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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ㅣ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평점 :
세상의 슬픈 노래는 거개가 러브 스토리다. 죄다 '이토록 슬픈 나의 사랑' 타령이다. 고독한 영혼의 마구 퍼주는 사랑, 고약한 영혼의 일방적인 사랑, 사악한 영혼의 짝사랑. 어쩌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짝사랑, 무조건적 사랑, 바보 같은 사랑, 미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역작《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 2024)는 바로 그런 구슬픈 발라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를 우리 귓가에 들려준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개인적 차원에선 갑작스런 짝사랑을 비극적인 삼각구도(미스 어밀리어→사촌 라이먼→전남편 마빈 메이시)로 그려내고, 사회적 차원에선 미국 남부 가난한 백인 직공들의 신산한 삶을 음울하게 스케치한다.
우선 카페가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인지 묻게 된다. 카페는 한마디로 힐링장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바다를 비추는 고마운 등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치유의 카페다. 카페는 외로운 사람들, 울적하고 불행한 사람들, 기분이 엉망인 사람들이 찾아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감미로운 술과 음식, 자잘한 수다와 얕은 친밀감, 카페 특유의 흥겨움과 우아한 분위기 덕분이다. 고된 일과를 마친 가난하고 나른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안전지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페는 여주인 미스 어밀리어에겐 '사랑의 시간'이었다. 카페의 존재가 바로 사랑의 증표인 셈이다. 경박스런 꼽추 라이먼 윌리스에 대한 그녀의 콩깍지 사랑이 무미건조한 생필품 가게를 우아한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는 숙녀나 미녀, 요녀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국가대표 럭비 선수처럼 육척 장신에 힘이 센 여장부 스타일이다. 장사 수완이 좋아 돈버는 재주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색하며 때때로 야비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약초로 치료해주는 선량한 면도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법한 그런 어밀리어가 자신의 친척을 사칭하는 사기꾼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어밀리어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어쩌다 굴러온 이 천덕꾸러기를 지극정성 보살피고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꼽추 라이먼은 정작 어밀리어의 전남편이자 꽃미남 부랑아인 마빈 메이시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후 껌딱지처럼 사생팬처럼 마빈 메이시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 사이를 교활하게 이간질한다. 어밀리어는 눈엣가시인 마빈 메이시를 수차례 독살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의 정식 결투가 벌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결투 장면이지 싶다. 꼽추의 비열한 개입으로, 어밀리어는 패하고 라이먼과 메이시는 카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망친다. 카페 문이 닫히고 어밀리어의 기나긴 자기유폐가 시작된다. 슬픈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는 끔찍하고 비참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50, 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