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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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나긴 여정이라 불리는 인생길에 우연한 만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아버릴 때가 있다. 그 때 그 사람을 집안에 들이지만 않았어도 별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일들이 종종 생긴다.

   ‘모든 사람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

    는 문장에는 어떤 대상을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고, 어떤 공간에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미답의 공간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원청은 찾을 수 없다고 하여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지금의 삶을 견디게 하는 원천으로 자리하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다소 무모해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힘을 싣고 길 위에 서는 이가 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린샹푸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400무의 전답, 여섯 칸의 방이 있는 대저택, 100여 권의 책을 상속받은 부자인데다 아버지로부터 뛰어난 목공 솜씨를 물려받았다. 린샹푸의 어머니가 사별한 지 오년을 지내는 동안 말수가 급격히 준 그에게 매파는 혼담을 전하지만 쉽사리 성사되지 않았다. 어느 날 기력을 잃고 며칠 신세를 졌으면 하는 바람을 비치는 오누이-아창과 샤오메이-를 집안에 들임으로써 린샹푸의 삶은 변곡점을 맞는다. 아창이 여동생 샤오메이가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그의 집에 기거할 수 있기를 청하여 그는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데다 그녀의 청초함과 부드러운 언행에 끌려 함께 지내게 되었다. 거처가 정해지면 동생을 찾으러 오겠다던 아창은 함흥차사처럼 연락이 끊겼고, 린샹푸는 함께 지내던 샤오메이와 결혼하고 한 공간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린샹푸와 샤오메이와의 단란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모아 온 금괴의 절반을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가산을 탕진하고 오열하던 린샹푸는 천만금의 재산보다도 도둑맞지 않을 기술을 겸비하는 것이 낫다는 어머니의 말을 새기며 경목 장인으로 오래된 물건을 고치며 그녀를 찾아 나섰다. 딸 린자바이를 안고 젖동냥으로 딸의 주린 배를 채우며 원청을 찾아 나섰다. 풍랑으로 거룻배는 난파되었고 가슴팍에 있어야 할 딸이 없어져 통탄의 눈물을 흘리던 와중에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뒤 잃어버린 딸을 찾아 기쁨의 무늬를 새기며 샤오메이가 나타날 때까지 시진에서 그녀를 기다리겠다고 다짐한다.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잃어버린 원청이 시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시진에 머무르고자 한 것이다.


 백 여 집에서 젖을 얻어먹고 자랐다는 의미로 붙인 딸-린바이자-과 함께 딸의 어머니인 샤오메이를 기다렸다. 시진에서 목공 린샹푸는 톱질 장이 천융량과 함께 자연 재해로 인한 민가의 피해를 복구하며 돈을 벌어들이며 훗날을 대비하여 완무당의 땅을 사들였다. 그는 샤오메이와 아청을 찾지는 못하였지만 시진에서 또 다른 인연들을 만들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외지에서 들어온 천융량과 리메이롄 가족을 만나 부부의 두 아들과 자신의 딸과 한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시진에서 목공소를 열어 자산을 쌓기 시작한 린샹푸는 이곳의 높은 인물인 구이민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혼사를 결정하였다.

 

   하지만 시절이 하수상하여 국민혁명군과 북양군 간의 전투가 벌어지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백성들은 토비가 되었다.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극심한 혼란기에 토비들은 마을의 일반 백성들의 재산과 식량을 약탈하고,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사람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갈취하는 사건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 토비에게 납치된 이의 잘린 귀가 하나씩 들어있는 봉투가 도작할 때마다 양민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딸 가진 부모는 서둘러 혼인을 시키거나 유학을 보내어 화를 면하려 하였다. 토비를 막기 위해 조직한 시진 민병단은 토비들이 공격하는 총기를 대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진의 지도자로 마을의 중심인물인 구이민을 찾기 위해 토비들과의 거래에 응한 린샹푸는 시진 대표 구출 거래에 나섰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정혼한 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딸 린바이자와 천융량의 아들 천야오우는 연애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갈애하였다. 딸의 마음을 알아차린 린샹푸는 딸을 상하이 기숙학원으로 유학을 보냈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견이라도 한 듯 딸에게 전할 메시지를 적어 지인에게 맡겼다. 린샹푸는 구이민을 구출하기는커녕 토비의 계략에 빠진 것을 알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는 세상에 남겨진 린바이자를 가슴에 품은 채, 외로움에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다정한 빛으로 다가온 샤오메이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로 하늘의 별이 되어 원청을 찾아 헤매고 있을 듯하다.

 

   린샹푸 집으로 찾아든 샤오메이와 아청이 남매지간이 아닐 것이라 의심했던 일이 소설후반부에서 드러난다. 옷 수선으로 재물을 쌓은 집안의 민며느리로 들어간 샤오메이는 세월이 흘러 아청과 혼례를 치르고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시가의 재물을 훔쳐 친정 식구를 도왔다는 이유로 마음 붙이고 살던 동네를 떠나야 했다. 샤오메이를 떠난 보내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내던 아청은 부모 곁을 떠나 부부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찾아 유랑 길에 올랐다. 그는 샤오메이의 고향 완무당에서 선뎬으로 다시 상하이로 넘어갔지만 무계획적으로 노잣돈을 탕진하고 막연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경성으로 향하였다. 아청은 어머니에게 말로만 들었던 경성에 있는 이모부에게 의탁해 보자고 하지만 이마저도 공수표에 지나지 않았다. 부부는 사실적 근거도 없이 소리를 듣고 걸음을 떼며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경성이 아닌 곳으로 발길을 돌려 린샹푸 집에 이르렀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 후 외로움과 헛헛함으로 별반 다를 게 없는 나날을 보낸 지 다섯 해가 지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를 만나 잠깐의 결혼 생활 후 엮이지 않아도 될 일에 저당 잡힌 채 기존의 삶과는 다른 생을 살아야 했다. 아청을 찾아 떠난 샤오메이는 남하하던 중에 임신 징후를 느끼고 다시 린샹푸를 찾아 딸아이를 출산한 후 어느 정도의 시일이 지나자 다시 아청에게 돌아갔다. 린샹푸는 인생의 마감 날을 예비하여 딸에게 엄마를 찾아주려는 인생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샤오메이의 궤적을 찾아 낯선 길 위에 섰다. 원청이라는 곳이 무형의 공간임을 알았지만 샤오메이를 찾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에게 남겨진 사랑은 생의 마지막까지 찾고 싶은 샤오메이의 흔적에라도 닿고 싶은 정표였다. 샤오메이와 린샹푸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멀리 달아난 것처럼 원청은 닿을 수 없는 고도와도 같은 존재인 듯하다. 굳게 잠긴 문의 자물통을 열어줄 숙명적 열쇠를 찾아 떠난 린샹푸의 유랑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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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스무 살 - 제1회 창비교육 성장소설상 대상 수상작 창비교육 성장소설 7
최지연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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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은 뭘 해도 이해가되는 나이다.

열아홉 생을 옥죄어 보낸 시절에 대한 항마로 용기내는 스무 살

경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은 섣불리 나서서는 안 된다고 우리를 주저앉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물과 썰물이 만나 파랑을 이루듯

무엇이든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나이 스무 살이다.


스무 살의 나를 소환하며 읽은 소설이다. 원격 연수기관으로 관심 있게 봐 온 창비교육연수원에서 받은 귀한 새해 선물이라 더 뜻깊은 소설 이 와중에 스무 살이다. 열여섯 엄마 곁을 떠나온 나는 대학 입학으로 부모 곁을 떠나온 스무 살의 감흥과는 다르지만 스무 살은 자유로운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나이다. 성년이라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부모 보호 속에 안주하기에는 뒤가 켕기는 나이 스무 살이다. 통제된 생활 속에 갇힌 일상을 보낸 지난시절과는 대비되는 무한한 자유 앞에 어질어질하던 대학 1학년 뒤늦게 맞닥뜨린 자유로움에 빠질세라 시국은 하수상하여 가투라 불리는 거리 시위가 빈번한 시대에 스크럼을 짜고 시위대를 따라 움직이느라 분주했던 스무 살과 스물 둘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졸업할 때가 되었다. 준비도 없이 졸업을 맞았고 사회인으로 제 앞가림을 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간간이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찾으며 미팅과 소개팅을 이어갔지만 짝으로의 인연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제대로 된 연애 경험도 없이 지금의 남편을 만나 31년째 살고 있다는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래서였을까? 은호와 준우의 만남이 눈에 크게 들어온다.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는 남녀 관계가 때아닌 엄마와의 동거로 지지부진하게 된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범적인 생활로 부모 기대에 부응하며 지내던 동생을 챙기며 맏딸의 역할을 잘해 온 은호는 대학에 진학한 후 파란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유랑하는 아버지는 결혼을 하였으면서도 엄마에게 충실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나돈다. 몇 달 자취를 감추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큰소리를 내며 집안 식구들을 호령하는 안하무인 같은 태도에 신물이 난 지 오래다. 동생 현호가 걱정될 때가 있지만 대학 입학 후 부모 곁을 떠나 자취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날개를 확 펴지 못한 채 위축되어 살던 시절에서 벗어나 혼자 살며 느끼는 자유는 달콤하였지만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부터 은호의 자유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다. 철밥통으로 불리는 공무원으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일이 최고로 좋다며 딸에게 공무원이 되라는 엄마의 말에 따라 진학한 행정학과에 진학했지만 은호의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철학도답게 여러 일들을 깊이 성찰하며 제법 어른스런 준우와의 만남이 무르익기 전 엄마와의 동거로 이마저 쉽지 않았다. 은호보다 열여덟 살이 많은 엄마와의 동거는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했다. 식당에서 궂은 일을 하면서 딸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듯 은호를 단속할수록 딸은 모녀 관계가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시작한 아저씨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던 엄마는 남자가 이성으로 다가와 스킨십하는 과정 자체를 혐오하는 듯했다. 자신을 여자로 본다는 한마디로 아저씨와 결별한 엄마를 이해하기 힘든 딸은 휴학한 대학교 상담실의 상담사를 찾아 마음의 빛깔을 드러낸다.

많은 경험으로 내담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상담사이길 바라는 상담사는 은호의 마음을 따스함으로 어루만진다. 아버지, 동생, 엄마, 남자 친구, 대학을 자퇴한 윤지 언니 등의 삶을 자신과 결부지어 고백하는 말들은 가식적이지 않은 자기 고백에 가까웠다. 은호는 자신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든 지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을 통과의례처럼 겪으며 마뜩잖은 마음을 짓누르는 꺼풀을 하나씩 벗겨내는 중이다. 깊이 있고 아량이 많은 준우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후회하면서도 입대한 준우의 사진조차 볼 수 없는 소심함을 보이기도 한다.


카페 사장의 후원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카페지기로 자리할 찰나 얼어붙은 마음의 문을 다시 두드리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음이 내는 소리에 깊게 반응하지 않은 채 마음에 빗장을 걸어둔 은호에게 휴가차 불쑥 찾아온 준우를 만나 새로운 관계를 이어갈 것처럼 보이지만 명확히 알 수 없는 만남의 길 위에 내던져진 스무 살 청춘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더욱 매력적인 나이 스무 살이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매사에 용기를 내어 실천하고 싶어진다.. 비록 일련의 일들이 내 발목을 잡게 되더라도 그 역시 인생 공부라 여길 수도 있을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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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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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합집산의 공간인 기차역은 철로를 이용하여 목적지를 찾는 이들이 경유하는 공간이다. 만남의 기쁨과 이별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병영 체험을 떠나는 친구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그들을 배웅하러 자주 찾았던 기차역이다지금은 없어진 병영체험이지만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강압적으로 이행하는 병영체험이라 발걸음이 무거운 친구들을 위로하며 안녕을 고하기도 하였다. 사사로운 감정이 서려 있는 기차역은 하얼빈 소설을 읽는 내내 동양평화와 대한 독립을 위해 목숨을 헌 신짝 버리듯 내던진 안중근 의사의 고매한 정신이 깃든 의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1905년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일본은 1906년 대한제국을 보호국으로 삼으면서 한성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이토히로부미를 초대 통감 자리에 앉혔다. 일본 제국에 의해 설치된 통감부는 한국의 정사(政事) 및 행정 등을 장악하고 통치하여 조선인들을 주권을 앗아 일본의 식민지로 삼으려는 야욕을 멈추지 않았다. 항일 운동을 벌이던 의병들은 격전지에서 죽어 나갔고, 전투에서 참패하여 자결하는 이들과 적들에게 잡혀가 생명을 잃는 이들이 늘어났다. 일제의 만행에 맞서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여 지금 발 딛고 사는 공간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은 민초들의 바람은 생명의 불씨마저 꺼뜨리고 말았다.


   이 땅에 결박되어 있으면서도 땅 위에 설 자리가 없다고 탄식하던 안중근은 이토가 통치하는 땅을 벗어나 살 길을 찾아 나섰다. 평화와 박애를 모토로 하는 천주교를 믿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중근이 꿈꾼 평화로운 세상 건설을 위해 명분을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누구나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며 자신의 꿈을 펴나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랐을 것이다. 동적인 기질이 강한 응칠의 기운을 좀 눌러주기 위하여 중근으로 개명했을 정도로 중근은 노루나 꿩 사냥을 즐기며 큰일을 도모해 왔는지도 모른다.


   집안에 닥쳐오는 위해를 장남 중근과 의논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해결하던 아버지 안태훈의 죽음은 중근이 친숙했던 세상과의 결별을 예고하였다. 굴욕적인 역사의 횡포에 맞서 역사의 적을 응징하겠다고 결의한 안중근은 조선의 독립을 보호하는 일에 나섰다. 극동 한인사회에서 인망이 높은 이석순을 겁박하여 백 루블을 빼앗은 중근은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를 저격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19091026일 아홉 시 이토 일파를 태운 특별열차가 하얼빈 역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이토 살상을 위한 걸음을 떼었다.


   거사를 준비하며 우덕순과 함께 이발소에 들러 머리 손질을 하고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은 뒤 사진을 찍었다. 한 사람의 역사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영정 사진을 의식하여서인지 둘은 말없이 사진을 찍고 하얼빈 역으로 향하였다. 고려의 패망을 알리는 만월대 사진으로 이토의 인상착의를 몇 차례 확인한 중근은 이토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고, 중근이 쏜 세 발의 탄알은 이토를 명중하여 그의 숨통을 끊었다. 단말마의 고통 속에 현장에서 죽은 이토의 부음은 조선에까지 흘러 들었고, 이토의 장례는 도쿄에서 거하게 치러졌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길은 일본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말하며 기뻐서 제국을 따르는 열복(悅服)을 주창하던 이토는 숨을 거두었다.

 

   대련을 쳐부숴 차지한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발판으로 하여 하얼빈으로 진출하였던 만큼 이토의 세상을 깨부수기에 적합한 공간은 하얼빈 역임을 직감한 중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하얼빈으로 가서 거사를 일으킨 중근이 러시아 헌병들이 던진 물음에, ‘코레아 후라를 힘주어 열창했다. 일본 영사관에서 미조부치가 신문할 때에도 중근은 짧은 한마디로 신문의 포위망을 무너뜨리는 힘을 보였다. 중근은 공판에서 사형이 언도되었을 때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궤적을 담은 책을 저술하며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의연하였다.


   중근이 저술한 동양평화론에서 대한독립’ ‘동양’ ‘만국공법등의 의미를 담은 문장은 그가 생전에 천주교도로 동양평화와 세계평화에 대한 생각을 늘 가슴에 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만국 공법을 들어 일본군 포로를 석방해 줬다가 일본군의 역습으로 아군이 목숨을 잃은 일로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평화주의자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코레아 후라를 외치며 일본의 압제로부터 대한민국을 보호하려던 평화주의자 안중근의 혼백은 약소국을 침탈하여 제국주의화하려는 국가들을 응징하려는 기류를 흘려보내고 있을 듯하다. 어지러운 세상에 영웅이 나타나 난세를 평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중근 열사의 의로운 삶을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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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의 지혜로운 인간생활 - 님을 위한 행복한 인간관계 지침서
김경일 지음 / 저녁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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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1일 수업을 들어가니 한 학생이 대뜸 말하기를 선생님께 빼빼로 대신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며 김영란 법에 안 걸리게 30,000원 이하의 책을 선택해 달라고 하여 머뭇거리다 선택한 책을 선물 받았다.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인간관계는 현안으로 삶의 화두로 자리한다. 올해 새로이 만난 직원들은 소통이 잘 되어 서로 크고 작은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해결하며 지내 그나마 다행이지만 기존의 직원들과는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관행대로 움직이며 예전에는 묵묵히 해왔다며 변화를 시도하고 새롭게 반영하는 일에는 인색한 편이라 상사들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다. 대화가 안 되니 말문을 닫고 마찰을 피하며 지내는 터라 조직 생활이 갑갑할 때가 있다.

 

   공자는 60세에는 귀가 순해져 어떤 말이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함께 생활하는 60세 이상의 관리자는 자신이 걸었던 길만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크다. 교사 경력이 짧은 이들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분위기 조성은 민주적인 교직 문화 형성에 도움이 되는 길일 텐데 아쉬움이 크기만 하다. 바꿀 수 없는 부분과 바꿀 수 있는 부분을 새롭게 조명하여 상수와 변수에 대한 혜안을 기를 수 있는 인지심리학 연구자의 글을 읽으며 변수를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여 불행에 빠지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꿔 성취를 맛보며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적인 사람을 대할 때는 상대방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마음의 눈금이 촘촘한 영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적절한 반응을 보일 때, 정직과 겸손을 적절히 배합하여 현실을 여는 과정 속에 원만한 사회생활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한 관리자와 불화한 일을 두세 차례 겪은 후부터 나는 싫어하는 것을 피하려는 회피 동기를 강하게 드러내고 생활하는 편이다. 마음은 편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은 심정이 격하게 들어 무심하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불완전한 부분을 채워줄 연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성장케 하는 힘을 불어넣는 요인으로도 작용해 감사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부족한 점을 성찰하고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준 고마운 부분만 생각하며 용기 있게 미답의 공간으로 향한다. 나와 잘 안 통하지만 나를 키워줄 힘을 제공하는 유기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처신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조직 내에는 존재한다.


   인정욕구는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침을 은연중에 발견할 때가 있다. 청년기를 보낸 제자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십대들에게 읽어주며 제자의 성장을 가늠케 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금세 인정받고 싶은 교사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지청구를 늘어놓으며 선을 넘기도 한다. 인간은 타인이 나를 자립적인 가치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며, 나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인정해주기를 바란다는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은 남의 감탄에 자족하며 사는 존재는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자신의 능력과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자존감 있는 삶을 살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음을 다시 알아차린다. 움츠러든 어깨를 활짝 펴고 적극적이고 힘 있는 자세로 성취의 기쁨을 그려보는 시간 속에 마음은 곧고 깊어질 것이다.

 

   타고난 기질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익히 알고 있으므로 사람은 뜯어 고쳐 못 쓴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지낸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잃지 않는 낙관성은 후천적인 노력과 연습을 통해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 건강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낙관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변화를 만들어내고 탐색할 때에는 접근 동기를 발휘하고, 실수 없이 집중 할 때에는 회피 동기를 써 지혜롭게 생활하는 과정은 옹골찬 인생을 살아갈 양분을 제공한다. 시간의 속도 차가 벌어지는 MZ세대들과 함께 지내야 할 X세대로 꼰대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청춘세대에게 맞는 동기를 찾아야 소통의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중시하지만 조직에 따라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쉽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트러블 슈팅을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위한 기다림의 시간을 주는 과정은 의사 결정의 초석으로 자리할 수 있다. 신속한 의사 결정보다는 여러 대안들을 제시함으로써 차근차근 생각할 시간을 주고 대안을 씨앗으로 삼아 새로운 생각을 끄집어 낼 시간을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경험으로 문제를 통찰하고 그에 걸맞은 현안 해결로 하루하루 지혜로운 인간으로 삶의 지속하는 과정에 성숙은 스며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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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문학시간 - 과학고 국어수업 3년의 이야기
하고운 지음 / 롤러코스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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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문학 수업을 맡아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업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20종에 가까운 문학교과서 중,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들이 수록된 순으로 정하여 채택하였다. 작품 관련 기록을 남길 독서기록장을 자체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나눠준 뒤 독서의 지평을 넓혀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책 대화를 나눌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함으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중시하였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학생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작품 하나 더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낫죠.”

   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자연계 남학생들은 시를 읽고 느끼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 술 더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수업하려던 의욕이 앞섰던 시절로 돌아가는 듯 저자의 문학 수업 나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문학과는 거리를 두고 수학과 과학 중심의 이공계로의 진로에 관심이 많은 과학고에서의 수업 이야기는 다채롭다.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연계하여 수업으로 만나온 학생들과 수업한 내용을 솔직담백하게 나눈다. 기계적인 수업 일지 형태를 벗어나 시도했던 수업 중 마뜩치 않은 부분까지 실어 실수를 통해 진일보하는 모습을 지향하는 수업 형태에서 진솔함은 더한다. 과학고에서는 국어 교과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도하는 교사가 생각하는 수업을 실행하는 데 부담은 적어 보인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수업 시간을 위해 시와 소설 중심의 수업으로 학생들과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나와 너를 이해하고 우리의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하여 가는 데 깊이를 더한 수업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교사는 좋은 시와 소설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면서 우리 사회를 재조명하며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데 다리가 될 만한 작품 목록을 뽑았다. 시를 본 뒤 느낌을 바로 묻기보다는 오디오로 녹음한 시를 들려주며 오감을 자극한 뒤 학생들 스스로 시를 세 번 정도 낭송한 뒤 물음을 통해 생각들을 끌어낸다. 학생들이 말문을 닫은 채 교사의 설명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스로 만든 물음을 통해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질문이 살아있는 교실 풍경이었다.

 

   평가 채점 결과에 민감한 고등학생들의 생각에는 수행 평가 성적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학생도 있지만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줄 수가 없는 평가의 맹점을 직시하는 순간이다. 공교육의 신뢰도 회복을 위해 여러 조항들이 따라붙어 평가에 자유롭지 않지만 성적을 잘 받은 학생들은 기분이 좋을 테고,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1등급에서 9등급으로 구획된 등급처럼 수행평가 결과 역시 급간 별로 점수를 나누어 평가해야 하는 과정이 무 자르듯 쉬운 것만은 아니다. 수행 평가 기준을 세워 공정하게 평가한다고 하지만 평가를 받는 학생 입장에서는 유리하고 불리한 결과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평가 결과에 대해 수긍할 근거 마련은 평가 기준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국어 교사는 지식을 구조화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교과서 밖의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며 나를 둘러싼 다층적인 세계로의 관심을 끈다. 교과서에 나온 글들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교과서 밖의 책을 들어 말하는 교사가 달갑지 않을 테지만 너머의 세상의 궁금증을 해결하며 앎의 영역을 확장하여 가는 과정이 양분으로 자리할 테다. 교육 경력은 많지만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교사이다. 안 된다고 낙담하기보다는 수업 중에 적용할 만한 수업 형태를 찾아 오늘도 고민한다. 백석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가르칠 때에는 영화와 책을 활용한 입체적인 수업을 모색하는 일 역시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수업 형태이다. 마치 공개 수업이 이뤄지는 날 교실 뒤편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에 동참하며 새롭게 적용할 수업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문학 시간을 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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