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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 채식주의자 - 입맛과 신념 사이에서 써 내려간 비거니즘 지향기
정진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5월
평점 :
10년 전 대학원 조교 시절 신임 교수님 중에 베지테리언(그때는 비건이라는 단어보다 이 단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이 오셨다. 물론 교수님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분이셨지만 문제는 회식자리를 잡아야 할 때였다. 지방의 대학 앞에 베지테리언 음식을 파는 곳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돼지를 먹을지 소를 먹을지만 결정하면 되었는데 이젠 고기가 적게 나오는 식당을 찾으려니 항상 회식은 한정식집이었다. 개중에서도 고기반찬은 늘 우리 대학원생의 몫이었다.
불만은 이내 터져 나왔다. 그놈의 베지테리언, 적당히 해라, 왜 이 많은 사람이 한 명에 맞추어야 하나 등등.. 태어나 처음 보는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우리는 몰랐다. 분명히 교수님은 이 논란을 인지하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당신의 소신을 굽히지는 않으셨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나 하다가 이내 궁금해졌다. 무엇 때문에?
10년의 시간을 흐르는 동안 베지테리언 지금은 비건이라 부르는 이들이 주변에 하나씩 늘어갔다. 사회 분위기도 점점 그쪽으로 흘러 이제 서울에서는 비건 음식만 파는 식당, 식당에서도 비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건들은 스스로를 비건이라 소개하기 어려워한다. 아마 비건들이 많아진 만큼, 그들을 별나다 인지하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를 보고 '문어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강제로 가입하게 되었다. 책에도 이에 대한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나도 육지동물들이나 정서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지, 해양 동물들도 감정을 가질 거라곤 차마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 문어가 보여주는 행동, 문어가 인간과 맺는 커뮤니케이션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당연히 문어를 바닷속에서 꺼내 오래도록 함께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야 할 것 같은 이야기는 인간이 그 문어의 생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는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인간은 그저 자연을 바라본다. 그들과 최선을 대해 교감하고 그리고 일어나야 할 일들이 그대로 일어나게 둔다. 생명의 순환. 여기에 자연의 신비가 있다.
익히 알다시피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는 누구나 지적한다. 동물권에 대한 큰 문제의식이 없는 이들도 그 잔인함에 몸서리치지만 이는 사실 그때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마트에서 가장 싼 고기를 찾는다. '이게 몸에 더 좋다' 정도가 가격 이외의 기준이지 그 고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지에 대해 생각하기엔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동물권에 대한 논의들이 법으로 정해지기 시작했으며, 소위 MZ를 중심으로 길고양이부터 시작해 우리 주위의 동물들을 돌보자는 캠페인들은 꽤 의미 있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 작은 캠페인의 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르겠다. 왜 비건이 되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동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왜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깊이 있고도 진지하게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 또한 비건의 삶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다만 예전에 육식 위주의 식단에서 한두 끼라도 고기를 먹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고기를 택할 때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 마크가 있는지 확인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아닌 고기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비싸더라도 가능한 인증을 받은 고기를 고른다. 비건식의 냉동식품을 선택한다. 노브랜드 등 싼 제품이 널려있지만 그럼에도 비싼 비건식을 고른다. 사실 맛에도 큰 문제는 없다.
이렇게 우리 한 발자국만이라도 공장식 축산업을 배척하자. 동물들에게 이 땅을 누릴 권리를 되돌려 주자. 생명의 순환의 고리 한쪽을 인간이 임의로 훼손하고 파괴하지 말자.
쉽진 않겠지만 또 그렇게 어려운 길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손잡고 함께 걷는 그 한 걸음은 꽤 크다. 이 한 걸음의 기적을 우리 함께 경험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