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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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으로 전하는 세계사 방송을 시청하면서 단순 암기로 시험 문제를 풀며 힘들어했던 여고 시절 세계사 시간이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난 계기와 근본적인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을 찾아 이야기 방식으로 풀어냈다면 수업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올랐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사회화는 행동반경을 넓히며 만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확대 과정을 거친다. 학교에 입학 후, 이웃 마을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다툼이 일기도 하고 다툼이 어른들 싸움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하였지만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았다. 갈등으로 촉발된 세력 간의 다툼은 다른 양상으로 비화될 때도 있지만 파탄 국면을 초래할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과거와 현재의 역사 속 전쟁을 들여다본다.

 

   <<벌거벗은 세계사: 전쟁편>>은 세계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밝히며 의외의 사실들까지 더해 미처 보고 듣지 못했던 분야의 전쟁사를 보여준다.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시골 양치기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에 나가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영웅으로 급부상한 잔 다르크의 진실을 파헤치며 책은 여러 전쟁을 다룬다. 116년 동안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백년전쟁에서부터 현재 진행형인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세계를 뒤흔든 전쟁의 역사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전쟁의 진짜 원인부터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뒷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쟁을 소상히 파헤쳐 앎의 영역을 확장해준다.

 

    프랑스 국내의 영국 왕 영지에 대한 귀속 문제를 두고 양 왕조 사이에 백년 전쟁이 일어나 휴전과 전쟁은 116년이나 이어졌다. 그동안 잉글랜드의 주도권 아래 이어져 가던 전쟁이 발발한 지 100년 즈음 치열한 전장 한가운데 서서 깃발을 흔들며 프랑스 군인들 사기를 진작시키며 잔다르크는 오를레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샤를 7세는 대관식에서 잔 다르크와 함께하며 성녀로 대우 받는 듯하다 그녀는 잉글랜드 압력 아래 열린 정치적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단아로 몰린 그녀는 악마의 추종자로 루앙 광장에서 화형을 당해 열아홉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잔 다르크는 이단 재판에서 죄를 인정받고 희생되었지만 그녀를 이단인 채로 두면 샤를 7세 역시 이단에 의해 왕위에 오른 존재가 되므로 그는 그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영국 제국이 일으킨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 칭한 아편전쟁은 차(tea)한 잔으로 시작되었다. 포르투갈 캐서린 공주가 결혼 예물로 즐겨 마시던 차를 가져와 귀족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커피 대체품으로 차를 보급한 셈이 되고 말았다. 청나라로부터 차를 전량 수입해 온 영국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계속 손해를 보자, 청나라에 자유무역을 위해 광저우 외의 항을 열어달라고 하였지만 청나라는 이를 거절했다. 어떻게 하면 무역으로 인한 손해를 해결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영국은 청나라가 약으로 쓰려고 아편을 수입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청나라 정부 몰래 청나라 시장에 아편을 팔아 이익을 챙겼다. 유럽 제국들의 대표주자인 영국은 산업혁명과 자유주의 경제관, 해군력을 뒷받침으로 하여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였다. 명분 없는 침략과 약탈을 저지른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폭력은 전쟁을 일으키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수많은 이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을 앗아갔다.

 

   유대인과 기독교, 무슬림의 성지인 이스라엘과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은 잦았다. 팔레스타인 내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서로 차지하려는 유대인과 아랍인의 전쟁은 수차례 일어났고, 유대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의 영토 확장을 압박하는 이스라엘은 분쟁하였다. 아랍인과의 약속을 저버린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우는 데 힘을 보태었고, 팔레스타인인은 자신이 살아갈 땅이 유대인의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한계에 직면해 1936년 이들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팔레스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독립시켜줄 것과 유대인의 이민을 금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불발되었다.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이 모든 땅을 차지하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또다시 살 곳을 찾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3000도 이상의 고열을 내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드는 네이팜탄은 잔인한 무기를 대량으로 투하한 베트남 전쟁의 단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이 전쟁의 잔혹한 참상을 드러낸다. 남베트남 내의 반정부 세력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과 남베트남 정부 사이의 내전(內戰)으로 시작했으나, 196487일 미국이 통킹만 사건을 구실로 북베트남을 폭격한 뒤에 전쟁은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 미군이 베트콩을 색출하기 위해 다이옥신 계열의 고엽제를 뿌려 밀림을 고사시키려 한 작전은 베트남인들은 물론 전쟁의 많은 참여자에게 극심한 후유증을 남겼다. 정글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을 찾아낸다는 명목으로 저질러진 고엽제 살포와 민간인 학살 문제 역시도 베트남전쟁의 가장 어두운 면 중의 하나이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의 군인들 역시 고엽제 피해 등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지만 적절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아 고통은 가중되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아프가니스탄은 동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며 번영하였지만 지금은 내전과 테러로 혼란이 가중돼 여행 금지 국가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면 중앙아시아 대륙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어 영토 확장에 욕심을 내는 대국의 관심은 컸다.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은 또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인도의 안전을 확인한 영국은 1919년 아프가니스탄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며 이 나라에서 철수하였다. 아프가니스탄이 사회주의 국가로 자리하길 바란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다. 반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하는 모자헤딘은 소련에 맞서 대항하였지만 소련은 간교한 무기로 이들에 맞섰다. 소련은 초록빛 앵무새라 불리는 나비 지뢰를 살포하여 모자헤딘의 동요를 바랐지만 아이들의 해를 키웠을 뿐이다. 냉전 체제에서 미국이 모자헤딘을 지원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다.

 

   모자헤딘 출신인 탈레반은 극단주의 무장 세력으로 수도 카불을 장악하며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슬람국가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또 다른 강대국 미국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쟁이 시작돼 아프가니스탄을 5년 장악했을 뿐이다. 2001911일 쌍둥이 빌딩 폭파로 떠올리는데 실상 9·11 테러 사건은 미국의 경제, 국방, 정치를 상징하는 미국의 심장부 세 곳을 노린 공격이었다니 충격이 컸다. 탈레반 주요 시설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미군은 탈레반을 무력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20년의 아프가니스탄 주둔을 끝내야 했다.

 

   202222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내에서 특별 군사작전을 수행할 것이라는 긴급 연설과 함께 단행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세력 사이에 놓인 완충지대이자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경제적 보급 장소로 우크라이나를 주시하였다. 군사 요충지로 크름반도가 필요해진 러시아는 합병 서류에 서명하며 병합을 마무리했지만 우크라이나와 EU, 미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NATO 가입을 통해 크름반도를 되찾으려고 한다면 NATO가 무서운 보복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하는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도 가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위협 강도를 높이면서 가스관을 이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기울어지자 러시아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였고,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통과하는 러시아의 가스관 사용료를 유럽 수준으로 올리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가스공급 중단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며 크롬반도의 병합에 이어 돈바스 지역의 독립, NATOEU 가입 포기를 요구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간 긴장이 고조되어 전쟁이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로 전쟁터가 되었던 우리 역사에서처럼 강대국은 약소국을 좌지우지하며 군림하여 왔다. 군국주의의 희생으로 일제 강점 36년을 보낸 우리나라의 피침 역사는 음울한 자화상으로 국력을 키우는 데 힘을 모아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나라 사이의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야욕을 버릴 때 인류의 평화는 깃들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은 더 큰 문제를 키우기 전에 대화와 협상으로 현안을 해결해 더 이상의 전쟁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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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일한다는 것 -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최명화의 가장 현실적인 조언
최명화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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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차가 많이 벌어지는 10대들과 함께 생활한 지도 32년 남짓이다. 부침하는 시간 따라 학생들은 주장을 거침없이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최상이라도 되는 듯 아우성이다. 교수 학습이 이뤄지는 배움의 공간에서 마흔 살이 넘게 벌어지는 아이들과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떤 보람을 찾고 있는지 돌아본다. 매너리즘에 젖어 예전에 행해왔던 관행대로 학사를 운영하는 관리자를 보면서 의식의 변화를 수반한 자각이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음을 발견한다. 자기 계발서 읽기를 그다지 반기지 않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답게달라져야 한다는 목차 속 문장이 시선을 끌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기업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최연소로 고위직에 오른 저자의 화려한 이력을 보며 지금껏 살아온 교단에서의 생활이 중첩되어 위축된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될 때면 찾아드는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중심에는 언제나 나다움을 두고, 어떤 힘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근성을 지녀야 한다. 나에 대한 엄혹한 자기 성찰은 자신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지속적인 행동을 보편화한다. 긴 호흡으로 마음 근육을 단단히 하는 접근은 나를 탐색하며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여정을 가속화한다. 내면의 울림을 들으며 나만의 속도로 나다움을 완성하는 여정을 즐길 때 나만의 경험으로 타인과의 차별화를 도모할 수가 있다.


   타인은 배제하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함으로써 나와 만남으로써 내가 싫어하는 모습까지 품은 채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살아가다 보면 나다워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경험으로 나만의 콘텐츠를 축적해가는 과정 속에 대체 불가한 존재로 자리할 수 있다. 여러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자신의 단면을 수용하고 가슴속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들으며 삶의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외연의 행복에 매달려 타인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지 고민하기보다는 삶의 과정 속에 얻을 수 있는 부산물로 행복을 받아들이며 지낼 때 우리는 행복하게 보이는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내가 아는 만큼만 알게 되고, 나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은 자존감 기처를 형성하는 유연한 사고로 배움의 길로 이끈다. 각종 자격증과 이력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존재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는 존재로 내면의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다양한 나를 찾고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제대로 보는 방법일 것이다.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 나만의 스토리는 자신은 성장시키려는 자아의 굳건한 의지가 보탬이 된다. 카이스트 공학도로 입생로랑의 패션모델에 나선 최현준의 일화는 평범한 삶에 자족하며 사는 자신을 성찰케 한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던 중학교 시절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고 싶어 온종일 공부에 몰입하여 탁월한 성취를 맛보며 나만의 스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의 일은 자아실현을 넘어 더 큰 나를 형성하는 디딤판이다. 일은 나답게 성장할 수 있는 촉매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한다. 오랫동안 교직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 외의 영역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면이 있다. 낯선 공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선입견을 버리고 다가설 수 있는 용기는 나답게 일하며 살아가는 길에 필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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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의 생존법 문학동네 청소년 66
황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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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시절 모범생으로 불리는 아이들은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학교 선생님 눈에 나지 않으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었습니다. 학업이나 품행이 본받을 만한 학생을 모범생이라고 개념을 밝힌 사전적 의미와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아 보입니다.

인재의 요람 두성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열일곱 살 준호는 신일중을 거쳐 명문고로 이름난 두성고등학교에 수석 입학합니다. 입학식 후부터 정독실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대열에 합류하는 고등학생으로 정답 자판기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하였습니다. 평가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으며 성적이 떨어지는 순간 짐을 싸서 정독실을 나와야 하는 관행이 상위법처럼 자리합니다.


  준호는 대장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함께 시골에서 생활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삼촌과 함께 생활 중입니다. 그는 할머니 요양병원비와 아버지 치료비로 버거운 집안 살림에 고액 과외나 일타강사의 강의를 듣는 일은 바랄 수도 없는 터라 자율적인 학습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그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여느 아이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성적으로 무장하 자기 방어기제로 삼았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를 좋아하며 그 사람을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습니다. 준호는 풍부한 감성으로 내면의 쓸쓸함을 짝사랑으로 채우며 지금껏 견뎌왔습니다.


  중간·기말고사, 수행평가, 모의고사, 봉사 활동, 동아리 활동으로 반복·재생되는 일정을 소화하며 자기를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준호는 부모의 손길이 닿지 않는 부분을 탓하며 신세 한탄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키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지적인 날라리를 표방하며 지내온 건우는 준호의 막역한 친구로 함께하는 시간 속에 우정을 살찌웁니다. 둘은 학술 토론 동아리 코어에서 함께 활동하며 행동반경을 넓혀 동아리 회원들과 교유하는 가운데 사고의 폭을 확장하여 왔습니다. 코어 동아리에 지원했다 떨어진 병서가 유아처럼 생떼를 쓰며 자신을 힘들게 할 때에도 준호는 나답게 대처하며 자신의 길을 걷습니다.


  이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기득권의 카르텔에 무너져 내리는 광경은 좌시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유빈은 주체적인 선택과 결정을 중시합니다. 유빈은 대학 입학 대신 특성화고를 졸업한 후 여행업계에 취직하여 경험을 쌓은 뒤 스토리 있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여행사를 차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특성화고 진학을 반대하던 터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두성고에서 한 학기를 마친 뒤 특성화고로 전학해 관광경영을 공부한 뒤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에 한 발짝 다가서려 합니다.

지금 내가, 그냥 마음에 들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유빈을 볼 때마다 준호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유빈의 확고한 선택과 결정을 지켜보면서 준호 역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점검합니다. 3월 모의고사와 중간고사에서 1등을 차지한 병서를 보며 정답 자판기처럼 생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준호는 유빈처럼 남들이 걸었던 길을 걷기보다는 울퉁불퉁한 길이더라도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의 단면을 채워가는 과정이 좋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두성고에서의 살벌한 경쟁 구도를 벗어나 부모가 있는 학교로 전학해 생활하며 어떨지 고민하며 부모를 찾았습니다. 공공 의료를 위해 헌신했던 준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 앞에 놓은 것들에 많은 이유를 달지 않고 일단 해보는 것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보다는 모름지기 해야 할 일들의 조항을 만들어 그 규칙에 얽매어 살아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모범생으로 서의 생존 수칙 같은 매뉴얼을 따르던 시간은 수동적으로 움직이며 타인의 잣대에 맞춰 살던 시간이었습니다.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딸로 생존하면서도 자신의 논리로 스스로를 지켜온 보나 선배를 보며 준호는 마음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였습니다.


  어버이날을 기점으로 부모를 만나고 온 준호는 그동안 자신을 에워싼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외양을 둘러싼 모욕적인 SNS 악성 글에 휘둘렸다 코어 동아리 회원인 친구들의 위로와 응원으로 제자리를 찾은 유빈은 비둘기 눈깔이라는 부계정을 만들어 악성 댓글에 맞섰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준호의 심장부에 스며든 유빈은 준호를 생존케 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편하면서도 대화가 잘 통하는 유빈의 전학을 앞두고 준호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전학 안 가고 그냥 여기 계속 다니려고.’

 준호는 학교 뒷산에 오는 고양이 밥을 챙겨주라는 유빈의 부탁을 들어야 했고, 서로 다른 줄기의 강물이 합수하여 바다에 이르듯 경계 없는 자유의 바다에서 그녀를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통과의례처럼 성장 통을 겪으며 지내던 고등학교 시절, 입시 경쟁의 교육에서도 숨 쉴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시험을 치른 뒤 친구 집으로 몰려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으며 고민을 나누고 서로를 다독이던 따스한 손길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주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최상위의 선택이 아님을 알아차리며 내 마음이 전하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응원하며 자기만의 빛깔로 물들어가는 청춘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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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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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은 스트레스로 피폐해진 자신을 달래기 위해 호젓한 산길을 오를 때가 있다.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걸음을 떼며 지난 일들을 되짚어 요동치는 마음을 조율하는 데 산행은 요긴하였다. 체력이 딸려 험준한 산은 오르기 힘들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야산을 즐겨 찾는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산을 오르는 시간은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며 내면의 울림에 공명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에서 교회 지붕 청소 일로 생활하는 랜드는 삶의 확고한 목표 없이 일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일에 염증을 느낀다.


   랜드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일보다는 마음 가는 대로 행하며 살기를 바랐다. 그는 오가다 만난 여성들과 교류하며 가볍게 정을 나누면서 감정을 소진하였다. 함께 지내던 여성의 아들인 열두 살 레인과 함께 등반하던 길, 과거에 함께 산을 오르던 친구 캐벗을 만나면서 랜드는 가슴속에 사려 둔 등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은 암벽을 오르던 기억이 머리를 밀고 나설 때면 해머로 그 기억을 두드려 잠재웠지만 캐벗을 만난 후 알프스의 샤모니로 향한다. 샤모니는 알프스 산맥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산 근거지로 쉽게 허락하지 않는 미봉을 찾는 산악인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프랑스 샤모니를 찾은 랜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가운데 혼자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였다.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내부에서 생명력은 넘쳐흘렀고 존재감 있는 주체로 변모하였다. 등반에 관심 있는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 등반을 시도하여 성공해 그의 명성은 높아가고 있었다. 랜드에게 등반은 스포츠 그 이상의 매력을 지닌 도전으로 거대한 암벽 등정으로 그를 이끌었다. 수단과 목적을 불문하고 높은 산을 정복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캐벗은 무리한 등반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야심찬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거대한 암벽 아이거에서 샤모니로 향해 다시금 동료들과 드뤼를 비롯한 여러 암벽의 등반에 성공하면서 랜드의 명성은 높아갔다. 한편 캐벗은 알프스의 3대 북벽인 아이거에서 무리한 등반을 강행하다 스물세 살의 젊은 산악인 브레이의 추락사를 목격하였다. 브레이는 암벽 등반 중 로프가 끊어져 아이거에서 900미터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함께 등정하던 동료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랜드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카트린을 사랑하지만 그녀를 떠나기로 한다. 가정을 꾸려 담당하고 살아야 할 책무에서 자유롭고 싶은 랜드는 얽매이지 않는 생활자로 남고 싶었다. 한편 카트린은 임신 16주의 몸으로 이전의 남자친구에게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떠났다. 평범한 외양과 편안함을 좋아했던 그녀는 온화하고 이해심 많은 비강의 품을 찾아 랜드를 떠났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은 랜드는 카트린과 헤어져 홀로 등반을 시작하였다. 아이거에서 존 브레이가 죽었을 때, 랜드는 생전의 브레이는 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했다고 토로하였다. 랜드는 정신과 육체를 집중하여 어렵게 내딛는 한 걸음이 정상으로 이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모든 준비를 철저히 하여 산봉우리를 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 정상과 가까운 숙소에서 머물며 기상을 살펴 등반하였다.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봉우리들을 홀로 오르며 위험한 등반의 고통에 경의를 표하였다. 거세할 수 없는 랜드의 남성성은 고도의 집중력을 보이며 알프스 산맥의 봉우리를 올랐다.


   랜드는 드뤼에서 사투를 벌이던 이탈리아인 조난자 두 명을 구하면서 산악계의 영웅적인 인물로 대두된다. 그는 세간에 자신이 얼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명성을 얻어 의인 등반가로 여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을 은근히 즐겼다. 그는 이후에도 그랑드조라스의 북벽인 워커 등정에 도전하였지만 빙벽에 달라붙어 암벽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여차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의지는 고갈되었고 급기야는 얼어붙은 암벽에서 퇴각하였다. 준비가 덜 되어 용기가 부족했다고 말한 랜드는 샤모니를 떠나 미국으로 가서 쉬고 싶어 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랜드는 생물학적 아버지로서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어 카트렌을 찾았다.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가 고향으로 가기 전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뭔지 명확히 알 길은 없지만 아들 얼굴은 보고 떠나려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 프랑스를 떠나면 언제 다시 샤모니를 찾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아들을 눈에 담아가고 싶었던 듯하다


   아들 장을 본 뒤 고향을 찾은 그는 암벽 등반 중 추락하여 척추손상으로 휠체어에 의지하여 지내는 캐벗을 찾았다. 10년 동안은 등반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등반에 매달렸던 시간을 회고하였다. 비범한 일에 도전하며 성취를 얻어 자존감을 키워가는 일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리면서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정의 매력은 야성이 지닌 마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사람들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고산을 목숨 걸고 오르는 산악인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등반길에 오르기까지 많은 경비를 부담하면서 변화무쌍한 기상 악천후를 견디며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노정이 펼쳐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반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 요소가 곳곳에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프를 묶고 빙벽에 피켈을 꽂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베레스트 도전의 화신인 조지 말로리는

  “왜 목숨을 걸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 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라고 답하였다. 많은 산악인들이 산이 내게로 올 수 없으니 자신이 산으로 간다고 하였다. 쉽지 않은 등정에 도전하며 오롯이 집중하며 빙벽을 오르는 순간 수수로 위험을 선택하였지만 고초를 겪으며 정상을 확인함으로써 맛볼 수 있는 인생의 희열이 있기 때문에 고독한 등정의 길에 나선다. 폭풍우에 휩싸여 한 치 앞을 헤아리기 힘들고, 번개가 봉우리를 때리던 공포를 견뎌야 하는 극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용기 내어 암벽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고독한 선택은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의 화두처럼 보여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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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음,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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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혼한 기개로 동물 세계를 호령하는 호랑이해 벽두에 맞닥뜨린 혈육의 죽음은 안타까움과 분노, 서글픔과 무상감으로 가슴 한복판에 처연한 블랙홀을 만들었습니다. 예기치 않은 죽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서너 달이 지나서야 산 자는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는 당위성을 안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암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을 담으려는 기자의 걸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봉합하여 미답의 길을 걷게 합니다. 단순한 전쟁의 신이 아니라 법과 정의를 지키는 신 티르에서 유래한 화요일 기자는 스승을 찾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며 죽음 앞에서도 담대한 어른을 만났습니다.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를 숙명처럼 여기며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싶었던 선생님은 각혈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아 있는 자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저자는 생사를 건네주는 스승 곁에서 삶 속의 죽음, 죽음 곁의 삶을 조명하며 불가피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배움을 전합니다. 선생님은 3월이면 자신은 이 땅에 없을 것이라며 죽음을 숙고하면서 죽음과 놀이하듯 삶을 마감하였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선생님은 죽음을 기억하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들은 일반적으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5단계를 거치며 생존에 대한 갈증을 돋우며 여러 방법을 찾곤 합니다. 항암 치료를 거치며 이를 능가할 대증치료법을 찾아 나서는 경우가 있지만 선생님은 여느 암환자들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두려움 없이 죽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꿀벌이 스스로 꿀을 만들기 위해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는 것처럼 작가로서의 소명을 다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뛰어나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짐을 알아차리고, 자신이 감내하여할 것들을 수용하는 과정은 겸허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음을 일깨웁니다권력자 앞에서도 당당하였던 디오게네스의 단호함은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던지 성찰케 합니다.


  선생님은 신을 믿지 않았으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상황에 놓인 딸의 불행을 목도하며 딸의 소망을 들어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의식이 혼미해진 상황에서도 생명력이 용솟음쳤던 선생님은 방황하여 길을 잃게 되더라도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말기를 당부하였습니다. 선생님은 다 채우면 허무해지는 물독보다는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비워내는 지적 보헤미안으로 한곳에 정주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숨을 편안하게 쉬기도 힘들의 생과 죽음이 교차되는 때에도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죽음과 함께 생활하다 영면하기를 바랐습니다. 항암 치료를 마다한 채로 기력을 다해 글을 쓰고 강연하며 죽음까지 기록할 다큐멘터리를 찍었습니다.


   죽음은 동물원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기분이라는 말로고통을 수반하는 공포임을 자각하면서도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선생님은 인생을 갈무리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고 회고하는 선생님의 한마디는 겸허하게 삶과 죽음을 수용하는 통찰적인 시선을 투영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생존 에너지를 뒤덮어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글을 쓰고 말로 전하면서 찰나를 살더라도 자기만의 문양을 수놓으며 살았습니다. 큰딸이 먼저 갔던 그 길을 따라 간 선생님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온 것처럼 즐거운 인생이었다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는 시간에도 죽음을 기억하며 유일한 존재로 자리매김한  자신이 타자를 있는 그대로 있게 함으로 더불어 발전하는 생활을 꿈꿔왔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선생님은 품위 있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지금 선택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죽음으로 내몰린 낭떠러지에서 인문학적 통찰을 일깨운 선생님 덕분에 시야를 확장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정진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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