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테리어는 정리입니다 - 2000개의 집을 바꾼 정희숙의 정리 노하우북
정희숙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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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리 전문가라는 직업을 TV에서 처음 보고 '와 저런 것도 외주를 맡긴다고??' 했던 게 몇 년 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청소하고 정리해 주는 일인 줄 알았는데 한참을 보다 알았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 쌓여 있는 물건을 비우고 공간을 다시 숨 쉬게 만드는 일. 그때는 꽤 생경했던 일이었는데 요즘은 이런 니즈도 여기저기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나 역시도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 원래도 정리가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 덕에 버티던 집은 아이가 태어난 후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아이 책, 장난감, 기저귀와 그리고 언제 쓸지 모를 물건들까지. 하나하나 이유 없는 물건은 없지만, 모이면 그 자체로 감당하기 버거운 짐 덩어리가 된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 집이 엉망인 건 당연하다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막상 그 속에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그 당연함이란 말이 크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매일 한가득 쌓인 창고 같은 곳에서 하루를 보내자치면 사실 꽤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책 속 문장이 유독 크게 다가왔다.


가족 모두에게는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아빠는 아빠의 공간, 엄마는 엄마의 공간.


우리 집에서 가장 공간이 없는 건 늘 엄마다. 아빠인 나도 답답한데 그나마 컴퓨터 펼 공간하나 정도는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진짜 한 뼘의 자리도 없을 때가 많다. 어떻게 그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할지 막막하다가 뭔가 '정리'라는 방법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단순한 ‘치우기’가 아니다. 공간의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맞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매일 아이 장난감을 치우면서 그의 이야기가 몸으로 와닿았다. 장난감, 책, 이부자리까지 엉망이 되어버린 거실이란 공간은 이제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렸다. 책을 읽고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이 그 공간에서 중복되는 것, 우리 가족이 손대지 않는 물건을 치워버리는 거였다.


책은 계속 이야기한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은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지만, 정리를 못하는 사람은 과거에 머문다."

사실 그 문장이 좀 꽂히긴 했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결국 과거를 붙들고 사는 셈인데 사실 그 말이 맞았다.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 언젠가 입겠다고 남겨둔 옷, 이제는 필요 없는 서류와 박스들. 언젠가가 과연 오기나 할까. 우리는 오지 않는 그 '언젠가'를 붙잡으며 결국 현재를 버겁게 만든다.


책은 정리를 "선택"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갖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남은 물건을 어떻게 쓸 것이며, 이게 왜 필요한지 묻는 것. 정리란 결국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라고도 설명한다. 나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왜 이걸 붙들고 있는가. 정말 필요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히 '버리지 못하는' 습관 때문인가.

버리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물건이 아니라 감정을 붙드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옷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 시절의 나'를 버릴 수 없어서고, 선물 받은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버리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듯 우리는 많은 물건을 만난다. 사고 버리는 일을 통해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는다." 사람도, 물건도 결국은 지나간다. 남는 건 진짜로 필요한 지금 내 주위에 있는(사실은) 소수뿐이다.


"너무 많은 물건에 둘러싸여 있을 때보다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버리면 가난해질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비우면 남은 게 선명해지고, 그 선명함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잘 안되지만 과연 그러할까를 한번 실험해 볼 양이다. 책의 후반부는 실제로 어떻게 버리고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가이드를 들려준다. 100%는 못하겠지만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한번 버려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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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태도 - 삶이 버겁고 아직 서툰 어른들을 위한
김유영 지음 / 북스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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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매일의 태도>라니. 한방이 시대정신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매일의 태도를 말하는 책이라니 반가웠다. 흔히 아는 간증처럼 성공과 성취를 이야기할 때 거대한 목표나 인생을 바꿀 만한 사건들을 떠올리지만 진짜 삶을 살아내는 이들은 안다. 사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건 그런 순간보다도 매일같이 쌓아 올린 작은 태도와 습관이다. 나는 책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책은 짧은 문단으로 구성된 에세이 형식이라 어렵지 않게 읽힌다.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저자가 강조하는 건 단순하지만 놓치기 쉬운 사실이었다. 삶을 바꾸는 건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의 긍정이라는 것. 염세주의자였던 저자가 긍정주의자로 바뀌었다는 소개를 읽으면서 꽤 시니컬하던 나의 태도도 조금은 긍정적이게 되었다. 사실 모든 게 좋다는 이런 태도에 반응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읽다 문득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밝음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무겁고 갑갑한 세상 속에 이런 작은 밝음 하나쯤 사실 괜찮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저자는 첫 머리에 하수와 고수의 이야기를 한다.

"하수는 세상과 싸우고, 고수는 자신과 싸운다"

우리는 자꾸 남과 비교하고 세상의 탓을 하며 불평하기 바쁘다. 하지만 결국 삶을 결정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를 다스리고, 낮추고, 비울 때 오히려 더 큰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이 꽤 마음에 남았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조금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나의 하루를 떠올렸다. 오늘 하루는 어떤 태도로 살았는가, 작은 불편함 앞에서 괜히 투덜대진 않았는가, 남의 시선에 휘둘리며 스스로를 잃어버리진 않았는가. 책은 거창한 교훈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이런 질문들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자아, 관계, 수용,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뽑아내는 질문들에 하나씩 답하다보면 문득 우리는 어느 길 위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테니까. 자꾸 길을 잃어도 괜찮다. 그때마다 이렇게 다시 찾아가면 되니까.

아마도 이런 게 책의 힘일게다. 저자가 쌓아온 일상의 태도가 독자의 삶 속에서도 또 다른 질문을 일으키는 것.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만 지나치지 않는 책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내 마음가짐에 대해 잠시 멈춰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작은 태도를 되새기게 하는 책.

크게 각 잡지 않아도 읽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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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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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친구 <드래곤볼> 속 손오공과 그의 친구들은 죽기 직전까지까지 그 극한의 상황을 넘기고 난 후에는 그 고비를 넘어선 후에는 소위 한 단계 레벨업하게 된다. 물론 우리 중 다수는 레벨업을 위해 살지는 않는다. 레벨업 따위와 상관없는 이들에게 도전과 불편함은 우리가 피해야만 하는 제 1과제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SNS와 각종 공부를 통해 매일 레벨업을 외치는 이들의 공부가 사실은 우리의 렙업과 반대되는 행위였다면?

책이 던지는 묵직한 변화구는 제법 힘이 있다. 따분함, 배고픔, 죽음. 노동 같은 것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어떠한가?


책의 첫 번째 챕터의 제목은 "아주 힘들어야 한다. 그러나 죽지 않아야 한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챕터의 주제는 따분함, 배고픔, 죽음, 노동같이 할 수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들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불편함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 말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간을 살아 있게 하고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편안함이 아닌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의 삶은 내가 초대한 불편들로 채워져 있고 나는 그 속에서 편안하다. 불편함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 있게 한다."


이 추천사를 펴들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이와 함께 씨름하는 시간 혹은 어떤 과제를 붙들고 끝내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난제를 붙잡고 씨름하던 시간. 그 불편한 순간들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나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 결국 나를 성장하게 했던 건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감당하기 버거운 불편함이었던 것 같다.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내가 피하고만 있는 불편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그 불편을 초대할 용기가 있는가?


전체적으로 불편함에 관한 이야기지만 현대인의 문제가 되어버린 따분함과 외로움에 대한 저자의 통찰도 꽤 깊고 단단하다. 인류는 인터넷을 통해 80억 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연결되었음에도 외로움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차마 제목도 볼 수 없는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니 오히려 외롭지 않으려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저자는 말한다.

"따분함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따분함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따분함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드는 겁니다."


읽던 책을 내려놓고 한참이나 멍하게 있었다. 우리가 멍 때리기라고 부르는 그 시간은 결코 공허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각이 단순해지고 잊고 있던 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우리가 도망치는 따분함 속에 사실은 삶의 깊은 결이 숨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누가 나를 봐달라고 바깥만 바라보며 사는 우리에게 저자는 '내가 나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결국 중요한 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불편을 스스로 선택할 것인가? 아니 굳이 그런 거 없이 지금처럼 살아도 괜찮지 않은가?

어떤 삶이든 본인이 선택할 문제지만 단단해지기 위해 혹은 반대의 경우라도 스마트폰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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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사유의 힘 - 더 나은 삶보다 나다운 삶을 위한 인생문답
임재성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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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 내가 바라는 삶, 원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그것은 진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부러움을 나의 목표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펼치자마자 마주한 몽테뉴의 문장은 오래 묵혀둔 질문처럼 내 마음을 흔들었다. 짧은 한 문장이었지만 오래도록 붙잡아둔 불안을 찌른 듯했다. SNS를 시작하며 나는 언제부턴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과 '남들이 보았을 때 좋아 보이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박수 치는 대로 따라 살아왔던 건 아닐까.


2. 육아를 전업으로 시작하며 감정 조절이 내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은 일임을 배웠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말하고, 나는 듣기만 해야 한다. 사유? 울고 보채기만 하는 아이 앞에서 나는 어떤 사유를 할 수 있을까. 육아라는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정직하다. 아이는 화나면 화난다고 울고, 싫으면 싫다고 징징거린다. 그 앞에서 부모는 흔히 두 가지 선택을 한다. 억누르거나 맞받아치거나.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 더 큰 후회로 돌아온다.


3. "진짜 감정 조절은 억제가 아니라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 몽테뉴의 이야기는 이런 나를 잡아 세운다. 화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왜 그 감정이 생겼는지를 돌아보는 일.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성찰의 과정이 곧 감정의 주인이 되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아이 앞에서 흔들리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순간 뭐랄까 나는 조금 덜 불안해졌다. 억누르지 않고 화를 내지 않고 잠시 멈춰서 나를 바라보는 그 한 호흡. 몽테뉴가 강조했던 자기 관찰의 힘은 이렇게 일상의 작은 틈에서 빛을 발했다.


4. 몽테뉴는 슬픔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타래가 쌓여 <에세>가 되었다. 견딘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대목은 하루를 마치고 짧은 기록을 남기는 나의 습관과 겹쳤다. 글은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나를 다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몽테뉴가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지탱했던 것처럼 나 역시 매일 작은 글쓰기로 나를 다잡는다.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다.


5. 나가아 그의 사유는 죽음에까지 닿는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죽음을 두려움의 끝으로 외면하는 대신 삶을 더 분명하게 붙잡는 계기로 삼는 것. 결국 죽음을 성찰하는 일은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되돌려주는 과정이었다. 정신없이 달려가는 나날 속에서도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더 단단히 살아간다'는 이 역설적인 메시지는 꽤 여운이 길다.


6. 책은 짧은 글과 오늘의 사유로 구성되어 있다. 글도 좋지만 뒤에 붙은 작은 질문들이 나의 상황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이게 했다. 하나씩 나를 톱아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아이 앞에서 나는 어떤 부모인가, 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인가? 답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질문을 품고 사는 일, 그 자체가 사유의 시작임을 느꼈다.


7. <몽테뉴 사유의 힘>은 단순히 철학자의 오래된 글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감정과 욕망, 슬픔과 죽음을 마주하는 나의 일기장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나처럼 육아로 지쳐 있든, 관계에서 갈등하든, 혹은 스스로의 욕망에 길을 잃었든, 이 책은 우리에게 멈추어 서서 묻는다. "그것은 정말 너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냐"고.


책장을 덮고 난 뒤, 나는 조금 덜 초조해졌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욕망을 다시 들여다보며, 죽음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것. 그렇게 매 순간 나를 잃지 않고 살아내는 것. 잘 산다는 건 결국 이 하루가 쌓이는 일이고 깊어진다는 건 이 하루가 모여 삶이 되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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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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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호평 일색의 추천담에 비해 내 소감은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었다.

’이게 뭐야?‘


평생에 한번 겪기도 힘든 납치 사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끝끝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전국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말뚝들이 발생하고(그 말뚝이 내가 알고 있는 그 대가리와 기둥이 있는 그 말뚝인지도 이젠 확실치 않다) 그 말뚝들 앞에 가면 사람들은 울기 시작한다.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도시로. 광화문을 점령한 말뚝들 앞에서 사람들은 운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말뚝을 찾아 주인공을 찾아온다. 어쩌다 납치당했는지도 모를 주인공은 이 모든 상황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몰라도 되는데 일단 받아들이라는 식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장(주인공)을 그렇게 대한다. 갑자기 TF로 발령 내는 본부장, 납치범, 경찰, 뜬금없이 불륜남으로 만들어 버린 직장동료, 마카오에서 도박하다 죽은 친구. 하나같이 똑같다. 이런 이런 일이 있었어. 그냥 받아들여.


그냥 받아들여. 가만히 있어. 아프게도 이 말들은 살면서 우리 주변에 은연히도 숨어있는 말 덩어리들이다. 너만 참으면 돼, 너만 조금 손해 보면 다 괜찮아져 같은 말들도 있다. 이 말들은 어떤 사회적 죽음과도 연결되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의 죽음은 그냥 땅에 떨어진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말뚝들처럼. 재밌는 사실은 그 받아들임 가운데서도 의미를 가지는, 장의 50만 원처럼 누군가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며 그 빚을 갚아가며 세상의 메시지를 거스르는 이들도 있다는 거다. 이 메시지가 변한 말뚝이 그렇게 빛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한참을 생각한 나는 아직도 말뚝들이 뭔지 모르겠다. 계속 생각하다가 어떤 의미를 찾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계속 울까 봐.


서평을 쓸 때 보통은 다른 이들의 글을 찾아보고 글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 글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쓴다. 뭐랄까. 나는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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