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쌤의 툭 치면 탁 나오는 영어회화 (특별 부록 한정판) - 진짜 영어 듣고 말하기 수업, 리얼 영어 패턴 100
주아쌤(이정은) 지음 / 몽스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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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가 수준에 이르면 번역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 낑낑거리며 문장 오형식이나 구문 패턴에 따라 영작 숙제를 풀듯, 단어와 어순을 한국어에서 영어로 전환하는 단계가 전혀 필요치 않다. 전문 번역가나 외국어 강사 외에 그런 변환 연습은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이다. 외국어는 툭 치면 탁 나와야 한다. 상대 움직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무술 고수처럼 말이다. 그럴러면 무조건 크게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한국인의 '영어력'을 저해하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발음을 망치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이다.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피하는 외래어표기법의 터무니없는 편향성 때문에 중국어, 태국어, 베트남어, 러시아어처럼 유난히 센소리를 가진 소리는 죄다 촌스럽게 들리게끔 만든다. 잘못된 소리 표기는 당연히 영어 발음을 망친다.

또다른 학습 장애물 하나는 영어권 원어민은 잘 쓰지 않는 철 지난 말이지만 한국인만 유난히 애용하는 그런 외래어다. 미국물 좀 먹어본 가방끈 긴 먹물들의 선동 탓이랄까. 서울에 거주하는 미국인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은 〈한국식 영어 사용법〉이란 글에서 그런 '한국식 영어' 단어로 '스펙', '시너지', '패러다임', '노하우' 같은 놈들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런 말을 정작 미국에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우리말 잘 하는 미국인이나 호주인이 정작 '모국어인 영어는 잘 못한다'란 말을 '영어 좀 한다'는 한국인에게 가끔 듣게 되는 배경이다.

영어 회화 비법은 소리 블록과 소리 튜닝에 있다. '소리'를 깨치면 득음하는 게 판소리 명창만의 일이 아니다. 영어 학습자도 매한가지다. 초보자라면 우선 원어민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즐겨 쓰는 영어 소리블록 100개를 익혀야 한다. 그러면 귀가 뚫리고 입이 트인다.

대한민국 일타 소리 스피킹 마스터 주아쌤(이정은)은 영어식 발성의 키포인트로 '쇄골과 날숨'을 강조한다. 한국어의 발성 위치는 보통 입 앞쪽인데, 영어는 입 안쪽에서 가슴까지 발성 위치가 내려간다. 그래서 저자는 내 입이 얼굴이 아니라 쇄골에 달렸다고 상상하는 팁을 전수한다. 또다른 발성 팁은 한숨을 내쉬는 호흡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날숨 활용법이다. 이외에도, 연음으로 발음하는 방법, 강세 넣어 읽는 방법, 리듬 타는 방법 등 영어식 발성 훈련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유남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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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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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연인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때, 그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 문득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란 드라마 제목이 떠오른다. 불륜과 외도를 묘사하는 구절로 이만한 것도 없다.

범죄소설에 불륜은 흔한 소재다. 변태적인 엽기살인범 소재 만큼이나 흔하다.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 범인의 특정도 베테랑 경찰에겐 그리 어렵지 않다. 부인이 살해되면 남편이나 제3의 연인이, 남편이 살해되면 아내나 제3의 연인이 제일 먼저 지목된다. 제3의 인물이 나오는 이유는, 간식을 좋아하는 바람둥이가 한가지 간식만 고집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바람둥이는 말그대로 도처에 바람을 피우고 다닌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불륜은 냄새를 피우는 법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데, 상간남녀 둘만 다른 이들은 전혀 모를 거라고 착각한다. 그리고 이런 둘만이 공유하는 착각이 마치 '스파이 놀이'처럼 불륜 특유의 자극적인 재미와 흥분을 키워준다.

불륜이 일어나는 계기는 불행한 결혼생활이 아니다. 불륜과 외도가 이혼사유 일순위이지만, 불륜은 정작 가정 불화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자상하고 착하고 조건 좋은 남편과 아내를 두었다고 해서, 당사자가 아이와 자녀를 무척 사랑한다고 해서, 불륜이 예방되거나 방지되는 것이 아니다. 불륜과 외도는 언제나 이미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이해의 선을 넘어선다.

불륜은 혐오감을 일으킨다. 제3자라 하더라도 일단 직장이나 이웃에서 누군가 피우는 바람의 냄새를 맡게 되면 절로 눈쌀이 찌푸려진다. 나까지 오염된 듯, 불결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불륜의 문턱에 들어설 때부터 개인이 지닌 도덕과 윤리는 기능을 상실한다.


죄책감을 보이는 상간자는 드물다. 그래서 나는 소설 화자 리케의 목소리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이웃집 남자 요르겐이 살해당했는데, 정작 리케는 남편과 자녀를 속이고 요르겐과 바람을 피우고 있던 내연녀이기 때문이다. 거주하는 아파트가 헌팅포차인 셈이다. 어차피 경찰 수사로 조만간 탄로날 것이기에, 리케는 적어도 사건 해결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사팀장에게 불륜 사실을 털어놓는다. 문제는 불륜을 즐긴 과정을 고백하는 리케의 문학적인 서술이 읽기 거북하고 불편하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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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 - 인생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명상록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지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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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유배지, 감옥, 병원. 살벌한 이 네 곳에서 주옥 같은 글들이 터져 나온다. 생과 사의 경계를 대면한 이들이 남긴 글은 영혼의 깊은 샘에서 길어올린 사유의 정수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시공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따스한 위안을 건네기도 하고 삶의 이정표가 될 만한 찐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천연두가 창궐하고 기아와 전쟁이 그치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이런저런 악조건 속에서 피어난 사유의 꽃이 『명상록』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밤마다 이런 내면 일기를 써가면서 평정심을 다스리고 회복탄력성을 유지하려고 했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처럼 말이다.

아우렐리우스가 나의 첫 번째 인생멘토다. 사색, 회의, 성찰, 대화 같은 철학의 벽돌을 쌓는 법을 아우렐리우스에게서 처음 배웠다. 세네카와 에픽테토스 같은 다른 유명한 스토아철학자들은 훨씬 나중에야 접할 수 있었다.『명상록』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입한 후, 40년 동안 가까이 했으니 이젠 그가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대학원생 시절,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힘들게 간병하며 그리스어 원전으로 된 『명상록』을 읽었다고 한다. 역시, 스토아철학이 애초에 역경과 시련에서 태어난 실천적 사유의 산물인 만큼, 언제나 지치고 난감한 이들에게 적절한 용기와 힘을 주는 것 같다. 이 책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위즈덤하우스, 2024)은 저자가 그리스어 원전에서 직접 번역하고 추려낸 『명상록』의 소중한 글들과 감상이 담겨 있다. 지친 삶을 다독이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무너진 인생을 다시 일으킬 만한 용기를 주는 글을 찾는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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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세계문학 6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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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슬픈 노래는 거개가 러브 스토리다. 죄다 '이토록 슬픈 나의 사랑' 타령이다. 고독한 영혼의 마구 퍼주는 사랑, 고약한 영혼의 일방적인 사랑, 사악한 영혼의 짝사랑. 어쩌면 사랑의 가장 순수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짝사랑, 무조건적 사랑, 바보 같은 사랑, 미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미국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역작《슬픈 카페의 노래》(열림원, 2024)는 바로 그런 구슬픈 발라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를 우리 귓가에 들려준다.

소설은 등장인물의 개인적 차원에선 갑작스런 짝사랑을 비극적인 삼각구도(미스 어밀리어→사촌 라이먼→전남편 마빈 메이시)로 그려내고, 사회적 차원에선 미국 남부 가난한 백인 직공들의 신산한 삶을 음울하게 스케치한다.

우선 카페가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와 마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인지 묻게 된다. 카페는 한마디로 힐링장소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바다를 비추는 고마운 등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치유의 카페다. 카페는 외로운 사람들, 울적하고 불행한 사람들, 기분이 엉망인 사람들이 찾아드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감미로운 술과 음식, 자잘한 수다와 얕은 친밀감, 카페 특유의 흥겨움과 우아한 분위기 덕분이다. 고된 일과를 마친 가난하고 나른한 백인 노동자들에게 '그럭저럭 살만한 인생'이라는 것을 환기시켜주는 안전지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카페는 여주인 미스 어밀리어에겐 '사랑의 시간'이었다. 카페의 존재가 바로 사랑의 증표인 셈이다. 경박스런 꼽추 라이먼 윌리스에 대한 그녀의 콩깍지 사랑이 무미건조한 생필품 가게를 우아한 카페로 변모시켰다. 카페 주인 미스 어밀리어는 숙녀나 미녀, 요녀와는 거리가 매우 멀다. 국가대표 럭비 선수처럼 육척 장신에 힘이 센 여장부 스타일이다. 장사 수완이 좋아 돈버는 재주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색하며 때때로 야비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을 약초로 치료해주는 선량한 면도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법한 그런 어밀리어가 자신의 친척을 사칭하는 사기꾼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된다. 어밀리어는 아기를 돌보는 엄마처럼 어쩌다 굴러온 이 천덕꾸러기를 지극정성 보살피고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쓴다.

그런데 꼽추 라이먼은 정작 어밀리어의 전남편이자 꽃미남 부랑아인 마빈 메이시에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후 껌딱지처럼 사생팬처럼 마빈 메이시 꽁무니만 쫓아다닌다. 그리고 미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 사이를 교활하게 이간질한다. 어밀리어는 눈엣가시인 마빈 메이시를 수차례 독살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러다 어밀리어와 마빈 메이시의 정식 결투가 벌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바로 이 결투 장면이지 싶다. 꼽추의 비열한 개입으로, 어밀리어는 패하고 라이먼과 메이시는 카페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망친다. 카페 문이 닫히고 어밀리어의 기나긴 자기유폐가 시작된다. 슬픈 사랑이 남긴 트라우마는 끔찍하고 비참했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 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도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50, 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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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서는가 -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양극화의 기묘한 작동 방식
바르트 브란트스마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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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 갈등, 이념적 양극화, 극단주의의 살아있는 표본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대표작을 놓고서도 매우 정치적인 편향성을 띈 갈등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증언문학의 역작인《소년이 온다》(2014)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작별하지 않는다》(2021)는 제주 4·3사건을 다루는데, 극우적 역사관을 지닌 일부 트롤팜이 노벨상 수상 작가의 역사 인식을 문제시하면서 불필요한 역사 논쟁, 케케묵은 색깔 논쟁을 선동질하고 있다. ​ 네덜란드 출신의 철학자 바르트 브란트스마는 '갈등'과 '양극화'를 구분한다. 둘 사이에는 기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양극화를 다소 큰 갈등이 통제를 벗어난 상황으로 여기고, 갈등을 다루는 것과 같은 방식(가령 '갈등 관리' 방식)으로 양극화에 대응하려 한다. 안 된다. 말다툼이나 법정 소송 같은 갈등 상황은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과 문제를 불러일으킨 사람들이 명확히 나뉜다. 하지만 양극화 상황은 그런 문제소지자를 콕 집어내 요주의 관리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양극화의 책임자와 핵심 주체가 누구인지 찾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데, 이게 이른바 '양극화 관리'의 걸림돌이다. ​ 양극화 현상은 그 자체로 역학과 원리가 있다. 양극화의 핵심은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이다. 보편적인 양극화 역학은 좌, 우, 중도 세 가지 다른 인식이나 입장을 형성해 긴장을 불러 일으킨다. 일반적으로 우파와 좌파라는 극단적 입장 사이에서 긴장이 형성되며, 그 사이에는 중도라는 중립적 입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양극화 상황의 해소법은 중재 언어나 중재 행동을 통한 '중도를 지키는 법'이다. 여기엔 '버티기'와 같은 전략도 포함된다. 양극화는 항상 정체성이 서로 대립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고 그들은 그런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발언은 양극화의 주요 원료다. 결국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렸다'는 직감과 신념은 대립을 강화하고 입장을 고착화하며 갈등을 부추긴다. 양극화 현상에 참여하는 역할 그룹은 다섯이다. 바로 주동자, 동조자, 방관자, 중재자, 희생양이다. 주동자는 양극화를 확대하기 위해 중간에 있는 방관자 그룹을 목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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