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하재근 지음 / 포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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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타격하라


독재 대 반독재 민주화투쟁 구도는 그 시효가 다하고 있습니다. 이젠 자유에 대한 싸움으로 국면을 전환해야 합니다. 이젠 독재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로서, 경제주체로서 자기 자신의 욕망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야 경제적 활력과 사회적 정의,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입니다.
-27쪽

우리가 당한 민주화는 '자유화'였습니다. 국가권력이라는 공공의 압력으로부터 각 개인, 각 경제주체들을 독립시키는 자유화, 분권화로 수요자들에게 선택권과 판단할 권한을 넘겨주는 자유화. 사적으로 소유하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도록 하는 자유화. 모두가 모두에 대해 경쟁하도록 하는 자유화. 그 결과 국민 개개인의 민주적 권리는 신장된 것 같아 보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주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은 후퇴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보다 더 광범위하게 거의 전 국민이 삶의 불안과 구조적인 무형의 폭력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양극화로 실질적인 삶의 질은 나날이 황폐해져가고 있습니다. -27쪽

자유화는 교육부문에도 그대로 관철됐습니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감행된 교육 자유화는 교육 파탄을 초래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원래부터 안고 있었던 최대 모순인 대학서열체제, 학벌사회와 맞물려 최악의 국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자유화는 교육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시회경제부문에서도 원래의 모순 구조를 더 심화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민주화를 규정하는 한 단어를 고르라면 그것은 '파탄'일 것입니다.-27쪽

국민은 '자유화 개혁=민주화 개혁=좌파 개혁', 이 도식에 빠져 있습니다. 그 개혁의 결과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제 국민은 민주화, 좌파 개혁을 거부하려 합니다. 지금의 파탄상을 초래한 원흉은 민주화, 좌파 개혁이 아닌 자유화 개혁이란 것을 알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린다 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이 흐름을 뒤집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습니다.-27,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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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2008-07-1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 번쩍 나게 하는 책...

dream 2020-07-1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자신의 욕망과 싸워야 할 때...
 
반 고흐 효과 - 무명 화가에서 문화 아이콘으로
나탈리 에니크 지음, 이세진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9월
절판


몰이해라는 모티프
대중의 몰이해와 평단의 호평 사이에 생기는 괴리는 예술에 대한 '인정'의 심급이 서로 다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비전문가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차이를 '대중(사람들)'이라는 분화되지 않은 공통의 범주와 그에 상반되는 '예술가'라는 범주에 연결한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그림의 관찰자와 심판자들을 적어도 4개 부분집합으로 구분할 수 있고, 그 부분집합들 역시 그 수數나 예술가에 대한 거리가 각기 다르다. 우선 같은 예술가(동료이자 경쟁상대) 집합이 있을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비평가 집합이 있다. 그리고 화상畵商과 수집가 집합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대중이라는 집합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이 '4개의 인정 집단'이다. 4개 집단들은 예술가에 대한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집단의 범위가 좁다.-20,21쪽

이 4개 범주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해당하는 대중은 일반적으로 예술가를 인정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집단이다. 사회 내에서 공간상 예술가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시간적으로도 뒤늦게 변화한다. 반 고흐 사례에서 대중이 몰이해를 보였다면, 그것은 '비웃음'과 '당황' 사이에서 오랫동안 보다 완강한 태도, 나아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 대중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증인은 이렇게 전했다. "나는 마침내 다섯 번째 방에 도달했다. 그곳에서는 먼저 호기심이 일어나고, 비웃음이 터지며, 순진한 감탄이 퍼지고, 토론이 벌어졌으며 당황이라는 반응이 나타났다."
-21쪽

하지만 바로 여기서 우리는 억측에 사로잡힌다. 비평가들은 신문이나 특수한 저작을 통해 그들 활동의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는 반면, 대중의 여론은 수명이 짧은 음성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후세에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여론을 후세에 전달하는 방법은 문서화된 여론조사 정도뿐인데, 그나마도 당시에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당시에 출판된 비평의 경우 그 세세한 요소까지 분석할 수 있는 반면, 특별한 전문적 식견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판단했는지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당대의 몇몇 증인들의 회상을 통해 일화들이 전해질 뿐이다. 이들의 증언은 잊히기 쉽다는 점에서, 나아가 사후에 편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또한 이들의 증언은 주관적인데, 그것은 이 증인들 역시 여론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므로 왜곡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2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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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2008-04-1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 숭배 문화는 반 고흐 이후 시작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를 실마리 삼아 풀어낸 천재 숭배의 메카니즘
 

도발적인 제목으로 인해 도저히 안 사 읽고는 못베길것 같은 책이다.

먼저, 이 책을 읽기전까지 책 제목만을 되뇌이면서 한껏 상상을 했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보다 여론, 종교주의자, 도덕주의자들에게

훨배 자칫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해서 빨리 책을 구해 읽었다.

첫 장을 넘기는데, 소설도 아니고 문화비평서가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단 말인가!

소설<차탈렛부인의 연인>, <임마뉴엘부인>, <메꽃 세브린느>등의

그 당시 도덕적 금기에 당당히 도전했던 작품들을 마광수 특유의 감수성과

성심리와 성문학적 접근과 탐구로 독창적인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은 섹스다.

사랑과 섹스는 마치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단한번 오작교에서 만나는만큼이나

만나기엔 힘겨운 처지이자 시대를 살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랑은 오를 수 없는 경지만큼 높은 천상의 그 곳, 정신에 치닫고 있고

섹스는 빠지면 죽음에 이르는 병처럼 좀체 그 터부에서

완전한 자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 마광수는 이 책에서 당당하게 둘이 하나임을 억지없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섹스는 행복추구권이며

약자들의 섹스 문제를 들어 이젠 섹스는 인권의 문제라고 한다.

 

식욕의 시대가 가면 반드시 성욕의 시대가 온다는 것에 초점이

자연스럽게 맞춰진다.

사실 식욕도 보릿고개를 넘기던 시절에는 단지 세끼 배만 불리면 됐었지만,

지금은 일식, 한식, 중식, 피자도 여러 종류의 입맛에 맞는 것을 찾아 먹는것처럼

늘 먹든 된장찌게에 청국장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성욕의 시대에는 단지 기본적인 생식을 위한 단계를 넘어서

이젠 섹스가 즐기는 놀이문화 수준을 제대로 형성해야 

그 다음 단계인 건강한 명예욕의 시대를 맞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섹스에 대한 여러면의 탐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특히 그 중 하나가 비틀거리고 있는 결혼제도에 대한 재고,

즉 "불륜"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남녀평등의 입장에서 불륜에 관해 접근하고 있다.

남녀불평등이 잔존하는 지금 남자로서 기득권을 내어놓고 "불륜"에 관해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리고 인물론 중에서

김용옥에 대해서

나는 예전에 <앙코르와트, 월남가다> 김용옥 책을 읽다가 ,

이 책 끝부분에 김용옥이 김우중 회장과 개인용 헬기를 타고

경제사업 관련으로 아프리카를 투어하던 때를 회고하던 글을 읽으면서

뭔가 모를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전 노무현대통령선거 개표당일 당선이 확정되던 날,

노무현 당선자 곁에 김용옥이 함께 있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비춰지는 걸 보면서

나는 다소 실망했었다. 그 전까지 내가 김용옥의 글을 읽으면서

심오한 학자로서 깊이가 있는 분일 거라고 느끼고 있었고

앞으로 시간을 내서 그 분의 책을 탐독해 보리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터라.

그런데 순수한 학자가 아니라 어쩌면 학문을 등에 업고 입신출세와  권력을 추구하는

분일지도 모르겠군!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됐었다.

그렇기에 마광수의 김용옥 인물론을 읽으면서 일부분 공감이 갈 수밖에 없었다.

지성인들간에 이런 건강한 비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 장정일에 관해서

그의 소설<내게 거짓말을 해 봐>는 불행히도 외설성 시비로 판금되긴 했지만,

그 책은 내가 아끼는 책이다. 그 책에 감동받아 장정일 소설을 즐겨 읽고, 특히 시도 즐겨 읽는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을 읽으면서 훌륭한 시인임엔 틀림없는데

소설만큼 시에 확 몰입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꼼꼼히 생각은 못했었지만

마광수가 장정일 시에 대한 지적에서 장정일에 대한 애정과 아끼는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인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정치인들에 대한 조언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밖에도 문화비평서로서 여러 문제에 대한 통찰력있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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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 마광수 문화비평집
마광수 지음 / 에이원북스 / 2008년 4월
품절


성욕을 원활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억압된 울분이 쌓이게 된다

예부터 독재자들은 대체로 지독한 결벽증 환자들 아니면 청교도주의자들이었다.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크롬웰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다. 성욕을 원활하게 해소하지 못하면 반드시 잠재의식 안에 억압된 울분이 쌓이게 되고, 그 울분들은 성 이외의 다른 탈출구를 찾으려고 애쓴다. 물론 예술창작이라든가 건전한 취미활동 등을 통해서 성욕의 대리배설을 시도해볼 수도 있겠으나, 정치가의 경우에는 사정이 조금 다른 것이다. 정치가는 기본적으로 권력욕을 강하게 타고난 인물이기 때문에 지배를 통한 '사디즘적 쾌락'의 충족을 원하고 있는 까닭이다.-127쪽

그래서 억압된 성적 욕구는 쉽사리 변태적인 사디즘으로 전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에게 섹스를 무한정으로 공급해준다는 것은, 그들을 변태적 사디스트가 되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들 주변을 살펴봐도, 주색을 싫어하거나 더 나아가 아예 경멸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의 심성에는 잔인하고 이악스러운 면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이 겉으로는 아무리 청렴결백한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주변사람들은 피해를 많이 입게 된다.-127쪽

이퇴계 선생은 호방하게 색色을 즐겼던 것으로 유명한데, 그러면서도 그토록 훌륭한 치적을 쌓을 수가 있었다. 퇴계는 문하생을 받아들일 때 다음과 같은 시험방법을 썼다고 한다. 한여름 삼복더위에 의관을 정제하고 앉게 한 다음 이것저것 문답을 한다. 물론 퇴계는 시원하고 가벼운 옷차림이고 제자 되기를 자청한 사람만 잔뜩 차려입고 더위를 참아가며 선생과 대화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128쪽

그럴 경우 더위를 끝까지 참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고 옷을 훌훌 벗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퇴계는 옷을 벗어버리는 사람을 제자로 맞아들이고 끝까지 참아내는 사람은 비인간적이라고 하여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강인한 성격의 사람이 나중에 벼슬이라도 하게 된다면, 보나마나 백성들은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이퇴계의 지론이었다고 한다. 참으로 거유巨儒다운 발상이었다.-128쪽

남녀평등이 게걸스럽게 외쳐지고 있는 이 시대에, 남자들에게만 축첩과 외도가 허락되고 여자들은 그저 참아야만 한다고 하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 내가 지금껏 이야기한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여자가 정치를 하든 남자가 정치를 하든 사람의 개인적 사생활이나 성생활이 정치생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낮에는 일을 하지만 밤에는 잠을 자고, 낮에는 윤리도덕을 운운하지만 밤에는 야수 같은 색마로 돌변하기도 하는 존재다. 이러한 '낮과 밤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되어 낮을 밤처럼 살게 되거나 또는 밤을 낮처럼 살게 된다.
특히 정치가는 권력을 휘두르는 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정신 상태는 지극히 원만하고 안정된 것이어야만 하는데, 만약 정치가가 사생활을 전혀 갖지 못하고 또 성적 욕망도 억지로 참아야만 한다면, 그 사람은 은연중 삐뚤어진 성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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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2021-04-08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소 30년 정도는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천재구나! 싶다
 



40
 


소돔 120일
D.A.F. 사드 (지은이) | 고도 | 2000년 8월

역자서문에서...

기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또 우리가 사드에 대한 지식이 있건 없건 간에 사드의 작품에 연류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검열들이 우리에게 별로 부당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사드의 작품 읽기(lecture)가 미리 조건지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도 모르게 이를 묵인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사드의 작품이 갖는 이러한 한계적 특징을, '읽혀지지 않음' (illisibilite)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에 답하기에 앞서, 이 문제의 근원에는 시대의 모순을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고, 문학 생산과 성적 강박관념 안에서 그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실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감옥 안에서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전환시켜준 것은 상상력과 집필이었다.

...1801년, 교황과 나폴레옹과의 협약이 체결되기 바로 전날, 집정 정부는 도덕적인 질서를 회복하려는 의도의 일환으로, 행적적인 조처로 사드를 감금시켰다.

...그는 감옥 안에서 홀로 방기의 도덕과 기독교를 폐허화시키는 논문들, 풍속의 다양함을 소개하는 여행 이야기들을 섭렵했다. 이러한 독서를 통해 그는 계몽주의의 낙관론에 내재해 있는 모순을 정확히 지적해내게 된다. 계몽주의의 낙관론은 악과 실수를 동일시한 데 있다. 즉 사제들과 전제 군주들은 인간을 참된 미덕과 행복의 길에서 이탈시켰으며, 자연(Nature)의목소리를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한 책임을 단지 성직자계급의 잘못으로만 전가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이 낙관론에 의하면, 인간을 금욕과 폭력에서 도덕과 자연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주들 곁에 있는 악한 사제들을 제거하고 훌륭한 철학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 "악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으므로, 지상에서의 행복 또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사드는 이와 같은 계시적이고 천상적인 도덕을 거부한다. 또 사회에 실존하고 있는 욕망과 이기심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유용성에만 기초하고 있는 윤리를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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