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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가족각본>은 한국의 가족 제도가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규칙, 짜여진 각본 같은 요소들을 제시하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논의해야 할 지점을 짚어주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왜 며느리는 꼭 여자여야 하는가, 왜 어떤 사람들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보수적인 가족 제도에 갇혀 있는지 제시한다.
시기적절하게 나온 책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이슈가 되는 인구, 가족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인구 절벽을 넘어 국가 소멸까지 거론되는 요즘이다. 2000년대 이후 출생자가 부모 세대 출생자의 반토막이 났다며, 절반 세대라는 말도 등장했다. 노인은 많아지고, 일할 사람은 없어진단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상 가족’의 질서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관계와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반대자들은 법안 찬성자들이 동성혼 합법화라는 진의를 숨기고 있다고 말한다. 생활동반자법이 곧 동성혼 합법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동성 결혼은 왜 문제가 될까? 사람들은 왜 동성 결혼을 반대하며 며느리가 남자, 사위가 여자면 안 된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걸까?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며느리’의 역할에 주목해 성별에 따라 짜여진 각본 같이 작동하는 가족 제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역사적으로 가족 제도가 남성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방식, 한국 여성에게 특히 기대되는 역할과 가족 내 지위의 모순을 짚으며,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과 크게 어긋나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며느리는 돌봄과 가계 관리 등 집안의 중차대한 일을 맡으면서도 남성에게 종속된 위치였다. 성별에 따라 지위에 차이를 두는 것은 불평등으로,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고 방식이라는 것이 자명하기에 저자는 여성이 꼭 ‘며느리’여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여전히 공고하게 남아 있는 우리 사회의 가족 제도에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제본에서 읽지 못한 4장부터의 내용도 기대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족 제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가족 내 성역할 분업이나 최근 문제가 되는 출생률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