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기록 사이 - 어느 북 디자이너가 읽은 책과 만든 책
이창재 지음, 노순택.안옥현 사진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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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갖춰야 할 덕목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책이 또 다른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다면 그 책의 점수는 이미 상당히 높을 수밖에 없다. <기억과 기록사이>를 두 번에 걸쳐 꼼꼼하게 읽고, 나는 이 책의 지은이가 소환해 낸 내 청춘의 책들과 오랜만에 만나는 드문 기쁨을 누렸고, 한동안 내 빈약한 서가를 오래 서성거렸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대학출판부에서 이십사 년 째 책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은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몸 속에 각인된 유전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생애 첫 책인 <파랑새>에서 출발해 계몽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읽던 소년의 책 읽기는 한국을 떠나 멀리 미국의 시애틀과 뉴욕에서도 계속된다. 낯선 나라로 이민을 가서 열일곱이 되면서부터 소년은 잔디깎이, 마켓의 야간 캐셔, 베이비시터 등, 닥치는대로, 잡히는대로 일을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개인지도 같은 몇 가지 일이 추가되기는 했으나, 빠듯한 생활비와 엄청난 집세와 학비를 감당하는 틈틈이 유일하게 위안을 찾고 휴식을 했던 것은 헌책방과 서점을 기웃거리는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시애틀 항만물류 하적장에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으며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열 여덟살의 소년을 상상해보자. 그가 평생 책을 만들거나 글을 쓰지 않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 일인가 말이다.

 

자연스럽게도 그는 대학 출판부의 붙박이 별이 되어, 이십 년이 넘도록 한 직장과 집을 오가며 내핍의 한가운데에서도 대책 없이 책을 모으고 더 침침해지는 눈으로 책을 보고 천 년 전 수도사들이 구도하는 자세로 책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책과 함께 살아왔고 책을 만들고 있으며 앞으로도 책과 떼어놓고 살 수는 없을 것이 거의 확실한 한 이주 한국인 남성이 쓴 책과 관련된 에세이이자, 자전적 소설(나는 소설처럼 읽었다.)이기도 하다. , 그가 유, 소년기를 겪었던 시기의 한국과, 이곳을 떠나서도 여전히 의식과 감성의 한 축을 떼어놓지 않았음이 분명한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과 출간된 책과 예술과 인연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자신이 초판본을 갖고 있는 책에 한정하여 쓴 이야기에는, 출판연도와 지은이, 디자이너와 번역가, 출판사 등 갖가지 서지정보가 언급되고, 정작 책의 내용보다는 그 책과 관련된 지은이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와 공간과 사람이 불쑥불쑥 호명되어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지은이가 미술사 공부를 하게 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던 책이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보고는 자신이 더 이상 이 책을 읽기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런가 하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고는 자신의 어머니가 비록 난장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가족이 떠나온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머니와 자신들은 난장이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는 일들 같은 것. 그리고,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는 자신이 책을 읽는 그 모든 이유를 발견하기도 하며, 잘 나가는 대형출판사가 아닌 대학출판부를 직장으로 선택한 여러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출판사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초록눈을 출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느 북 디자이너가 읽은 책과 만든 책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나는 디자이너가 어머니에게 부치는 헌사요 사모곡이며, 그리고 어쩌면 결혼과 동시에 변방으로 내몰린 어머니의 삶과 더불어 두 아들에게 예술적 안목을 선사한 어머니의 생을 복원하는 기록으로 읽었다. 지은이에게는 자기 생의 유일한 보물인 두 아들을 위해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머니가 계신다. 젊은 날의 어머니는 급격히 기운 가세로 자신의 배움을 동생들에게 양보한 뒤 짬만 나면 뜀박질을 해서 책을 빌려 보던 사람이었다. 서른 여덟에 자기 앞의 생을 읽었고, 생계를 위해 시작한 화랑 문턱에 앉아 토지를 읽었으며, 더 많은 소설들, 예를 들어 광장아리랑남부군강철군화를 어머니는 아들과 같이 읽었다. 그리고 더 많은 우리 말로 된 책과 영어로 출판된 책들이 지은이를 키웠고 어머니를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초고와 마지막 원고까지 어머니가 읽는 것은 당연한 권리였을 터.

 

이상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로맹 가리의 소설 새벽의 약속을 떠올렸고, 짧은 서평을 쓰기 위해 이 책을 두 번씩 공들여 읽고 나서 예전에 봤던 로맹 가리의 소설을 다시 꺼내 꼬박 밤을 새며 읽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동부 폴란드의 시골에 버려진 한 아이에게서 미래의 위대한 프랑스 작가와 프랑스 대사를 발견케 한 기적에의 믿음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주인공에게 이 같은 사실을 주문처럼 각인시킨다. 이러한 어머니의 순진성과 상상력은 결국, 소설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장군이 되고 작가가 되고 프랑스 대사가 되게 만든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미완의 꿈, 부서지고 외면당한 꿈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게 만든다.

소설 새벽의 약속과 이 책의 지은이가 겪은 삶은 다르지만, ‘새벽의 약속의 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의 새벽에 스스로와 맺은 약속이 평생을 길어 올리는 힘이 되었듯이, 어쩌면 이 책의 지은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여러 삶의 신산스러움을 뚫고, 여전히 자신의 메마른 정원에서 책이라는 열매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사람도 연애도 생로병사를 겪는다. 어쩌면 사람이 쓰고 사람이 만들고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야 말로 그 나름의 고유한 운명과 사연과 생로병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 비해 이상하게 직접 읽은 책이 드문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작들을 찾아 보았고, 왠지 곧 절판될 것만 같아서 대학원 시절 사 두었다가 훨씬 나중에 선생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을 때 알뜰하게 이 책에 실린 작품을 참고했던 카프대표 소설선이 있었고, 대학 시절 열에 들떠 읽었던 아리랑을 서가 한쪽에서 찾아 다시 펴들었더니, 1993년 개정 2판을 찍은 도서출판 동녘에서 나온 소설은 색이 바래고 글씨는 깨알 같았다.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체에 매혹되어 서, 너 번인가 읽었고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꽃잎>은 극장에서 조조로 보았는데, 관객은 나를 포함해서 세 명밖에 안 되었었지. 최근에 나온 저작은 거의 다 찾아 읽고 있는 서경식 선생의 책들, 특히, 미술과 음악 관련 에세이들, 그리고 몇 권의 책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거나, 사 두기만 하고 읽지 못했던 책이거나, 혹은 말로만 들었던 것도 있었다.

 

이제 다시 이 책의 목록들을 적어 두고 서점에 가서 어슬렁거리고 사고 쌓아두고 어느 때쯤엔가 내 손에 잡힐 그 순간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가서 몇 줄이라도 그 책에 대한 기억을 적을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 행복한 독자가 될 것이다. 기록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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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devous 2020-02-0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기 시작했는데 길찾기 님의 글을 읽으니까 빨리 마지막 장까지 내달리고 싶어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