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일기장 - 백문백답으로 읽는 인간 다산과 천주교에 얽힌 속내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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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서구 기독교는 인생을 '영혼 만들기의 골짜기'로 바라본다. 고난과 시련을 우리의 영혼을 담금질하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서학을 믿었던 다산 정약용 역시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가령 작가 한승원은 소설 《다산》에서 결국 천주교 신앙이 다산의 삶을 구원했다고 본다. "하느님과 늘 함께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으며, 절망과 허무 속에 빠지지 않고, 내 몸과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올바르게 다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다산의 일기를 읽고 나면 생각이 또 바뀔 수 있다.

다산이 정조대왕의 울타리 안에서 벼슬 생활을 하던 사환기는 28세 때부터 38세 형조 참의를 시작할 때까지다. 삼십 대 초반이던 다산은 총 네 편의 일기를 남겼다. 〈금정일록〉(1795년 7월 26일~12월 25일), 〈죽란일기(1796년 1월 17일~3월 30일), 〈규영일기〉(1796년 11월 16일~11월 17일), 〈함주일록〉(1797년 6월 20일~윤6월 6일)이다. 모두 정식 문집에서 누락되어 있는 기록이다. 시기적으로는 1795년 7월 금정찰방 부임으로부터 1797년 윤 6월 초 곡산부사 부임 직전까지 근 2년간이다. 다산이 33~35세에 해당하는 시기다.

다산 일기의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실만 나열한 건조한 문체라는 점, 다른 하나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긴 문건이라는 점이다. 수첩처럼 객관적 사실 기술만 있고 일기 특유의 내밀한 술회나 심경 고백이 거의 없다. "필요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겨 훗날의 증빙으로 삼기 위한 비망록의 성격이 강하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말 다산의 일기에 딱 들어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노론은 물론 남인 내부의 공서파로부터 이가환, 이승훈과 더불어 '사학삼흉'으로 지목되어 벼랑 끝에 내몰린 다산이었기에, 그의 일기는 철저한 자기검열과 추후 편집이 들어간 정치적 텍스트였다. 가령 매부 이승훈의 이름을 직접 호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늘 '이형'으로만 표현하는 등 글의 표현이나 호칭을 다듬었고, 편지나 시문 등 참고할 만한 자료를 나중에 추가해서 실었다.

그동안 다산을 유학자, 사상가, 교육자, 예술가 등으로만 알고 있었던 일반인이라면, 네 편의 일기에 투영된 노련한 정치적 수완가의 모습에 위화감을 가질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의 다산은 남인 권력 실세의 비서진이자 행동대장이었다.

저자는 일기의 건조한 서술 맥락과 행간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문헌을 참조했다. 가령 《다산시문집》과 〈변방소〉〈도산사숙록〉〈서암강학기〉 같은 다산의 글은 물론, 반대 진영인 반서학파의 문집인 이재기의 《눌암기략》과 강세정의 《송담유록》, 그리고 《정조실록》《일성록》《승정원일기》 등이 일기의 암호를 풀기 위한 참고자료로 쓰였다. 책 말미엔 부록으로 〈변방소〉와 〈도산사숙록〉의 원문 전체를 번역과 더불어 첨부했다.

〈금정일록〉을 독해하면 다산에게 주어진 세 가지 과제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바로 천주교도 검거, 서암 봉곡사 강학회, 그리고 〈도산사숙록〉 정리다. 셋 모두 면죄부를 얻기 위한 철저한 계획의 일부였다. 열흘간 지속된 서암강학회는 성호 이익의 방대한 유고 뭉텅이 가운데 관혼상제의 예법을 다룬 《가례질서》를 콕 집어 정리했다.

"다산은 금정 시절 그 지역 천주교도의 중간 리더인 김복성 등을 체포하고, 지도자 이존창을 직접 검거하는 등 천주교 탄압에 앞장섰고, 이도명 등 지역 선비들의 강한 반발과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서암 강학 모임을 추진했다. 또 〈도산사숙록〉을 통해 퇴계에 대한 존모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정학 회귀를 천명하는 등 안팎으로 줄곧 서학 관련 혐의 세탁에 온통 힘을 쏟았다."(35쪽)

다산은 정말 온몸으로 삼중고를 치렀다. 노론과 남인의 극심한 당쟁 대립이 하나요, 성리학 신념과 천주교 신앙의 갈등이 둘이요, 정조대왕과 서학 지도층 사이를 오간 비밀 요원(이중스파이) 노릇이 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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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천국에 산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지음, 손화수 옮김 / 레디투다이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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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을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닫힌 행복'과 '열린 행복'이다. 요리에 비유하면, 닫힌 행복은 레시피대로 잘 나온 요리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맛이 특색이다. 반면에 열린 행복은 레시피가 아니라 방송프로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다소 불확실한 식재료를 사용해 맛있게 만든 요리에 해당한다. 예상하기 힘든 반전의 맛이 특색이다.

다시, 여행에 비유해 본다면, 닫힌 행복은 여행 스케줄대로 착오 없이 매끄럽게 진행된 편안한 여행을 말한다. 반면에, 열린 행복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인연 따라 기분 따라 발길 따라 조우하게 된 뜻밖의 설렘과 긴장이 있는 그런 여행을 말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행시킨 '소확행'도, 만약 모닝커피나 오후의 밀크티처럼 매일 의례처럼 진행되는 소확행이라면 닫힌 행복에 해당하고, 우연성에 기댄 돌발적인 소확행이라면 열린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의 지속성에 따라 구분한다면, 닫힌 행복은 잔잔히 지속되는 가벼운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면, 열린 행복은 짧고 강렬한 쾌락이나 희열감이라고 하겠다.

노르웨이의 사회인류학자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이 행복을 화두로 잡았다. 췌장암 말기를 선고받은 직후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절감하면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대폭 줄어든다. 저자는 행복의 본질을 탐구한 방대한 문헌을 두루 참조하는데, 나는 왜 저자가 자신이 일상에서 만끽하는 행복한 순간에 대한 감상이나 신변잡기적 에피소드가 적은지 좀 의아해했다.

행복의 정의엔 객관적인 조건보다 주관적인 해석이 더욱 중요하다. 이기주의자의 행복과 이타주의자의 행복이 결이 다른 것처럼, 개인주의자의 행복과 공동체주의자의 행복도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진화생물학자의 행복과 사회인류학자의 행복도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생물학적 기본 욕망의 충족에 기댄 행복론이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자의 단순한 양적인 행복론에 반대한다. 하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행복론은 여전히 부정신학의 경우처럼 불명확하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이 그나마 진지한 행복 연구의 합리적 결론처럼 다가오지만, 그것 역시 '그런 건 진짜 행복이 아니야' 수준의 거친 마무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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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임의 백년 밥상 - 50년 한식 대가가 정리한 참 귀한 사계절 레시피
이종임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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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입맛을 돋우는 제철 요리가 있다. 요즘은 주꾸미와 냉이가 딱이다. 머리에 알이 든 주꾸미를 볶음이나 구이나 무침이 아닌 사브사브용으로 해먹어도 무척 맛있다. 머리에 든 알이 찰밥처럼 꼬들꼬들 맛난다. 냉이는 보통 무치거나 국으로 먹곤 한다. 그리고 제철은 아니지만 코스트코에서 파는 손질된 냉동 오징어도 여러모로 편리하다. 일곱 마리 중에 두 마리는 볶음으로 해서 매콤하게 먹고, 다섯 마리는 오징어 무국으로 끓여 시원하게 먹는다. 가끔 남은 주꾸미 볶음에 숙주나 콩나물을 넣어 볶음밥으로 해서 먹기도 한다. 주꾸미제육볶음도 정말 맛있다.

요리연구가 이종임 여사는 한국 가정식의 대가다. 이번에 신간으로 계절별 요리책 《이종임의 백년 밥상》(메가스터디북스, 2025)을 펴내셨다. 저자는 봄이면 냉이된장국이, 여름에는 오이냉국이, 가을에는 전어회무침, 겨울에는 동태찌개가 절로 떠오른다고 말씀하신다. 개인적으로 어류를 즐기지 않아서 언급하신 가을겨울의 별미를 맛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유튜브 채널도 있는데, 이름이 '이종임 스타일 채널'이다. 50년간 전통 한식 맛을 지켜온 장인이 알려주는 168개의 레시피가 동영상과 글로 있어 초보자도 한식 명인의 솜씨를 제대로 배워볼 수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 가족이 최근 자주 먹는 식재료가 냉이, 주꾸미, 오징어다. 이 책엔 냉이덮밥, 냉이김칫국, 미나리주꾸미무침, 주꾸미양념구이, 주꾸미제육볶음, 오징어찌개, 오징어채소전, 오징어초무침, 오징어채볶음 레시피가 나온다. 또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별미로 소갈비찜, 매콤소갈비찜, 즉석불고기와 고깃집쌈장, 떡갈비와 토마토소스떡갈비, 소고기장조림, 완자전, 소고기사과카레덥밥, 매운돼지갈비찜, 닭볶음탕, 닭다리채소구이, 연어솥밥, 황태고추장구이, 황태찜, 갈치김치조림, 고등어시래기조림, 멸치볶음, 잡채 등을 소개한다.

내가 한식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게 육개장과 비빔냉면인데, 내 레시피와 비교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름 매우 맛있는 육개장을 할 줄 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애호박은 단 한 번도 넣어 본 적이 없다. 저자 레시피엔 애호박이 들어가는데 4인분이라는 적은 분량이라 그런 것 같다. 비빔냉면의 비빔장에 배양파즙과 까나리액젓을 쓰는 것도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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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 프란치스코 교황 최초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지음, 염철호 옮김 / 윌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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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고위 성직자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종교 지도자, 266명의 역대 가톨릭 교황 가운데 가장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 바로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시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이주민, 가난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병든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시고, 교회 내부를 비롯해 모든 폭력에 대한 저항과 평화에 대한 사랑을 강력히 실천하고 계신다.

한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교황님이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두 분이 아닐까 싶다. 두 분 모두 한국을 방문해 한반도의 평화를 축원해 주셨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해 1984년 5월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당시 신앙심이 충만했던 초등학생이던 나는 여의도광장에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때 거룩한 하얀 십자가가 수놓아진 광장의 푸른 하늘이 기억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하셨는데 그 광경은 TV 중계를 통해 지켜보았다. 직접 뵙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보다 훨씬 친근하게 느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인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이기도 하고ㅡ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프란치스코 평전을 읽고 벅찬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인 최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님이 바티칸에 계시기 때문에 그런지 한결 정겹게 느껴진다.

『나의 인생』(윌북, 2025)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초 공식 자서전이다. 서점에 가면 『희망』이란 큼직한 자서전이 종교 신간 매대를 차지하고 있어 둘 중 어떤 책이 정말 '공식 자서전'인지 살짝 혼선이 오기도 한다. 뭐 여유가 된다면 두 권 모두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래도 비닐 커버로 밀봉한 벽돌책보단 지금 내 앞에 놓인 교황님의 인자하신 미소가 표지인 이 작은 책이 더 나아 보인다.

『나의 인생』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바티칸 전문기자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의 대화를 정리한 기록으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교황의 본명)의 성장기를 직접 들려주는 교황님 목소리와 당시 상황과 배경을 설명하는 보조자 역의 라고나의 목소리가 번갈아 등장한다. 교황님은 88년의 세월 동안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셨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냉전과 매카시즘, 비델라의 군사 쿠데타, 베를린 장벽 붕괴, 글로벌 경제 위기,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그러하다.

교황은 인생 이야기를 통해 신앙, 가족, 가난, 종교 간 대화, 스포츠, 과학적 진보, 전체주의, 평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견해와 입장을 피력하신다. 교황은 복음서처럼 개인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강조하신 바 있다. "인생 이야기는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작고 단순한 것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복음이 말하는 것처럼 바로 그 작은 것에서 위대한 것들이 탄생합니다."

또한 권력 남용으로 말미암은 폭력은 물론, "모든 폭력을 거부해야 합니다"라는 교황님의 강한 어조에서 친위쿠데타로 인해 난장판이 된 한국 사회의 오늘을 떠올리며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시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을 말살하려던 한 권력자의 거친 폭력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라는 교황님 말씀이 우리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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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스피치 스피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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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불은 지성과 문명의 상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큰어른 가운데 지성의 햇불을 가장 높이 들어 사회를 환하게 밝혀준 자유사상가로 능소 이어령 선생을 꼽을 수 있다. 내 눈에 능소 선생은 열성적인 '불의 멘토'이셨다. 한 전통 지혜에 따르면, 노련한 불의 멘토는 통찰의 불, 마음의 불, 창조의 불, 영혼의 불을 각각 지피게 된다. 이 네 개의 불은 능소 선생의 전반적인 지적 여정과 잘 맞물린다. 가령 《지성의 오성길》이 '통찰의 불' 시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마음의 불' 시기,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하고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것은 '창조의 불' 시기에 해당한다면,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영혼의 불'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능소 선생은 생명, 지혜, 기쁨을 노래한 긍정의 지식인이자 죽음마저 가르침으로 남기신 불굴의 인생교사이시다. 이 책 《이어령, 스피치 스피치》(열림원, 2025)는 선생의 수많은 대중강연 중 기업 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아홉 편을 엄선했다. 농림수산식품부 특강(2010), 중앙공무원 교육 강연(2009),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총회(2009), 한국표준협회 대한민국창조경영인상 시상식 특별강연(2009) 등인데 저탄소 녹색성장과 창조적 상상력을 화두로 한 내용이 특색이다.

당시 녹색성장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전략이었다. 잘 알다시피, 경제와 생태는 전형적인 갈등 관계이고, 경제 원리와 정치 원리는 오랜 대립 관계다. 서구에서 GND(Green New Deal)로 불린 녹색성장은 녹색기술 개발을 통해 환경위기를 완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컸다. 강의록에서 자주 언급된 생명자본주의, 생체기술, 바이오미미크리, 세미오시스, 창조적 상상력 등 모두 "위기를 넘어 새로운 판을 짜는 비전"의 맥락에서 나온 주요 단어들이다.

한국인은 독창적인 뭔가가 있다. 세계인이 한글과 K문화에 빠져드는 이유다. 한국인이 가진 창조적 상상력은 연원이 깊다. 가령 배달문화는 한국인이 유목민이면서 농민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문화다. 농처럼 '배달의 민족' 운운하지만, 기마민족의 DNA와 농경민족의 DNA를 함께 갖고 있기에 이같은 배달문화가 흥할 수 있었다. 벼농사를 짓는 동아시아 민족 가운데 누룽지와 숭늉 문화가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도 일본도 베트남도 누룽지를 먹거나 요리로 활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바꾸어 버리는 한국인 특유의 창조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질적인 혹은 대립적인 요소를 결합시킨 비빔밥 문화나 디지로그적인 사고 역시 그러하다. 한국인의 이런 융합적 사고와 통섭 효과엔 대륙과 해양 문화의 회색지대라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도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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