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원하는 영양제는 따로 있다
신현준.정혜진 지음, 황세진 감수 / 길벗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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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 감염 시대가 지속되는 중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 19 확진자는 늘어나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증대해진다. 갱년기를 겪으며 예전과는 다른 자신을 돌보며 함께 잘 보내기 위해 건강보조식품으로 알려진 영양제 섭취가 늘어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질을 한 뒤 혈압을 재고 미지근한 물을 한 잔 마신 뒤 유산균 한 포를 먹는다. 배변 활동에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지만 몸속의 유익한 균을 늘려준다는 정보를 듣고 석 달째 먹고 있다. 유산균 복용 전과 후가 달라진 것은 없는데 장 건강에 좋다고 하니 복용해왔다. 영양제 사랑이 큰 배우와 철저한 근거로 영양제의 허실을 따지는 의사의 대담이 관심을 끈다. 그동안 먹지 않아도 될 유산균을 먹고 있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면역 기능을 높여 질병 감염률을 낮추는 것은 평균 수명을 넘어서는 장수 시대에 자기 관리능력으로 치부된다. 몸에 좋은 영양제가 나오더라도 한 번 망가진 장기를 회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건강할 때 부족한 요소를 챙기고 사라야 할 필요를 더한다. 느긋한 마음으로 갖가지 스트레스를 줄이며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습관이 선행되어야 한다. 음식만으로 섭취할 수 없는 영양소도 있어 쉽게 섭취할 수 있는 영양제가 있어 내 몸이 원하는 영양제를 찾는다. 제철 재소와 과일을 챙겨 먹는 것이 힘들고 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기를 살아내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찾아 선택하여 영양소를 섭취한다.

 

    작은 것 하나를 선택할 때에도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생각들이 작용하여 영양제 선택에 있어서도 가치관으로 작용한다. 불확실성이 폭주하는 시대 영양 과일을 부를 만한 영양제 광고 시장은 빠르게 확산되어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나은 것인지 가늠키 어렵다. 한 시대를 휩쓸던 영양제가 자취를 감추고 대체 영양제가 나와 빈자리를 채워 영양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비타민B와 비타민C는 수용성 비타민이고 그 외의 비타민은 지용성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수용성 비타민은 여기저기 사용하고 남은 양은 소변으로 배출이 되지만 지용성 비타민은 지방질이 있는 곳에 축적되어 여기저기 사용되다 남은 양이 배출되지 않으므로 복용할 때 유의해야 한다. 비타민D는 칼슘의 흡수, 골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근육. 신경의 기능에 관여하고 뼈와 치아의 구성 성분인 마그네슘은 곡류와 채소에 많이 있으니 식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진다. 잡곡밥을 먹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러 효소의 구성 성분이 되고 단백질 합성에도 관여하며 정상적인 세포 분열에 필수적인 아연은 정상적인 면역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력 보호를 위해 루테인을 복용하였는데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에는 눈을 자주 깜빡여 건조해지는 것을 막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소리 없는 장기로 불리는 간은 우리 몸에 들어온 해로운 성분을 무해한 성분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지방간은 건강한 간으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간경화는 한 번 생기면 회복되지 않는 만큼 간 건강을 위해 밀크씨슬을 복용하는 것보다 술을 줄이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민성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피로 회복은 건강한 생활의 전제로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신체활동, 충분한 휴식이 가장 중요하다. 피로는 쌓여 가는데 피로회복에 좋은 종합비타민을 섭취하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피부 건강을 위해 충분한 수분을 섭취하고 숙면을 취하여 불변의 시간을 없애야 한다. 콜라겐, 히알루론산 섭취가 피부 건강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낮은 편이므로 콜라겐에 의지하지 말고 규칙적인 생활로 피부 건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신체 활동으로 신체의 유연성을 늘리고 반신욕으로 피로를 회복하며 일상을 마무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식에도 상극이 있어 서로 피해야 하듯 영양제를 섭취할 때에 약물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약물 상호작용이란, A라는 약과 B라는 약을 함께 먹었을 때 서로 대사 과정에 영향을 미쳐 각각의 효과가 100%씩 나오지 못하는 현상이다. 내 몸에는 굳이 필요 없거나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영양제 한두 가지를 섭취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알고 효능이 있는 영양제를 섭취할 필요가 있다. 식생활습관을 살피어 부족한 영양소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과거와 현재의 병력, 생활환경 등을 고려하여 영양제를 선택해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규칙적인 생활과 적절한 신체 활동, 충분한 수면, 충분한 수분 섭취는 영양제 섭취 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건강한 생활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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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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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지난 시간을 후회하며 탄식할 때가 있다.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먼 시간을 보냈다는 자책은 삶의 의미를 갉아먹고 부정적인 생각에 자리를 내어준다.

   ‘자정의 도서관이 존재하는 동안 노라 넌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거다. 이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

   사서 엘름 부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노라에게 죽음을 떠올리기 전에 서가의 책들을 골라 읽으며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여겼다. 학창 시절 헤어나기 힘든 시간을 보냈던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성인이 되어 다시 사서의 진정성 있는 조언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졌지만 부모는 각자의 생각을 좇아 사느라 자식들에게 깊은 사랑을 전하지 못하였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로 커주길 바란 노라 아버지는 딸에게 수영 외의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딸의 생각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운동선수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자신의 지난날을 보상받으려는 듯 딸에게 수영 선수의 길을 강요하였다. 아버지는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노라의 의지를 묵살한 채 자신의 꿈을 딸에게 이식시켰다. 당시 부모로부터 어떤 정서적 지지도 받기 어려운 학창 시절 노라는 학교 도서관에 박혀 책 속 인물을 만나 대화하며 자신이 살고 싶었던 시간을 그려왔다. 당시 운동장에서 노는 것보다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더 좋았던 그녀였다.

 

   자정이면 열리는 마법의 도서관 서가에 있는 책들 중 특정 책을 꺼내 읽으면 책 속 내용은 노라의 삶으로 시작된다. 서가에서 대기 중인 많은 삶 중 다른 시간대의 삶을 시도해 보라는 사서의 말대로 처음 빼낸 <<후회의 책>>은 제목대로 후회로 맞닿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노라는 먼저 결혼 직전까지 갔다 헤어진 댄과의 일, 라비린스 밴드를 탈퇴한 일, 이지와 오스트레일리아에 함께 못 간 일 등을 떠올렸다. 선택의 총합으로 이뤄지는 인생에 후회하지 않을 일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녀는 <<나의 인생>>을 읽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 메달 획득과 관계없는 그녀만의 꿈을 좇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바람은 마법의 도서관 책장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꿈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고, 상상했던 삶을 살려 노력한다면 일상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월든>>속 구절처럼 삶이라는 여정은 살아봐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즐비하다.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일로만 국한한 성공에서 벗어나 소소한 일상이 갖는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행복을 발견하는 길에 함께한다.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우울증을 겪은 엄마는 실패의 패턴을 딸에게 이식해뒀는지도 모를 일이라며 노라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자연과 인류의 문화 등을 폭넓게 다루는 잡지를 통해 삶의 울분을 식힌 아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정의 도서관 전력 공급원인 노라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도서관은 위기에 처한다.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그녀가 선택했던 삶은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수영 선수로 성공한 뒤 국제적인 무대에서 인터뷰한 일은 아빠의 꿈, 라비린스 활동으로 명성을 얻은 일은 오빠의 꿈, 결혼 후 펍은 운영하며 지낸 일은 댄의 꿈 등을 살면서 삶의 희로애락을 느낀 노라는 좋은 경험을 붙잡고 싶었다. 외과의 애쉬와 가정을 이루고 딸 몰리와 함께하는 시간은 돌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죽은 반려묘 볼츠를 발견한 애쉬와 커피 한 잔을 마셨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대신 살고 있는 시간에 행복감을 선물했다.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며 내 안의 꿈을 키워가는 곳 도서관이다. 책 읽기를 제대로만 할 수 있다면 나와 우리 삶을 바꿔갈 수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죽으려 작정했던 노라는 자정의 도서관에서 다시 살기로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죽고 싶지 않아.’

   이번 생에는 원하지 않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져 죽고만 싶다고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을 때가 있다. 바닥 깊숙이 자리한 마그마가 분출하며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는 화산 활동은 새로운 분화구를 만들어 생명을 불러 모은다. 연락이 끊어졌던 오빠 조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회생의 길로 들어선 동생을 찾았다. 그동안 소원했던 남매의 모습에서 벗어나 서로가 꿈꾸는 시간을 응원하며 새로운 인생을 탐색하는 모습은 책 속 세상과는 다른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노라는 음악 관련 일을 할 때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피아노 교습을 위해 수강생을 모았고, 조 역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용기 있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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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경주 여행 - 개정증보판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3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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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신라의 유물과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경주는 언제 그곳을 찾더라도 설렘을 더한다. 신라 천 년의 향이 배어 있는 고도 경주로 향하는 관문은 기와를 얹어 고풍스런 멋을 자아낸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유적지로 향하는 길을 걸을 때 처음 스치는 얼굴 수막새는 신라인들의 미소를 담고 여행자를 반기는 듯하다. 손으로 빚은 얼굴 무늬 수막새는 소박하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배어 있는 신라인들의 표정을 담은 와당처럼 보인다. 신혼여행, 수학여행 인솔, 친구들과의 우정 여행, 월지 야경을 보러가는 번개 모임 등으로 익숙한 경주를 혼자 여행한 적은 없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안양에서 경주로 향하는 첫차를 타고 경주 시내 풍경을 보며 유적지로 향하는 저자의 걸음을 따라 움직인다.

 

   뚜벅뚜벅 걸어 경주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봉황대를 만난다. 강해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평야에 거대한 무덤에 함께 묻혔다. 봉황대는 신라 시대 고분 중 하나로 단일 무덤으로는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봉황대 잔디 위로 자라는 11그루의 나무는 신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그 자리에 함께하는 목신들처럼 고분의 운치를 더한다. 고분 안에 있는 황금 유물을 보관, 전시 중인 국립경주박물관은 3~4개월 주기로 전시되는 특별전이 열려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신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뿐 아니라 기획전시에는 다른 나라의 유물을 전시할 때도 있다니 전시 내용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지배층의 권력을 드러내는 황금 장식은 5세기 황금 문화의 정수를 드러낸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기획한 금관총, 황남대총 내부로 직접 들어간 듯 전시하는 방식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황남대총의 남성은 금동 관을 썼던 데 반해 여성은 금관을 쓰고 있어 여성이 남성의 우위에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바깥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시대 최전성기를 통치했던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한 종으로 당대 신라인들이 직접 남긴 글들을 종의 몸에 새길 정도로 신라의 기록문화는 대단했다. 신라의 고승 원효가 남긴 불교 이론서는 불교 문화권에 세계적인 영향을 남겼고, 원효가 말년에 머무른 고선사에서 옮겨온 고선사지 삼층 석탑이 국립경주박물관 구석에 위치한다니 참배하고 싶다.

 

   왕의 무덤 앞에 군신들 무덤이 함께하는 배총 문화를 알 수 있는 서악리 고분군은 태종무열왕릉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진골 출신 왕으로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춘추는 금관가야 왕손인 김유신과 손을 잡고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물에 젖으면 글자가 변하는 마법을 지닌 김유신 묘, 그의 위패를 모신 서악 서원은 홀로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김인문의 묘로 알려진 각간묘의 주인을 둘러싼 학계의 공방이 있지만 고분 속 주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여기며 역사적 사료의 엄중한 기록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오랜 전투 끝에 통일 신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 제 30대 문무왕은 해결하지 못한 왜구의 침략을 죽기 전까지 걱정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외세를 막겠다며 바다 속(대왕암)에 잠들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세상의 풍파를 잠재우는 피리 만파식적을 얻은 곳이라는 설화가 깃든 곳이다. 대본리 언덕에 자리한 정자 이견대, 해룡이 된 문무왕 모습을 보였다는 곳에서 수중릉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기록에 의하면 감은사지 금당 뜰아래에 동쪽으로 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용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후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불렀다.

 

   신라 최대 규모의 목탑-13금당-이 있던 황룡사와 신라 최초의 석탑이 만들어진 분황사 건립에 힘쓴 선덕여왕은 불교의 힘으로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신라 호국신앙의 중심지로 거듭나려 했다. 선덕여왕은 압도적인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 중수로 위용을 드러내며 신라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던 선덕여왕은 낭산에 묻혔고, 이후 그 아래에 부처를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사천왕사가 세워졌다니 불법으로 민심을 한 데 모으려 했던 그녀의 바람이 한 궤를 같이 한다. 신라 삼보 중 하나인 장육존불의 머리를 복원한 상이 황룡사 역사문화관에 안치되어 있다. 전륜성왕인 아소카왕의 전설이 깃든 장육존불은 사료를 통해 5미터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신라를 상징하는 최대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몽고의 침입으로 불탄 황룡사는 불타고 넓디넓은 터만 휑하니 남아 있어 융성했던 불교문화의 진수를 접할 수 없어 아쉬움은 크다.

 

  신라 천년의 수도 경주유적지에 조명으로 예쁜 빛을 쏘아 밤 볼거리를 만들어 다양한 계층들을 경주를 찾게 하는 경주 야경이다. 야간에 주요 유적지를 도는 관광버스를 운행하며 신라 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경주를 도드라지게 한다. 해 질 무렵이면 주변에 설치된 LED등에서 빛이 나와 첨성대를 비춘다. 별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천문대 기능을 한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 속 숲인 계림을 지나 반월성을 거쳐 식빙고를 보고 경주 야경의 압권인 동궁·월지로 향한다. 신라 동궁 안에 있던 인공 연못인 월지는 조선시대 이래 오랫동안 안압지로 불렸던 곳이다. 문무왕 14(674)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때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국사는 여느 절과 달리 돌로 기단을 단단히 잡은 뒤 차곡차곡 쌓아 연결한 돌담 위에 목조 건물이 세워졌다. 불국사 창건주 김대성은 다양한 신분의 장인들과 함께 대웅전 앞에 석가탑과 다보탑까지 세워 불국토를 이뤄 나라 전체에 평화가 가득하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무영탑으로 불리는 석가탑은 석공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사랑 이야기가 어우러져 석가탑의 의미를 더한다. 고전적인 석탑 건립 방식을 바탕으로 조성된 석가탑과 달리 다보탑은 돌 하나하나를 목조 조각처럼 껴 맞춰 제작됐다. 부드러운 곡선미가 전해지는 다보탑은 과거 회귀의 장식을 통해 신라 불교 세계관을 확대해 불교의 전파를 가늠할 수 있게 한 창건주의 서원은 커 보인다. 본존불 앞으로 유리벽을 만들어 안으로는 일반인 출입을 금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는 옛날 석굴암을 구경하던 것처럼 인공 굴 안으로 입장이 가능하다니 이른 새벽 경주를 찾을 이유가 생긴 셈이다.

 

   곳곳에 유적과 유물로 가득한 경주는 한꺼번에 다 보려는 욕심을 거두고 가보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가능한 도시이다. 서사를 품고 자리하는 유적지 이름 모를 잡풀들까지도 유구한 역사를 안고 생명력 있게 자라고 있는 경주로 마음은 향한다. 노천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을 도반들과 함께 답사하며 곳곳에 세워진 석탑과 불상을 보며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보살들의 서원을 가늠할 수 있었다. 경주남산연구소에서 파견된 문화해설사와 함께 남산 유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산등성을 오르내리느라 힘은 들었지만 불국토를 이루려는 신라인들의 바람이 담긴 석불을 참배하였다. 흐르는 땀을 훔치고 너럭바위에 앉아 한숨 돌리던 한때를 떠올리며 다시 찾고 싶은 경주다. 저자가 추천한 대로 경주시티투어의 동해안 투어 코스를 이용해 보련다. ‘승차-경주전통명주시관-감은사지-문무대왕릉-양남주상절리-골굴사-괘릉-하차코스는 뚜벅이 여행자들이 기억하면 신간 낭비를 줄일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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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 유서 움직씨 퀴어 문학선 2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 / 움직씨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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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세상이 보편화되기 전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요긴한 수단이었다. 그리움이 봇물처럼 터진 날 편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는 지금도 낡은 책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대답 없는 상대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마음을 터놓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은 쉽사리 돌려지지 않는다. 인류의 구원에 관심이 많은 예술인 조에는 운명처럼 다가온 솜을 사랑하며 함께한 시간으로 되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솜은 조에와의 생활을 청산하고 또 다른 삶의 출구를 찾아 멀리 떠나버린 상태로 끊어진 인연의 고리를 다시 이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귐이 깊어지면 애정이 싹트고 사랑이 있으면 고통의 그림자가 따르나니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많은 고통의 그림자를 깊이 관찰하고 저 광야를 가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숫타니파타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 <<몽마르트르 유서>>이다.

 

   19929월에 솜을 만난 조에는 서로에게 운명처럼 빠져들어 서로를 탐닉하며 결혼생활을 시작하였다. 많은 사랑의 유형이 존재하는 파리의 몽환적 분위기 역시 이들의 사랑을 돋우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듯하다. 솜의 어머니 말처럼 조에에게 홀려 함께 지낸 시간은 둘을 성장·발전케 하는 관계로 이어지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달았다. 둘은 서로를 갉아먹으며 지내느라 힘든 생활을 되짚어 보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는 치유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솜은 대만으로 가서 자기 치유 시간을 갖기로 하였고, 조에는 몽마르트르에 계속 머물렀다. 조에는 예술적 본성을 지키며 영혼의 구원을 위한 예술 세계를 펼치기에 그만인 몽마르트르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치유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둘의 관계 복원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조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깨알 같은 글씨에 담아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솜과 함께 지낸 시간을 복원하고 싶은 바람을 담아 솜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애원하였다. 절대적인 사랑은 오직 솜뿐이었다며 지난사랑을 갈구하지만 그녀로부터 희망적인 대답은 듣지 못한 채 체념의 골은 깊어진다. 조에는 자기 구원을 위한 물음을 던지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운동과 평화로운 일상, 예술적인 감성과 열정 등 여럿 중에서도 그녀는 진정한 사랑만이 인생을 구원하는 것이라 믿어 왔다. 무엇보다 그녀는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 안에 내재된 빛과 인간의 선함을 발견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 믿음 역시 솜의 사랑을 얻었을 때에서야 가능하였음을 일깨우며 엄습하여 오는 죽음의 위기를 감지하였다.

 

    조에는 솜을 처음 본 이후 꿈속에서 매일 그녀를 만났고 압도하는 운명처럼 둘은 파리에서 분홍 눈 토끼 토토와 함께 지냈다. 반려 동물 토토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아 솜은 조에를 떠났고 오래지 않아 토토 역시 숨을 거뒀다. 생명체의 온기가 사라진 주검이지만 혈육처럼 지낸 토토를 곧바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둘이 사랑하며 함께 지낸 시간 사랑의 촉매로 자리한 토토였으므로 단순한 죽음으로 처리할 수 없었을 조에의 마음이 전전해진다. 조에는 토토의 죽음을 애도하며 솜을 향한 지나친 사랑의 오점을 떠올리고 진정한 사랑을 천착하는 쓰기로 곁을 떠난 솜을 용서하기로 한다. 솜의 배신으로 모든 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힘들어진 조에이지만 편지를 쓰며 사랑을 객관화하며 스스로를 구원코자 하였다.

 

    솜으로부터 무엇도 얻을 수 없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솜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조에의 고백은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끊임없이 대가를 치르며 세월에 씻기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을 갈망하는 조에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파리에 남은 조에는 타이베이로 떠난 연인 솜을 향한 애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썼고 할 수만 있다면 파리에서의 사랑을 복원하고 싶은 갈망으로 들끓었다. 직설적인 표현으로 솜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자신에게 헌신적인 영의 사랑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에는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 없이 주는 사랑일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을 찾은 조에에게 영은 어떻게든 사위어가는 조에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은 모두 네게 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조에의 한마디는 솜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다.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랑을 부여잡고 사느니 차라리 세속의 인연을 끊고서라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했다. 솜의 순수함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조에는 솜의 마음이 되어 지난시간을 되짚어 아쉬움을 남긴 부분들을 짚지만 명쾌한 만남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한 몽마르트르에서 글을 쓰며 열정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하던 조에는 한 편의 글을 완성한 뒤 호숫가의 정령으로 사라졌다. 스물여섯 살 조에는 승려의 삶을 살 것이라는 말과 함께 솜을 향한 마음을 죽음으로 정리하였다. 통념을 넘어서는 여러 유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소수의 성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 조에의 죽음은 사랑의 본질을 생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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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3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성지 2021-07-03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비내리는 날 웃으며 토요일 나만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제주 동쪽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8
한진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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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구경하지 못하고 별 다른 요동 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하염없이 보며 지낸 까닭인지 가없이 펼쳐진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배를 타고 처음으로 가본 대학 졸업여행지인 제주도는 배 멀미로 신비로운 자연 환경에 녹기는커녕 자리에 누워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30여 년 전 멀미약은 왜 그리도 독했던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안정적으로 사회생활하면서 한 해에 두 번은 제주도를 찾았다. 항공편으로 한 시간 거리도 안 되는 제주에서 보낸 사나흘은 뭍에서 보기 힘든 비경에 곳곳이 경험하지 못한 빛깔로 여행자 눈길을 끌었다. 어쩌면 눈에서는 잡히지 않는 비현실적인 공간 제주도는 지칠 때 떠나고 싶은 환상의 섬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은 제주도를 찾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했다. 하지만 이런 비경에 취해 황홀해하는 것조차 송구하게 여겨지는 것은 제주의 풍경 이면에 담긴 속살의 아픔이었다. 투명한 빛깔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풍경 에 감탄하며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신산한 삶을 간과하여 온 점을 되짚으며 제주 동쪽의 내밀한 삶을 들여다본다. 바다로 떨어지는 정방폭포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은 앨범 속에 멈춰 있지만 이곳 역시 4·3학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라니 희생당한 영혼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듯하다. 남원 지서 근처와 멀리 정방폭포까지 70여 명을 끌고 와서는 인정사정없는 학살을 자행해 홀치기 사건으로 불릴 정도라니 바다로 바로 흘러가는 폭포수는 원한 맺힌 이들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의 결정인 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상징 중 하나인 성산은 조천읍, 구좌읍, 우도면, 성산읍, 표선면, 남원읍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제주에 애착이 강한 저자는 제주 굿판에 홀려 성산을 수시로 드나들며 제주 동쪽에 서려 있는 역사, 문화적 자원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전한다. 제주의 동과 서를 가르는 한라산은 땅속으로도 깊은 화산 활동이 일어나 곳곳에 동굴을 만들었고 물줄기를 이뤄 이색적인 경관을 낳았다. 한라산은 백록담과 더불어 360여 개에 이르는 오름은 지닌 화산의 군집으로 세계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자리한다. 4~5천 년 전, 바닷속에서 마그마가 분출해 형성된 수성화산인 성산 일출봉은 천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만 이곳 역시 4·3항쟁 당시 무고한 이들이 죽어간 곳이라니 처연한 슬픔이 더한다.

 

   제주도 창조주인 설화 속 설문대 여신은 바다를 도랑처럼 넘나들며 섬을 만든 뒤에 일출봉 기슭에 앉아 해진 옷을 기우는 바느질할 때 등잔을 올려놓은 바위라는 등경돌 너머 만곡의 해안선을 끝없이 펼쳐내는 광치기 해변이 펼쳐진다. 관치기라고도 불리는 광치기 해변은 해난 사고를 당한 무연고 시신들이 떠밀려 와 관을 짜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잦았다니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사는 이들의 애 끊는 시름이 깊었을 듯하다. 낙향해 우도 개간의 뜻을 세운 김석린은 교육에도 힘을 써 지금의 우도를 찾게 하였다. 우도 속의 섬인 비양도 들머리에 있는 돈짓당은 해녀들이 섬기는 바다의 신인 요왕할망과 선왕신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는 바람의 신으로 알려진 영등신이 머물러 겨울 모진 바람을 몰아내고 훈훈한 봄을 알리는 촉매로 자리하는 듯하다.

 

   성산읍 동쪽 끝 마을인 신천리는 수백 마리 마소가 뛰어 놀던 목장이 있어 드넓은 초원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봄부터 가을까지 푸르렀던 들판이 겨울에는 귤껍질을 말리느라 누런 들판으로 변한다니 그 광경을 한번은 보고 싶다. 용궁으로 가는 길이라 불리는 용궁올레에 얽힌 전설은 바다라는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를 바라는 신의 당부는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는 듯하다. 지질 트레일 코스로 유면한 김녕리는 용암이 타올라 바다와 만나 굳어져 웅덩이를 만들었고, 썰물 때라야 살짝 머리를 드러내는 수중의 갯바위인 두럭산은 백록담을 닮아 이를 신성시하였다. 섬과 바다, 오름을 함께 품은 아름다움의 정점인 마을 종달리는 제주에서 귀한 소금을 만드는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많은 소녀들은 물질을 운명으로 여기며 파도에 몸을 싣고 제주 바다 곳곳을 누비고 있다. 물질을 잘하는 정도에 따라 상군·중군·하군 해녀로 나뉘는 해녀들은 애기 잠수의 망사리에 해산물을 나눠 주며 어린 해녀를 배려하였다. 제주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마을인 하도리는 제주에서 해녀가 가장 많은 마을이다. 해녀 박물관 건립 이후 해녀들의 땀이 밴 삶터인 숨비소리길을 조성해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삼아 온몸으로 이뤄낸 해녀들의 강건한 삶의 의지를 담았다. 곳곳에 뿌리 내린 나물들이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숲을 이뤘고, 머체왓의 편백 군락지도 조성되어 짙은 피톤치드 향을 풍기며 오욕에 찌든 몸과 마음을 씻어줄 듯하다. 숲에서 시작해 숲으로 끝이 난다는 머체왓숲길을 걱정 없이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선 세종 때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수산진성의 옛터에 자리를 잡은 수산초등학교의 담벼락은 철옹성처럼 단단하여 육백 년이 지났어도 학교 담장 구실을 하고 있다니 놀랍다. 절제의 미를 갖춘 백동백나무가 운동장에 있는 수산초등학교에는 진성 완성의 제물로 희생된 아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웠다는 진안할망당이 있다니 이색적이다. 제주에서는 드문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하는 오조리의 식산봉은 108종의 식물을 품고 있는 비밀의 화원으로 불리는 해발 60미터의 작은 오름이다. 오름이 많고 평지가 적은 제주 동쪽은 척박한 환경에 농사를 짓다 보니 소의 힘을 빌려야 했다. 이에 따라 전문적으로 소를 치는 테우리가 있어 자연적 환경에 적응하며 지역민들만의 고유한 풍습을 이루었다. 자연재해와 목민관의 수탈 등으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초자연적인 힘에 기대어서라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제주도 사람들의 고단한 시간은 설화 속에 융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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