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대가 마주칠 수 있는 가장 고약한 적은 언제나 그대 자신일 것이다. 그대 자신은 동굴과 숲 속에서 그대를 기다리며 숨어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불꽃으로 그대를 불태우려고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 어떻게 거듭나려고 하는가!

고독한 자여, 그대는 사랑하는 자의 길을 가고 있다. 즉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사랑하는 자만이 경멸할 수 있듯이 그대 자신을 경멸한다.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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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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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릇된 소유를 고집할수록 그리고 본질적인 것을 덜 느끼게 될수록 그의 삶은 더욱더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다. 그는 한정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제약을 받는 듯이 느낀다. 그리고 이것은 질투와 시기를 낳는다.

우리가 이생에서 무한한 것에 이미 접속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낄 때 우리의 욕구와 자세가 달라진다. 결국 인간이 가치 있는 것은 오직 본질적인 것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가 그것을 갖지 않는다면 인생은 헛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무한한 것이 그 관계 속에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결정적인 것이다.

내가 극단적으로 제약을 당할 때 비로소 무한한 것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인간에게 가장 큰 제약은 자기 자신이다. 그것은 "나는 다만 그것에 불과하다!"는 체험 가운데 나타난다. 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아주 좁게 제약되어 있다는 의식만이 무의식의 무한성에 접속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식성에서 나는 나를 유한하면서도 영원하며 이것이면서도 저것으로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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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5 0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의 한계 또는 모순을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면서도 남의 한계, 모순을 정확히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 역시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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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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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향한 개혁, 즉 새로운 방법 또는 ‘묘안’을 통한 개혁은 지금 당장은 확실하겠지만 길게 볼 때는 의심스러우며 어떤 경우에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것들은 전체적으로 인간의 즐거움, 만족 또는 행복을 증가시키지 못한다. 그것들은 대부분 실재의 허울 좋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든 성급함은 마귀에게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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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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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는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라는 안락함이다.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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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2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념‘을 잘 안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는 개념의 ‘실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즉, 아는 척만 하는 거죠.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시집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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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님의 치부책 - 박노해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전쟁의 레바논에서 임종도 전해 듣지 못하고
나는 뒤늦게 전라선 열차를 타고
다시 순천에서 동강 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붉은 황토 길을 걸어 고모님을 찾아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님이 공장으로 떠난 뒤
너무 힘들고 외로운 날이면 타박타박
삼십 리 길을 걸어 찾아가던 고모 집

밭일을 마친 고모님은 어린 나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바람으로 밥을 짓고 물을 데워 몸을 씻기고
재봉틀을 돌려 새 옷을 지어 입히고 이른 아침
학교 가는 나를 따라나와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지

경주 교도소 접견창구에서 20년 만에 재회한 나를
투명창 너머에서 쓸어 만지며 수배 길에 행여나
찾아들까 싶어서 밤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건넛방에 풀 먹인 요와 이불을 깔아놓고 사셨다며
무기징역살이를 어쩌냐고 흐느끼던 고모님

이제 그 작고 다숩던 나의 고모님은
여자만 갯벌바다가 보이는 무덤에 누워 계시고
나는 무덤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처음으로 고모님을 오래도록 안아 드린다

늘 꽃이 피던 고모님 집은 텅 빈 적막
얼마 전까지 손에 잡던 반질반질한 호미며 괭이며
꽃밭의 원추리, 패랭이꽃, 금강초롱, 꽃창포
처마밑에 정갈히 싸매 단 씨앗봉지들

윤나게 닦아진 종이 장판과 낡은 재봉틀과
앉은뱅이 책상에 가지런히 놓인 내 시집들과
아, 신문에서 오려 붙인 수갑 찬 내 흑백 사진들

나는 빈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서
앉은뱅이 책상을 열어보다 금이 간 돋보기 안경과
오래된 묵주와 비녀와 재봉 가위와 참빗을 만져보다가
고모님의 낡은 치부책을 펼쳐본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고모님의 공책에는
장날 사 쓴 물품들과 돈의 숫자는 드물고
민자네 고구마밭 반나절, 모내기 사흘,
마늘 수확 이틀, 품앗이 기록과
용주네 논갈이 하루 반, 순재네 장작 여섯 짐,
품앗이 노동의 기록들이 꼼꼼히 적혀 있다

고모님은 돌아가시기 한 달 전부터는
몹시도 힘이 부치셨나 보다

이웃집에 도움받은 창호문 수리 반나절과
무너진 장독대 돌쌓기와 논에 퇴비내기가
갚아야 할 품으로 적혀 있다

나는 치부책 끝 부분의 최근 기록을 살피고 난 후
작업복을 갈아입고 이웃집을 찾아간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이를 따라 비닐하우스 일을 돕고
경운기 뒤에 타고 가서 농수로 파는 일을 거들고
유자밭에 솎아내기를 마치고 막걸리에 홍어회로
배를 채운 뒤 고모님의 빈집을 나선다

한참을 걷다 돌아보고 산굽이 넘어 다시 돌아보고
저기 동구 밖 지나 마을 숲까지 따라나와
까만 점으로 손 흔들고 서 계신 나의 고모님

작은 몸매로 거인처럼 빛나는 나의 고모님
이제 나 다시는 고모님 집을 찾지 못하리

나는 남은 생을 다해도 갚을 수 없는
눈물 그렁한 사랑의 빚을 가슴에 품고
여자만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고모님의 황토 길을
내 몸 안을 내어가며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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