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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가 된 어느 흑인 사형수 -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의 한 무고한 사형수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지음, 권혜림 옮김 / 불광출판사 / 2024년 7월
평점 :
요즘은 사회 부조리를 폭로하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증언하고 사이비 조직의 추악한 민낯을 들추는 고발 탐사 저널리즘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네모난 내 손 안의 디지털 미디어는 왕따, 폭력, 학대, 성추행, 강간, 중독, 사기 등의 각종 불쾌한 이슈를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화려한 무대가 되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가난한 무명 흑인의 고통과 아픔을 다룬 미국식 트라우마 문학은 한국의 장삼이사에게 비현실적인 거리감과 지울 수 없는 위화감을 간혹 남기고 만다. 다 마시고 난 머그잔의 커피가루처럼 말이다.
여기 한 흑인 사형수가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비극적인 가정사를 시작으로 잡다한 일탈과 일련의 범죄를 거쳐, 결국은 악명 높은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 사연을 회고한 성장 에세이다. 죄수의 이름은 자비스 제이 마스터스. 1981년 열아홉 살에 저지른 일련의 무장 강도 사건으로 샌 퀜틴 교도소에 송치되었다. 1985년 6월, 교도관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는데, 자비스는 억울하게도 교도관 살인 공모 혐의라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한창 나이인 23세 때부터 무작정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인종과 성별, 국적을 막론하고, 성인 교도소를 종착지로 삼은 죄수의 성장기는 매우 엇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죄수가 빈민가 출신의 흑인 소년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위탁 가정, 소년의 집, 캠프를 전전하다 소년원에 가게 되고, 거리에서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면 감옥을 학교 삼아 들락날락하게 되는 그런 루틴 말이다. 우리는 자비스가 힘겹게 볼펜 심지로 눌러쓴 글에서 가난과 폭력, 방치와 학대, 위탁 가정의 빛과 그림자, 가출과 유랑, 노숙, 트라우마, 헤로인 중독, 범죄로 얼룩진 동네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네 남매(샬린, 자비스, 버디, 칼렛)가 살아가는 집은 기실 마약 소굴이었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범죄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비스의 어머니는 약쟁이에 매춘부였고, 의붓아버지는 마약상, 큰형과 사촌은 폭력을 숭배하는 갱스터였다. 고향 마을에는 크고 작은 갱들이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렸다. 가까운 피붙이들과 죽마고우들이 말그대로 원수였고, 집안에서까지 늘 범죄에 노출되어 있었다.
공판이 시작되자 한 민간 조사관이 그에게 명상서를 건네 준다. 자비스는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도모하는 불교식 명상이 가슴에 와닿았다. 여전히 분노의 불길이 가끔 치솟곤 했지만, 그래도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한 이타적인 일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성실한 방청소와 소유품의 나눔이 그러하다. 시절인연으로 티베트 금강승인 차그두드 툴구 린포체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고, '비폭력'과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는 두 가지 서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