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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망 - 미니멀리즘 탐구
카일 차이카 지음, 박성혜 옮김 / 필로우 / 2023년 5월
평점 :
어려운 책이다. 최근 미니멀리즘에 대한 말랑말랑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이 책은 별 삽화 없이 글씨로만 주석 빼고 317페이지, 주석만 40여 페이지에 달한다. 책의 첫 문장에서 선언 하듯이 저자는 여느 책에서 언급하는 한 달 동안 쓰지 않는 물건은 버려라, 버릴 것을 정하고 새 물건을 사라, 할인을 조심하라 따위의 미니멀리즘 설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의 근원을 파악하는데서 출발해서 미니멀리즘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의도,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람과 문화에서 나타나는 삶의 태도를 톱아보고 나아가 우리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물질적 한계를 딛고 이 땅에서 살아갈 새로운 방법에 대한 보고서다. 인류는 산업사회를 기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소비하려고만 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구는 그 맥시멀리즘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괌에 들이닥친 태풍이 괌의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고 말하고 있고,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다. 기후 위기와 맥시멀리즘 또한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줄임, 비움, 침묵, 그늘 네 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책은 그 목차 마저 미니멀하다.
1. 줄임 : 줄이고자 하는 이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옷장이나 방을 잘 정리하느냐가 아니다. 줄여야 하는 이유, 가지지 않은 삶을 선택한 이들의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어떻게 현대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가?’ 실존적 질문 앞에서, 그들은 삶의 원칙을 찾으려 한다. 그것의 시작점이 줄임이다.
2. 비움 : 두 번째 챕터에서 저자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꽤 상세하게 설명한다. 언제나 가득했던 미술과 건축, 음악들이 어떻게 가벼워지고 덜어냄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현대화 된 예술에 미니멀리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저자는 들려주는데 안타까운 건 상품화를 거부하며 급진적으로 이룩한 미니멀리즘이 오늘날에는 되려 상품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3. 침묵 :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의 부재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이를 추구하는 이들은 세상의 소리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이들이다. 침묵은 창조적이고 영적인 사고의 근원이 되는데, 이러한 침묵을 경험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의 깊이에 대해서도 저자의 연구는 계속된다. (한국의 강원도 홍천에 이런 자발적 침묵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책에 안내되어 있는데 사실 한국에는 이런 곳이 꽤 많다;)
4. 그늘 : 마지막 챕터에서 저자는 일본으로 향한다. 아마도 그는 서양문명을 빛으로 그 반대의 그늘을 동양의 오리엔탈리즘으로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일본의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 캡슐호텔 등에서 발견한 미니멀리즘의 뿌리를 동양 불교에서 찾아 교토까지 흘러들어가는데, 사실 동양의 불교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물론 저자가 단순하다는 건 아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동양철학 특히 불교철학이 비움을 강조하는 건 맞지만 여느 철학이 그렇듯 이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조금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미니멀리즘에 관한 이야기는 유효하고 의미 있다. 저자는 강조한다. "(미니멀리즘은) 올바른 것을 소비하자는 이야기도, 잘못된 것을 내다 버리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몰입하기 위한 시도로서 가장 깊숙한 믿음에 도전하자는 이야기다."
그는 자기 계발식의 한없이 가벼운 미니멀리즘에 대해서도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고.
미니멀리즘에 대해 보다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