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앞둔 섣달 그믐날이면 온 동네에 조청을 고느라 달착지근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연신 혀를 날름거리게 하였다.
머리 수건을 하고 아궁이 앞에 앉은 어머니들은
장작불을 보면서 조청이 눌어붙지 않도록 불 조절을 하면서 정성을 들였다.
봄에 뜯어 말려 둔 쑥을 며칠 전부터 삶아서는 우려
두었다 떡을 만들어 조청에 찍어 먹던 맛이 그리워진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계에 의존하고 화학 처리한 음식을
입에 대면서 건강이 안 좋아진 것을 간과한 채 약물에 의존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더한다.
소박하지만 정성을 담아 장을 담그고 사라진 토하를
불러들여 길러내는 촌로의 관심과 노력은 쉽게 얻으려했던 삶을 반추하며 실패를 경험하여 뜻한 바를 이뤄가는 장인들의 숨은 열정의 결정체를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발견한다.
‘우리가 먹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이
된다.’
섭취한 대로 병이 온다는 말을 믿으며 살고 있어서인지 안전한 음식으로
건강을 돕는 식습관 형성은 밥상머리 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여긴다.
식구들이 먹을 음식인 만큼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
자연 상태의 재료를 엄선하여 전통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빚는 손길은 묵묵히 한길을 파왔던 장인들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는 가운데 생명적 유기체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기다림과 정성으로 우리의 맛을 되살려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복원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참나무 숯으로 고아낸 왕비천 하늘조청의 이원복 명인은 음식이 나니까 다른
게 들어가면 안 된다며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원재료만으로 조청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양이 늘어도 공급량을 늘리지 않는
가운데 남을 속이지 않는 재료로 깊고 그윽한 단맛의 조청을 만들고 있다.
예로부터 강진 옴천의 토하는 임금님 진상품으로
명성이 있었지만 고향에서 토하가 사라져 명맥을 잇기 힘든 점을 안타까이 여긴 김동신 명인은 토하가 자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친환경 요법으로 옴천 토하를 되살려 전통식품을 잇는 사명을 다하고 있다.
산란기에 잡으면 토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그 기간을 피할 정도로 토하를 한 생명체로 받아들여 존중하는 태도에 숙연해진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최상의 품질을 자닌 명품 소금을 만들어
그들의 문화까지 판매하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을 보면서 토판 천일염으로 염전을 운영해 ‘날개 달린 바람꽃’이라는 1등급 토판 천일염 생산에 몰입하는 박성춘 명인의 염전은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좋은 소금이 만들어지려면 바람과
햇빛,
온도와 사람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하는데 소금이 오기
시작하는 시간에는 사람이 가지 않는 게 좋다는 표현에서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살려 소금을 채취에 나서는 이들의 정성이
드러났다.
하루에 서너 번을 취했다 깰 수 있는 술인 하향주를
빚는 박환희 명인은 미국 영주권까지 반납하고 가양주를 고급주로 잇는데 일조하였다.
술 자체의 효모가 만들어낸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감각으로 누룩을 빚는 경험에서 우러나는 비법은 부단한 노력의 산물로 보인다.
누룩의 전문가로 밑술에 덧술을 더하는 과정을 거쳐
빚는 하향주를 음미하고 싶어진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야 탈이 없어요.
자연의 순리를 자꾸 거스르게 되면 우리 모두
힘들어질 겁니다.’
깨 박사로 통하는 윤원상 명인은 건강한 먹을거리를 최상의 재료로 삼아
침전물 없는 들기름과 참기름을 짜고 있다.
직접 설계해서 개발한 장비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생기지 않도록 깨를 볶는 과정에서부터 연소 과정까지 꼼꼼히 챙겨 3단계 정제과정을 거쳐 사람을 살리는 진유(眞油)로 기름을 생산하고 있다.
나이 마흔에 유방암 확진 판정을 받은 뒤 그동안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살아온 대가라 여긴 뒤 자신의 몸과 화해하기를 시도하며 식초를 만드는 명인김순양 씨는 자연과 마주 서서 생명이 생명을 낳는
발효음식에 집중하였다.
피로감이 몰려올 때는 식초를 마시며 자신의 몸이
내는 신호에 적절히 반응하며 주어진 시간을 자연 속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명인의 모습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려놓고 사는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한다.
자연이 주는 대로,
벌들이 마음에 드는 꽃물을 먹은 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는 토종꿀 명인 이진수 씨는 벌의 섭생에서부터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까지 버무려 지혜의 샘물처럼 슬기를
전한다.
과일 나무에 열매가 열리려면 수분을 도와주는
충매화에 토종벌은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프로폴리스 성분의 살균 효과는 면역력을 높여주고 꿀벌의 타액 성분인 파로틴은 사람 몸에 유익함을
준다.
살충제로 벌을 줄이기보다는 살충제 살포 대신 거리에
꽃을 심고 나무를 심으로써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드는 꿀벌의 지혜를 배울 일이다.
한 집안의 음식 맛을 좌우하는 장맛은 집안의 가풍과 혼을 담아 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기다림의 미학까지 품고 전승되고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가능한 대량 생산방식을 통한
이윤 추구와는 거리를 두고 전통의 장맛의 가치와 장 담그는 이들의 철학을 담은 정연수 ·
김종희 명인의 장 담그기는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
일처럼 보인다.
국산 콩만을 재료로 자연적 조건을 고려해 누구나
쉽게 따를 수 없는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여 최저의 염도로 가장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발효식품을 위해 온 정성을 쏟는 모습과는 대비되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우울해진다.
가공 식품과 화학 식품의 입맛에 길들여져 즉석
식품의 자극적인 맛에 현혹되어 전통음식이 빚는 참맛을 잃어가는 시대에 <<명인 명촌>>의 장인들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자연 상태에서 얻는
진미(珍味)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