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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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불행이 작정하고 이들에게 덤볐다고 오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배운 것은, 비정상적인 외모가 흉함을 만들지 않고 불행이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에 무너지지 않고 마음의 격을 지킨다는 것.
특별히 기억나는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이미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런데도 매일 노래를 불렀다. 다른 병실에서도 우렁찬 목소리가 넘어올 정도였다. 어느 날은 내게도 노래를 불러보라 권했는데, 쑥스럽고 생각나는 곡도 없어 거절했다. 가슴속에 노래를 간직하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이의 차이였을 것이다. - P32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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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속으로 이 사실을 곱씹었다. 광선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무엇을 떠오르게 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 P201

사고란 마음속으로 소리없이 말하는 과정이었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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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진료실의 문이 열린다.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의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이 걸어 들어온다. 나는 그 시간에 공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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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이 용무차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단 한 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 깔린 의미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부근을 산책하는 젊은 커플의 경우에는 한쪽의 흠모가 상대방의 묵인에 튕겨나오고 있다. 상사를 두려워하는 한 비즈니스맨에게서 깜박거리던 불안은 좀 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면서 고정화된다. 어떤 여자는 짐짓 세련된 분위기를 몸에 두르고 있지만, 진짜로 세련된 여자가 옆을 지나가자 그 허상이 벗겨지고 만다.
언제나처럼, 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더 성숙한 인간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내 눈에 이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애들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의 진지함을 재미있어하고, 과거에는 나도 이들과 똑같이 행동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창피해한다. 이들의 행동은 이들 입장에서 볼 때는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도저히 그런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 성인이 되면서 유치한 일들과는 인연을 끊은 것과 같은 문제이다. 이제 보통 인간들의 세계와의 접촉은 오로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분에만 한정시킬 작정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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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느리게 달릴 때 매일 달릴 수 있고, 매일 달릴 때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다. - P228

왜냐하면 그로부터 백여 년 뒤인 1981년 2월 25일 눈이 내린 나가사키 공항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도착할 테니까.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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