를 '물음표 살인마(58)'라고 표현한다. 나는 그 표현이 섬뜩하지만 참 좋다고 생각했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질문해야 한다. 그래야 더 올바른 방향을 찾아나설 힘이 생긴다. 저자도 아직 정확한 자기 두 번째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질문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나는 그래서 저자를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싶다. 방화하는 사람에게, 깊은 좌절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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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하는 뇌 - 삶의 에너지를 회복하는 진정한 멈춤의 과학
조지프 제벨리 지음, 고현석 옮김 / 갤리온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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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나만의 글쓰기 멈추지 못하는 뇌 (조지프 제벨리, 갤리온(웅진지식하우스), 2025, 초판 1)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뇌의 작동 원리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휴식이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뇌는 집중할 때 가동되는집행 네트워크와 휴식과 사색할 때 가동되는디폴트 네트워크로 활성화되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집행 네트워크만을 강조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껏 간과해 온 디폴트 네트워크를 연구하고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의 원제인 휴식 상태의 뇌(The Brain at Rest)”는 바로 이 디폴트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상태를 의미한다. 디폴트 네트워크는 휴식과 사색에 최적화된 상태로 진정한 멈춤’, ‘인생 회복을 위한 돌파구’, ‘아무것도 하지 않기’, ‘한발 물러서기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에 중독된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대체로 어떤 상태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우리의 피곤한 뇌(집행 네트워크만 활성화된 뇌)를 설명한다.

 

과로는 점진적으로 정신 건강을 갉아먹는 진행성 질환이다. …… 심지어 과로는 나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뇌를 늙게 한다. …… 과로는 몸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미친다.”(46~47, 과로는 어떻게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과로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면 내 상태와 너무 유사한 증상들이 보여 깜짝 놀랄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과로로 인한 위험성을 지적하고, 어떻게 지친 뇌를 쉬게 해야 하는지 휴식의 방법을 소개한다. 그리고 단순히 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휴식을 바탕으로 뇌의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바로 놀이. 저자는 신경과학적 연구와 실험을 통해 밝혀진 디폴트 네트워크의 효과를 제시하고, 휴식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통념에 저항하면서 앞으로의 인식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뇌 건강을 위한 선언문(295)-

 

저자는 신경과학자로서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주장을 펼친다. 그런데 이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 개인의 경험과 실천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다. 저자는 일에 중독되어 결국 건강을 해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이 주제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장기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재구성해 휴식과 놀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연구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발전해나갈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뇌 건강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방법을 휴식놀이로 나누어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휴식은 마음방황(87)’, ‘나무 끌어안기(114)’, ‘의도적 고독(145)’, ‘(177)’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핵심은 지금껏 우리가 바쁘게 일하는 것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이 휴식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죄책감(84)’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갔다. 일이 최우선이고, 시간을 쪼개 많은 것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휴식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일 수 있다. 마치 담배나 도박에 중독된 사람이 겪는 금단증상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죄책감을 이겨내는 것이 휴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놀이에서는 비디오 게임(217)’, ‘능동적 휴식-운동(237)’, ‘닉센-아무것도 하지 않기(262)’를 제시한다. 특히 그는 모든 놀이를 실천하기보다 자신의 놀이 성격에 맞는 활동을 주로 해 나갈 것을 권장한다. 놀이 활동을 네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 그것에 맞는 활동을 찾아 나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로 무언가를 수집하는 사람(223)’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는 것이 가장 좋은 놀이라 생각했는데, 내 성향에 맞는 것만 실천하기보다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이나 부족해 보이는 놀이를 실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대표적인 것이 운동이다. 운동을 통해 평소 내가 활성화하지 못했던 뇌 영역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내 삶에 더욱 풍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뇌 건강 회복을 통해 우리 삶을 효과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그래서 뇌 건강을 위한 일종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과 휴식의 사회적 통념-

 

근대 이후 우리는 노동이 강조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와 같은 이념만이 아니더라도 노동은 신성하고, 반대로 휴식은 게으름이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도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휴식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건강을 해치며 살아왔다. 나는 그래서 저자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겠지만,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읽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제목 자체도 매우 충격이었지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더욱 생산성을 향상하는 방법이라는 주장에 매우 놀랐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방법이 옳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노동 시간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번 대선에서도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로 다뤄졌지만, 아직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한 주당 4.5일제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더 늘어날 수 있고, 더 많은 노동자가 노동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점은 여러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과감한 도전과 실천만이 남은 상태이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처럼 이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는 실험이 쉽게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보다 치명적인 일의 펜데믹”(35, 1장 괄로는 어떻게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 바쁨에 대한 집착이 애초에 우리가 바쁨을 견뎌낼 능력 자체를 파괴한다는 사실이다.”(78, 2. 일의 뇌과학)

 

저자의 주장을 보면 왜 우리가 적극적으로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 과감하게 게을러져야만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죄책감을 이겨내고 우리 뇌를 디폴트 네트워크상태로 만들기 위해 도전해보자.

 

 

-휴식은 일의 일부(58)-

 

저자는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는 했지만,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 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건강을 지키기 위한 건강상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휴식은 일의 본질적인 일부(58)’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가진 인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한 휴식과 놀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일에 중독된 뇌가 죄책감을 느끼고 어색해할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 이 모든 노력이 어우러진 가장 건강한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냥 평범하게 행동하라.”(306, 나오며. 휴식하는 삶)

 

사회적 통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 삶을 개조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듯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휴식이 일의 일부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당당히 휴식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휴식이 주는 죄책감 따위는 아주 깔끔하게 해소될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평범하게 행동하기 위해 단호한 경계를 세울 것을 주문한다. 우리가 휴식을 요구하는 것은 낙오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존중받아야 할 선택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다양한 신경과학적 실험과 연구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동양 사상이나 문화를 예로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일본 문화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마도 서양에서는 일본 문화가 더욱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어 발음으로 그대로 표기하는 경우는 정확히 어떤 한자를 사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도 있어서 비슷한 우리 개념을 추가 설명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저자가 동양 문화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는 점을 통해 동양 문화권에서 저자의 주장이 더 쉽게, 먼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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