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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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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손원평 작가의 신작
[서른의 반격]을 읽고.

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의 비중을 꽤 크게 두는 편이다.

제목 또한 그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원평 작가는 책의 제목을 기막히게도

잘 뽑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아 몬 드”는 나의 최애책이다. “아 몬 드”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딱딱한 겉 껍데기 속의 고소한 풍미, 혀로 아몬

드를 굴릴 때의 꺼슬꺼슬 한 감촉이 떠올라서 읽는

재미는 물론, 왠지 맛보는 재미까지 선사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아 몬 드”를 읽기 시작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감과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생동감 넘치는

문체가 너무 인상이 깊었다. 이번 신작 “서른의 반격”

을 읽은 리뷰를 쓰기에 앞서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

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 사정은 결코 밝지 않고 오히려

절망적이고 암울하지만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어둡지

않고 유머감각이 있고, 이를 넘어서 유쾌함마저 가미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뭔가 담백한 느낌이

랄까.

“서른의 반격”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정말 미치도록 읽고 싶었다. 이건 내 또래들의 이야기

가 아닐까 싶어서 어떤 연대기가 그려져 있을지, 나의

개인적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섞여있지

않을까 너무 기대가 됐다. 첫 장의 “차례”를 쭉~

훑기 시작했다. “1챕터”가 “1988년생”이었고, 타 출판

사의 책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 챕터를 읽으면서

부터 마치 활자 안으로 미끄러지듯 쭉쭉 읽혀내려가

는 흡인력에 놀랐다. 나 역시 1980년대의 후반에

태어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지혜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김지혜가 보고 자란 것들, 그리고

당시 뉴스에 나왔던 시대적 배경들을 읽어내려가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면서 “맞아~맞아~”를 중얼거렸

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치 흑백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내가 자랐던 유년기의 시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김지혜인 것도 재미있었다. 진짜 반에 김지혜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꼭 한 명씩 있었고, 꼭 김지

혜는 아니라 해도 성만 각기 다른 “지혜”들은 왜 그리

도 많았는지^^* 그녀들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정체

성을 “작은”, “큰”,혹은 “A”,”B”로 구분지어서 표현했

다. 그때의 “지혜”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어른들은 종종 이야기를 한다. 아니, 사실 서른이라

는 나이도 이미 충분한 어른이지만 우리 서른 즈음의

사람들보다도 더 어른인 분들은 늘 우리에게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났고, 좋은 시대에서 살고있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 “좋은 시절”

이란 대체 어떤 시절인지 그다지 실감을 하면서 살아

오진 못했다.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은 사실 대다수

1980년 후반에 태어난 청년들의 자화상과 지독히

닮아있다. 아니, 닮아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상이고 아직도 우리는 완전한 어른으로서 독립하

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김지혜를 알아갈

수록 참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곧 현실 속

나의 모습이었기에. 그리고 결혼 후에는 “유 팀장”

의 역할을 맡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서글픈 실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사실 1988년생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다. 나 역시

1986년생이지만 사실 나 스스로가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자신은 없다. 우리는

중간에 “끼인 세대”이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의 생을 살고있는 것 같다. 나의 이런 현실을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을 통해서 보자니 마치 유체이

탈을 해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나의 지난 세월들,

또 지금의 삶을 반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내용만 있는 소설이냐, 그건

결코 아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서른의 반격” 아닌가.

우리는 이 “반격”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늘 찌그러져서 살아오기에 급급했던 주인공 김지혜

의 일상에 느닷없이 괴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은

미스테리한 남자 “이 규 옥”이 등장하면서 김지혜의

늘 똑같던 일상에도 조금씩 특별한 일들이 생겨난다.

규옥의 정체는 독자들에게도 영 수수께끼인데,

이 “규옥”이라는 인물이 소설의 톡톡한 감초 역할을

한다. 세상을 향해 늘 소심하게 혼자서만 중얼거리기만

했던 지혜는 규옥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부터 조금

씩 대담하게 변해가고, 비록 아주 큰 “한 방”을 날리

지는 못하지만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또 부조리한 일들에 맞서는 부분에서는 내 속이

“뻥!!!”뚫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주인공 김지혜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들에 큰 공감이 갔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비록 나 하나 참는다면 세상이 조용하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부당함과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규옥은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해도

이런 작은 몸부림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이슈화 시킴으로써 소심한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82page -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약간 정의의 사도와 같은 캐릭터라고 해야 하나.

규옥, 무인, 남은 아저씨, 지혜의 다양한 복수 활극들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고, 어둡기만 한 소재를 아주

유쾌하게 흘러가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이 작당 모의를 하며 사건을

벌이는 일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이 [서른의 반격]은 모든 “N포 세대”의 이야기이자,

일상을 담은 소설이다. 나 역시 겪은 일들이고, 아직도

겪고 있는 ing형 이야기... 마냥 낙관하기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일상을 살고 있는

N포 세대들을 대변해서 톡 하고 쏘는 사이다 같은

반격을 가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조금은 뻥 뚫

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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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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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손원평 작가의 신작
[서른의 반격]을 읽고.

나는 책을 고를 때 제목의 비중을 꽤 크게 두는 편이다.

제목 또한 그 책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원평 작가는 책의 제목을 기막히게도

잘 뽑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첫 장편소설

“아 몬 드”는 나의 최애책이다. “아 몬 드”하면 생각나는

이미지, 딱딱한 겉 껍데기 속의 고소한 풍미, 혀로 아몬

드를 굴릴 때의 꺼슬꺼슬 한 감촉이 떠올라서 읽는

재미는 물론, 왠지 맛보는 재미까지 선사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 “아 몬 드”를 읽기 시작했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감과 생생한 이미지를 그려내는 생동감 넘치는

문체가 너무 인상이 깊었다. 이번 신작 “서른의 반격”

을 읽은 리뷰를 쓰기에 앞서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

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 사정은 결코 밝지 않고 오히려

절망적이고 암울하지만 소설 전체를 놓고 보면 어둡지

않고 유머감각이 있고, 이를 넘어서 유쾌함마저 가미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뭔가 담백한 느낌이

랄까.

“서른의 반격”을 처음 받았을 때 제목이 주는 호기심에

정말 미치도록 읽고 싶었다. 이건 내 또래들의 이야기

가 아닐까 싶어서 어떤 연대기가 그려져 있을지, 나의

개인적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섞여있지

않을까 너무 기대가 됐다. 첫 장의 “차례”를 쭉~

훑기 시작했다. “1챕터”가 “1988년생”이었고, 타 출판

사의 책이 떠오른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도 그렇고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 챕터를 읽으면서

부터 마치 활자 안으로 미끄러지듯 쭉쭉 읽혀내려가

는 흡인력에 놀랐다. 나 역시 1980년대의 후반에

태어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인 김지혜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김지혜가 보고 자란 것들, 그리고

당시 뉴스에 나왔던 시대적 배경들을 읽어내려가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면서 “맞아~맞아~”를 중얼거렸

다.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치 흑백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내가 자랐던 유년기의 시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김지혜인 것도 재미있었다. 진짜 반에 김지혜

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꼭 한 명씩 있었고, 꼭 김지

혜는 아니라 해도 성만 각기 다른 “지혜”들은 왜 그리

도 많았는지^^* 그녀들은 각자가 가진 고유의 정체

성을 “작은”, “큰”,혹은 “A”,”B”로 구분지어서 표현했

다. 그때의 “지혜”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일상을

살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어른들은 종종 이야기를 한다. 아니, 사실 서른이라

는 나이도 이미 충분한 어른이지만 우리 서른 즈음의

사람들보다도 더 어른인 분들은 늘 우리에게 “참 좋은

시절에 태어났고, 좋은 시대에서 살고있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 “좋은 시절”

이란 대체 어떤 시절인지 그다지 실감을 하면서 살아

오진 못했다.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은 사실 대다수

1980년 후반에 태어난 청년들의 자화상과 지독히

닮아있다. 아니, 닮아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상이고 아직도 우리는 완전한 어른으로서 독립하

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김지혜를 알아갈

수록 참 눈물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곧 현실 속

나의 모습이었기에. 그리고 결혼 후에는 “유 팀장”

의 역할을 맡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읽으니

서글픈 실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사실 1988년생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이다. 나 역시

1986년생이지만 사실 나 스스로가 진정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를 할 자신은 없다. 우리는

중간에 “끼인 세대”이고,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는

유목민의 생을 살고있는 것 같다. 나의 이런 현실을

주인공 김지혜의 모습을 통해서 보자니 마치 유체이

탈을 해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나의 지난 세월들,

또 지금의 삶을 반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답답한 내용만 있는 소설이냐, 그건

결코 아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서른의 반격” 아닌가.

우리는 이 “반격”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

늘 찌그러져서 살아오기에 급급했던 주인공 김지혜

의 일상에 느닷없이 괴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은

미스테리한 남자 “이 규 옥”이 등장하면서 김지혜의

늘 똑같던 일상에도 조금씩 특별한 일들이 생겨난다.

규옥의 정체는 독자들에게도 영 수수께끼인데,

이 “규옥”이라는 인물이 소설의 톡톡한 감초 역할을

한다. 세상을 향해 늘 소심하게 혼자서만 중얼거리기만

했던 지혜는 규옥이라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부터 조금

씩 대담하게 변해가고, 비록 아주 큰 “한 방”을 날리

지는 못하지만 소심하게나마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또 부조리한 일들에 맞서는 부분에서는 내 속이

“뻥!!!”뚫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이런 일들을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주인공 김지혜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들에 큰 공감이 갔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비록 나 하나 참는다면 세상이 조용하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부당함과 상처는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규옥은 비록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해도

이런 작은 몸부림들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이슈화 시킴으로써 소심한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82page -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약간 정의의 사도와 같은 캐릭터라고 해야 하나.

규옥, 무인, 남은 아저씨, 지혜의 다양한 복수 활극들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고, 어둡기만 한 소재를 아주

유쾌하게 흘러가게 하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이 작당 모의를 하며 사건을

벌이는 일에 동참하는 것 같았다.

이 [서른의 반격]은 모든 “N포 세대”의 이야기이자,

일상을 담은 소설이다. 나 역시 겪은 일들이고, 아직도

겪고 있는 ing형 이야기... 마냥 낙관하기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는 일상을 살고 있는

N포 세대들을 대변해서 톡 하고 쏘는 사이다 같은

반격을 가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조금은 뻥 뚫

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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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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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밀레니엄]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다."라는 문구를 어느 누군가의 SNS에서 읽었다. 그리고 소히 책 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나였는데, 애석하게도 [밀레니엄 시리즈]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호기심이 발동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스웨덴의 사회 고발


전문 기자 "스티그 라르손"의 소설인데 안타깝게도 작가가 밀레니엄시리즈 3부까지만 쓰고 작고하였으며, 이어서 범죄전문기자 출신인


라게르크란츠가 공식 작가로 지정되어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이 책의 배경은 스웨덴이라는 나라였고,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본 나라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또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부분에선


전무했다. 심지어 스웨덴 나라의 소설도 읽은 적이 없었다.


 "스웨덴"하면 잘은 모르지만 나라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편에 속했다.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그리고 북유럽 쪽에 속해 있다는 정도.


SNS 내에서의 [밀레니엄 시리즈]에 대한 평가는 온통 극찬 일색이었다.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나 한 번 잡으면 헤어나올 수


없다." 그리고 리스베트라는 여자에 대한 찬사, 밤을 꼴딱 새서 이 책을 다 읽었다는 후기들. 꼼꼼히 후기들을 살펴본 뒤


"믿고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밀레니엄 시리즈 중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책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너무 두꺼웠기에 아무리 이번 10월에 아주 긴 연휴가 있다 해도 과연 다 독파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분량이라면


두 달은 잡아야 하지 싶었다. 거의 벽돌책 수준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춥고 어두운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왕국 스웨덴답게


온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즐겨읽는 독자가 많아서 이와 같이 방대한 분량의 책이 출간되는 건 아닌지 하고 연관지어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밀레니엄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머릿속에 쉽게


기억되지 않았다. 영미권 쪽 소설은 많이 읽었는데 역시 북유럽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낯설고 입에 착착 감기지


않았다. 이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인상은 내가 유일하게 읽은 북유럽 소설인 "페터 회"의 장편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과 비슷했다. 극도의 세밀한 상황 묘사와 심리묘사, 또 치밀감까지. 장르 또한 추리소설이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단,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은 번역이 좀 이상한 건지 아주 친절하게 묘사를 세밀히 해주고 있는데도


머릿 속에 구체적인 상황, 이미지들이 적절히 떠오르지 않고 읽는 내내 전개가 답답하고, 다소 지루한 부분도 있다고


느낀 반면,  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읽는 속도 또한 빨랐다. 또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 흡인력,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마치 주인공과 동일시 된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져 정말 읽는 내내 숨가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장르는 "추리소설" 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장르에 대한 벽을 넘어서 굉장히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기에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경제전문분야, 또 리스베트 살란데르를 떠올리면 페미니즘


이 떠오르기도 했고, 각종 폭력 문제라든지, 소위 엘리트 집단들이 벌이는 각종 사회악과 같은 부분, 또 산업 스파이


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의 얼키고 설킨 관계들 속에서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감정도


다루고 있기에 인간사의 모든 감정과 사건, 사회, 법률 등 전반적인 부분을 총망라 한 집합체 소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지식들에 감탄이 나왔다.


 먼저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반한 인물인 "리스베트 살란데르"에 대해 꼭 언급하고 싶다. 그녀는 신비로운 존재


이지만 우리가 사회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부인할 수 없는 "문제아"의 범주에 속한다. 스웨덴에도 우리나라로


따지면 "성년후견제도"라고 할 수 있는 "후견 체제"가 있다. 말이 후견 제도이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


법적인 허점과 시스템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법적


무능력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 상당히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그 라르손이 이 법적 무능력자를 다루는 제도인 "후견인" 제도를 소설을 통해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상당히 흥미진진 하게 읽은 부분이었다.



[*263page : 1989년 이래 "법적 무능력자의 개념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심신미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에는 두 단계가 존재했다. "법정 자원봉사자"와 "후견인"이었다.


                   법정 자원봉사자는 다양한 이유로 공과금 납부나 위생관리처럼 일상생활을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자원해서 돕는 사람이다. 대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가 법정 자원봉사자로 지명

                   된다. (....생략)

                    

                    여기서 피봉사자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고 상호 협의하에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

                    이는 후견체제 보다 한결 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후견 체제"는 훨씬 엄격하다. (...생략)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형편 없는 조치일 것이다.


 

한편, 리스베트와 같이 완벽한 여자가 그녀의 후견인 닐스에게 유린 당하는 부분은 정말 놀라웠다. 물론 리스베트는

이 위기를 적극 활용하여 복수의 기회로 삼고 닐스에게 당한 것을 몇 배로 시원하게 갚아주지만 리스베트와 닐스

로부터 변태적이고 잔인한 수준의 성폭행을 당한 후 닐스 변호사가 리스베트에게 건넨 말은 이 책을 읽는 나에게

조차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262page : "우리가 한 놀이를 다른 사람에겐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생각해봐. 누가 네 말을 믿겠어?

                   이것 보라고! 전부 네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야." 그래도 여전히 대답이

                   없자 그가 말을 이었다. " 네가 한 말과 내가 한 말 중에 사람들은 과연 누구의 말을 믿을까?

                   어떻게 생각해?"​ 



이 부분을 읽으면 닐스 변호사는 역시 후견인 체제의 허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쓰레기 같은


인물이다. 세상에는 꼭 이런 자들이 있다. 촘촘히 쌓아놓은 벽돌 사이의 틈을 찾아 헤집고 다니는 벌레와


같은 작자들. 리스베트는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닐스에게 치욕스러운 수치감과 고통을 안겨준다.


닐스는 리스베트에게 아주 크게 혼쭐이 나고 그녀의 곁에 접근도 할 수 없게 된다. 굉장히 통쾌한 복수였다.


상당히 잔인한 복수였으나 눈쌀이 찌푸려지기는 커녕 한마음이 되어 리스베트의 복수극을 응원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스베트의 분위기는 너무 기묘하다. 신비롭고, 좀 야성적이기도 하지만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느낌이랄까.


손에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 것 같은 리스베트. 그런 그녀는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


같은 존재이지만 딱 한 사람. 오직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앞에선 예외이다. 사실 이 [밀레니엄 시리즈]


의 주인공 격인 인물인데 나는 전적으로 미카엘 보다는 리스베트에게 마음을 빼앗겼기에 리스베트에 대한


부분을 먼저 언급했다.



 미카엘은 예리하지만 내적으로 순진한 기질이 있는 인물이다. 에리카와 함께 [밀레니엄] 잡지사의 공동


사주이자 편집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밀레니엄 잡지사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자이다. 그는 특유의


예리함으로 경제 전문 기자로서의 소임을 톡톡히 해낸다. 각종 기업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고 같은


동료 기자들에게도 쓴소리를 마다 않는 미카엘은 기자들 세계에서 "칼레 블롬크비스트"라고 불리우며


약간 공공의 적과 같은 존재이다. 그런 그가 여름 휴가지에서 동창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스웨덴의 거대 기업 벤네스트룀의 실체에 대해 뭔가 알게 되면서부터 이 밀레니엄 시리즈는 거대한 막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충분한 증명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미카엘은 역으로 벤네스트룀으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발을 당하기에 이르고, 소송에서 지게 되면서 밀레니엄도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된다.


그러던 중 방에르 가문의 대리인인 디르크 프로데 변호사가 미카엘에게 연락을 취해 방에르 가문의


헨리크 회장과 만날 것을 요청하고, 이에 앞일이 산더미 같이 산적해 있는 미카엘은 거절의 뜻을


비치지만 결국 헨리크 회장을 만나기 위헤 헤데스타드의 헤데뷔 섬까지 가게 된다.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두 가지 의뢰를 한다. 한 가지는 표면적으로 방에르 가문의 연대기를 집필해 줄 것을 요청하고,


또 한 가지는 수십년 전에 발생된 하리에트의 실종 사건을 해달라는 의뢰이다. 미카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의 두 가지 의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헨리크가 이야기 해주는


하리에트 실종 이야기에 압도되고 만다. 그렇게 미카엘은 하리에트 실종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으로서 방에르


가문의 비밀들을 하나 둘 파헤치게 된다. 비록 몰락해 가는 기업이라고 하나 아직 스웨덴의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방에르 가문은 파면 팔수록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기업이다. 방에르 가문의


주위를 자욱한 안개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미카엘은 아주 작은 조각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집요함으로 사건의 실마리에 조금씩 가까워지던 중


디르크 변호사로부터 자신이 이 하리에트 실종 사건을 담당하기 이전에 뒷조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불쾌해 한다. 하지만 이윽고 자신의 각종 신변이 기록된 보고서를 읽는 순간 대체 어떤 작자가


이렇게 치밀하게 대인조사 업무를 할 수 있는지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끝내 리스베트와 미카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시작된다. 누구나 그렇듯, 미카엘도 리스베트의 첫 인상이


인상깊어서 리스베트의 몸에 있는 문신이라든지 구석 구석을 다소 신비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미카엘은


어떠한 편견이 담긴 의혹의 눈빛으로 리스베트를 대하거나 윽박지르지 않는다. 리스베트도 알 수 없는


감정, 편안함으로 미카엘에게 이끌리며 이 둘의 조합은 환상의 케미를 뽐낸다. 이 둘의 밀당을 구경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읽는 내내 나조차도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관계는 사랑일까, 우절일까. 아니면


엔조이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정에 서투른 리스베트이니만큼 그녀조차도 미카엘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섬뜩 놀라게 된다. 그러나 특히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미카엘의 모든 인간관계가


"신뢰"를 기반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직장동료인 크리스테르, 에리카는 물론 그의 파트너 리스베트,


또 종국에 가선 자신의 뒤통수를 "살.짝.!" 쳤다고 할 수 있는 방에르 가문에게까지 신뢰와 의리의


미덕을 잃지 않는다. "사랑", "우정"이라는 감정 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스베트와 미카엘이


역경 속에서도 모든 미션들을 결국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 역시 서로를 믿는 "신뢰"가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592page : 나는 이렇게 정의했어. 우정의 토대를 이루는 건 두 가지, 존경과 신뢰라고 생각해.

                 이 두 요소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해. 누군가를 존경한다 해도 신뢰가 없다면 우정은

                 갈수록 약해질 뿐이야.


[367page : <미카엘이 자신의 딸 페르닐라가 셸레프테오에 가는 것을 아침에 배웅하며 건네는 대화 중>

                "난 신을 믿지 않아. 하지만 네가 믿는 건 존중하고 있어.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믿어야 하거든."



더 이상의 스토리는 스포가 될 우려가 있어 생략하고 싶다. 단, 이 소설은 단순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여러 소재를 다양하게 다룬 문학의 집대성이라 생각된다.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작은 섬마을 헤데뷔라는 지역에서 일어난, 또 하리에트 실종 사건의 용의자의 물망에 오른


사람의 수가 많지 않고 방에르 가문의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지만 읽는 내내 대체 누가 범인인 건지 종잡을


수 없다.


[*271page : "사실 흥미로운 수수께끼지. 섬을 배경으로 한 밀실 미스터리라고나 할까. 이 사건에서

                   정상적인 논리를 따르는 건 아무것도 없어. 답을 찾은 질문도 하나 없고 단서마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지."


                 "바로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사람들의 정신을 강렬하게 사로 잡는 거야."


작가와의 치열한 두뇌게임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고, 미스터리 장르 자체가 처음엔 생소했으며 그 중에서도


"클로즈드 서클"이란 장르는 아무래도 결과의 예측이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기막힌 소설이다. 어떻게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인원의 제약만으로도 이런 큰 판을 짤 수 있는지


스티그 라르손의 작가적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갑작스레 스틱르 라르손이 3부까지 집필하고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 더이상 시리즈를 이어나갈 수 없었


다는 점에선 안타까웠으나 그 뒤를 이은 4부 시리즈 또한 밀레니엄 시리즈의 명성에 걸맞게 아주 재미있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아무래도 이 밀레니엄시리즈 1부를 계기로 "밀레니엄 덕후"가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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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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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이사카 고타로"라는 새로운 작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네이버연재의 연재물을 매일 탐독하다가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푹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카 고타로 라는 작가가 꽤 많은 소설을 출간하였고, 이미 그의 고정 마니아층이 우리나라에도 꽤 두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 소설의 제목인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라는 제목으로 인해 장르가 SF물인가 싶었다. 그리고 책의 도입 부분을 읽으면서는 미스터리 장르인가 싶었다. 그런데 사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이 책의 정확한 장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회정의물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이 소설의 말미 또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정의는 없다고 이야기 한다. 정의는 언제나 상대적이며 자신이 객관적으로는 악의 편이라고 해도 자신이 곧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것. 다만 추가 가운데에 정지할 수 없듯이 움직이는 추의 각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며 움직여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은 아주 재미있다. 조금 "괴짜"스러운 면도 다소 있다. 페이스 고글 마스크, 전신을 뒤덮는 라이더용 옷, 등엔 요즘 현대@문물에 어울리지 않는 목검. 게다가 그의 필살 무기는 바로 강력한 자석!! 이 자석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그는 평화경찰 무리를 저지하기 시작한다. 평화경찰. 그들은 과연 시민의 편이란 말인가. 무고한 사람들을 데려다가 고문과 처형을 일삼는 그들. 히어로는 이런 평화경찰의 행태에 의문을 품고 다소 독특한 자신만의 잣대로 구원대상을 골라서 평화경찰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이 소설의 또다른 백미는 바로 대중심리. 소년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또 마녀사냥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된다. 쉴틈없이 새로운 사회적 화두를 던져줌으로써 요즘 뉴스를 보면 나오는 사회적 이슈들과 대입해서 독서를 즐기게 된다. 표지 일러스트 또한 너무 귀엽고 독특하다는 거. 이런 세상에서 살기 싫다면 화성으로나 가지 말입니다. 감히 이렇게 독자들에게 제안해주는 무겁지만 유머감 가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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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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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은 표지디자인과 제목, 그리고 지은이가 현직 부장판사라는 타이틀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현직 부장판사가 써내려 갔다는 부분에서 어떤 법률에 관련된 지식을 핸디북 형식으로 간편하게 펴볼 수 있게 만들었을 거라고 짐작하였을 뿐, 판사와 소설가를 같이 연관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법정활극이라니, 점점 이 책을 곁에 두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 관한 이야기니 휴직 중인 나에게 법원은 어려운 장소라기 보다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친숙한 장소였기에 마치 일상을 접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기대감에 이 책을 펴들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을 읽고 난 직후 느낀 첫 소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박차오름이라는 캐릭터가 무거운 소재를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도록 적절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고, 정말 이런 캐릭터의 여자 판사가 법원 내에 실존할까 하는 요소만이 판타지인가 싶게 유일하게 ‘소설’임을 자각하게 해줄 뿐 이 책에 담긴 맛깔난 소재와 이야깃거리, 캐릭터들은 실제 법원 내의 일상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한 컷, 한 컷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가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회적 이슈들을 각종 아재개그와 말랑말랑한 방식으로 써내려간 분이 부장판사님이라는 게 너무 놀라웠다. 비교적 다른 사람들보다 ‘판사’님들을 거리적으로 가깝게 모셔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유머감각을 겸비한 부장판사님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루할 틈이 없이 헛소리 하지 않고 활자들이 목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듯 읽게 된다. 원래 독서를 하는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이 책에서 각 다루고 있는 소재가 가볍지 않고 계속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고 있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쭉쭉 읽히는 건지 놀랍기만 하다. 세 주인공들과 이야기의 소재가 잘 어우러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 소설에서 지은이는 매우 섬세하고 또 친절하다. 곳곳에서 그런 부분들을 느낄 수 있고 독자와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분의 재판 스타일 또한 그렇지 않을까 감히 추정해본다. 각 ‘부’가 끝날 때마다 정말 에필로그에 기록된 대로 무표정한 판사가 아닌 ‘판사’라는 한 개인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판사의 일’이라는 페이지를 제공한다. 소설을 읽으며 다소 무거운 사회적 이슈들에 빠져 깊이 생각하게 될 때 쉼터 같은 존재로 다가오는 페이지다. 어떻게 보면 정말 치밀하고 전략적인 소설이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성공의 길’이라는 페이지에서 수석 부장판사가 올곧고 바른 말, 바른 생각만 하는 임바른 판사에게 세상사에 대해 깊이 있는 충고를 하는 마지막 단락이 매우 인상 깊었다. 아직까지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에게 치이기도 하고, 또 나보다 높은 분들만 있는 법원은 사회 초년생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려운 곳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수석 부장판사님이 임바른 판사에게 하는 충고는 내게 정신적 멘토 같은 역할을 해주어서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게 되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 부분은 조금 아쉽게 다가왔다. 물론 소설의 맥락적인 부분에서 임바른 판사가 조금 더 유연성 있고 둥글게 살아가고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부장판사님의 진심어린 충고였겠지만 사실 한창 피끓는 청춘인 임바른 판사 나이대의 뜨거움을 식히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의 위로는 그리 달갑지 않다. 결국 나중에 세월이 흐른 이후에라야 모를까 우리 청춘들은 어른들의 아프니까 청춘이니 이 시기를 견디라는, 혹은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식의 위로를 받아들이기에 너무 지쳐있다. 그만큼 지금 사회적 배경이 강퍅하고 팍팍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제7부의 국민참여재판 부분은 어렵기만 한 재판의 과정과 국민참여재판의 시행 취지를 이해하기 쉽게 소개해서 인상 깊었다. 사건 내용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살인’이어서 긴장감도 느껴졌는데 마치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배심원의 한 명인 것처럼 등장인물의 상황에 맞춰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예비 배심원 후보자인 1번 노인의 마지막 반전 역시 의외이긴 하였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편향되지 않고 어떤 잣대를 두고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시 식스센스급 대반전은 세 주인공의 기이한 운명. 마지막 결말에서 그들이 과거에 첫 만남을 가지게 되는 이 코믹적인 장면은 나로 하여금 훈훈한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법정과 관련된 소재를 소설로 읽은 것은 미야베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이후 두 번째였다. 그때는 소설의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사실 너무 무겁고 어두운 소재 거리에 역시 장소와 소재의 한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 ‘미스 함무라비’는 그런 한계와 고정관념을 아주 유쾌, 상쾌, 통쾌하게 타파한 법정활극 드라마이다. 한 번 손에 쥐면 블랙홀처럼 빠져드는 마력의 소설. 나는 별 다섯 개에 자신있게 별 다섯 개를 모두 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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