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고요를 만나다 - 차(茶) 명상과 치유
정광주 지음, 임재율 사진 / 학지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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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관련된 말 중에 '다반사'라는 게 있어요..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이란 뜻의 이 말은 늘 있어와 별다를 게 없는 일을 의미하지요.. 이 책은 차 명상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책을 읽고나니 명상이란 것이 '다반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상에서 차를 마시며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차 명상인데,, 이 단순한 행위에 놀라운 치유의 힘이 깃들여 있다고 합니다..

 

다기를 준비하고 찻상 앞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 시간만이 명상이 아니라,,

깨어있는 매 순간이 명상이 되면,, 즉 명상이 다반사가 되면 내 삶이 참 편안하고 평온해지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10여 년동안 명상을 해온 저자가 '차 명상을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도록 에세이식으로 편안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듯,,

옛 선사들이 말하기를 차와 명상은 하나입니다.. (다선일여)

 

차를 마시며 지금 이 순간 일어나면 마음을 바라보는 일,,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아주 단순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이것이 차 명상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계속해서 명상을 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일정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하네요..

 

사람들은 과거에 형성된 사고의 틀로 현재를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틀은 더욱 확고하고 강해지며,, 심지어 특정사고 패턴은 특정한 질병을 유발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말에 깊은 공감이 듭니다..

 

하지만 그저 마음을 바라본다는 이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저도 명상을 해본다고 시도는 해보지만,, 정말 이것이 말처럼 단순하고 쉽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차를 통해 느껴지는 마음을 그저 바라볼 뿐, 특정한 생각이나 느낌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 설명이 막상 실천하기는 정말이지 너무나 어렵습니다..  

 

차를 음료로만 국한하지 말고 여러 차가 가지고 있는 품성을 섬세하게 느껴보라는 권유도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마셔본 적은 없지만 곡우전차에는 '젖비린내가 미처 가시지 않은 연두빛 어린 찻잎이 이끄는 세계'가 녹아있다고 하네요.. 꽃차를 마시면서는 이런 명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서 '늘 피어나는 수많은 꽃송이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명상이 그것입니다..

보이차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투명한 다신이 일렁이는 저 홍갈색 깊은 바다를 천천히 마시면'이라는 구절이 아름답게 와닿습니다..

홍차에는 밝고 발랄한 기운이 녹아있다는 설명도 눈에 띕니다..

 

잠시 후 잠자리에 들텐데,, 그때는 와선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잠자리에서 즐기는 명상인 와선에서도 호흡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며,, '3자의 관점에서 어떠한 생각이나 감정에 빠지지 않고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자애명상도 시도해볼만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과 몸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길.

 

이처럼 자애명상의 첫번째 대상은 자신입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생명이 마음과 몸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하는 식으로 축복의 대상을 자신에게서 타인,, 나아가 세상의 모든 생명으로 넓혀갑니다..

 

늘 허겁지겁 커피만 들이켰는데,, 티백 녹차라도 준비해 차 명상을 시도해보아야겠어요.. 

 

차잎 하나에는  자연과 사람이 빚은 수많은 인연이 담겨 있습니다.. 차를 마시며 이런 감사의 마음으로 명상을 해나가다보면 없던 병도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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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오늘 말하기 어떻게 해! 맛있는 글쓰기 11
정설아 지음, 이광혁 그림 / 파란정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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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년이 될 때마다 유라는 새 친구들과 새 선생님과 새 교실을 생각하며 숨이 막히는 기분에 휩싸입니다.. 그런데 아빠가 선물로 준 거울을 주며 이렇게 말해요.  

"이건 자신감을 주는 요술 거울이란다! 새 친구들을 잘 만날 수 있게 도와줄 거야!"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새 교실에서 고개르 숙인 채 앉아만 있던 유라는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가 훌쩍거립니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 손거울이 꿈틀거리고,, 거울 속에서 몽글몽글하고 하얀 유령이 쓱 떠오릅니다.. 

이 유령은 거울유라입니다.. 거울 속에 사는 유라의 또 다른 너..  

유라가 온갖 난처한 상황(말을 잘 못해 일어나는 일들)에 처할 때마다 거울유라가 유라를 도와줍니다.. 거울유라는 말하기에 대해 유라에게 가르치는데,, 이 책이 끝날 때쯤 유라는 전혀 다른 아이가 되어 있어요.. 

그 애는 말하기를 "난 이제 유라거울 없이도 말할 수 있어." 하고 외칩니다.. 

이 책의 구성은 유라가 처한 상황,, 즉 말하기로 인해 벌어지는 고민과 주눅듬과 갈등하는 마음 등등을 이야기 식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 즉 인사하기, 질문하기, 칭찬하기, 자기소개하기, 전화로 말하기, 안내하기, 제안하기, 거절하기, 느낌 말하기, 격려하기, 주장하기, 추측하기, 물어보기와 같은 말하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일반론적인 설명이 이어집니다.. 

그 다음에 위인들의 사례가 소개됩니다.. 대화나 연설과 관련된 유명인의 일화가 소개되는데,, 우리 선조들의 일화와 서양인의 일화가 아무런 기준없이 섞여 있어요.. 그런데 이 일화가 아쉽습니다.. 소개하고 있는 서양인들 대개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미국의 사업가들, 미국의 방송인,, 미국의 인권운동가, 미국의 영화감독 등입니다..  

왜 이렇게 한 나라의 인물들에서 사례를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찮아도 서구지향적인 사회분위기에 젖어있는 아이들에게 서구하면 미국만을 떠올리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아이러니하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화에서 '미국 사대주의' 문제를 다루고 있네요..)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역사적 인물을 가려뽑아 소개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쉽움이 납습니다.. 

말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읽다보니,,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른 테면 험담을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친구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다른 이야기로 옮겨가는 것이 좋아요,, 하고 조언하며  

자신감이 없는 친구에게는 난 00을 싫어하는데(혹은 못 하는데) 넌 잘 하더라, 하는 식으로 자신을 낮추며 물어보면 자신감이 없어 말하기를 꺼려하는 친구도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부분을 예로 들어봅시다.. 

하루하루 스트레스 받으며 사는 어른들은 그 생활의 팍팍함만큼이나 말이 건조하고 거칠고 무의미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인데,, 이런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과연 이처럼 배려심있고,, 조신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화를 이끌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랄까,, 뭐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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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멍강옵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어멍 강옵서 감동이 있는 그림책 1
박지훈 글.그림 / 걸음동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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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글만 빼어나서도 책의 매력이 떨어지고,, 반대로 그림만 좋아도 책의 매력이 떨어진다. 글과 그림은 서로를 도와 시너지를 일으키며 책의 완성도를 높여나가야 한다..  

좋은 그림은 결코 텍스트를 그대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건 독자의 상상력을 죽이는 일이고,, 텍스트와 함께 가되 상상력의 여지를 남겨두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그림책을 대할 때 책의 호오를 가르는 내 판단 기준이다.  

그런데 <어멍 강옵서>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한다.. 즉 그림이 텍스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첫장을 열면 제목 아래에 은정이가 눈을 감고 두 손의 모은 채 기도하는 그림이 나온다.. 이 아이의 눈매에 성격이 살아있고,, 오늘도 엄마가 무사히 물질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이 살아 있다.. 그래서 본문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은정이가 어떤 성격의 아이인지 다 알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준다.. 

책은 제주도의 방언을 섞어가며 서사가 진행되는데,,  

어멍(엄마),, 볕이 과랑 과랑 (햇볕이 쨍쨍),, 재게(빨리) 같은 예가 그것이다.. 

(참고로 재게는 내륙 사투리에서도 빨리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아,, 꼭 제주도 방언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쉬운 점은 아이들이 방언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을 때 제주도 방언을 무척 재미있어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보다 풍부한 보다 다양한 방언을 사용해주었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는 책읽기가 되었을 것 같다. 

책의 내용은 은정이가 물질하러간 엄마가 걱정되어 아이들 틈에 섞여서도 놀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은정이는 엄마를 위해 기도를 하고,, 꽃을 준비해 엄마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노을 진 바닷가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앞서 그림에 대해 언급했던,, 이 책의 그림체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지루한 느낌이 없다.. 이 책은 글보다 그림이 훨씬 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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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더가 우는 밤 - 제1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선자은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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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저자의 약력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반 넘어 읽을 때까지 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 소설의 작가가 아주 어린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었다. ( 대략 20대 초반의 여성 작가가 쓴 글일 거라고 짐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또 주인공 여자 아이의 나이가 17살이다 보니 은연 중에 그런 착각을 하게 되었나보다.  나중에서야 책 뒷부분에 실려있는 작가의 수상소감을 읽다가, 작가의 나이가 서른이라고 언급되어 있는 걸 보고 새삼 깜짝 놀랐다.

 

나의 이런 착각과 오해는 그만큼 이 작품의 톤이 '젊다(어리다)'라는 칭찬이 될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이 무척이나 '쿨'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조금 미안하게도 나는 칭찬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싶다.

 

내 경우는 이 소설을 읽어내기가 무척 어려웠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은조에게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은조의 성격과 은조가 갖고 있는 그 '쿨'한 분위기가 내게는 억지스럽게 여겨져 좀처럼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주인공이 착하고 선할 필요는 결코 없다. 악당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악당에게도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을 때 독자는 그 이야기에 거부감없이 빠져들어 주인공의 삶을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읽어나간다.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밝히기를 이 이야기에는 '나처럼 싸가지 별로 없는 애도 하나 등장'한다고 말했다. 물론 여기서 말한 '나처럼 싸가지 별로 없는 애'는 은조를 이른다. 그런데 내 눈엔 딱 그 표현 그대로 정말 은조가 '싸가지 별로 없는 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여겨졌다.

 

'싸가지 별로 없는 애'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성공한 예들이 많지만, 어쩐지 내게는 은조가 조금도 매력적인 인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다른 인물들까지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은조가 하는 말과 행동에 굽신거리 듯 혹은 약간 주눅든 듯 반응하는 아저씨들 캐릭터는 하나같이 답답하게 보인다.

 

은조는 아빠를 사고로 잃고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아이인데,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이웃집에 사는 같은 반 친구 신유와도 담을 쌓고 산다.

 

은조가 친구를 거부하는 이유는  '아빠가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친구에게 말해야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알게 된다면 그때도 친구가 한결같은 친구로 남아줄까? 하는 지레짐작 때문이다.

 

다행히 은조는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엄마가 제안한 생일파티를 허락한다. 은조는 신유와 귀신들과 동네지인들을 초대해 생일파티를 여는데, 다행히 그 애는 이 경험을 통해 좀더 성숙해진 면모를 보여준다. '사라져 간 이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게 남은 것들이다' 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이 변화가 엄마와 자신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안겨 줄 것이라고 예감한다.

 

밴드와 기타 이야기, 비틀즈와 그들의 노래가 소설 곳곳에 (명곡, 명반의 분위기로) 녹아있는데 반해, 아래에 인용한 이런 부분은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나 '나 어떡해'는 많이 들어 본 노래였다. 그런데 아빠가 이런 곡들도 연습했다고? 나는 아빠가 멋있는 외국곡만 연주하는 줄 알았는데.'

 

소녀시대를 위시한 SM의 스타들이 얼마전 프랑스에서 공연을 했다. 한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때에 은조의 가치관이 너무 구태의연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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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 지음, 전용희 옮김 / 오브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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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에 보니 존 러스킨은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화가, 예술비평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였다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읽다보니 과연 그의 지식과 지혜에 감탄하게 되면서,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과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하나의 장이 시작될 때마다 존 러스킨이 <친애하는 독자들에게>란 소제목으로 온갖 설명과 충고를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고픈 그의 진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장은 기본 연습편이다. 드로잉에 임하는 자세를 비롯해 선긋기, 그러데이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장에서는 알파벳 그리기, 둥근 돌 그리기 등의 실습이 이어진다. 

 

2장에서는 나무가지, 사진, 나뭇잎, 구름, 물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실물을 관찰해 스케치하는 설명이 이어진다. 

 

3장은 색과 구성편이다. 드로잉을 가르칠 때 그는 누누히 색에 대해선 잊으라고 강조하는데, 그 때문에 색 다루기와 채색에 관한 장이 따로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일종의 경이와 놀라움이다. 그림 그리기에 관한 실용서가 변변한 그림 한 점 없이 오로지 글로 시작해 글로 끝내는 이 우직함에 대해 마음 기픈 곳에서부터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오늘날의 차고 넘치는 처세서와 실용서들 사이에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괴이스럽게조차 느껴진다.

 

그런데 노랍게도 이 책은 그림이나 사진, 도표 없이도 드로잉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실용서의 고전' 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정확성이야말로 드로잉을 가르치는 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확성은 '사물을 인지하는' 높은 수준에서 나온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예술의 공통점은 정교함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그리는 데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보다는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주장은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학생들이 '자연을 관찰하며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가르쳐주기보다는 드로잉을 통해 어떻게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고 했다. 정말 대가다운 발언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완성한 예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는 주장은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이기도 하다.

 

세부적인 기법에 들어가서도 그의 설명에는 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그러데이션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림자와 사물의 윤곽성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하는 철학과 맞닿아있다.

 

'그림자를 어떻게 그러데이션할 것이냐'는 문제는 '윤곽선을 어떻게 그릴'까의 문제와 이어진다. 나 역시도 타성에 젖어 사물에는 정확한 윤곽선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존 러스킨은 이 표현은 틀렸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윤곽선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림자의 가장자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윤곽선 자체를 그리는 능력'이 아니라 '사물의 윤곽선을 정확히 관찰하고 손을 훈련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사물을 편견으로 외곡하지 말고 그의 표현대로 '그것을 그리기 편하게 함부로 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표현해야 한다.

 

이런 깊이있는 차원에서의 설명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한번 읽기도 힘들지만, 두고 두고 오래오래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그런 책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철학은 그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예술에 접목해 이해해도 모두 다 맞아떨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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