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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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연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 문득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란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불륜과 외도를 묘사하는 구절로 이만한 것도 없다.

범죄소설에 불륜은 흔한 소재다. 변태적인 엽기살인범 소재 만큼이나 흔하다.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 범인의 특정도 베테랑 경찰에겐 그리 어렵지 않다. 부인이 살해되면 남편이나 제3의 연인이, 남편이 살해되면 아내나 제3의 연인이 제일 먼저 지목된다. 제3의 인물이 나오는 이유는, 간식을 좋아하는 바람둥이가 한가지 간식만 고집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는 말그대로 도처에 바람을 피우고 다닌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불륜은 냄새를 피우는 법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상간남녀 둘만 다른 이들은 전혀 모를 거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런 둘만이 공유하는 착각이 마치 '스파이 놀이'처럼 불륜 특유의 자극적인 재미와 흥분을 키워준다.

불륜이 일어나는 계기는 불행한 결혼생활이 아니다. 불륜과 외도가 이혼사유 일순위이지만, 불륜은 정작 가정 불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자상하고 착하고 조건 좋은 남편과 아내를 두었다고 해서, 당사자가 아이와 자녀를 무척 사랑한다고 해서, 불륜이 예방되거나 방지되는 것이 아니다. 불륜과 외도는 언제나 이미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이해의 선을 넘어선다.

불륜은 혐오감을 일으킨다. 제3자라 하더라도 일단 직장이나 이웃에서 누군가 피우는 바람의 냄새를 맡게 되면 절로 눈쌀이 찌푸려진다. 나까지 오염된 듯, 불결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불륜의 문턱에 들어설 때부터 개인이 지닌 도덕과 윤리는 기능을 상실한다.


죄책감을 보이는 상간자는 드물다. 그래서 나는 소설 화자 리케의 목소리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웃집 남자 요르겐이 살해당했는데, 정작 리케는 남편과 자녀를 속이고 요르겐과 바람을 피우고 있던 내연녀이기 때문이다. 거주하는 아파트가 헌팅포차인 셈이다. 어차피 경찰 수사로 조만간 탄로날 것이기에, 리케는 적어도 사건 해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사팀장에게 불륜 사실을 털어놓는다. 문제는 불륜을 즐긴 과정을 고백하는 리케의 문학적인 서술이 읽기 거북하고 불편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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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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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유배지, 감옥, 병원. 살벌한 이 네 곳에서 주옥 같은 글들이 터져 나온다. 생과 사의 경계를 대면한 이들이 남긴 글은 영혼의 깊은 샘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시공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안을 건네기도 하고 삶의 이정표가 될 만한 찐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천연두가 창궐하고 기아와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사유의 꽃이 『명상록』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밤마다 이런 내면 일기를 써가면서 평정심을 다스리고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처럼 말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나의 첫 번째 인생멘토다. 사색, 회의, 성찰, 대화 같은 철학의 벽돌을 쌓는 법을 아우렐리우스에게서 처음 배웠다. 세네카와 에픽테토스 같은 다른 유명한 스토아철학자들은 훨씬 나중에야 접할 수 있었다.『명상록』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후, 40년 동안 가까이 했으니 이젠 그가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대학원생 시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힘들게 간병하며 그리스어 원전으로 된 『명상록』을 읽었다고 한다. 역시, 스토아철학이 애초에 역경과 시련에서 태어난 실천적 사유의 산물인 만큼, 언제나 지치고 난감한 이들에게 적절한 용기와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책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위즈덤하우스, 2024)은 저자가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고 추려낸 『명상록』의 소중한 글들과 감상이 담겨 있다. 지친 삶을 다독이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무너진 인생을 다시 일으킬 만한 용기를 주는 글을 찾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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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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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슬픈 노래는 거개가 러브 스토리다. 죄다 '이토록 슬픈 나의 사랑' 타령이다. 고독한 영혼의 마구 퍼주는 사랑, 고약한 영혼의 일방적인 사랑, 사악한 영혼의 짝사랑. 어쩌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짝사랑, 무조건적 사랑, 바보 같은 사랑, 미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역작《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 2024)는 바로 그런 구슬픈 발라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를 우리 귓가에 들려준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개인적 차원에선 갑작스런 짝사랑을 비극적인 삼각구도(미스 어밀리어→사촌 라이먼→전남편 마빈 메이시)로 그려내고, 사회적 차원에선 미국 남부 가난한 백인 직공들의 신산한 삶을 음울하게 스케치한다.

우선 카페가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인지 묻게 된다. 카페는 한마디로 힐링장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바다를 비추는 고마운 등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치유의 카페다. 카페는 외로운 사람들, 울적하고 불행한 사람들, 기분이 엉망인 사람들이 찾아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감미로운 술과 음식, 자잘한 수다와 얕은 친밀감, 카페 특유의 흥겨움과 우아한 분위기 덕분이다. 고된 일과를 마친 가난하고 나른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안전지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페는 여주인 미스 어밀리어에겐 '사랑의 시간'이었다. 카페의 존재가 바로 사랑의 증표인 셈이다. 경박스런 꼽추 라이먼 윌리스에 대한 그녀의 콩깍지 사랑이 무미건조한 생필품 가게를 우아한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는 숙녀나 미녀, 요녀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국가대표 럭비 선수처럼 육척 장신에 힘이 센 여장부 스타일이다. 장사 수완이 좋아 돈버는 재주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색하며 때때로 야비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약초로 치료해주는 선량한 면도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법한 그런 어밀리어가 자신의 친척을 사칭하는 사기꾼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어밀리어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어쩌다 굴러온 이 천덕꾸러기를 지극정성 보살피고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꼽추 라이먼은 정작 어밀리어의 전남편이자 꽃미남 부랑아인 마빈 메이시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후 껌딱지처럼 사생팬처럼 마빈 메이시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 사이를 교활하게 이간질한다. 어밀리어는 눈엣가시인 마빈 메이시를 수차례 독살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의 정식 결투가 벌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결투 장면이지 싶다. 꼽추의 비열한 개입으로, 어밀리어는 패하고 라이먼과 메이시는 카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망친다. 카페 문이 닫히고 어밀리어의 기나긴 자기유폐가 시작된다. 슬픈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는 끔찍하고 비참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50,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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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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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 갈등, 이념적 양극화, 극단주의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놓고서도 매우 정치적인 편향성을 띈 갈등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증언문학의 역작인《소년이 온다》(2014)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는데, 극우적 역사관을 지닌 일부 트롤팜이 노벨상 수상 작가의 역사 인식을 문제시하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 케케묵은 색깔 논쟁을 선동질하고 있다. ​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갈등'과 '양극화'를 구분한다.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기고, 갈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가령 '갈등 관리'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한다. 안 된다. 말다툼이나 법정 소송 같은 갈등 상황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명확히 나뉜다. 하지만 양극화 상황은 그런 문제소지자를 콕 집어내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양극화의 책임자와 핵심 주체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데, 이게 이른바 '양극화 관리'의 걸림돌이다. ​ 양극화 현상은 그 자체로 역학과 원리가 있다. 양극화의 핵심은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보편적인 양극화 역학은 좌, 우, 중도 세 가지 다른 인식이나 입장을 형성해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긴장이 형성되며, 그 사이에는 중도라는 중립적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극화 상황의 해소법은 중재 언어나 중재 행동을 통한 '중도를 지키는 법'이다. 여기엔 '버티기'와 같은 전략도 포함된다. 양극화는 항상 정체성이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은 양극화의 주요 원료다. 결국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직감과 신념은 대립을 강화하고 입장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역할 그룹은 다섯이다. 바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다. 주동자는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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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읽기의 혁명 - 비루한 삶도 고귀한 삶도 부활한다 철수와영희 생각의 근육 4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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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혁명을 일으키려면 실존철학을 곁에 두어야 한다. 나는 특히 '실존철학 삼총사'에 주목한다.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바로 그런 삼총사다. 셋 모두 우리 삶에 변화와 개혁을 불러올 자기성찰의 철학을 지향했다. 일반적으로 키르케고르는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극복한 니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로 분류된다. 실존주의 삼총사의 철학은 오늘날 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과 결부된 '철학 치료' 계보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니체 철학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푸코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주의, 들뢰즈의 존재론 등이 대표적이다.

철학자는 형이상학적 이분법에 능숙하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이데아(이상세계)를, 칸트는 현상세계와 물자체를,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세계와 의지의 세계를 구분했다. 니체 철학을 이해하려면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두어야 한다. 『니체 읽기의 혁명』(철수와영희, 2024)에서 저자 손석춘은 니체가 어떻게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수정하고 보완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가령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우주의 본질이 '맹목적 의지'이고, 사람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법으로 미적 관조나 연민, 금욕을 제시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허무한 '시계추 인생'을 삶의 모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영원회귀 우주론'으로 업그레이드한다.

저자는 '영원회귀 우주론'과 '힘에의 의지' 같은 핵심 개념에 기대어 니체 철학의 혁명적 읽기를 제안한다. 그간 니체 철학을 반민주주의나 귀족주의로 폄하하는 일부 편향된 해석이 있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니체를 비루한 삶을 극복하고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는 주권자 개인으로서 창조적 삶을 권유했던 실천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니체는 위대한 명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허무주의, 모든 가치들의 전도, 운명애, 힘에의 의지,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 초인(위버멘쉬, 극복인) 등 '삶의 건강성 회복'에 필요한 핵심 요소들을 소개한다. (나는 저자의 '극복인'보다 기존의 '초인'이라는 번역을 더 선호한다.)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초인 개념은 우리 삶에 질적 혁명을 불러 일으키는 삼대 원동력이다. 초인은 건강한 주체성과 창조적 삶과 밀접하게 결부된 자기실현 개념으로, 니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미래의 창조적 인간 예술가-철학자를 뜻한다. 저자는 초인을 창조적 삶을 발명하는 주권적 개인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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