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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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팟캐스트에서 낭독할 때 듣고 마음에 남았더랬다. 그 후에도 몇 번 여러 사람이 소개하는 목록에 이 책이 있었다. 궁금했으나 품고만 있다가 앤드류 포터의 신작 [사라진 것들]을 먼저 보았다. 삶의 미묘한 느낌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 바로 이 책을 찾아 나섰다. 먼저 읽은 책의 느낌이 너무 세서 그런가, 이 책은 내게 그리 강렬하진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 내내 아스라히 사라지지 않는 느낌이 있다. 기억에 남는 삶의 한 순간, 누구나 느꼈을 법한 어렴풋한 감정을 생생하게 박제해 놓는 느낌. 살아있는 느낌을 벽 한 켠에 붙여놓고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잔상이 짙고 느낌은 아스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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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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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자기 형태와 색을 가지지 못하는 그림자처럼, 편집자는 잿빛 어둠에 숨어 있는 존재다. 살아있는 모든 책에 반드시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형태와 색은 없다. 전면에 나서는 적이 없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소설이라는 사실에 끌려서 책을 샀다. 심지어 저자가 내가 좋아하는 김혜진 작가다. 

김혜진 작가 특유의 수줍은 듯 덤덤한 말투, 하지만 무심하지 않은 세심한 서술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가슴이 뛰었다. 소리 없이 뜨거운 애정을 단단하게 지켜나가는 편집자의 수줍음과 열정을 그 문체로 보여주다니 영화에서 딱 맞는 배우가 역할을 소화해 주는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표현 못했고, 인지하지 못했던 일의 감정과 고단함과 의미를 풀어주는 문장마다 밑줄을 그어가며 순식간에 읽었다. 나, 이 작가의 글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난 작가의 문체가 정말 좋았다. 편집자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서술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딸에 대하여]도 문장에 밑줄 그어가며 여러 번 읽었는데, 이번에도 미치도록 글이 좋다.  

다만 주인공이 너무 편집자의 정석과도 같아서 좀 괴리감을 느꼈다. 주인공 본인은 인식하지 못했지만, 천상 편집자였던 사람. 그리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 본질을 지키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의문이 남았다. 마냥 관찰자의 시선으로 소설을 대하긴 어려운 입장이라 그랬을까, 소설가가 쓴 편집자의 삶이 낯설다. '편집' 업에 대한 고민은 늘 있는 일이니 뒤로 젖혀 두고, 김혜진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읽어야겠다. 한 사람의 일을 들려주는 작가의 목소리가 참으로 매혹적이라 그 감각을 계속 마음에 채우고 싶다.  


글을 마무리하다, 문득 소설의 제목이 떠올랐다. 끝까지 살아 남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롯이 나를 담아 내 것으로 만들어 냈느냐의 문제, 작가가 편집자의 삶을 이야기하며 보았던 건, 그 마음 아닐까, 자신을 온전히 쏟은 마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업을 이어가지만, 그 마음은 같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공유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연주하는 업. 그게 출판이다. 이 소설은 그들 중 마음을 지켰던 어느 한 구성원의 이야기고,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다른 이들을 향한 응원이자, 헌사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 P34

그녀는 사람을 대할 때의 미숙함을 글을 대하는 데서 채우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일에 대한 어떤 마음을 지키기 어려울 거라는 막연한 예감때문이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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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깨운다 - 제자훈련의 원리와 실제
옥한흠 지음 /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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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둔 채 보아온 지 여러 해이다. 몇 번 들춰보기도 했다. 참고 서적으로 자주 보아왔기에 읽었다 느꼈지만 완독은 처음이다. 그렇듯 익숙하나 실은 속 내용을 정확히 접하지 않았던 책. 제자 훈련의 이론과 실제라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는 내용이려니 했다. 그런데 새로웠다. 심지어 제자 훈련을 받았는데도, 난 정말 참 뜻을 모르고 훈련만 받았구나 싶다. 

어떤 일이든 기저에 깔린 기본 철학을 이해하고 행하는 일과 아는 줄 알고 행하는 일은 차이가 있다. 그저 상용화된 프로그램처럼 덤덤하게 느껴지던 제자 훈련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한 목회자의 열정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평생을 고스란히 바쳐 이룩한 제자 훈련 이면에는 이런 고민과 철학이 있었구나 접하니 좋았다. 제자 됨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중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열정이 녹슬지 않고 책 안에서 이토록 새롭게 살아 숨 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정말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민을 하고 평생을 바치셨구나 싶다. 귀한 책이었고, 읽는 내내 귀한 마음 이어받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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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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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이란 제목처럼,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하늘색 같다. 같은 듯 매일 다른 색과 풍경처럼 각기 다른 인물들이 다른 듯 비슷한 따듯함을 지녔다.
로봇의 말들이 왜 이리 눈물을 자아내는지, 우린 콜리처럼 그저 우리를 이해하려고 듣는 이가 필요한 지 모른다. 들어주고 바라봐 주는 이가 있다면 사람은 스스로 상처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힘껏 달리지 않아도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같이 나아갈 수 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아니라 콜리처럼 단순한 사고 방식이 오히려 필요한 때도 있다. 기술과 공존하는 세상에서 진정한 나 다움과 우리다움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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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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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토너의 인생은 별 게 없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곤궁하게 살았다. 첫 사랑과 결혼했으나 행복하진 않았다. 딸을 사랑했지만 행복하도록 지켜주진 못했다. 안정적인 직장이었지만, 인정받진 못했다. 화려한 성공의 순간도, 평온한 환경도 없었다. 외롭고 고달팠다. 

  그 삶을 책으로 만났다. 특별한 게 없는데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그리고 부럽다. 그는 그의 삶을 지탱할 사랑을 만났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그를 그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사랑이 있었다. 인정해주는 이가 있든 말든, 화려한 성취가 있든 말든, 그는 그 사랑을 지켰다. 묵묵히 그만의 삶을 살아냈다. 부러웠다. 삶을 다할 때까지 사랑했다는 게. 다른 사람의 모략과 공격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자신을 지켜냈다는 게. 부족해 보이는 인생이 완벽한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책을 다 읽었는데 마음에서 책장이 덮이질 않는다. 마지막 스토너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파고든다. 난 내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나?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건 사랑일세...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 주기를 기다렸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우리 둘 다 지금과는 다른 사람, 우리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될 거요.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번 일에서, 적어도 우리 자신의 모습은 지킬 수 있었오. 지금의 모습이......우리 자신의 모습이니까.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열매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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