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문학시간 - 과학고 국어수업 3년의 이야기
하고운 지음 / 롤러코스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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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문학 수업을 맡아 2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업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20종에 가까운 문학교과서 중,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기 위한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들이 수록된 순으로 정하여 채택하였다. 작품 관련 기록을 남길 독서기록장을 자체 제작하여 학생들에게 나눠준 뒤 독서의 지평을 넓혀가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책 대화를 나눌 만한 이야깃거리를 찾아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함으로써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중시하였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학생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작품 하나 더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그 시간에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낫죠.”

   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자연계 남학생들은 시를 읽고 느끼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 술 더 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수업하려던 의욕이 앞섰던 시절로 돌아가는 듯 저자의 문학 수업 나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문학과는 거리를 두고 수학과 과학 중심의 이공계로의 진로에 관심이 많은 과학고에서의 수업 이야기는 다채롭다.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연계하여 수업으로 만나온 학생들과 수업한 내용을 솔직담백하게 나눈다. 기계적인 수업 일지 형태를 벗어나 시도했던 수업 중 마뜩치 않은 부분까지 실어 실수를 통해 진일보하는 모습을 지향하는 수업 형태에서 진솔함은 더한다. 과학고에서는 국어 교과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 교과서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도하는 교사가 생각하는 수업을 실행하는 데 부담은 적어 보인다. 다소 주관적일 수 있지만 의미 있는 수업 시간을 위해 시와 소설 중심의 수업으로 학생들과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나와 너를 이해하고 우리의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하여 가는 데 깊이를 더한 수업 이야기는 흥미롭다.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교사는 좋은 시와 소설을 선정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이 되면서 우리 사회를 재조명하며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가는데 다리가 될 만한 작품 목록을 뽑았다. 시를 본 뒤 느낌을 바로 묻기보다는 오디오로 녹음한 시를 들려주며 오감을 자극한 뒤 학생들 스스로 시를 세 번 정도 낭송한 뒤 물음을 통해 생각들을 끌어낸다. 학생들이 말문을 닫은 채 교사의 설명에 집중하기보다는 스스로 만든 물음을 통해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질문이 살아있는 교실 풍경이었다.

 

   평가 채점 결과에 민감한 고등학생들의 생각에는 수행 평가 성적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학생도 있지만 모두에게 만족스런 결과를 줄 수가 없는 평가의 맹점을 직시하는 순간이다. 공교육의 신뢰도 회복을 위해 여러 조항들이 따라붙어 평가에 자유롭지 않지만 성적을 잘 받은 학생들은 기분이 좋을 테고, 열심히 참여하였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1등급에서 9등급으로 구획된 등급처럼 수행평가 결과 역시 급간 별로 점수를 나누어 평가해야 하는 과정이 무 자르듯 쉬운 것만은 아니다. 수행 평가 기준을 세워 공정하게 평가한다고 하지만 평가를 받는 학생 입장에서는 유리하고 불리한 결과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다. 모두를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평가 결과에 대해 수긍할 근거 마련은 평가 기준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국어 교사는 지식을 구조화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에 공감하며 교과서 밖의 책을 통해 배운 것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며 나를 둘러싼 다층적인 세계로의 관심을 끈다. 교과서에 나온 글들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교과서 밖의 책을 들어 말하는 교사가 달갑지 않을 테지만 너머의 세상의 궁금증을 해결하며 앎의 영역을 확장하여 가는 과정이 양분으로 자리할 테다. 교육 경력은 많지만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교사이다. 안 된다고 낙담하기보다는 수업 중에 적용할 만한 수업 형태를 찾아 오늘도 고민한다. 백석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가르칠 때에는 영화와 책을 활용한 입체적인 수업을 모색하는 일 역시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수업 형태이다. 마치 공개 수업이 이뤄지는 날 교실 뒤편에 앉아 선생님의 수업에 동참하며 새롭게 적용할 수업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문학 시간을 예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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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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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움직여도 등골에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에 열을 식히려고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소설 속 옥수수 수염차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그늘을 찾기보다는 편의점을 찾는 데서 책 한 권이 갖는 힘이 상당함을 자각합니다. 소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쉼터로,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찾는 회복 탄력 공간으로 자리하는 불편한 편의점 점주는 녹록치 않은 시대를 헤쳐 나갈 용기를 줍니다. 전염병 창궐로 불확실한 오늘을 사는 대중에게 위로의 공간을 내어 준 선생님 고맙습니다.


  교단에 선 지 32년 남짓,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면서 은퇴 후를 생각합니다. 동영상 문화에 익숙한 10대를 이해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회의합니다. 요즘 애들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면서 이들이 처한 시공간을 망라한 환경적 차이의 틈을 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연결 고리를 찾아 상대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반문하며 침묵하는 가운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아이들 역시 인생이란 여정에서 만난 서로의 손님 같은 존재라는 문장이 갖는 의미를 떠올리며 관계 지향적인 일상을 다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찾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역사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염 선생님의 열정이 따스함으로 밀려듭니다. 선생님은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분홍색 파우치를 찾아 준 노숙자에게 주린 배를 채워줄 도시락을 내어 주며 정을 나누었습니다. 푸른 언덕-청파동-에 위치한 ALWAYS 편의점은 희망의 빛을 투사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공작소였습니다. 선생님은 퇴직 후 편의점을 운영하며 수익을 올리는 일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시간대로 일하는 사람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 정도면 괜찮다고 하였습니다.


   편의점 밤을 책임지던 성필이 근무 환경이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자 야간 근무자를 구할 때까지 선생님은 잠잘 시간을 놓친 채 ALWAYS를 지켜야 했습니다. 독고 씨는 편의점을 찾은 젊은 아이들에게 해를 입을 수 있는 위기에 놓인 염 여사를 구해줬습니다. 마치 정해진 시간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게 해준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 알코올성 치매로 기억을 잃은 독고 씨가 과거의 삶에 대한 답을 찾기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선생님은 그가 현실을 타개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선생님은 편의점 밤 근무를 독고 씨에게 의뢰하며 술을 끊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학생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교육자의 사명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해 숙연해졌습니다.


  편의점 오전을 책임지고 있는 선숙은 말을 더듬고 행동이 굼뜬 독고 씨가 달갑지 않아 여러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감내하는 눈치입니다. 교회 성도인 선숙의 이해 불가 아들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했다 퇴사 후 영화를 제작한다며 나섰다 위기 상황에 놓였습니다. 헛된 꿈을 좇아 준사기 행각을 벌이던 선생님의 아들 역시 불온한 삶을 보내고 있어 우려가 클 것입니다. 자식은 뜻대로 안 된다고 하지만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철이 들지 않은 이들이 많아 염려스러울 것입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제 역할을 다하며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의 그릇을 채워가는 일은 그들만의 몫일 것입니다. 주행 중 안전거리 확보로 사고를 방지하듯 자식들과도 적정 거리를 유지한 채 지켜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선생님의 배려는 독고 씨를 변하게 하였습니다.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영업직에서 한눈 한번 안 팔고 경력을 쌓아 왔지만, 회사에서는 굴욕적인 대우를 받고 집에서는 소외감을 느끼던 이에게 편의점 야외 테이블은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 그만인 곳입니다. 독고 씨는 단골에게 술 그만 마시라고 옥수수 수염차를 건네며, 추위를 녹여줄 열풍기를 틀어 온기를 더하는 행동으로 주변에 선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배우로 은퇴한 극작가 인경은 독고 씨와의 만남으로 차기작을 필사적으로 완성하여 새로운 걸음을 떼었습니다.


   간이역처럼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갖는 삶의 애환은 누적된 일상이 쌓일수록 늘어날 것입니다. 자본의 물성이 깊이 자리하는 시대, 인간적인 공명이 힘들어지는 세상에 불편한 편의점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위로의 공간인 듯합니다. 선생님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오후 시간을 책임지던 시현에게는 독고 씨의 변신을 돕도록 유도하였고, 시현이 더 나은 편의점 점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에도 그녀를 응원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선생님은 술을 끊고 뇌가 활성화되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가 의사로서 살던 때를 떠올리며 시민의 일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유도하였습니다.


   네 캔 만 원에 판매하는 맥주()를 살 때 외에는 거의 편의점을 찾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선뜻 편의점 음식을 취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마음을 안고 들어서는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점원의 한마디를 상상하며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는 손님을 맞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새기며 인사로 응대합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꿈꾸게 하는 삶의 가치는 현재에 더 충실한 삶의 양분을 제공합니다.

 

   어둠이 흑점을 지나는 시간에도 불을 환히 밝히고 구매자를 기다리는 편의점의 불빛이 주는 안도감은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하는 존재에게는 충전의 빛입니다. 새벽까지 근무하느라 몸은 고단하여도 경제 활동으로 자활을 돕는 편의점에서의 시간은 소통과 휴식으로 채워지는 정거장 같은 곳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힘으로 미래를 선택하는 주체적 결정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힘을 줄 수 있음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웁니다. 기억을 되찾은 독고 씨는 한국의 코로나19 진원지인 대구로 의료 봉사를 떠나 새로운 길 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전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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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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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수영복을 입고 양팔을 벌린 채 끝 간 곳 모를 푸른 물결 속으로 뛰어드는 한 남자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삶을 마감하려는 이가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푸른 물결 아래로 몸을 던지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나서는 강렬한 몸짓으로 비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손을 댄 사업마다 실패하여 빚더미에 올랐고, 집으로 돌아갈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홀로 오피스텔을 전전하던 성곤 안드레이아는 피폐해진 영혼을 돌볼 여력을 잃었다. 영혼이 사라진 몸뚱이를 처리할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강에 투신하려 했던 선택이 실패하자 가족과 한참 멀어진 뒤에야 휴대폰 속 사진을 보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본다.

 

   커다란 일탈 없이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성곤은 수순대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대학 졸업 후 자동차 부품 회사에 입사하여 영업 업무를 맡았다. 그는 나우누리 게시판에서 설전을 벌이던 여성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불꽃같은 사랑 끝에 결혼하였고 이듬해 딸까지 낳았다. 조금씩 자산을 쌓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단란한 가정의 행복을 느끼면서도 밋밋한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꼈다. 그는 회사 내의 평가와 실적은 좋았지만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일상에 권태를 느끼며 회사의 소모품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행하였다. 직장을 그만 둔 성곤은 어떤 일을 호기롭게 벌였다 뒷수습은 남들이 하게 만드는 데 이골이 났고, 주도면밀하지 않은 일면은 번번이 사업 실패를 불렀다. 급기야는 아내와 딸 곁을 떠나 혼자 지내는 외로운 별거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치고 일어설 용기조차 갖지 못한 성곤이 자멸의 길을 걷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혼몽한 의식을 일깨우며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계기는 거창한 데 있지 않았다. 딸을 만나는 날을 기억하지 못한 채 지내다 아내에게 몹쓸 소리를 듣고 자책하며 휴대폰 속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발견했다. 할 수만 있다면 회사를 그만 두기 전 가족이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내의 안온한 품속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서울역에서 우연히 듣게 된 변화라는 단어에 마음이 동한 그는 작은 습관 하나라도 고쳐보기로 결심하였다.

 

  ‘지금이 네가 정말로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속 그림자가 이끄는 대로 성곤은 실패의 이력서를 채워갔다. 나이와 사회적 위치, , 자신의 객관적인 메모가 이어질수록 참담함은 더했고,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적막한 오피스텔로 돌아와 12년 전 사진 속 그가 했던 포즈를 취하며 허리를 곧게 펴 자세를 바르게 하는 생활을 위해 움직였다. 생계를 위해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자세를 바르게 하다 보니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신체의 무언가를 먼저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다음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따른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에 열중하였다.

 

   성곤은 지금껏 감정을 표현하는 일보다는 무표정 일색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진정한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 표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 존재의 소중함을 생각지 못한 채 배려하지 않은 소중한 가족을 떠올리며 무심한 자신을 질타하며 가족 간의 유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조그마한 변화가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임을 발견한 성곤은 인생의 긍정적인 변화와 대면했다. 양질의 변화로 이끈 변화의 동기를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는 지푸라기 프로젝트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창조적 콘텐츠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연을 접수받아 채택된 사연의 주인공을 지푸라기, 지푸라기의 도전을 지켜보며 함께 응원해주는 사람을 튜브로 이름 지어 서로를 응원하며 새롭게 일어서는 삶을 응원하였다.


  ‘지푸라기 프로젝트는 나락에서 헤어나기 힘든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성공적 변화를 시도하였다. 물에 빠지지 않는 튜브를 타고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를 때까지 삶의 철학을 정립하여 개인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바닥을 치고 만다. 언제나 초연한 태도로 매 순간 충실한 박실영 학원 차량 운전기사를 보며 삶의 불가해함을 조금씩 알아차린다. 삶을 적으로 만들지도 않고, 삶에 굴종하지도 않는 운전기사를 보며 성곤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벗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유튜브를 진행하며 불특정 다수의 관심 속에 자본가의 투자를 받기도 하였지만 행운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성공가도를 달릴 것 같은 환상이 깨지면서 위축된 현실과 맞닥뜨린 성곤은 또 다른 변화를 위해 꿈틀거린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곧추 세우기 위해 변화의 동인을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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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 유럽 도시 기행 2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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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함께 가려 했던 북유럽 여행을 순조로이 다녀왔을 테다. 20177월 하순 헝가리 부다페스트,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를 열흘 일정으로 돌며 일상을 벗어난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스물에 만난 우리는 50 초입에 구상했던 여행지를 찾았다. 체력이 뒷받침될 때 여행은 떠나야 하고 해가 긴 여름에 우리는 길 위에 섰다. 6년 전 추억을 불러내 다녔던 거리와 봤던 건축물 등에 얽힌 역사와 삶의 궤적을 관통하는 유럽도시 기행2’에 나오는 네 곳을 보니 반가움이 밀려든다. 도시 형성에 큰 업적을 남긴 세계사적인 지식을 동원한 기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허공에 흩어질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한다.


   저자는 링을 따라 걸으면서 도시 안팎을 살핀 뒤 버스나 트램을 타고 외곽의 명소를 찾는 방식으로 길 위에 섰다. 길을 따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며 빈의 역사 공간과 건축물이 포진되어 있는 슈트라세를 방문했다. 종교 행사와 국가 의전을 연 권력 공간으로 자리한 슈테판성당은 빈이 사랑한 음악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왕가의 영묘가 있는 슈테판 성당은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양식이 혼재된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우뚝 솟아 위용을 드러낸다. 슈테판 성당 북탑인 독수리탑에는 노획물인 청동 대포를 녹여 만든 종을 걸어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주로 혼인을 통해 보헤미아, 헝가리, 스위스,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손에 넣었다. 요제프 황제의 부인인 시씨는 언니 맞선자리에 들러리로 갔다 황제 눈에 들어 열여섯에 요제프와 결혼하였다. 이모인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였고 자식들을 빼앗아버릴 정도로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았다. 국사를 돌보느라 바쁜 황제는 여배우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며 시씨 황후를 외롭게 하였다. 모든 것을 용인하고 궁을 나온 시씨는 빈을 떠나 생존을 위해 자유로운 길을 찾아 여행자로 나섰다. 호프부르크 궁전에 시씨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권력형 명사(名士)가 되었지만 행복한 왕궁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망 좋은 테라스를 가리키는 벨베데레 궁전은 클림트의 키스 원본이 전시된 곳으로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많이 들르는 곳이다. 오스트리아 현대 미술품이 전시된 상궁과 중세 미술품과 바로크 미술품이 전시된 하궁을 미술관으로 사용 중이다. 넓은 대지에 크게 조성된 정원에는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어 매혹적인 공간이다. 이 궁전에서 미···소 외무 장관들이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니 역사적 의미가 큰 궁전이다.


   빈 중앙역에서 부다페스트 동역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로 이동하였다. 다뉴브 강변에 있는 건축물 중 걸작으로 꼽히는 네오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은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의 외벽에는 헝가리 역대 통치자 88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1365일을 상징하는 365개의 첨탑이 있다. 국회의사당의 내부에는 총 691개의 집무실이 있다니 유람선을 타고 국회의사당의 야경을 보니 황홀하였다.



   헝가리의 국부(國父)이자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슈트반 사망 후 내전으로 세력이 약해졌고, 13세기 중반 몽골 침략으로 머저르 왕국은 인구 절반을 잃었다. 이후에도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과 지배 아래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 1990년 처음으로 독립된 민주공화국이 되었다니 이민족의 침탈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나치의 만행과 소련 공산당의 폭정을 기억하기 위해 테러하우스를 지어 불행한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도나우 강변의 구두는 잔혹하게 희생된 유대인 학살 현장의 일면을 구두로 재현하였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여 하나의 도시로 통합하는 길을 연 세체니 이슈트반은 10년 공사 끝에 세체니 다리를 만들었다. 도나우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기준하여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펼쳐진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겔레르트 언덕이 있다. 언덕의 자유기념탑은 소련군이 나치군대를 쫓아내고 헝가리를 기념해 만든 조형물이다. 유럽 정치와 정세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최초의 헝가리인 언드라시는 머저르 공화국의 기초를 만든 그를 기념하는 동상을 보며 시씨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궁금해진다.



   9세기 말 보헤미아에 최초의 왕국을 건설한 체코는 14세기 룩셈부르크 가문에 지배권이 넘어갔고 이후에는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지배권이 넘어가 이민족 침략으로 얼룩진 역사의 획을 그었다. 종교개혁가 얀 후스는 부당한 특권을 누리며 민중을 억압하고 부패를 저지르는 종교권력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퍼부으며 민중과 소통하기 위해 체코말로 설교했다. 그는 보수적 종교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면서도 종교 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고, 이후 민중들이 후스파로 집결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카렐교의 성 바츨라프 기마상은 바츨라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성바츨라프는 보헤미아의 자존을 지키려고 외세에 대항하다 사악한 동생의 손에 목숨을 빼앗겼다. 이후 체코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얀 팔라흐의 새벽 분신은 소련침략에 항거하며 제코슬로바키아의 자주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다. 위대한 작품을 남겼으나 외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다 간 카프카의 집을 들렀을 때, 작은 공간이 자아내는 음울함은 그가 생전에 말하지 못했던 생각을 담은 아버지에게 쓴 편지 내용이 떠올라 더 커졌다.


   프라하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착한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 작센주의 바로크 도시이다. 내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엘베의 물과 바위 절벽, 연봉과 우거진 숲은 알프스의 대용품처럼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라니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드레스덴의 랜드마크인 성모 교회는 부패한 가톨릭교회에 대한 루터의 공개 비판이 종교개혁운동의 산실로 자리한다. 높고 날카로운 첨탑 아래 정중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신에 대한 외경심을 더한다. 드레스덴 최고의 궁전인 츠빙거 궁전은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인공미보다는 자연적 조화를 중시한 궁전으로 볼거리가 많이 있다고 한다. 렘브란트, 뒤러 등의 작가들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도자기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니 독일 여행 중에 들르면 좋을 듯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452, 연합군의 드레스덴 집중 폭격으로 2만 명 이상 사람들의 목숨과 함께 젬퍼오퍼도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후 문화 예술의 도시답게 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역사적 건물의 복원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지금의 젬퍼 오퍼가 다시 살아나 세계적인 오페라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 특별한 외관 못지않은 역사로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도시의 존재감은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빚은 역사의 궤적으로 이어진다. 건축물이 완공되기까지의 서사는 공간을 넘어선 시간 속 인물이 머릿속에서 그린 교량 설계를 맡기고 세치니 다리가 완공될 때까지 쏟은 정신적·물질적 지원은 역사물과의 조우를 선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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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붓다 -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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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이들의 신음이 흘러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다를 나라를 침략해 무고한 목숨을 빼앗고, 무기를 수출하기 위해 전쟁을 부추기는 무리 등 인류의 평화는 깨져 이지러진 얼굴을 하고 있다. 지속될 것 같은 삶의 여정에 혈육의 갑작스런 죽음은 두려움과 비애는 한치 앞을 모르는 삶의 무상감을 더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대 인생의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간다. 고통으로 점철되는 인생에 함께하려는 일에만 급급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자아의 상을 드러내며 지내온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아상을 벗지 못한 채상대의 다름을 차별하며 지냈던 시간을 참회하며 청년 붓다의 치열한 수행 정진을 들여다본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사회인의 모습을 알지도 못한 채 남들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는 청년들이 있다.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기 힘든데 꿈을 꾸면 뭐 하느냐고 지청구를 늘어놓을 때도 있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출세하고 싶은 욕망이 자리한다. 사는 동안 최고의 부와 권세를 누리며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바라며 욕망을 충족하려는 움직임이 도처에 자리한다. 감각적 욕망을 충족하고 애착하며 또 다른 욕망을 품고 갈애에 시달리는 욕망의 바퀴를 굴리는 일상의 연속은 덧없음을 수반한다.

 

  북인도의 카필라바스투의 왕자인 싯다르타는 아버지 슈도다나의 사랑과 믿음, 백성들의 신망 아래 환락의 삶을 누렸다. 출가는 싯다르타 왕자가 환대와 쾌락의 삶에서 이탈하여 숲으로 가 수행하는 가운데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을 아우른다. 스물아홉에 출가한 싯다르타는 사문 고타마로 지금껏 누리며 살았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궁극의 사유를 위해 맨발로 나섰다. 고타마는 부와 명예가 일으키는 화를 목격하였고, 지금껏 자신이 누렸던 부와 명예는 다수의 희생 아래 성취된 것임을 알고 나에게도 좋고 세상에도 좋은 길 위에 섰다.

 

   룸비니 동산의 무수 아래에서 탄생한 고타마는 열두 살 때 갯복숭아나무 아래서 깊은 명상에 들었다. 욕망의 세계 안에서 자아를 무한확장하며 이생의 복락과 명예를 누리는 전륜성왕의 길을 벗어나려는 원을 세웠다. 자아를 구성하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 욕망과 자아를 해체하는 시원은 스물아홉 출가로 이어졌다. 6년간의 수행정진으로 서른다섯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에 이른 붓다는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들 때까지 45년간 설법하였다. 붓다의 호상 중 긴 혀는 우주 법계에 흘러넘치는 진리의 파동을 언어로 바꾸는 능력을 발휘하는데 큰 힘을 쏟을 수 있었다. 진리를 알려주는 스승이자 길벗인 붓다는 승가 공동체를 이뤄 길 위의 설법으로 도반들과 함께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차별 없는 수행에 힘썼다. 붓다의 가르침을 들은 제자들은 진리의 소리를 기억해 기록으로 남겼다.

 

   파키스탄 라호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붓다의 고행상은 충격을 주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 날이 선 힘줄과 핏줄이 그 위로 도드라졌고, 피부만이 남은 얼굴 위로 깊게 파인 두 눈이 앞을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신체의 극한에 이르는 고행으로 진리를 찾아 용맹 정진한 끝에 성도에 이른 부처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니 부디 용맹 정진하라는 부처의 일침이 탐((()에 물든 자신을 일깨운다. 청년 시절 싯다르타는 갖은 것을 소유하고 환락을 누리는 생활에서 생의 방향을 전복하는 결단을 택하였다. 아들 사랑이 지대한 슈도다나 왕의 만류에도 싯다르타는 출가를 감행하기 위해 야소다라와의 사이에 아들을 출산하였고, 왕궁을 나와 숲으로 향하였다. 환락의 늪에서 지혜의 바다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법륜을 굴려야 하는 노정을 택하였다.

 

  궁극의 지평으로 안내해 줄 스승과 벗을 구하는 일은 출가자가 나아갈 바이다. 고타마는 알라라 칼라마의 무소유, 웃다카 라마풋타의 명상이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선정에 도달하여 스승의 가르침에 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구도에 나섰다. 고타마는 선정을 통해 감각과 감정, 사유 등을 제어하는 훈련을 쌓았고, 극한의 고통으로 항심과 인내력, 용기와 결단력을 길렀다. 숙명통과 천안통을 통해 뭇 존재들이 어떻게 나고 살며 죽는지를 간파한 고타마는 연기법을 체득하였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삶은 괴로움()이다.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라 일컬어지는 사성제의 원리를 통찰하며 윤회의 고리를 끊기까지 쉽지 않은 수행과정이다. 고와 집을 일으키는 무명의 늪을 세밀히 관찰하고 통찰할 때 비로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리라. 환락과 고통, 선정과 고행의 양극단을 벗어나 일상에서 해탈에 이르는 길은 팔정도를 통해 가능하다. ··혜 삼학의 원리를 담은 (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 (정견/정사유)를 바탕으로 한 수행법이다.

 

  진리를 찾는 출가 수행자로 45년 동안 끊임없이 길 위에서 도반들을 만나 법을 설한 붓다는 석 달 동안 여행을 하면서 열반의 죽음을 맞았다. 마지막 설법은 잘 알려진 대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또한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이밖에 다른 것은 의지하지 마라.’

감관·경계·알음알이의 세 가지 인연으로 선과 악을 짓고 과보를 받는 것인 만큼 자아의 상을 내려놓고 번뇌의 불을 끄는 수행으로 마음 밭을 갈아 지혜의 광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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