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함정은 ‘자신이 동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에 있다. ‘이론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어도 실천적으로는 용인한다’는 대중의 생활 감각과의 괴리는 여기서 생긴다.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건대 현실이 정합적이지 않은 이상 그에 대해 말하는 의견이 정합적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 부분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정답을 모른다‘는 것도 훌륭한 결론‘이고 ‘나는 틀렸다‘는것도 훌륭한 ‘결론‘이다. "제가 틀렸습니다" 라는 시원시원한 선언이 얼마나 일의 진행을 촉진하는지, 또 "나는 안 틀렸어" 라는 후덥지근한 고집이 얼마나 일의 진전을 방해하는지,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계시리라. 세상에는 논의 자리에서 일단 옳은 것‘을 말하기를 결론내기‘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이 있다. 이 타입의 ‘정론가가 ‘정론‘을 마구 밀어대면 회의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엄청나게 ‘시간이 걸린다. 정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옳음을 옳음으로서 관철하는 ‘자세‘ 자체에 의미를 두며, 그 ‘좋음‘이 다수파의 동의를 얻어 물질화할지 말지에는 부차적인 관심밖에 두지 않기때문이다. 정론가는 합의 형성이나 ‘다수파 공작‘ ‘설득‘ ‘사전 교섭‘ 같은 술책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결과, 정론이면 정론일수록 그것이 당사자 사이의 합의 형성을 재촉하고 현실화할 가능성은 그만큼 줄어드는 곤란한 사태가 종종 일어난다.
따라서 미래 예측‘이라는 미확정 요소가 포함된 제안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면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내 미래 예측은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것이다. 거기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차량 점검 때 "내 차는 시속 200킬로미터까지 나와."라거나 "오디오 음질이 훌륭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필요한 일은 ‘노이즈가 없는지‘ ‘기름이 새지 않는지‘ 타이어가 마모되지 않았는지‘라는 식의 확인이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자동차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렇게 하는데, 정작 지성을 쓰는 단계가 되면 여간해서는 못하는 게 이상하다. ‘내 지성의 어느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것은 ‘내 지성이 얼마나 멋지게 기능하는지‘를 과시하는 것보다 훨씬 우선순위가 높은 일이다. 정말로 적절한 지적 퍼포먼스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자신의 어리석음 점검‘부터 일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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