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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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 갈등, 이념적 양극화, 극단주의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놓고서도 매우 정치적인 편향성을 띈 갈등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증언문학의 역작인《소년이 온다》(2014)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는데, 극우적 역사관을 지닌 일부 트롤팜이 노벨상 수상 작가의 역사 인식을 문제시하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 케케묵은 색깔 논쟁을 선동질하고 있다. ​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갈등'과 '양극화'를 구분한다.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기고, 갈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가령 '갈등 관리'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한다. 안 된다. 말다툼이나 법정 소송 같은 갈등 상황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명확히 나뉜다. 하지만 양극화 상황은 그런 문제소지자를 콕 집어내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양극화의 책임자와 핵심 주체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데, 이게 이른바 '양극화 관리'의 걸림돌이다. ​ 양극화 현상은 그 자체로 역학과 원리가 있다. 양극화의 핵심은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보편적인 양극화 역학은 좌, 우, 중도 세 가지 다른 인식이나 입장을 형성해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긴장이 형성되며, 그 사이에는 중도라는 중립적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극화 상황의 해소법은 중재 언어나 중재 행동을 통한 '중도를 지키는 법'이다. 여기엔 '버티기'와 같은 전략도 포함된다. 양극화는 항상 정체성이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은 양극화의 주요 원료다. 결국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직감과 신념은 대립을 강화하고 입장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역할 그룹은 다섯이다. 바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다. 주동자는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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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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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실존철학을 곁에 두어야 한다. 나는 특히 '실존철학 삼총사'에 주목한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바로 그런 삼총사다. 셋 모두 우리 삶에 변화와 개혁을 불러올 자기성찰의 철학을 지향했다. 일반적으로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극복한 니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분류된다. 실존주의 삼총사의 철학은 오늘날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과 결부된 '철학 치료' 계보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니체 철학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푸코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들뢰즈의 존재론 등이 대표적이다.

철학자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능숙하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이데아(이상세계)를, 칸트는 현상세계와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세계와 의지의 세계를 구분했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려면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두어야 한다. 『니체 읽기의 혁명』(철수와영희, 2024)에서 저자 손석춘은 니체가 어떻게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수정하고 보완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가령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우주의 본질이 '맹목적 의지'이고,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미적 관조나 연민, 금욕을 제시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허무한 '시계추 인생'을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영원회귀 우주론'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저자는 '영원회귀 우주론'과 '힘에의 의지' 같은 핵심 개념에 기대어 니체 철학의 혁명적 읽기를 제안한다. 그간 니체 철학을 반민주주의나 귀족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편향된 해석이 있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니체를 비루한 삶을 극복하고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는 주권자 개인으로서 창조적 삶을 권유했던 실천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니체는 위대한 명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허무주의, 모든 가치들의 전도, 운명애, 힘에의 의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초인(위버멘쉬, 극복인) 등 '삶의 건강성 회복'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소개한다. (나는 저자의 '극복인'보다 기존의 '초인'이라는 번역을 더 선호한다.)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초인 개념은 우리 삶에 질적 혁명을 불러 일으키는 삼대 원동력이다. 초인은 건강한 주체성과 창조적 삶과 밀접하게 결부된 자기실현 개념으로, 니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미래의 창조적 인간 예술가-철학자를 뜻한다. 저자는 초인을 창조적 삶을 발명하는 주권적 개인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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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관찰 - 곤충학자이길 거부했던 자연주의자 장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
조르주 빅토르 르그로 지음, 김숲 옮김, 장 앙리 파브르 서문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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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앙리 파브르는 위대한 과학자다. "철학자처럼 생각하고 예술가처럼 보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하는" 위대한 자연과학자였다. 파브르는 곤충과 식물, 버섯을 사랑한 철학자, 화가, 시인이었다. 가령 파브르는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과 교류했고, 세리냥의 '아르마스'(파브르의 집이자 연구실)에서 은둔하던 말년의 파브르는 "초자연적인 특징, 유기물의 복사 에너지, 인광, 빛, 위대한 보편적 에로스의 살아 숨 쉬는 상징 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올리브 재배 지역 균류에 대한 700여개의 세밀화를 남겼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파브르를 두고 '견줄 데 없는 최고의 관찰자'라고 예찬한 바 있는데, 파브르의 문장은 서정적인 자연주의 문체와 생태학적 비유로 '초록색 시학'의 경지에 달했다.

훗날 늘상 '곤충학의 아버지'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고, 당대에도 "곤충의 베르길리우스", "들판의 무수히 많은 작은 생물의 언어를 아는 훌륭한 마술사"와 같은 칭호를 받았지만, 파브르는 곤충학자 이전에 스스로를 박물학자로 여겼다. 맞다, 파브르는 소박한 취향과 야생의 자유로운 공간과 전원생활의 풍경을 사랑한 천재 생물학자였다.

『파브르 식물기』와 『파브르 곤충기』는 '자연의 경전'이다. 3년마다 한 권씩 출간, 도합 열 권의 『파브르 곤충기』가 곤충학의 성경이라면, 단행본 『파브르 식물기』 는 자연과학의 전도서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브르 곤충기』가 어린 동심을 곤충의 기묘한 세계로 이끈 친절한 안내서 성격의 과학 고전이라면, "식물은 동물의 자매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파브르 식물기』는 녹색 생명을 사랑하는 자연과학 꿈나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형태학적 지식을 넓혀준 과학 양서가 아닐 수 없다.

지구 환경 위기와 기후 재난이 극심한 요즘이다. 150년 전 평생 초록색 자연과 교감하며 지낸 파브르의 세심한 기록과 다정한 조언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어야 할 때다. 이 책 『위대한 관찰』(휴머니스트, 2024)은 자연주의자 앙리 파브르의 말과 삶을 담은 평전이자 회고록이다. 파브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명윤리, 과학탐구의 정신을 서정적인 문체로 잘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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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처가 사랑을 밀어내지 않게 하려면 -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심리 수업
저우무쯔 지음, 박영란 옮김 / 더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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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패턴은 반복된다. 사귐의 불씨가 헤어짐의 불씨가 되고, 결혼 사유가 이혼 사유가 되고, 연애 이유가 불륜의 이유로 이어진다. 대만에서 인기 있는 상담심리사 저우무쯔는 관계 패턴이 반복되는 원인으로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Intimacy Fear)을 지목한다.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에는 크게 여섯 가지가 있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 부족한 사람이라는 두려움, 배신과 기만에 대한 두려움, 순종해야 한다는 두려움, 통제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그것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보통 사람은 누구나 친밀감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싶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과, 상대방에게 무관심하고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 이 두 가지 전형적인 캐릭터는 자신도 모르게 친밀감의 두려움에 갇혀 있는 것이다."(20쪽)

관련 문항 체크 리스트를 보니, 나는 '통제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가령 "때로는 연애가 귀찮게 느껴지며 혼자 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때로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관계가 좋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나를 보살펴 주거나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 종종 부담스럽다." 등의 문항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음은 '사랑받지 못하는 두려움'이다. 일테면 "상대를 찾을 때 나는 가정환경이나 직업, 외모, 재능 등 특정 조건을 적용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포용하고 사랑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 노력하고 사랑하는 것이 상대방이 나에게 해주는 것보다 더 많다고 느낀다." 반면에 매우 흥미롭게도 '배신과 기만에 대한 두려움'은 관련 사항이 전무했다. 나만 이런가.

저자는 애착 이론의 관점에서 어린 시절 부모와 주 양육자 같은 중요한 사람들에게 받은 보살핌의 경험과 그들과의 관계가 이후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애착 유형은 안정형, 불안형, 회피형, 혼합형(혼란형) 네 가지다. 성장기에 부모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방임이나 학대를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다면 불안형 애착이나 회피형 애착 같은 불안정 애착 유형에 빠지기 쉽다. 관계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감을 회복하기 위해서 나름의 본능적인 전략으로 대응하기 마련인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생존전략'은 싸우기, 도망치기, 경직되기, 비위 맞추기 네 유형이다.

저자는 생존전략의 예로 일본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언급한다. 마츠코가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한 생존전략은 '비위 맞추기'다.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고 달래 주는 방식으로 대인관계의 두려움과 상실감을 극복하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하면 나는 안전하다'는 마츠코의 신념은 남자친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아간다. 마츠코는 나쁜 남자들에게 성모 마리아처럼 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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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사 - 표현하고 연결하고 매혹하다
샬럿 멀린스 지음, 김정연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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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미술평론가 샬럿 멀린스의 《예술의 역사》(소소의책, 2024)는 예술사 입문서로 제격이다. 일단 내용 전개는 예술 사조의 변천에 충실하다. 동굴 조각과 벽화 같은 선사시대 예술부터 출발해,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를 거쳐,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인상파를 정점으로 찍은 후에,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팝 뮤직비디오까지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주목할 만한 이 책의 특색을 하나 꼽는다면, 그동안 주류 예술사에서 자주 배제되곤 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애써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리다 칼로나 오노 요코 같은 몇몇 유명인들을 제외하면, 저자가 거론한 대다수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과 작품이 내겐 생소했다. 일테면 1850년대 로마에서 활동한 일군의 미국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데, 해리엇 호스머의 「쇠사슬에 묶인 제노비아」(1859년)와 메리 에드모니아 루이스의 대리석 조각 「영원한 자유(1867년) 등이 그러하다. 인상파 화가들을 논할 때도 여성 예술가 명단을 빼먹지 않는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같은 유명한 남성 화가들만이 아니라 베르트 모리조와 미국인 화가 메리 카사트 같은 여성 화가들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언급한다.

예술의 역사는 표현의 역사, 연결의 역사, 그리고 매혹의 역사다. 예술은 삶과 죽음을 표현하고 연결한다. 그리고 예술작품으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고 유혹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에선 인간의 기본 욕동으로 삶 충동과 죽음 충동을 강조했다. 이는 예술 사조에도 대입할 수 있는데, 그리스 예술과 고대 예술이 삶 충동에 기반해 현세를 긍정했다면, 이집트 예술과 중세 예술은 죽음 충동에 기반해 영원불변의 내세를 지향했다.

한편,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크게 전시 가치와 예식 가치로 구분한 바 있다. 전현대 예술은 예식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현대의 예술작품은 상품으로써의 전시 가치가 우선이다. 가령 선사시대에 프랑스 동굴 벽에 남겨진 들소 부조는 다산 의식이나 성인식 같은 통과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석기 시대 익명의 예술가가 창조한 들소 조각에서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동굴 미술은 의례적이면서 예술적이다. 현대 화가 알리 바니사드르에 따르면, 동굴미술 이래로 모든 예술은 마법에 관한 것이다. 예술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신비한 힘에 관한 것이다. 일테면 동물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샤먼이 동물의 혼령을 불러내는 데 쓰였을 수도 있고,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

예식 가치에서 전시 가치로 문턱을 확실히 넘은 이정표적 작품을 하나 꼽자면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년)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에세이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예술가란 "역사 속에서 유행이 담아내는 시적인 요소를 추출하고, 일시적인 것에서 영원한 것을 추출하는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는다"고 했는데, 마네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모던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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