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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런어웨이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은 처음이다. 그녀의 이름조차 솔직히 말하면 들은 기억이 없다. 하지만 『진주 귀고리 소녀』라는 작품명을 듣자마자 ‘아 그거 쓴 작가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소설을 읽은 적도 없고 스칼렛 요한슨이 나왔다는 그 영화도 본 적 없다. 다만 아는 것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이다. 그만큼 강렬했다. 이 책 『라스트 런어웨이』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감동적인 소설은 『진주 귀고리 소녀』 이후 최고 걸작이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너’다. 상처투성이인, 상자 속의 여자인 그녀가 어떻게 “삶과 상처를 바느질하여 휴머니즘이란 꽃을” 피우는지 지켜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상처도 치유된다. 소설의 배경과 지금은 약 150여년의 차이가 있지만 그 격차를 넘어 우리는, 우리가 안고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닮은 문제들을 발견하게 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다. 언니를 따라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들을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 계속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아너’의 수많은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이 책의 모티프는 ‘자유와 양심의 문제’다. 이 책의 한 축을 담당하는 무리는 퀘이커 교도다. 톨스토이가 말년에 『부활』을 집필해 그 수익으로 지원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평등사상에 반하는 노예제도에 반대했”지만 실천에 이르지는 못했었다. 이 책을 볼 때는 퀘이커 교도와 아너를 대립시키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소설을 읽는 것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과 같다.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속해있던 곳이, 삶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좋은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혼란과 갈등이 뒤섞인 삶 속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 알 수 있다. 아너가 도망 노예를 도왔나 안 도왔나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너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나 하는 것이다. 책을 덮고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지게 한다는 점에서 슈발리에와 함께 떠난 여행은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