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식물을 먹어. 몸에 좋대"는 민간요법이고,
 "이 식물에서 추출한 A라는 성분을 먹으면 암이 나을 확률이 70퍼센트야"는 현대의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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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드레드 스콧 소송을 심리한 끝에 7:2의 결과로 주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늘날 많은 법 전문가들에게 이 결정은 대법원에서 이루어진 가장 잘못된 판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시 연방대법원장 로저 B. 토니는 남부의 노예주로서 인종적 편견을 바탕으로 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스콧은 흑인으로서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는 근거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로저 토니는 흑인은 열등한 존재다. …… 열등하기 때문에 백인은 반드시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그들은 가질 수 없다. 또한 스콧은 소유물이고 모든 시민은 노예를 포함해 자신의 소유물을 운반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문을 읽었다.

164쪽

링컨은 자신을 노예주든 자유주든 상관없이 미국 전체의 대통령으로 생각했다. 취임선서에서 그는 ‘노예제도가 존재하는 주들에 대해 그 제도를 훼손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혔다. 그의 제1의 목표는 연방이 분열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167쪽

 1862년 9월 22일에 링컨은 새해 첫 날에 반란 주 안의 모든 노예를 해방한다는 포고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자신의 뜻을 알렸다. 새해 첫 날은 관습적으로 노예를 사고파는 날로 되어 있었지만 1863년의 첫 날에는 링컨의 노예 해방령으로 수천 명의 노예가 즉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169쪽

 1865년 12월 6일 연방의회가 헌법 13조 수정조항을 통과시킴으로써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 조항은 노예제도와 범죄에 대한 처벌을제외한 강제 노동을 금지시켰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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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공포 아프리카의 폭군들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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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역사인식이나 근본 원인분석에 동의하기는 힘들지만, 생소한 아프리카의 현대사를 비교적 쉽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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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신과 같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지도자에 대해 일반 대중은 무력하다. 그것은 아프리카인 대다수가 워낙 가난하고 힘이 없어 일찍 체념하는 탓이 크지만 문화적인 요소도 다분히 있다. 오랜 세월 소수 부족으로 나뉘어 살아온 아프리카인은 태생적으로 권력을 존중하고 힘을 행사하는 자를 두려워한다. 힘을 가진 지도자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이미지를 지닌다. 이들은 대중을 핍박하고 억압하면서도 때때로 자애로운 아버지저렴 행동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체념주의는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합쳐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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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비아의 이름을 ‘남비아‘로 잘못 부를 정도로 아프리카를 경시한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왜 인기가 높을까? 그것은 트럼프의 스타일이 아프리카인의 정서에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장되고 비상식적인 언행도 경우에 따라서는 용납되는 것이 아프리카의 정서이다.
혹자는 트럼프의 재산, 권력 및 머리 등에 관한 과신과 자랑이 과거 이디 아민의 행태와 비슷하다고 한다. 아프리카인의 이러한 정서가 이디 아민과 같은 괴물을 지도자로 맞아들이는 데 기여한 것은 아닐까?

107쪽

서방 언론은 우간다 내에서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무관심했으며 아민을 어릿광대나 코미디언 정도로 취급했다. 그러던 중 미국 언론인 살해 사건이 발생하자 비로소 사태를 심각하게 보기 시작했다.

161쪽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식민 정부는 파리의 압력에 따라 사회정치적인 개혁에 착수했으나 보수적인 이민사회의 반대로 어려움에 처했다. 이민자들은 개혁의 수준이 너무 높아 현지인의 필요와 능력을 초과한다고 주장했다.

203쪽

지역 의회에 아프리카인이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백인 대표들은 사표를 제출했다. 인종차별적인 소부르주아적 사고방식은 독립 때까지 지속되었으며흑백 갈등은 그치지 않았다.

211-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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