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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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다짐에서 연루의 다짐으로 나아가기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다시 겪어야 했으며, 고 김용균 씨의 산재 사고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일터에서 스러져 간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젠더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잊지 않겠다’는 말만이 공허하게 남는다. 우리 사회는 대체 무엇을 기억해 온 것인가? 혹은 누가 그 기억을 소홀히 다루었는가? 역사 속 비극을 단순히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만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어려운 듯하다. 역사적 사건이 결코 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할 때 비로소 그 기억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도 모른다.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는 근현대 시기의 식민지 조선을 비롯해 제국주의 일본과 당시 서구 사회의 여러 개인이 국가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관계 맺은 방식을 보여주며 넓은 시각으로 역사를 조망한다. 거대 담론으로서의 역사만을 보여주기보다 그 속의 다양한 개인을 조명하는 저자의 서술 방식은 국가 내에서 다양한 개인의 경험이 항상 국가나 민족 단위로 묶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책에서 식민지 조선과 관계된 타국의 개인들이 조명되는 모습을 통해 독자는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어 온 방식이 결코 단선적이지 않으며, 역사 속에서 누구든 완전한 피해자나 가해자로서만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자의 입장에 ‘연루’되는 역사 인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초반부에 제시된 식민지 조선과 일본 제국주의 속 여러 개인을 다룬 부분에서 피해·가해 관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소속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은 일본군의 포로였던 연합군 병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군 포로였던 알리스터 어쿼트의 회고록 《잊힌 하이랜더 부대원》에는 그가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콰이강의 다리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 겪은 조선인 포로감시원의 폭력 행위가 서술되었다. 포로감시원은 주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동원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동시에 이 폭력 뒤에는 물자 부족과 폭력적인 일본군의 포로 대우 관습, 상명하복 문화라는 맥락이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완전한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분류될 수 없는 것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 역시 피해와 가해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저자는 사회진화론을 주창한 잭 런던의 동양인 혐오를 소개하며, 이 혐오가 최근 한국에서 다른 나라를 얕보는 형태로 재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전쟁 시기 여성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최근까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풋라이트 익스프레스〉에 등장한 동양 직업여성 캐릭터 ‘상하이 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약소국의 여성은 국가에 의해 자행된 성착취 제도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으며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되었다.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문제임에도 자국 남성들은 이들을 동정하거나 수치스러운 존재로 바라봤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미군과 한국 정부에 의해 자행된 기지촌 미군 ‘위안부’ 문제는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 역시 전쟁 시기 성매매에 적극 가담했다는 책임에서 그다지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외에 파리코뮌 현장에서 활동한 조선인의 사례, 영화사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으나 나치에 가담했다는 비판을 받는 레니 리펜슈탈, 평범한 ‘작은 사람’이라는 이유로 역사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 독일인 등 서구의 이야기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어지는 역사와 역사의 가해자로서 인식해야 할 책임을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역사 앞에서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자문하게 한다.


  베트남 출신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뮤지컬 <미스 사이공>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보인 부도덕성을 숨겼음을 지적하며 “세계가 기억의 예술을 어떻게 형성하고 다시 그것이 어떻게 세계를 형성하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로 기능했다고 비판한다.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는 세계가 나아갈 방향성을 좌우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역사와 더 넓고 깊게 연결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피해를 애도하면서도 가해 사실에 눈 감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한 나라 안에서 같은 역사를 겪었더라도 젠더나 계급 정체성에 따라 그 경험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역사 속 인물과의 연루를 통해 배웠다. 이 책으로 역사 속 인물들과 관계되며 ‘연루됨의 윤리’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면 수많은 타자의 입장에 서 보며 반복되듯 이어지는 사회 속에서 져야 할 ‘내 몫의 책임’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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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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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를 이어갈 때 무리한 부탁에도 마지못해 응할 때가 종종 있다. 가능한 한 갈등을 만들지 않고 관계를 이어가고 싶어서, 혹은 폐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관계를 지켰으니 된 거라며 나의 감정을 억누르기도 했던 것 같다. 이 민폐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은 막 시작하려는 관계의 불씨를 꺼뜨리기도 한다. 더 친해지고 싶어도 상대에게 부담을 줄 것이란 걱정에 사소한 부탁도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억지로 관계를 지켰든 지레 겁먹고 도망쳤든, 나의 욕구는 뒷전이고 타인의 욕구만 우선이라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은 독자에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끼워 맞추고 있진 않은지를 묻는다. 나의 감정과 욕구를 무시하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을 먼저 마주하면 나를 잃지 않고도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흔히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누군가의 딸이나 엄마, 혹은 부하 직원으로서 응당 해내야 할 일이 있다는 ‘당위’가 감정보다 더 중요시되기 때문이다. 사회와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사회부과 완벽주의’가 심화하는 최근의 경향으로 볼 때 여러 역할의 기대를 동시에 받는 이들에게 이 당위의 압박은 더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당위에 휘둘려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감정 뒤에 숨겨진 나의 욕구를 무시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슬픔이나 외로움, 분노와 같은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발견하고 나를 돌볼 수 있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참아내는 데 급급했다면, “내 감각에 충분히 튜닝한 뒤에 감정을 조절해도 늦지 않”다는 저자의 조언과 함께 그가 제시한 ‘지시적 마음챙김’, ‘일상 활동 모니터링’, ‘감정 지도’와 같은 방법을 눈여겨볼 수 있을 테다.


  나의 감정을 마주했다면 타고난 기질을 살펴보며 ‘참자기’를 탐구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차례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에게는 본래 자신의 기질과 맞지 않는 ‘거짓자기’에 잠식된 모습이 나타난다. 저자는 이 역시 사회와 타인의 기대가 강요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한다. 일반적으로 자기주장이 강하고 까탈스러운 성격보다 순하고 무던한 성격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만, 사실 ‘좋은 성격’도 단지 사회의 기대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애초 한 사람의 성격은 상황에 따라 강점이 될 수도, 약점이 될 수도 있기에 “가능성의 영역”에 존재한다. 각자의 고유한 기질과 참자기가 좋거나 나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거짓자기는 참자기의 페르소나가 되기도 하며, 우리는 상황에 따라 참자기와 거짓자기를 선택할 수 있다. 문제는 거짓자기가 참자기를 완전히 대체할 정도로 커지면 자신의 본모습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함께 제시된 ‘자기개념’과 ‘레퍼토리’ 개념은 독자가 자신의 본모습을 결코 단편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참자기를 유연하게 탐구하도록 돕는다. ‘비폭력대화’와 ‘심리적 경계’ 지키기 등 나의 고유함을 잃지 않으며 관계 맺기 위한 도구도 함께 소개됐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정지우 작가가 추천사에서 언급했듯 심리학자인 저자가 내담자가 아닌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을 직접 고백하며 그로부터 회복한 과정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독자가 자기 고유의 성향을 긍정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주제 의식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한겨레출판, 2023)와의 차이도 바로 이 부분에서 나타난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가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여러 사람들의 상담 사례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이 책은 저자가 자신의 트라우마 경험을 직접 서술해 독자가 트라우마 당사자의 상황과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으며 트라우마가 초래한 행동이나 감정 반응, 트라우마 회복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투사’, ‘반추’, ‘스키마’로 인한 희생 등의 경험을 설명하며 자신의 욕구와 감정 이해를 넘어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 타인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납득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이 ‘외상 후 성장’은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형태로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연대할 가능성도 만들어 준다. 자신의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해 본 사람은 타인의 슬픔을 진지하게 대할 줄 알며, 타인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에도 손 내밀 수 있기 때문이다. 


  나와 타인의 취약성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민폐’ 끼칠 용기를 얻는다. 상대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거절을 두려워하며, 그 이면에 수용 받고 싶은 욕구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상대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 볼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약한 존재들이기에 서로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지지망으로 얻는 유대감, 서로의 고통에 공감하며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연결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사회가 바라는 완벽의 기준을 내려놓고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타인의 취약함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타인과 나 사이의 경계를 애써 허물고 서로의 진심에 정향하며 공명하는 우리를 그려 본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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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09호 - 독서모임의 진화 기획회의 609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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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주로 사회서를 읽는 독서모임이나 인권 관련 텍스트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친구들과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냐는 말을 많이 했다. 아마 서로에게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에겐 책 내용만큼이나 관계도 중요했던 것 같다. 기획회의 609호에는 《독서모임의 진화》라는 제목처럼 최근 진행되는 독서모임의 새로운 형태나 특징과 함께 독서모임이 만드는 다양한 관계를 다룬 글이 실렸다. 유료 독서모임 서비스 ‘트레바리’와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 당근마켓의 모임 기능 활용법 등을 소개한 글에는 각 플랫폼만의 특징과 이용 방법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독서모임 트렌드 파악에도, 독서모임 개설이나 참여 방법을 알아보는 데에도 유용할 듯하다. 


  특히 인트로 글에서는 〈‘책 모임’에서 연애하면 안 되나요?〉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독서모임이 꼭 책만 읽는 모임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냐는 물음이 돋보인다. 필자는 책을 핑계로 모여서 책과 상관없는 수다를 떠는 모임이라도 괜찮지 않냐며, 일단 책을 계기로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언뜻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애초에 책읽기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이기에 독서모임에서는 책보다 관계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나아가 책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없어서 사람들이 책과 멀어지는 지금, 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책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눌 때 생기는 다양한 관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는 일단 책을 같이 읽어냈단 사실만으로 유대감이 생기는데, 보통 어려운 책일 때 그 유대감이 더 커진다.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을 만든 편성준 작가도 어려운 작품을 같이 읽으며 “행간에 숨은 의미까지 알게 되는 기쁨”을 맛봤다고 말한다. 이때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관심사나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그 관계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북살롱 오티움 정혜승 공동대표가 독서모임 플랫폼 ‘트레바리’에서 나이나 배경, 관점은 다르지만 “결이 비슷한 이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했듯 말이다. 


  물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도 독서모임의 묘미다. 편 작가는 ‘독하다 토요일’에서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협소한 시선으로 책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경험을 소개한다. 책읽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임에도 모여서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세계를 바라보던 방식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가 대신 읽어줄 수 없는 것이 책이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껏 봐 왔던 방식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점도 기꺼이 빌려 보는 ‘함께 읽기’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독하다 토요일’이 테니스도, 등산도 아닌 책 모임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다는 편 작가의 말은 책만이 가지는 매력을 증명한다. 책 모임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만들어 내는 연결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는 책을 통한 관계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책과 가까워질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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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복지 - 공장식 축산을 넘어, 한국식 동물복지 농장의 모든 것
윤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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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동물복지라고 하면 비거니즘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동물복지가 결과적으로는 동물이 도축되는 것을 막못한다는 점특히 한계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머리말에서 언급했듯 돼지복지를 위한다면서 결국 잡아먹는 건 모순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동물복지를 공격하거나 그 필요성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적인 소비급증하면서 육류 소비량도 증가했는데, 이때 양돈업자들도 생산성을 극대화하고 이윤 추구를 위 항생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건강도 위협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물복지가 등장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가 1장에서 제시한 관행적인 국내 양돈장의 모습을 살펴보며 동물복지의 필요성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돼지가 새끼를 낳는 기계나 살찌워야 하는 대상으로서만 여겨지고, 돼지들건강 상태나 생활 환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 글과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와 더욱 충격적이었다. 인간이 돼지를 도축하기 위해서 키수밖에 없다면, 그 돼지가 사는 동안만큼은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복지 이론이나 동물복지 수준 평가 기준이 제시된 3장 내용에서는 동물복지가 실험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과학 분야이믕ㄹ 알 수 있었고,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 우리나라의 농장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현재 제도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살펴볼 있었다. 소비자로서 동물복지 축산물의 가치를 인정하고, 물복지 필요성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이 중요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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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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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운 좋게도 비거니즘을 실천하거나 지향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 중에는 요일 하나를 정해서 채식을 실천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와 종종 점심을 같이 먹으며 식당에서 원하는 메뉴를 채식으로 먹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걸 느꼈다. 하루는 친구가 밖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도 기본으로 고기가 들어가는 식당이 많아 김치찌개를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의 얘길 듣고 아, 김치찌개에도 고기가 들어갔었지, 하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김치찌개가 비건이 아니라는 것이 생경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 김치찌개에도 항상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그 사실이 특별히 어색하게 느껴진 건 내가 고기를 쓴 김치찌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 것 같았다. 김치찌개가 당연히 비건일 거라고 생각했던 건 고기뿐만 아니라 젓갈 등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동물성 재료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게 찌개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나의 안일함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때의 일은 내가 동물성 재료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또 식당에서 요리할 때 동물성 재료가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사실 집에서 무언가 요리를 해 먹으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최소 하루 한두 끼 정도 집에서 직접 밥을 해 먹을 때만큼은 채식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레시피를 찾아보면 채소가 메인인 요리에도 논비건 재료가 종종 들어간다. 작게는 굴 소스 같은 양념부터, 크게는 참치 캔이나 계란 같은 재료가 주로 쓰인다. 무 조림에 굴 소스가 들어가거나, 양배추 덮밥에 참치 캔과 계란이 추가되거나 하는 식이다. 그래서 레시피를 찾을 때에도 메뉴 이름 앞에 꼭 ‘비건’을 넣어 검색하는 편이다. 그렇게 찾은 비건 레시피 중에서도 ‘초식마녀’님의 레시피는 정말 쉽고 간단해서 애용하고 있다. ‘초식마녀 Tasty Vegan Life’ 유튜브 채널에도 2~3분 남짓한 레시피 영상이 여러 편 올라와 있을 정도로 요리 과정이 짧아 누구나 시도해 볼 수 있다. 


  초식마녀님의 이번 책 《비건한 미식가》에도 저자만의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한 레시피가 여러 편 실렸다. 다만 이 책은 단순히 요리법만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요리와 관련된 저자의 에피소드나 생각이 들어간 에세이가 함께 실렸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에 실린 레시피는 저자의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찾아볼 수 있지만, 각 레시피의 앞쪽마다 실린 저자 에세이는 영상에 드러나지 않은 저자의 생각이나 카메라 너머의 일상을 담고 있어 저자 유튜브 채널에서 꾸준히 레시피 영상을 시청하는 구독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저자의 손 그림으로 그려진 레시피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저자가 혼자 해 먹은 음식을 다룬 1부나 다른 사람과 같이 먹은 음식이 담긴 2부에서는 저자와 주변인의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담긴 에세이가 주를 이뤘다면, ‘모두가 환대받는 식탁’이란 제목의 3부에는 비거니즘에 대한 메시지가 가장 강하게 나타난 에세이가 담겼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1, 2부의 내용에서 더 나아가 3부에서 다루는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와 육식을 부추기는 사회의 모습, 우리가 먹는 음식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준다. 마지막 장에 담긴 강한 메시지 역시 이 책을 단순 요리책과는 다른 책으로 만들어주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간단하고 쉬운 레시피와 비건으로서 느낀 고민이 담긴 이 책은 이미 비건인 사람부터 비건 지향인, 이제 막 채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모두에게 권할 만하다. 채식하는 내가 민폐 끼치는 존재로 여겨지는 게 싫어서 불편을 감수하다 보니 육식주의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부채감이 쌓였다는 이야기나, 논비건 음식을 대접한 카페 사장님의 진심을 환대할 수 없었던 일이 고독하게 느껴졌다는 저자의 말은 비건이나 비건 지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비건으로서 먼저 고민한 지점과 그에 대해 내린 자기 나름의 답은 채식을 처음 실천해 보려는 사람에게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선배 비건의 조언이나 간단한 비건 레시피가 필요할 때마다 이 책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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