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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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중학교 동기 아버지의 부음을 알리는 문자가 날아들었다. 오십 대에 접어들어 지인의 부모 부고를 알리는 메시지가 잦아졌다. 팔십사 년을 살다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 정토로 가는 길은 통과의례처럼 여겨지지만, 수정이 입시 고민으로 찾아간 점집에서 점쟁이 북두로부터 들은 단명 소식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들은 수정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냈다. 살고 싶어 산다기보다는 죽음을 피하고 싶을 뿐인 수정은 북두의 주술이 이끄는 대로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수정이 죽음을 죽이러 가는 길에서 만난 이안은 영면에 들기 위하여 노력한다. 커다란 개 내일의 등을 타고 환상의 세계로 가는 길에서 오늘은 죽고 싶지 않은 자와 살고자 하는 이가 만났다. 특정인이 이안을 사랑한 적은 없었지만 이안이 있어서 분명 좋았을 것이라는 북두의 말을 듣고 그는 죽겠다고 결심했다.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 둘은 함께 저승으로 가서 힘을 합해 저승의 신을 붙잡아 각자 원하는 것을 얻으라는 북두의 말을 듣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향한다.

동물의 등을 타고 이동하며 기괴한 얼굴을 한 인간의 –눈·모기·허수아비-의 형상을 한 괴물들을 물리치며 저승사자 앞으로 다가간다. 살생부 같은 명부의 초상화에 나온 악사, 청소부 등을 죽이고 목표점을 향하는 동안 목도한 마지막 남은 명부의 초상화는 수정과 이안의 얼굴이었다. 서로를 죽여야 목표에 도달할 일촉즉발의 설정에서 이안은 연명을 위하여 북망산을 등지고 걸어온 수정을 생각하였다. 


죽음으로 가는 이안의 모험은 끝나고 병원에서 눈을 뜬 수정은 현실의 무게를 가늠한다.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로부터 갓 태어난 강아지를 선물 받은 수정은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분투하던 환상을 떠올린다. 스무 살을 넘기기 어렵다는 북두의 말에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며 수정은 북망산과 멀리 떨어져 걸었다. 




대한민국에서의 열아홉은 입시 경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입시를 향하는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불확실성이 커져 불안감이 엄습할 때, 수정 역시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점집을 찾았을 것이다. 단명(短命)할 운명이라는 점쟁이의 말에 쐐기라도 박듯 명을 늘리기 위하여 용기 있게 모험 길에 올랐다. 태어날 때는 알아도 죽을 때를 모른 채 살다 어느 순간 죽음에 직면한다. 불투명한 죽음의 시기를 두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는 말이 항간에 떠도는 것을 보면, 탄생은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수정이 부정적인 점괘를 듣고 삶을 비관하기보다는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며 살아갈 방법을 찾아 나섰다. 우리 삶 역시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며 언제 맞닥뜨릴지 모를 시간과 경쟁하며 함께 나아갈 길을 찾는 과정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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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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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리를 걸어 중학교를 다니던 소녀는 중년에 이르러 부음 문자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요양원에서 생의 끝을 기다리며 연명하던 부모들의 죽음, 암 투병 중인 친구의 죽음, 아침에 나갔다 사고를 당한 지인의 죽음, 사춘기 열병을 혹독하게 앓던 학생의 극단적인 선택 등 다양한 죽음이 도처에 자리한다.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말에서 자유롭지 않은 유한한 인생임을 알면서도 죽음이 나와는 거리가 멀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충실한 시간을 보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제목은 유미가 재준에게 건네 준 파란 일기장 첫 장에 적힌 문구이다. 생각지도 않은 날, 막역하게 지낸 친구의 존재가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려 만날 수도 없다면 그 상실감은 세상을 잃은 것처럼 절망적일 것이다. 내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을 하지 않아 그다지 친하게 지낸 친구는 아니지만 트로트를 구성지게 잘 불러 목소리로 남아 있는 친구가 고 1때 세상을 떠났다. 밤에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다 교통사고가 나서 세상을 떠난 지 40년이 지났다. 재준이 짝사랑하는 소희에게 폼 나게 보이고 싶어 오토바이 운전에 도전한 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소심한 재준은 한 사람의 행동이나 양태를 보고 성급하게 일반화하여 매도하는 담임을 향해 주장의 부당함을 말하는 유미의 당당함에 끌려 그녀와 친하게 지낸다. 자신이 갖지 못한 부분을 가진 유미의 적극성에 친구를 요청하여 둘은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며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칭찬하며 지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뤄진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유미처럼 부모와 자식의 삶을 객관화하여 거리를 두는 경우도 있다. 새아빠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으며 감사함을 느끼고 도움을 전해야 할 때면 의붓동생을 챙기는 유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가정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살아온 문화가 달라서인지 부모마다 자식을 교육하는 데 이견이 팽배하지만, 부모들보다는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한 듯하다. 재준의 아버지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자식을 대하며 훈계를 빙자한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있지만 재준은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대신 상처를 택한다.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배우 채플린을 좋아하여 희극 배유를 꿈꾸지만 학교생활은 젬병이라 위축되어 지내기 일쑤다. 재준의 엄마는 천식을 앓고 있는데 자식이 속을 썩이면 병이 도져 어쩔 도리 없이 재준은 부모의 명에 복종하며 싫어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소심하게 행동하던 재준이 시체놀이만큼은 독보적으로 잘하여 주변인들을 깜짝 속게 하는 능력은 출중하였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연출하며 주변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던 재준이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내다 하늘로 붕 떠올랐다 주검으로 돌아왔다. 죽음을 소재로 노랫말을 적어 재준에게 평을 바라는 문자를 보낸 것이 마지막 문자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던 유미는 파란 일기장 속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재준의 마음을 읽는다. 쉽지 않은 용기로 오토바이를 타고 소희에게 멋진 남자로 인식되고 싶은 바람이 큰 그의 생각을 보며 유미는 재준이 그토록 좋아한 소희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아직은 하고 싶은 것이 많고 해 볼 것이 많은 나이 열여섯 살에 재준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일찍 생을 마감할 줄 알고 살아있는 지금에 충실한 삶을 보내자고 다짐하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내가 죽는다고 여기며 유언을 작성한 뒤 촛불을 켜두고 유언장을 돌아가며 읽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유언장을 읽어 내릴 때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눈물은 곡성으로 변하여 더 이상 유언장을 읽을 생각은 접고 서로를 끌어안던 기억이 난다. 고작 열여섯에 오토바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재준이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지 가늠조차 힘들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구석구석에 자리하여 평온한 일상의 흐름을 깬다. 돌연한 사고와 죽음은 여럿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며 쉽지 않은 길을 걷게 한다. 많은 죽음을 목도하며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는지 잘 모르기에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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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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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받기 시작한 40분 수업은 다음 단계의 학교로 진학하며 5분씩 늘어나 수업 시간을 견디느라 애를 썼다. 60여 명이 함께하는 선생님의 일방적인 교실 수업은 인내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줬다. 선생님 설명을 듣다 졸기라도 할라치면 선생님의 분필 조각은 여지없이 날아왔고 석류 알처럼 붉어진 얼굴로 수업을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학령기 친구들이 학교를 가니 덩달아 학교를 갔고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 대비용 공부를 하며 요행을 바라던 시절을 거쳐 33년 남짓 중고생을 가르쳐 왔다. 배움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동반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의미를 조금씩 느끼며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이별하였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으로 교단에서 가르침의 시간이 쌓일수록 부족함을 채워야 할 것들이 사방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관련 도서를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갔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책을 보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앎의 영역을 확장하여 내용을 심화하는 공부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지낸다. 교과서만 파고 드는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세상 물정을 알기 위하여 힘쓰고,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는 역량을 갖춰 세상과 호흡하며 나아가는 과정에 공부는 필요하다. 공부하는 습관이 배인 자기 주도형 학습자로 자기 관리를 체계화하는 방법 서른 가지를 담은 책‘진짜 공부’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기계처럼 생활하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공부를 못하겠다며 탄식하면서도 바닥을 짚고 일어날 생각은 별로 안 하는 듯하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앎의 영역의 유무에 따른 메타인지의 차이에 있다. 모르는 부분이 있어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을 찾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도와 도전을 거듭해야 한다. 이해 못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의 기회를 제공하며 익히는 과정이 쌓여 나만의 곳간에 배경지식이 축적되도록 지적 호기심으로 물음을 던지고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말하면서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가는 여정 속에 공부는 앎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하루아침에 떠오르는 영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영감은 기억하는 것들이 서로 융합하여 만들어진다는 말에 공감하며, 관심과 애정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자신을 그려본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어휘력을 풍부히 해야 한다는 말은 보편적인 진리처럼 자리한다. 스마트폰 상용화로 점점 활자와 멀어지는 세대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을 감상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떨어져 어떤 물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유치원 때부터 문해력 강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필자와 교감하고 대화하며 기억한 내용을 표현하는 공부는 호기심 충족을 위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운다.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자기를 변화시켜 갈 공부를 찾는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관심 분야에 도전하는 지적 호기심으로 책을 읽고 사색하는 가운데 내면의 힘을 강화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됨됨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찾아 골몰하여 탐구하는 진짜 공부는 정해진 틀에 매이지 않을 마음에서 시작된다. 유혹의 손길이 뻗칠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지혜와 판단력을 발달시키는 사람으로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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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문학동네 청소년 51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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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가 내리는 운동장,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은 공을 찬다. 열다섯인 아이들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 꿈을 품고 예닐곱 살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상대 진영의 수비를 뚫고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을 몸으로 기억하며 행운이 함께한다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사는 아이들과는 달리 살기 위하여 운동장을 찾은 은재가 떠오른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게 아님에 통절하면서도 이보다는 나빠질 리가 없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미성년인 자녀를 안전하게 보육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환경을 조성하는 몫은 어른 몫일진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있어 울울하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구는 돌아갈 집을 지옥으로 여기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한다. 일과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붙들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시구절과는 달리 은재의 나날은 우려가 크다. 매일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 같은 아빠를 피해 도둑처럼 복도식 아파트 창문을 떼어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은재에게 집은 휴식은커녕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목격한 형수와 우영은 춥지 않은 날에도 검은 카디건을 입고 올 수밖에 없는 은재의 상황을 알았지만, 은재가 강단지게 쐐기를 박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단짝은 은재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극구 원하지 않는 일을 나서서 행할 정도로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남편의 학대에 지쳐 집을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새도 없이 딸 은재는 아빠와 지내며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이대로 삶이 끝날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은재는 아빠의 주먹‧발길질이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고 기력을 빼앗아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 있다며 지옥 같은 시간을 잊기 위하여 운동장을 달린다. 한껏 달리다 굴러온 공을 차자 열 명의 선수로 경기를 뛸 수도 없는 상황인 여중 축구 감독 눈에 은재가 들어왔다.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며 선수 생활을 한 감독은 유지조차 힘든 축구부를 운영하며 전전긍긍해 왔던 터라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 확보가 먼저였다.

‘인생은 자주 장난질을 하고, 나는 아주 가끔 기회를 던져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왔는지 알지 못한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어느 한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 것처럼 최 감독이 은재에게 건넨 동그란 축구공 열쇠고리는 지금의 가정 폭력을 끝낼 대안의 열쇠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정 폭력의 사슬을 쉽게 끊어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은재는 보랏빛으로 멍든 팔다리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마음으로 운동장을 힘껏 내달렸다. 은재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단말마의 고통을 견디며, 폭력의 상처를 지우고 싶은 바람에 갑갑한 밀실을 벗어나 광장을 내달렸다. 한 팀을 꾸려 선수들이 경기에 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최 감독에게 은재의 특별한 재능은 팀 회생으로 새롭게 도전할 계기로 작용하였다. 작은 행운을 건네고 싶은 나는 은재가 축구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시간을 보내던 우영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며 용기를 주는 지유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에서 깊어진 내면을 가늠한다. 우영은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며 자존감을 회복하여 갔다.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 은재를 걱정하는 형수와 우영, 지유는 은재의 집을 찾아 빗장이 걸린 문을 두드려 소통하기를 바랐다. 술에 찌든 은재의 아버지는 외부의 자극에 격하게 반응하며 감금된 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 달라고 소리쳤다. 아버지의 폭력 행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학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내는 은재에게 친구들과 최 감독은 대안을 찾도록 돕는다.

경찰서에 가정 폭력 신고를 하였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경찰들은 멍 자국이 가득한 은재의 신체를 보며 아버지 말만 듣고 간단한 집안 문제를 치부했던 점을 뉘우쳤다.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괴물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가정 폭력이 가정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은재는 괴물 같은 아버지 곁을 나와 운동장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아버지의 발길질을 감내하며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과 늘 맞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덜었다. 한때 잘 지내던 친구가 사이가 멀어지면서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폭로당한 뒤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은재에게 마음의 손길을 먼저 건네 행운을 선물한 친구들이 있기에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와 횡포에 접었던 육상 선수의 꿈은 새로운 꿈의 씨앗을 움틔워 운동장을 달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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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50만 부 기념 우리들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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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면소재지에 위치한 중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34년째이다. 십대들과 주로 생활하다 보니 공부 관련 대화를 많이 나누며 지낸다.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골몰하는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족집게 처방을 바라며 공부가 안 된다고 상담을 요청한다. 공부가 안 되는 여러 이유를 들어 힘들다고 푸념하는 아이를 보며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겨 시작해보자고 해도 시큰둥한 눈치다. 요행을 바라며 쉽게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학생들은 몰입하여 학습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열다섯까지 잉여 활동으로 시간을 허비한 저자는 속수무책으로 떠밀려가는 지난시간을 돌아보며 중학교 2학년 생활을 성찰한다.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보낸 시간을 돌이켜 스스로를 존중하며 성장하는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별반 다를 게 없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밀려 생각 없이 살다 학창시절이 끝나 버린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이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대학의 문장처럼 공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마음을 다잡고 목표를 실현하였을 때의 쾌감을 맛본 사람이라면 공부의 진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라도 벽촌에서 나고 자라 학습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체육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너를 믿는다.’는 한마디는 동사형 꿈을 꾸면서 성장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자신을 막아서는 한계의 벽은 스스로 규정짓는 만큼 나의 경쟁자는 바로 자신임을 인지하고 나의 성장을 위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다. 기초가 부족하여 초등학교 문제지부터 풀며 학습을 위한 잠재력을 키워 온 저자는 지금 해야 할 일부터 챙겼다. 오늘의 결과는 내가 만든 것임을 자각하고 마음을 다지고 키우며 딴 데로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질끈 동여매고 공부하였다.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 새들처럼 치열한 태도로 뚝심 있게 목표를 향해 정진한 저자는 나의 힘으로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배움과 성장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기르며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오늘 집중함으로써 학습 효능을 드높였다. 몰입하여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질적인 발전은 덤으로 올 것이라는 믿음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능력이 붙는 선순환 경험을 쌓게 하였다. 남과 비교하며 조건에 주목하기보다는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오늘 나의 성장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하며 실천하는 가운데 값진 열매를 선물처럼 올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공부를 하다 보면 정체기가 있어 스스로 한계를 지을 때가 있다. 조건을 따지며 안 되는 이유를 찾아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나태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전 조각 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좋은 습관으로 다져진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을 온전히 다함으로써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꿈을 실현하려는 절실함으로 뚝심 있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 온 저자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이름 있는 대학, 인기 있는 학과에 동시 합격한 사실보다는 황무지 같은 공간에서 예쁜 꽃을 피워낸 노력의 결정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했음을 극명히 드러낸다.


   책을 읽고 마무리할 때 한 학생이 떠오른다. 노역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학생은 중학교 때까지는 또래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하지 않아 공부법을 잘 몰랐다. 고등학교 들어와서야 깨달은 학생은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서울 소재의 이름 있는 대학교 상경계열에 입학하였다. 1때 중2 수학문제집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풀기를 반복하더니 고3때에는 수리 영력 1등급을 받았다. 이 학생 역시 마음을 다지고 키우며 마음이 도망가지 않도록 붙잡아 둘 궁리를 하며 뚝심 있게 공부하여 CEO로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펴고 있으리라. 자각에서 나온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투지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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