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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특별 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늘어지는 관계에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의심하게 되고 하지만 이 사람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그런 상황에 어느 날 우연히 나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의문문이 아닌 ...로 끝맺음 해서 더 인상적인 제목.
이 소설은 프랑스가 사랑하는 작가,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고찰하는 프랑수아즈 사강이 스물넷에 섬세하고 면밀하게 써 내려간 한 편의 사랑 이야기다.
여기 사랑에 권태가 온 한 연인이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믿고 싶은 서른아홉의 여자, 폴. 그리고 폴을 사랑하지만 자유를 갈망했던 남자, 로제. 로제가 자유분방하게 다른 여자와 노니는 동안 집에 홀로 남겨진 폴은 매번 침울하고 고독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그리고 사랑인가 정인가 아슬한 관계의 그들 사이에 나타난 젊고 매력적인 남자, 시몽. 시몽은 첫만남부터 폴에게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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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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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 질문은 프랑스인들이 연주회에 초청할 때 예의상 물어보는 깊은 의미가 없는 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가들과는 다르게 브람스의 음악은 다소 호불호가 있는 모양이다. 연주회 데이트를 신청하는 쪽지에 쓰여져있던, 여기선 남다른 의미가 있는 이 문장을 통해 폴과 시몽의 관계성을 엿볼 수가 있다.
자신보다 열네 살 어린 젊은 청년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구애. 시몽은 호리한 체격에 누가봐도 잘생겼으며 매력적이다. 폴은 지루했던 나날 속에 웃음을 주는 시몽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점차 시몽에 대한 애정이 자라나 갈수록 두려움을 느끼고 그와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 소설은 흔히 세 인물의 삼각관계 로맨스로 소개되지만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풀어나간다. 남자로부터 완전한 행복을 갈망했지만, 자신만을 바라보는 전도유망한 젊은 청년을 두고 결국 로제에게 되돌아간 폴. 고독을 줬던 나쁜 남자에게 돌아가는 여자라니. 폴에게는 기존의 연인과의 관계 지속이 존재의 이유로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자극에 현실에서 잠깐 벗어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회귀하는 다소 현실적인 결말이다. 사랑에 대한 연륜 때문인 것인지, 사랑하는 여자가 세상의 전부처럼 생각했던 혈기왕성한 젊은 청년과는 다른 선택이다. 권태기라고 하지만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기엔 뒤따르는 것들도 많을 것이고 나라도 아마 그 나이의 폴이라면 그러지 않았을까.
한동안 현대문학의 로맨스 이야기를 읽었다가 오랜만에 고전 소설을 찾아 읽어보니 흔하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인물 간 심리묘사가 정말 섬세하며 표현력이 뛰어난 작가다. 그렇다고 읽기에 어렵지도 않을뿐더러 푹 빠져버릴 정도로 문장이 매우 매혹적이다. 불같은 사랑도 해봤고 오랜 만남도 다 해본 중년 여성의 심리를 작가 나이 스물넷에 썼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다 읽고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사강이 말했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녀가 말하는 또 다른 사랑은 어떨까. 다음엔 사강의 유작 '마음의 심연'을 읽어볼 예정이다.
여담이지만, 최근에 티모시 샬라메가 출연한 영화를 봐서 그런지 시몽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티모시가 생각났다. 영화가 리메이크 될 가능성은 없을까? 문득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