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브랜드를 마케팅하라 - ‘존재감’ 있게 일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법
이소라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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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싱글즈>를 보지 않아 저자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저 표지의 그의 커리어가 멋져 보였다. UC 버클리는 여전히 내 워너비(지금도 만학도로 등록 가능할까)고 그가 경험한 회사들의 이름들이 그저 부러웠다. 지금 내 관심사가 상당 부분 브랜드와 마케팅이라 궁금하기도 했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지금 나의 고민을 적확하게 짚어낸다. "한국은 아직도 나대는 사람을 싫어하고 겸손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격하게 동의하며 다시 내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나를 알릴 수 있을까. 사실 꽤 오랜 시간 그 질문 앞에 서 있던 내게 그의 조언은 꽤 큰 힘이 되었다.



1. 커리어는 결국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넷플릭스의 CEO 헤이스팅스의 말이다. "최고의 회사란 핑퐁 테이블이나 공짜 커피가 아니라, A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라고. 동의한다. 업무의 이슈 대부분은 업무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로부터 기인한다. 업무의 이슈는 어려울수록 함께 해결해 가는 맛이라는 게 있다. 그런데 사람 자체가 답이 없으면 그냥 답이 없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고 사실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저 나부터 A 플레이어인지 돌아봐야 할뿐더러, 이런 장밋빛 비전 이전에 야근과 밀린 보고서 그리고 무수한 실수 속에서 나는 서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말한다. 지금 경험한 이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축적되어 역량이 될 거라고. 성장은 어디서든 가능하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그 시간들로 부터 좋은 것은 흡수하고 좋지 않은 것은 걸러내는 능력을 키우면서 말이다.

그는 "내가 잘하는 것과 시장이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즐거운 것”이 겹치는 지점이 진짜 성공과 만족을 누릴 거라 말한다. 이 세 가지를 아는 게 쉽지는 않지만 어디 있는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엉뚱한 데서 나를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즐거운 것 그리고 그것을 세상이 원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을 업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취미의 영역에 던져둘 것인지는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다.

결국 브랜드란 직함이나 경력보다는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경험의 총합에서 출발한다. 멋진 브랜드? 본인 하기 나름이다.



2. 이타적인 태도는 결국 가장 현명한 전략이다


저자도 말한다. 옆에서 입만 털면서 실적을 다 가져가는 밉상들은 어디에나 있고 본인도 너무너무 싫어한다고. 그리고 조금 더 긴 시간을 돌아보자면 결국 가장 생산성이 뛰어난 사람은 저런 얌체가 아니라 기버(Giver)라고 단언한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신뢰를 얻고 존경을 쌓는 사람들. 내 주변의 진짜 일잘러들 이 몇 떠올랐다. 그들의 입은 무겁지만 누군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제일 먼저 손을 내미는 이들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자신의 노트북으로 돌아간다. 함께 하고 싶은 사람, 필요한 사람.

사내정치에 대한 첨언도 흥미로웠는데 개인적으로는 사내정치에 굉장히 부정적이지만, 그는 이 역시도 팀과 가치를 지키기 위한 어떤 프로세스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부분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았다.



3.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


그는 실패를 경험하고 이를 통해 배우는 사람은 항상 안전한 선택만 하는 사람보다 더 큰 성장을 이룰 거라 말한다. 사실 누구나 실패가 싫다. 나도 그렇다. 완벽하고 싶다는 욕망, 뒷담화에 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복잡적으로 자리해 실패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을 억지로 포장하려 한다. 어떤 경우는 그것은 내가 몰랐다며 비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진짜 배우는 사람이라 말한다. 아픔을 견디는 법을 알고, 다시 일어서는 힘을 아는 사람. 그래서 누군가 같은 실수로 넘어졌을 때 가만히 그의 곁에서 함께 비를 맞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 실패를 거치며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사랑하는지도 조금씩 명확하게 알게 된다.



사실 나는 저자에게서 '나를 알리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남은 건 ‘나를 이해하는 법’이다.

자신을 브랜드로 세운다는 건 타인을 이기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나를 정확히 아는 일이다.

경험을 흡수하고, 관계를 쌓고, 나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어쩌면 결국 브랜딩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주 조금 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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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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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평균의 삶으로 향한 마음의 기록


문형배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대통령 탄핵 선고 때였다. 그때는 단지 헌법재판관 중 한 명으로만 기억했는데 나중에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에서 그 이름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가 헌법재판관 임명될 때 이야기한 한 문장 "평균의 삶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한다"에 무언가에 맞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이 책은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사람의 기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한 판사의 일기이자, 그가 남긴 1,500여 편의 블로그 중에서 120편을 고른 책이다.


처음에는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듯한 간지러움이 스민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간지러움은 존경으로 바뀐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 유의점'이라며 그는 후배들을 향해 부탁한. "업무에 정통한 것이 최고의 친절이다.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고 일주일 이내에 형성된다. 꾸준한 독서가 필요하다.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롤 모델을 찾는다. 시간관리를 철저히 한다." 단단하다. 이 말 말고는 그를 표현할 말이 잘 없다.

그가 말하는 평균은 무난함의 동의어가 아니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에 진심으로 충실한 삶을 뜻한다. 지리산 자락의 나무, 산책길의 바람, 등산 중 만난 주목나무 한 그루까지 소중히 하는 그의 글에는 생의 결이 스며 있다.

그가 말하는 성공보다 버티는 삶에도 눈길이 간다.

"무승부도 있으므로 버틸 필요가 있고, 그러면 훗날을 기약할 수도 있다."

이 문장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의 위로를 건넨다.



존엄과 호의, 그리고 사람


문형배 재판관의 세계는 냉철한 법리 위에 서 있으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는다. 그가 내린 판결은 단호하지만 따뜻하다.

"자살자살자살자살…. 이렇게 열 번 하면 듣는 사람에게는 ‘살자’로 들립니다."

법정에서 그는 피고인에게 직접 그렇게 말하게 했다. 스스로를 벌하던 이의 입에서 살자라는 단어가 되돌아오는 순간 그가 말한 ‘호의’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당신이 떠나고 나면 당신을 붙잡지 못한 미안함에 며칠을 울어야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보고 싶어 또 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자살은 당신이 떠난 후 남은 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상처입니다."

화가 나면 화를 이기기 힘드니, 화가 나기 전에 화를 늦추라는 그의 조언은 재판정의 당사자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그렇다고 그가 화가 없는 사람도 아니다. 판결 중 자신이 화를 내면 법복의 소매를 당겨달라던 그의 부탁에는 타인을 위해 스스로를 관리하는 어른의 얼굴이 겹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종합하면 존엄과 사랑, 존경이라는 세 단어로 수렴된다.

그가 김장하 선생이 보여준 선의를 받았고 그것을 사회로 돌려주려 평생을 노력했다. 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한 사람의 인생, 나아가 어쩌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는 자신의 판결과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을 향한 공부

그는 판사란 타인의 인생의 극적인 순간에 관여하는 사람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는 그 결핍을 독서로 채웠다. 두 번째 챕터에서는 그가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가 문학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넘겨보는 것도 책의 좋은 포인트다.

그의 독서는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기 위한 사유의 궤적이다.

문학은 보편적 진실을, 재판은 구체적 진실을 추구한다며 둘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그의 판결에는 그 독서가 남긴 흔적이 배어 있다. 주홍 글자, 레미제라블 등에서 보이는 사회적 약자에를 향한 시선을 그는 이 나라의 재판정에 가져온다. 엄격한 법의 잣대와 함께 그는 사회적 약자의 범죄에게는 상담과 치료의 기회를 주었다. 그들의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다시 범죄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고백한다.

"주위에 불행한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아마 블로그에 적힌 에세이들을 읽은 것 같은데 깊이 있는 책을 읽은 것 마냥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건 이 땅의 어른을 향한 존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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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마인드셋 - 나에게 최적화된 부의 공식을 완성하라!
루이스 하우즈 지음, 윤영호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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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야기'라기엔 이상하게 따뜻하고 '자기계발서'라기엔 꽤 솔직하다.

세계적 팟캐스트 <더 스쿨 오브 그레이트니스>의 진행자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그레이트 마인드셋》의 저자이며,

부자가 되고 싶은 모든 이의 '머니 멘토'로 불리는 루이스 하우즈의 책이다.(사실 잘 모르는 사람;;)


돈에 관한 책이 참 많지만 이 책 또한 소개 리스트에 넣어둘 정도로 인사이트가 넘친다.

뭐랄까. 돈을 잘 버는 법보다 먼저 돈과 나 사이의 오래된 오해를 풀어주는 책이다. 그가 다루는 건 숫자가 아니라 관계다.

"당신은 돈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 앞에서 예전에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겠지만 지금은 좀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돈을 대하는 태도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 가족의 분위기, 혹은 친구의 질투 같은 사소한 경험이 평생의 돈 이야기를 만든다고.

그래서 이 책은 돈을 버는 기술서라기보다는 내 안의 돈 스토리를 다시 쓰는 안내서에 가깝다.

(이런 거 처음 써봐서 좀 어색하긴 했다. 아 물론 직접 썼다는 건 아니고)


1. 나의 머니 스토리를 들여다보기


돈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대부분 누군가의 문장에서 만들어졌다.

돈은 더럽다, 돈은 인간을 망친다, 나는 돈에 약하다 같은 것들.

이 책은 그런 서사를 하나씩 짚어가며 묻는다.

"그건 정말 당신의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의 말입니까?"


저자는 머니 스토리와 머니 스타일을 함께 점검하라고 권한다.

감독관, 에너자이저, 수호자, 분석가.

이 네 가지 스타일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왜 늘 비슷한 패턴의 소비와 후회를 반복하는지, 어떤 이는 왜 돈 앞에서는 유독 불안해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꽤 무서운 결론이긴 한데 결국 돈을 이해한다는 건 나를 이해하는 일과 같다.

돈은 언제나 나를 닮아 있으니까.


2. 머니 마인드셋을 재설정하기


이 책이 흥미로운 건, 단순한 긍정 마인드의 주문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돈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끌어당기는 사람이 돼라."

어쩌면 흔하게 들어봤을지도 모를 이 말의 중심에는 어떤 사명이 있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방향이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가치와 진심이 모여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순환의 에너지.

그는 돈을 버는 일을 자신의 사명을 현실화하는 일로 정의한다.

삶의 비전이 분명한 사람은 더 쉽게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돈이 돌고 돈다는 이야기가 그냥 하는 이야기로 들렸는데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3. 더 많은 돈을 맞이할 준비 : 일곱 가지 머니 습관


진짜 변화는 결국 일상의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저자는 이 단계를 "마음의 머니 트레이닝"이라 부른다.

그는 우리에게 일곱 가지 실천적 습관을 제시한다.


1) 마인드셋 습관(The Mindset Habit)

베풂과 관대함이 선순환을 만든다.

더 주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이 받는다.

돈은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열린 손에서 자란다.


2) 지도 그리기 습관(The Mapping Habit)

삶의 청사진을 세우고 하루 단위로 실행하라.

자금의 흐름은 곧 인생의 방향이다.

돈의 지도를 그리는 일은 결국 ‘나의 길’을 설계하는 일이다.


3) 수익화 습관(The Monetizing Habit)

자기 가치의 사다리를 오르라.

자신의 일과 재능이 어떤 가치를 만드는지 명확히 인식할 때,

그 가치는 자연스럽게 수익으로 이어진다.


4) 관계 맺기 습관(The Mastermind Habit)

좋은 멘토와 동료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혼자 성장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연결은 곧 확장이다.


5) 끌어당기기 습관(The Magnetic Habit)

타인이 당신의 비전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게 하라.

좋은 에너지는 언제나 주변을 움직인다.

자기 확신은 결국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6) 유연성 기르기 습관(The Mobility Habit)

모든 걸 잘하려 하지 말고, 강점에 집중하라.

부족한 부분은 위임하고, 흐름에 몸을 맡길 줄 아는 것이 성장의 기술이다.


7) 숙달 습관(The Mastery Habit)

평생 학습은 재정적 평안의 핵심이다.

지속적으로 배우는 사람은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성장은 결국 내면의 복리다.


그는 "부란, 더 많은 돈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마음의 질서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난 늘 돈에 대해 조금은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다.

이전에는 부정적의 의미로 돈을 대했다면 순환이라는 단어가 꽤 깊이 꽂혔다.


돈은 늘 우리 안의 마음을 비춘다.

불안한 사람에게는 도망치고 여유로운 사람에게는 다가온다.


그는 말한다.

돈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돈도 당신을 아끼지 않는다고.

돈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우리는 결국 자신을 대하는 법을 배운다.


별 기대 없이 펼쳤고, 읽으면서도 돈=욕망이라는 공식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는데

아주 조금은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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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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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대구에 갇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동대구역에서 KTX에 오르자 벌레보던 눈으로 나를 보고 창가 쪽 자리로 바짝 앉던 사람, 텅 빈 16차선 달구벌 대로에 오직 앰뷸런스만 다니던 풍경, 매일 구호물품을 실어 나르며 매일 코로나 검사를 받던 동료들.. 생각해 보면 그 거짓말 같던 시간을 지나 오늘을 살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어떤 형태의 격리 안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표정을 읽는 일에 서툴고, 누군가의 말보다 스크린 속 알고리즘에 더 반응하며, 관계가 아니라 연결을 관리하는 시대.

이 책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그런 우리를 자꾸 떠올렸다.


주인공 우식은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다. 가전 수리센터에서 일하고, 반년에 한 번 치아 스케일링을 받으며, 공과금을 제때 내는 걸 목표로 삼는 생활. 그런 그의 세상에 파라노이드 바이러스가 찾아온다. 외부 접촉이 잦은 업무인 그는 그로 인해 세 번의 자가 격리를 당한다(?) 세 번째 자가 격리 중 문득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진 그는 남들의 브이로그를 찾아보게 되고 '휴먼북'이라는 사람의 생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격리 전문가'라는 희한한 타이틀을 단 조기준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조기준은 1983년에 살던 소년이다. 조기준이 살던 동네에 갑자기 전쟁의 소문이 돌고 이 소년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이유로 목에 밧줄이 묶인 채 벽장 속에 갇혀 10년을 보냈다. 그의 곁에는 안나라는 이름의 (여배우였다고도 하고 불쌍한 여자라고도 사람들이 수군대는) 여자가 함께 있는데 소년에게 그녀는 세상의 어떤 인물보다 빛나는 존재다. 소년은 안나가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기를 원하지만 그녀는 죽음과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기록을 보며 우식은 이 오래된 기록 속 인물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이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소설은 현재의 우식과 과거의 소년 조기준을 교차시키며, 진짜 감염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1983년의 전쟁 바이러스나 오늘의 파라노이드 바이러스는 실제 하는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어떤 이유로 인간 사이에 퍼지는 의심과 낙인, 그리고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감염자로 규정하고 그를 배제하고 벽장 속에 가두는 것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길이다. 조기준의 10년, 소년으로서의 전부였던 시간은 서로를 믿지 못한 세월이고 우식의 세 번의 격리는 그 불신의 시대를 언제고 반복적으로 체험하는 우리 시대의 초상이다.


또 마태공이라는 인물이 있다. 우식과 함께 '디지털 세탁소'를 운영하던 선배. 온라인상의 흔적을 지워주는 일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과 트럭을 몰고 다니며 '사과합니다'를 외친다. 이 뜬금없는 사과 퍼포먼스가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을 실어 나른다. 호기심이 저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한다. 대체 무얼 사과하는가 당신이 사과를 받겠다는 건 아닌가, 아니면 당신은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말하는 사이비 종교인건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이 황당한 행동의 의도를 우식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딸과 그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죄책감, 자신도 미처 몰랐던 악함을 딸에게 물려주었다는 뿌리 깊은 죄의식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고. 하지만 어두운 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행동을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간주했고 결국 그를 더 깊은 벽장에 가두어 버렸다.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 저주는 타인과의 단절이며 그 단절을 가져오는 우리 안의 두려움이다.

나아가 타인과 연결될 수 없다는 감각, 그렇게 나 자신마저 신뢰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될 때 이 저주는 깊어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을 믿고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기 시작할 때 어쩌면 이 저주는 작은 축복의 씨앗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좀 이상한 소설이다. 두 번을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이야기를 읽고, 응답하고, 기억하길 원한다. 그리고 이 연결의 시도가 계속되는 한 우리가 겪고 있는 이 격리는 완전한 저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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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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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에게서 어느 날 "네게 고모가 있었다는'"말,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그날부터 주연은 줄곧 고모의 이야기가 궁금했지만,

나만 가만히 있으면 그냥 지나갈 일인지 스스로 검열하며, 화목한 분위기에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몇 해를 보낸다.

어떤 여자의 이름은 그렇게 가족의 금기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주연은 그 이름을 불러내기로 한다.


<양양>은 그런 문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책이다. 저자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의 흔적을 따라간다. 가족 안에서 금기시되던 이름을 기어이 다시 불러내며, 그녀의 죽음이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구조적 침묵 속에서 가만히 묻혀 있음을 파헤친다.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그에 앞서서 우리 가족의 분위기가 좋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됐을까... 할아버지가 일을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지"라는 아버지의 고백은 한 세대의 남성이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서야 자신의 가부장적 유산을 되돌아보며 후회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파헤쳐 나온 고모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버지는 비로소 가정의 질서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온 폭력을 마주한다. 딸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존재를 부정당한 그 무덤 앞에서 어쩌면 똑같이 부정당할 뻔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양씨 가족의 비밀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알고도 외면해온 여성들의 역사다. 저자는 고모의 죽음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해온 질문 '왜 나는 집회에서 성평등을 외치면서 집 안에서는 침묵했을까?'를 마주한다. 이건 단순한 자책이 아니라 '구호를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옳다. 가족의 구조를 바꾸는 일은 광화문에서 외치는 거창한 세상의 혁명보다 어렵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불평등을 의심하는 일, 그 안에서도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또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일. 이 책은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통과하며 비로소 묻어둔 과거와 현재의 우리가 마주하는 대화의 자리를 회복시킨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불편함을 견디는 데 있다.

치밀하게 파헤치는 고모와 조카,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서로 교차하며 한 여성의 발화가 어떻게 가족 서사의 균열을 만든 뒤 다시 치유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드러나고, 수치로 덮여 있던 죽음이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기억으로 바뀔 때 비로소 화해가 시작된다. 이 화해는 세대와 세대 사이에서, 여성과 남성, 딸과 아버지 사이에서 조금씩 번져간다.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숨겨졌던 존재들은 우리곁에 다시 그 모양을 비추고 이 기억은 우리 각자가 덧붙일 수 있는 이야기의 자리가 된다.

그렇게 다시 가족은 가족이 된다.


책의 에필로그에, 주연은 양씨 가문의 여성들을 불러낸다.


"1932년 태어난 할머니 정삼례는 첫째로 딸인 고모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들인 아빠를 낳을 때까지 죄인처럼 숨죽여 지냈다.

1959년 태어난 엄마 최혜선은 공부를 잘해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부부 교사였지만, 퇴근 후에 홀로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1975년 세상을 떠난 고모 양지영은 남자친구 집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가족 안에서 지워져야 했다.

1988년생인 나는 결혼을 할 때, 아이를 가질까 고민할 때 행복만큼이나 잃게 될 것들을 떠올렸다.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이 내 이름을 뺏어가지 않을지 두려운 마음이었다.

각기 다른 네 사람의 삶이지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고모, 그리고 사라졌던 여성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나는 가족 안에서부터 기꺼이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로부터 '터져 버린' 미래를 상상하고 싶었다.”


나의 고모, 나의 엄마, 나의 할머니. 그들의 삶은 어땠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리고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처럼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하게 털어놓은 그 그 터져버린 세상의 이야기를 나도 들어보고 싶었다.


책은 그 잔해 속에서 다시 피어난 이야기다.

불편함을 견디며 말하기 시작한 사람의 용기, 그 이야기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제 우리도 가만히, 그 이름을 불러볼 수 있기를.


* 다큐멘터리로 먼저 나온 것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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