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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이 캄캄해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유꽁사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0월
평점 :
유꽁사 - 눈앞이 캄캄해도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눈앞이 캄캄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건 식사다. 식사를 챙긴다는 것, 나를 위해 신선한 재료를 장 보고 정성껏 요리하고 예쁘게 차려낸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눈앞이 캄캄하고 무기력 할 때, 가장 먼저 포기하는 일을 유꽁사 작가는 더 열심히 하며 여전히 천천히라도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요리라는 건 내가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가장 확실한 기술이다.
작가의 단호한 한마디처럼 요리를 하지 못 해 자신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사람은 <성인>임에도 아직 <어른>은 아닌 것이다. 어려서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당연하지만, 그 밥상이 언제까지 나를 먹여주진 않는다. 이 책에는 각 챕터마다 요리법은 일러스트로 완성된 요리는 사진으로 등장한다. 요리 초심자라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간단 레시피까지, 작가는 자신을 먹이는 일에도 남을 먹이는 일에도 열성이다.
"요가는 완벽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에요. 용기를 얻기 위한 시도입니다. 넘어져도 괜찮아요. 계속하세요.
넘어져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계속 하게 되면 용기를 얻는다니. 이같은 요가 홍보 문구를 본 적이 있는가? 여전히 힘들고 어렵지만 꾸준히 요가원에 가서 그 날의 용기를 얻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며 사는 이야기가 따뜻해서 좋았다.
당장 나를 살리는 일에 집중한다. 당장 내일이 불안하다가도 간은 소금으로 할지 간장으로 할지가 더 중요한 존재이므로 미래의 걱정은 내일의 몫으로 남겨두고.
요리의 결과는 따뜻한 음식을 내가 먹으며 피와 살이 되는 것이나 비단 결과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요리의 과정에서도 머리 아픈 고민을 잠시 미뤄두고 집중할 수 있다. 날카로운 칼과 뜨거운 불, 정확한 계량이 필요한 요리의 과정 속에서 내일의 고민을 신경쓸 여력도 없다. 머리가 복잡할 땐 요리를 하자. 유꽁사 작가의 팁이다.
가장 멋진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작가님이 떫어서 버리려던 대봉감을 맛있게 후숙해 한 알 건네주던 경비 아저씨의 이야기다. 아까운 감을 버리지 않고 맛있게 익힌 것도 지혜롭지만, 각자 맞는 때를 기다려야겠다는 작가의 말도 마음에 남는다. 나는 아직 떫지만 곧 달달 해질 날이 올 거야,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글과 그림, 사진이 함께 있는 에세인데다가 특별한 스티커 굿즈까지 함께 오는 책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할 일 없이 앙증맞다. 눈앞이 캄캄할 때마다 곁에 두고 읽고 싶다. 책 속의 레시피를 하나씩 따라해 보며 한 걸음씩 내딛을 나를 미리 칭찬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