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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꽤 많은 책을 읽었는데..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은 정말 난해한 책이라고 밖엔 할말이 없었다. 주인공은 16세기 후반에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 이교도 철학서 사본인 '헤르메스 선집'을 접하고 매료된다. 그는 아퀴나스가 예수 이전의 시대로서,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철학적 체계를 신학으로 끌어왔던 것처럼 자신도 이교도의 사상을 신학으로 풀어내겠다는 다분히 배타적인 자세로서, 완본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된다.
잠시 머물게 된 마을에서 연금술사인 한 남자와 조우하고 그의 됨됨이와 지적탐구에 감동해 가깝게 지낸다. 그 연금술사는 신학이라는 1가지만을 맹신하는 주인공에게 좀더 넓은 안목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소설의 결말에 이르러 이단으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마을에 갑작스레 천재지변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은 연금술사가 숨겨놓고 있던 안드로규노스는 화형을 처형한다. 그 순간, 태양이 한쪽부터 서서히 그늘이 지더니 기어이는 완전한 검은 태양, 즉 '일식'이 일어난다. 사실 현대인들에게는 단순히 흥미로운 일에 지나지 않지만 그당시에는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일, 기적임에 틀림없다. 나는 사건의 마무리도 지켜보지 못한채 연금술사가 남긴 책과 함께 도망치듯 파리로 돌아온다.
한편의 소설 속에 이토록 많은 수사와 난해하기 짝이 없는 한, 고문을 인용하는 능수능란함, 어휘가 담겨진 것에 대해 몇번이고 놀랐다. 일일이 뒤에 있는 뜻풀이를 보는 수고로움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만 있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책은 처음이다. 여러 날을 되풀이해 읽었고 솔직히 제대로 읽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운만큼 읽고 난 후는 말할 수 없이 꽉 찬 느낌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그때는 좀더 선명한 무언가를 볼 수 있으리라. 히라노 게이치로의 새로운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