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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만난 건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책 강의 시간이었다. 첫 느낌은 좋지 않았다. 주인공은 첫 장부터 위험천만하게 망치에 포크 들고 설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엄마는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소릴 지르고, 아들이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라니까 저녁밥도 안 주고 방에 가둬 버리기까지…… ‘뭐 이런 어린이 책이 다 있어?’
그런데 아이를 키워 보니 책이 다시 보였다. 작가의 말처럼 ‘어른들의 눈으로 꿰어 맞춘 어린이가 아니라, 살아 숨 쉬고 제 나이만큼의 생각과 고민을 가진 진짜 아이’와 육아의 고단함에 감정이 격해져서 잠시 이성을 잃은 진짜 엄마가 등장한 그림책. 꾸민 이야기가 아닌 날것의 우리 이야기. 다 저러고 사는구나, 내 이야기 같다 싶어 위안이 되는 책. 예전의 뭘 모르던 나는 창피하게도 어린이 책은 으레 이래야 한다는 어설픈 잣대를, 그림책의 교과서처럼 정제되고 정교한 내용과 형식을 보여 주는 이 엄청난 작품에 들이댔었다.
방에 갇힌 맥스가 상상을 시작하면서(꿈을 꿨는지도 모르겠다)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하고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맥스는 비로소 키득거리며 밝은 표정이다.
액자식 일러스트가 조금씩 커지다가 ‘이제 맥스의 방은 세상 전체가 되었어.’ 라는 글과 함께 일러스트가 한 페이지를 빈틈없이 꽉 채우더니, 항해를 하고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도착할 때까지 옆 페이지까지 넘어가 커져서는 ‘괴물 소동’에서는 비로소 full 페이지, 글 없는 그림으로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우리 아이도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괴물들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동작이 주는 재미도 있겠지만 확실히 스케일이 주는 감동이 있다. 일러스트 크기의 변화를 통해 환상 여행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건 책이 발간된 1963년 당시에도 꽤나 세련된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짐작이다.
‘괴물들은 무서운 소리로 으르렁대고, 무서운 이빨을 부드득 갈고, 무서운 눈알을 뒤룩대고, 무서운 발톱을 세워 보였어.’ 작가는 텍스트로 무섭다고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정작 일러스트 속의 괴물은 3등신이나 될까 싶은 아기같이 귀여운 모습이어서 아이 역시 하나도 안 무섭다며 깔깔댔다.
맥스는 ”조용히 해!” “이제 그만!” 하며(어쩜, 내가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다) 호통치고 괴물들을 제압하고 저녁도 안 먹이고 쫓아버리는 등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 엄마가 하던 대로 똑같이 한다. 괴물들은 맥스보고 ‘괴물 중의 괴물’이라 하고 ‘괴물 나라 왕’으로 삼는 설정이, 나만의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작가가 현실 세계의 엄마들에게 “당신도 괴물이거든.”이라고 전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표지에도 등장하는 사람 발을 가진 괴물이 맥스 엄마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한쪽 구석에서 슬그머니 등장해서는 어부바도 해 주고 곁에서 잠든, 어쩐지 맥스의 눈치를 살피는 짠한 눈동자의 괴물 말이다.
맥스는 집에서 못다 한 장난의 한이라도 풀 듯 괴물들과 한바탕 신 나게 놀다가 모든 아이가 그렇듯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었나 보다. 맛있는 냄새가 풍겨 오면서 현실 세계로 맥스를 불러들이는데 후각 장치를 썼고, 집으로 돌아온 맥스의 편안하고 조금은 나른한 표정 뒤로 마지막 페이지에 ‘저녁밥은 아직도 따뜻했어.’라는 텍스트만으로 여운을 주면서 우리의 오감과 감성을 간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