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 살인
혼다 데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상력에도 맑고 탁함이 있다. 탁하고 어둑한 상상력의 막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르가 범죄 스릴러다. 특히 일본 작가 혼다 데쓰야의 엽기적인 범죄소설《세뇌살인》(북로드, 2024)은 상당히 오싹하고 역겨운 범죄 수법을 그리고 있는데, 한 맨션에서 일곱 명이 살해되고 해체된 잔혹 범죄를 다룬다. 나처럼 비위가 약한 분이라면, 독서의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고기를 잘 먹고 비위가 좋아도 식사 직후라면 이 책의 독서는 다소 무리가 아닐까 싶다.

땅딸막한 몸집의 곰 같은 느낌을 풍기는 남성 범죄자가 등장한다. 소설 속 묘사에 따르면 기생적인 착취형 스타일이다. 독자는 범죄 수법의 잔인함에 한 번 놀라고, 공범이 피해자면서 가해자이기에 두 번 놀라고, 2002년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존속살인 '기타큐슈 일가족 감금살인사건'을 재구성한 이야기라고 해서 세 번 놀란다.

핵심 범인은 마쓰나가 후토시라는 남자인데, 남자의 끊임없는 조종과 세뇌에 시달리던 일가족 일곱 명이 서로를 학대하고 죽인 후 시신을 해체했다고 한다. 마치 미스터리 공포영화처럼 끝나도 끝나지 않은 듯한 찜찜함과 오싹함이 남는데, 이를 '범죄의 세습' 혹은 '범죄의 학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범행(살인상해) 장소는 선코트마치다 맨션 403호. 생존자는 고다 마야(17세), 용의자는 아쓰코(하라다 유키에)라 불리는 여성이다. 맨션 임대인은 마야의 아버지 고다 야스유키다. 소설에선 마쓰나가 후토시에 해당하는 인물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둘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우메키 요시오라는 신원 미상의 남자가 유아사 메구미의 일가족과 하라다 유키에의 가족들을 조종하고 세뇌하고 고문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한 핵심 인물이라면, 세이코의 친부인 나카모토 사부로는 원흉 요시오(다케이 노부오)를 처단한 복수혈전의 인물로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 정렬
사라 워터스 지음, 신예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심리치료도 유행을 탄다. 한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보다 있어보이는 빅워드 '트라우마'가 스트레스라는 상투어를 대신한다. 물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동의어처럼 사용해도 무방하다. 트라우마란 "우리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어떤 사건이나 오랫동안 이어지거나 반복되는 사건의 패턴"을 말한다. 이런저런 스트레스처럼 트라우마 역시 그 스펙트럼이 엄청 넓다.

불안과 트라우마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심리치료사 사라 워터스는 트라우마를 크게 '빅 트라우마'와 '스몰 트라우마'로 나눈다. 나누는 기준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의 유무다. 일테면 빅 트라우마는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위협이 실재하거나 감지되는 고통스러운 사건"을 말한다. 가령 신체 폭력, 교통사고, 파괴적인 자연재해가 대표적이다. 한편, 스몰 트라우마는 "생명이나 안전에 대한 위협이 반드시 실재하거나 감지되는 것은 아닌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한다.

저자가 비록 실직, 배우자의 외도, 왕따, 정서적 학대 등을 스몰 트라우마 범주에 넣고는 있지만, "스몰 트라우마가 빅 트라우마보다 더 파괴적으로 느껴지고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 현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형이 대개는 이런 스몰 트라우마일 것이다. 반대로 코로나19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빅 트라우마에 해당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적인 감기와 다를 바 없이 그냥 가볍게 스쳐 지나가 트라우마라는 말조차 갖다붙이기 미안할 정도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경험은 트라우마를 일으키지 않는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 내면에 쌓인다"고 강조한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마음과 신체, 정신을 파고들어 심리적으로 축적된다.

"트라우마에는 우리의 가장 명료하고 건강한 인지 기능, 정서 기능, 신체 기능, 그리고 행동 기능을 서서히 갉아먹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변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남아있는 고통과 상처는 우리의 자의식을 산산조각 낼 수 있다. 남은 고통과 상처는 현재의 우리와 과거의 우리가 다르다고 느끼게 만들거나 한때는 이끌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 삶을 지금은 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들 수 있다."(101쪽)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법으로 안구운동 둔감화 재처리법, 전신 및 에너지 요법, 신경 피드백, 신체 감각 움직임 요법 그리고 사이키델릭 보조 심리치료법 등과 같은 게 있는데, 이에 대해 일일이 상술하진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로라
데이비드 켑 지음, 임재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기는 문명의 상징이다. 어쩌다 정전을 알리는 고지가 뜨면 대뜸 냉장고와 수도부터 걱정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는 전날 새로이 아이스크림 같은 냉동식품을 채워놓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전은 대개 두 시간 정도이지만, 뜻하지 않은 전력시설 고장으로 인해 시간이 늘어날 때도 있다. 살짝 열불이 일지만 그래도 그나마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이다. 그런데 만약 아파트 단지나 지역 차원이 아니라 국가나 전지구적 차원의 정전 사태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야말로 재난영화가 따로 없다. 어쩌면 재난 자체는 오히려 평화로울 수도 있다. 재난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지옥같을 지도 모른다. 모두가 살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고 냉혹한 짐승이 되어가는 끝없는 추락 자체가 아수라일 것이다. 폭동과 약탈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다. 생존하려면 필사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미국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캡의 장편소설 《오로라》(문학세계사, 2024)는 전력이 무너진 세상의 아비규환을 다루고 있다. 지구의 전력망을 붕괴시킨 것은 태양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자기 폭풍이다. 평균적으로 150년마다 한 번씩 대형CME(코로나 질량 분출)가 지구를 강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지구인들은 태양과 지구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전력망의 붕괴로 전 세계가 암흑 천지로 돌변하고, 불을 기반으로 한 현대 문명은 순식간에 마비된다. "아무 것도 되는 게 없을 때는, 오히려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재난 시국에는 이런 마음가짐도 중요할 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컬트의 모든 것 - 신비주의, 마법, 타로를 탐구하는 이들을 위한 시각 자료집
피터 포쇼 지음, 서경주 옮김 / 미술문화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신비하고 기묘한 학문을 좋아한다. 관상술, 마법, 연금술, 수상술, 점성술, 카발라 등이 대표적인 그런 신비 학문인데, 이를 서양에서는 '오컬트'라 부른다. 오컬트는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현상"을 말한다. 오컬트라는 말이 파생된 라틴어인 오쿨투스는 '불명료한' 혹은 '감춰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근대성'을 마법적 사고의 종식으로 간주한 바 있는데, 오컬트는 그런 마법적 신비학의 모든 것을 망라하는 전근대적 상상력의 총체가 아닐까 싶다.

동양 사상이 목화토금수 오행을 강조한다면, 서양 신비학의 기본은 흙, 물, 공기, 불 4대 원소다. 점성술의 황도 12궁도 4대 원소 따라 분류된다. 일테면 백양궁의 원소는 불, 금우궁의 원소는 흙, 쌍자궁의 원소는 공기, 거해궁의 원소는 물이다. 내 별자리를 예로 들면, 마갈궁인데 원소는 흙이고 토성의 지배를 받는다. 점성술이 근대 천문학의 시작점이라면, 연금술은 근대 화학의 원형이라고 하겠다. 연금술사는 구리, 철, 주석, 납, 수은 같은 값싼 금속을 은이나 금 같은 귀금속으로 바꾸는 비법을 추구했다. 뿐만 아니라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영약을 만들려는 희망으로 연금약액과 현자의 돌을 찾아 나섰다.

카발라는 프로방스와 스페인 북부에서 처음 등장한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의 한 형식이다. 히브리어로 카발라는 보통 '승인', '승인된 설화' 혹은 '구전으로 승인된 교리' 등으로 번역되며, 크게 유대교 카발라와 기독교 카발라로 양분된다. 유대교 카발라는 모세와 아브라함, 심지어 아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비밀스러운 교의 전승이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야훼를 만나는 동안 거기서 십계명 외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것이 신지학적, 예언적, 실천적 카발라가 되었고, 나중에는 기독교 카발라로 발전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라는 베스트셀러 - 나에게서 시작하는 특별한 글쓰기 수업
루타 서페티스 지음, 이민희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요한 건 이야기다. 그리고 당신이 곧 이야기다. 당신의 하루, 일 년, 인생 전부가 움직이는 이야기다. 리투아니아계 미국 작가 루타 서페티스의 말대로, "개개인의 삶은 굴곡진 플롯, 고유한 배경과 보이스, 수많은 등장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정말 알고 싶은가? 비결은 당신의 경험에 있다. 상큼하고 반짝이는 경험보다도 이불킥을 부르는 실패, 상심, 실수가 더 좋은 소재가 된다. 화학실의 미친 과학자처럼 어제의 경험을 연구 과제처럼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일기와 사진, 편지, 오래된 청구서나 영수증, 철 지난 달력 등이 당신 연구의 디테일을 도울 것이다.

과학자의 실험도구에 해당하는 것이 작가에게는 감정과 상상력이다. 감정과 상상력은 강력한 글쓰기의 원천이다. "진정으로 인상적인 글을 빚어내려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성찰을 이야기의 구성 요소에 불어넣어야 한다." 이야기의 구성 요소란 플룻, 인물 설정, 보이스, 관점, 배경 등이다.

"매력적인 플롯은 독자를 흥미로운 배경, 엄청난 비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 속으로 초대한다." 인물 설정은 구체성과 리듬이 있어야 한다.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의 원형을 빌어, 열두 가지 캐릭터를 구상해볼 수도 있다. 가령 순수한 자, 방랑자, 마법사, 광대, 영웅, 창조자, 연인, 돌보는 자, 반항아, 지배자, 평범한 자, 현자 등이 대표적이다. 인물은 개성과 리듬 뿐만 아니라 행동과 결단의 계기가 되는 과거가 있다. 설명하기 대신에 보여주기 방식으로 인물을 묘사해야 한다.

보이스는 "작품에 드러나는 뚜렷한 특색과 고유의 스타일"을 말한다. 크게 '작가 보이스', '화자 보이스', '장르 보이스' 세 가지로 나타난다. 작가 보이스는 작가 특유의 손금과도 같은 스타일을 말한다. 가령 제인 오스틴이나 로알드 달의 독특한 문체 말이다. 화자 보이스는 화자나 주인공의 개성 넘치는 리듬이나 분위기와 연결된다. 가령《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가 그러하다. 장르 보이스는 특정 장르에서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어 해당 장르의 대명사가 된 작가 스타일이다. 가령 서스펜스의 스티븐 킹, 추리의 애거서 크리스티, 흑인 문화의 토니 모리슨, 자연주의의 메리 올리버 등이 대표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