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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학교 - 마광수 소설집
마광수 지음 / 북리뷰 / 2009년 4월
평점 :
사랑의 학교는 창조적 상상력의 무한 지대로다!
단편집 모음인데 연속되는 연결고리가 있는 듯 첫 장을 넘기자 끝까지 단숨에 읽어 치워버렸다. 내 나이 40 장단기기억력은 턱없이 줄어들었으나 세상을 바라보는 이해력 하나만큼은 자칫 절제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수구꼴통이 될 만큼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어쩐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흥미진진한 소설을 최근 읽지 못했었다.
마광수 선생님이 늘 고집하시는 문학 신성주의를 거부하는 중요한 작품이 아닐까.
제목이 [사랑의 학교]인 만큼 육체적 본능에 따른 다양한 사랑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무거운 정신적인 사랑이라든가 통속적 드라마에서 주로 하는 사랑의 만남과 이별에 초점이 가 있지 않아 통쾌하다.
즉 <달짝지근한 풍경화>에서.... “제가 다른 남자와 자면 싫으시죠?” “그렇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좋아. 내가 견디기 힘들어지면 얘기해줄게. 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난 네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겠어. 네가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길 바라지 않으니까, 나 또한 네게 그러지 않을 거야.” .....
이런 연애 철학 하나를 실천하는 것조차 현실에선 쿨하지 못하게 각종 매체로 조장한다. 각종 드라마, 영화, 소설에선 이 주제 하나만으로도 가공할만한 복수혈전으로 스팩타클하게 끌고 간다. 그런 반면 선생님의 소설에서는 주제가 이런 갈등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행위인 서로의 교감, 소통을 얼마나 즐길 수 있을까. 섹스라는 사랑의 유희, 게임을 얼마나 극대화시킬 수 있는가.에 카메라 앵글이 고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섹스 판타지, 상상력에 깊이 빠져 들어가 여태 각종 윤리, 도덕, 체면, 편견 등으로 구속돼 있던 본능이 해방의 탈출구를 찾는 기분이 든다.
<하느님은 야한 여자닷!>에서...“{성경}이라는 책에는 내가 이브에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주고, 아담에게는 땀을 흘리고 일을 해야만 하는 고통을 주었다고 나와 있더군. 사실 그건 내가 준 벌이 아니라네. 그건 바로 ‘섹스’를 뜻하는 것이야. 그런데 성욕은 다만 자연적인 욕구일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욕구가 무엇인지 아는가? 대부분 ‘식욕’이라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식욕 이전에 ‘성욕’이라는 강한 욕구가 잠재해 있다네.”....“쾌락주의 만세!....여자 하느님 만세!”......이런 통념을 깨는 발상의 전환도 짜릿하다.
<숨겨진 진실>에서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면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처럼 오직 쾌락만이 존재하는 파라다이스가 만들어지지요.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그만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신화 속의 기억으로 사라져버리게 되었어요. ‘선악과’는 선과 악의 분별, 즉 이분법적 흑백논리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죠. 선생님이 지금 법적 폭력에 의해 고통 받고 계시는 것도 결국 예술이냐 외설이냐, 도덕이냐 부도덕이냐 하는 따위의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좋아하는 에덴동산의 ‘뱀’과 같은 자들 때문에 비롯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진리는 이것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즉 쾌락만이 유일한 선이며 고통만이 유일한 악이라는 것이죠.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변태니 퇴폐니 부도덕이니 하는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진보란 뭔가? 고통받는 자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 쾌락,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지향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선생님은 진정한 진보의 중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얼마나 많은 지구상의 평화를 깨고 전쟁을 합리화 하는 논리인가를 안다면 선생님은 진정한 ‘유미적 평화주의자’임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간 선생님의 피해의식이 거의 배제된(?), 극복된(?) 재기발랄한 작품이라 읽기에 무척 속도감이 붙었다.
이 책을 주루룩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사랑은 이렇게 단순한 것을...
정신적 사랑이라는 군더더기가 없어 읽기에 지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