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소년과 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줄거리를 대충 보고 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처럼 소심하기 전 나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말괄량이였다. 남자, 여자 상관없이 모두 친구였고 초등학교 뒷담 넘어가 바로 우리 식구가 살던 셋방 집이었다. 원래는 담 넘어 초등학교에 갈 수가 없지만, 한창 공사 중인 초등학교 담에는 모래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집 앞으로 난 담에는 손수레가 담 사이에 세워져 있어서 친구들과 난 그 손수레를 밟고 담을 넘어 모래로 착지해 학교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놀이기구가 많은 학교에서 신나게 놀며 저녁 시간이 될 때면 부모님 몰래 다시 모래를 밟고 손수레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고 풋풋했던 나의 첫사랑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그 시절 중 유일하게 생각나는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난 책을 펼쳤다.

주인공인 스스무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아사기 켄타로 아저씨의 초대로 롯코 산에 있는 별장으로 여름 방학 때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형과 같이 초대를 받았지만, 고등학생인 형은 입시 준비로 혼자 긴 여행을 하게 된 스스무. 그곳에서 자신과 동갑이 아저씨의 외동아들인 카즈히코와 우연히 표주박 연못에서 수련 꽃을 누가 먼저 맞추느냐는 내기로 돌멩이를 던지게 되고 갑자기 나타난 어느 소녀로 말미암아 그 내기는 중단된다. 자신을 연못의 요정이라고 말하는 카오루를 만나면서 지루하기만 할 것 같은 그들의 여름 방학은 그녀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재미있는 여름 방학이 된다.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때 정말 크게 실망했다. 무슨 책이 이렇게도 얇은지 몇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을 것만 같았고 책이 이렇게 얇은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을지부터가 걱정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편견이었다. 순식간에 책의 마지막 장까지 갔지만, 난 도저히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범인이 누구인지 갈피를 잡지도 못했다. 그리고 역자 후기에서 나온 말대로 다시 앞 장으로 펼치면서 감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앞 장에서부터 차근차근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을 읽었고 난 내 무릎을 쳤다. 그때야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역자는 번역하며 다 읽고 다시 한 번 앞 장을 펼쳤을 때 알았다고 하는데 난 두세 번을 차근차근 읽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되었고 책이 얇다고 무시한 내가 괜히 쑥스럽고 민망했다.

책은 얇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도 없는 이야기였고 중간마다 깔린 복선은 나의 머리를 한순간 바보로 만들었다. 내가 처음부터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범인이 아니었고 상상도 못한 범인과 추리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어 그 충격으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두 소년과 한 소녀의 풋풋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어른들의 비밀스런 이야기까지.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추리 소설과 순수문학을 동시에 읽게 되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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