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 노년내과 의사가 알려주는 감속노화 실천법
정희원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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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과 건강 수명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사회적으로 노인은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생물학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해를 거듭할수록 연령대별 신체 기능은 사람마다 다르다. 넓은 의미의 노인은 노화에 따른 고장이 어느 정도 쌓여 신체 기능이 떨어져 허리가 굽고 걷는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모습이 나타나는 시점부터라고 정의 내린다. 숫자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노쇠의 정도이며, 개인의 내재역량 정도가 경제적 가치 이상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사람의 노화 속도에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나 100세에도 헬스장에서 운동하며 자신을 관리하는 사례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 휴식과 수면, 움직임, 스트레스 등에 따라서 노화의 속도는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만성질환의 목록은 성인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살아온 삶의 결과라는 전문가의 의견은 식습관뿐 아니라 몸에 배인 생활습관이 시간의 흐름과 상호작용하여 유기체에 일으키는 구조와 기능의 변화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노쇠의 진전을 최소화하며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시간을 줄여 가는 과정은 길어진 노년에 삶의 질을 유지하는 전제조건이다. 가속노화의 원인인 흡연, 비만, 운동 부족, 음주, 부적절한 식사 등을 줄이는 일상은 감속 노화를 위한 방편이다.

지난해 친정엄마는 자식들을 마중하러 일어서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골다공증이 심한데다 엉덩방아를 크게 찧는 바람에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여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다. 정형외과를 찾아 며칠 입원하며 근원적인 치료를 받으면 통증이 완화될 것이라 믿었는데 뼈의 골밀도가 너무 낮아 시술조차 힘든 상황이라 통증을 완화하는 주사만 두 대를 맞고 퇴원하였다. 퇴원 후에는 실내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생활할 정도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 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영영 못 일어나 침상에 누워 지내면 어쩌나 하는 염려는 엄마의 건강 회복과 함께 줄어들었지만 우려가 크다.

하루에 한두 끼를 먹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언제 먹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건강 상태가 달라진다. 본인의 건강 상태를 분석한 다음 적절한 식습관을 갖는 것이 노화를 늦추는 건강 습관의 기본이다. 몸이 대사율을 떨어뜨리며 찬수화물이 지방 형태로 저장되는 일을 촉진하는 과당 섭취를 제한하고, 대사 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술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매일 먹는 끼니가 누적되어 내 몸의 특성을 만드는 만큼 목표에 맞는 식단을 선택하여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단순당이 많이 들어 있는 음료, 단순당과 정제 곡물이 여러 식품첨가물과 버무려진 초가공식품은 금하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먹는 순서를 바꿔 섭취하는 방법이 있다. 채소를 포함한 식이섬유→고기ㆍ생선 등 단백질→찬수화물 순서가 한 예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 자녀의 결혼, 갱년기를 거치며 비만에 머물러 울울함이 더하다. 살을 뺄 생각을 잊은 채 하루하루 버티며 지내온 시간이 많아서인지 어느새 몸은 통증 신호를 보낸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의사와의 상담에서는 살 빼라는 소리를 수십 년째 듣고 있다. 그 때에는 대사 질환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살을 빼야겠다고 의지를 다지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필요 이상 섭취할 때가 있다. 회식을 하더라도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있지 않으려는 약속을 이행하는 실천력이 담보될 때 건전한 일상은 건강한 신체기능과 함께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다.

가속 노화를 막을 수 있고, 치매 등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낮출 수 있는 MIND식사를 위한 식단 구성은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외에도 꾸준한 걷기는 만성질환 예방, 뼈와 관절 건강,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줘 노화를 예방한다. 산을 오르기보다는 일상에서 걸을 기회를 찾아 걷기를 습관화하고, 적절한 스트레칭으로 유연한 몸을 만드는 일은 스스로 루틴처럼 만들어갈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맞는 코어와 둔근 운동으로 일상생활의 기능성을 높일 때, 노년의 시간은 평정심을 갖고 흐를 것이다.

50대 후반에 치매를 앓던 사촌 오빠가 예순 셋에 세상을 떴고, 중증 치매 로 전문병원에서 돌봄을 받던 팔순의 이모가 세상을 떴고, 아흔 다섯의 시어머님은 요양 병원에서 생활 중이다. 길어지는 노년 인지기능 저하 없이 오롯한 정신으로 살다가는 일이 멀게 느껴진다. 치매약보다 더 효과 있는 생활습관 개선은 충분한 수면에서부터 시작된다. 뒷날 각성제 없이도 활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잠을 자는 것이 일상 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궁극적으로는 지금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서 좋은 만남을 지속하며 사회에 도움 되는 시간을 영위하이 위하여 중년부터라도 내재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느리게 나이 들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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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2024-03-1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사순서까지 알려주네요. 건강도서라 정독모드^^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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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학교로 간 호모 심비우스’ 강의를 창비 교육원 원격 연수로 들은 적이 있다. 기후 위기 상황을 초래한 인간의 오만함을 지적하면서 교수는 각기 다른 종들이 연대하며 협력하는 공생의 가치를 실현할 때 우리 사는 세상은 위기 상황을 줄일 수 있다고 하였다. 여러 동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명의 진화사를 함께 걸어온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 사회생물학자는 민벌레와 아즈텍 개미를 비롯한 곤충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이 인간 사회와 연결하였다. 존재하는 생물이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들과 함께 존재함으로써 종족 보존이 가능함을 관찰과 연구를 통해 밝혀내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학부생으로 진로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다 보니 학점 관리보다는 그 밖의 활동으로 학점이 좋지 않아 고전을 겪은 일화를 털어놓는 진솔함에 인간적이 모습이 보인다. 최고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자부심은 학점 관리로 이어졌고, 졸업 후 사회가 원하는 재원으로 역량을 발휘하며 살아갈 길이 열리는 학연에서도 드러났다. 남들이 걸어가는 평준화된 출세의 길을 따르지 않고 관심 분야의 책을 읽고 한 분야에 집중한 시간은 유타 대학의 교수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로 하루살이 채집 여행을 온 미국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 교수의 조수가 되어 전국의 개울물을 첨벙거리며 다녔다. 하루살이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곤충학자 에드먼즈 교수와의 대화에서 미국 유학을 권유받고는 추천 목록을 받았지만 허송세월로 보낸 대학 생활이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저자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천신만고 끝에 미국 유학에 성공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1983년 여름 하버드대에서 윌슨 교수의 제자로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는 에드먼즈 교수에게 편지로 근황을 알렸다.

에드먼즈 교수가 1번으로 뽑은 대학의 연구 교수실에서 개미 연구에서 선회하여 민벌레를 연구하고 아즈텍 개미를 연구하여 자신만의 길을 찾았다. 까만 개미와 붉은 개미가 살아남기 위해서 여왕끼리 동맹을 맺는 아즈텍 개미를 보며 협업의 가치를 발견하였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서 남이 하는 일과 조율하여 상생의 꽃을 피우는 일을 떠올리며 자연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살펴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찾아내는 여정에 함께해야 한다. 혼자서 일개미를 키워서는 다른 개미 왕국과의 전쟁에서 이겨낼 방법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여왕개미가 손을 잡고 한꺼번에 더 많은 일개미를 키워내는 가치를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류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무자비한 재앙으로 여기며 자연 상태를 뒤엎어 욕망을 채우느라 성찰하지 못한 대가를 받고 있다는 회한의 소리가 나왔다. 저자는 코로나19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막대한 재앙인 기후변화에 신경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구 온도 상승이 초래한 기후 변화는 지구의 다양한 생물의 절반 정도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 우려하며 인류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 경고한다. 동물계의 맨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곤충이 줄어들면 그 곤충을 먹고 살아야 하는 작은 동물들이 순차적으로 사라져 생물다양성과는 멀어진다. 멸종으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끊이지 않도록 다른 생명체들과 지구를 공유하는 행동 백신이 자연을 보호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생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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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는 것 - 질문은 어떻게 우리를 해방시키는가? 너머학교 열린교실 22
정준희 지음, 이강훈 그림 / 너머학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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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폐막식장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주최국 기자들에게 마지막 질문 기회를 줬으나 질문하겠다고 손 드는 기자들은 없었다. ‘질문하지 않는 한국 기자들’이라는 구절에는 기자는 기록을 위하여 먼저 질문해야 하는데 침묵하는 기자들을 꼬집는 태도와 함께 우리 교육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물음을 던지는 용기와 어떤 발문도 허용하는 현장 분위기 조성 등을 이야기하며 교육 현장의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여러 질문이 오가는 유대인들의 교육 방식과는 달리 학령이 올라갈수록 질문을 닫게 되는 현실을 꼬집기도 하였다.


교단에서 학생들과 만나 숱한 시간을 보내면서 수업 진행을 구상할 때, 학생들에게 던질 물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물음으로 시작해 물음으로 끝나는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짙었다. 교사 주도의 일방적인 수업의 폐해를 목격하면서 연속되는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수업을 선호하였다.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자꾸 생각하라니 난색을 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물음에 대한 판단을 거쳐 대답하며 무정형의 자극을 정형의 정보로 바꾸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좋은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물음을 던질 때, 길을 차츰 좁혀 새로운 길을 생각게 하는 질문 형태를 염두에 둬야 한다. 생각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질문은 새로운 지식을 담아내는 용도로 쓰일 수 있다.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물음에 선뜻 답하지 못하고 주변을 살피며 서로의 눈치를 본다. 교사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한 지경에 놓일 수도 있으므로 아예 책상에 눈을 꽂고는 고개를 들지 않는 학생도 있다. 궁금한 것을 묻기보다는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 상황을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을 따르는 이들이 있어 물음에 대해 답하기를 외면하는 경우가 생긴다.


상대와의 대화를 통해 진리에 다다르고자 노력했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힘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진리와 도덕을 지향하였음을 극명히 드러냈다.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처럼 계속하여 질문해 스스로 진리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산파술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이다. 묻는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는 생각과 행동의 다리를 놓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다름과 어긋남을 감지하고, 그렇게 된 이유를 찾아 위화감을 푸는 물음에 그 의미가 있다.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과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하여 던지는 질문에는 질문자의 의도가 반영된다. 위키 백과에 올려진 ‘답정너’로 흐르는 질문이 흔한 회의가 열린다. 협의회라고 하지만 다양한 생각을 담아 정리한 구성원의 답변보다는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경제성의 논리를 들어 화자가 정한 말에 청자가 대답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하는 화법인 가짜 질문이 횡행하지 않도록 진짜 질문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고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지향하는 사색적 물음을 바탕으로 한 즐거운 문답이 이뤄지는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잘 모르지만 여기까지는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로 의구심을 풀며 궁금증을 해결하는 궤도에 올라 지적 양분을 쌓는 가운데 진짜 질문도 발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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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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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 기회 없이 맏이로 태어나 여러 일을 행하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굴레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심장 깊숙이 자리하였다. 밥 지을 때는 어김없이 돌아와 친구들과 놀다가도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 밥상을 차리는 동안 놀다 들어온 남동생은 수저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남녀 차별을 느끼며 살아와서인지 머리가 굵어질 무렵부터 해방자유존중배려공감소통등의 단어가 좋아졌다. 학인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를 꾸준히 해온 작가가 쓴 << 해방의 밤>>은 곁에서 책 이야기에 일상을 버무려 소담한 밥상을 차려 놓은 듯하다.


  밥 먹을 대상을 떠올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정성스레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따스해지는 광경을 그리며 책을 읽었다. 글쓰기 공부를 함께하던 사람들과의 인연은 강좌가 끝이 났어도 면면이 이어져 햇살 말간 낮에는 전하지 못한 글들을 주고받았다. 무딘 감성을 깨우는 비라도 내려 빗줄기가 창을 두드리기라도 하면 추억 속 인물을 불러내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아련한 그리움에 잠길 때가 있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어머니의 열망을 담은 학인의 글을 보고는 충청도 할매들의 <<요리는 감이여>>라는 책의 감칠맛 나는 음식에 쏠린다.


   밤이라는 시간은 원기왕성한 양의 기운이 음의 기운에 자리를 내어 주고 사위를 감싸기 시작할 때, 내면의 감각을 일깨우는 사유의 깊이를 짙게 돋운다. 지난 시절 겪은 일들 중 지우지 못할 상처는 가슴의 응어리로 남아 일상이 매끄럽지 못한 성폭력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를 글로 남겼다. 고압적이고 물리적 인 힘에 짓눌려 치욕스런 일을 겪고 휘청거리는 자신을 다독이며 자정할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글쓰기 시간의 숭고한 의식으로 비춰진다.


   다르게 생각하며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관행대로 살아가려는 습성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때가 있다. 기득권으로 지내다 보면 기존의 질서가 어그러져 혼란을 가중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기는 자신과 맞닥뜨렸을 때의 무참함이 떠올라 괴란쩍어진다. <<보라색 히비스커스>>에서는 나이지리아 상류층 가정의 10대 소녀가 밖에서는 존경받고 집에서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가는 성장 서사를 담았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나는 여행처럼 히비스커스 색깔에도 보라색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성취만을 위하여 폭력을 휘두르는 삶보다는 타인을 해하지 않는 삶을 사는 길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안전 불감증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라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한다. 한 개인을 존엄한 유기체로 여기지 않고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 한 노동자의 주검을 사고로 처리하는 현실에서 유족의 슬픔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로 열일곱의 고등학생들이 수장되었을 때에나 이태원 참사로 이삼십 대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에도 책임 있게 나서서 유족의 아픔에 함께하려는 권력층은 흔치 않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직시하고 피붙이를 잃은 유족의 아픔과 슬픔에 함께하는 공감 능력은 개개인을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할 것이다.


   양성 평등 사회로 진화하여 여성들의 삶이 많이 편해지고 나아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목도한다. 함께하자는 말 대신 도와줄게라고 말을 버젓이 하는 남편을 보면서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라 애써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일깨우게 된다. 능력대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며 출발선이 다른 사회적 환경을 간과한 채 자본주의적 논리를 펴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용기를 배운다. 애초부터 개인의 능력이 판가름 나는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음을 기억하며 관념의 빗장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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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 현직 약사가 들려주는 슬기로운 병과 삶, 앎에 관한 이야기
김정선 지음 / 북드라망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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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 없이 걸린 질병의 고통에 짓눌려 살다 천상의 별이 된 혈육을 그리워하며 인문 약방을 읽었다. 그가 세상을 뜬 지도 2년이 지났지만, 처연한 슬픔으로 힘들었던 시간도 무참히 흐르는 세월과 함께 엷어질 때가 늘어났다. 그를 가슴에 묻고 돌아선 날, 다음 생에는 아프지 말고 건강한 몸 받아 응급실을 찾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구애됨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행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건강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아 연줄을 대어 서울 대형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았다. 두 달에 한 번은 의사를 만나 약 처방을 받느라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발품을 파는 시간이 쌓여 갔다.


  대여섯 시간을 들여 내원해 예약된 의사를 만나 약 처방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3분이라 허탈감은 더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서울행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하철역과 연계된 셔틀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는 약을 처방받아 병원 근처 약국에서 처방전을 내밀어 약을 받는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약을 건네는 무표정한 약사를 뒤로 하고 예약된 버스를 타기 위하여 걸음을 바삐 옮긴다. 병약하게 태어나 사람답게 살지도 못하고 서둘러 이승을 떠난 혈육이 더 이상 질병의 고통 없는 세상에서 지낼 수 있는 일을 위로로 삼으며 오늘도 지난 흔적이 남은 일기장을 들춘다.


  의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하는 의료의 진보가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일지도 모른다는 약사의 판단에 공감한다. 갱년기를 거치며 늘어난 체중으로 성인병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복용하기 시작한 고혈압약이 있다. 지금껏 약물 복용 없이 지냈는데 2년 전부터 매일 혈압약을 삼키고 있다.


  식생활 개선과 적절한 운동으로 생활하며 지내고 싶은 바람이 컸지만, 해마다 오르는 혈압으로 약 복용을 미룰 수 없었다. 사는 동안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열망은 넘쳐나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의 번성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고혈압에 좋다는 보조식품을 함께 섭취하며 고혈압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하였다. 자신에 대한 이해보다는 임상 효험이 있다는 말에 혹하여 지낸 시간을 돌아보며 책을 읽는다.


  약대를 졸업하고 저자는 종합병원 약제과, 의약품 도매상, 제약회사, 약국 등에서 약사로 십수 년을 일하며 에너지를 쏟았다.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저자는 개인의 자율적 소비보다는 약제 소비를 돕는 약사로 전락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집단 지성이 활발하게 피어나는 공동체를 찾았다. 약사로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는 안정적인 생활보다는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바람은 사람 냄새 나는 공간에서 약 처방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약을 공급하는 길을 택하였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는 일리치의 책을 통해 의료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문성이 상품이 되고, 전문성에 대한 의존성이 깊어지게 됨에 따라 의료 권력이 비대해지는 현실에서 전문가 주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에 수긍하며 자신을 성찰한다.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잠을 못 자는 시간이 늘어난 직장 동료는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 정도라 진통제를 상비약으로 쟁여두고 있다고 하였다. 통증이 심한 날에는 서너 알을 삼키는 경우가 있다고 해 약물 의존도가 너무 높은 듯 아닌가 싶었는데 탈이 나고 말았다. 복용한 약물을 장기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지 극심한 복통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고 속은 메스꺼워 구토하느라 생존조차 힘겨웠다니 약물 복용에 대한 경각심이 커진다. 과체중과 비만을 비정상으로 보며 정상 체중이 만들어낸 다이어트 시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커지는 상황에서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을 간과해서는 안 됨을 바로 알 필요가 있다.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인 식욕억제제는 약물 의존도를 높이며 중독성을 키워 정신적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들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불멸성은 위험을 안고 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예외일 수 없는 나 또한 시절 따라 변화를 겪으며 살아갈 뿐이다. 노화의 진행과 함께 늘어나는 주름을 걷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나이 들어 퇴행하는 신체 기관이 보내는 알림을 받아들여 자정의 시간으로 삼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생각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시간을 받아들이며 돌연한 일들 역시 소용 있기에 내게로 오는 것이라 여기며 자신을 관조하며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인다. 자기 이해 없이 전문가의 판단에 매몰되기보다는 스스로 몸을 돌보며 살아갈 필요를 찾는다. 사익을 앞세워 분투하기보다는 친구와 함께 공부하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돌보며 연대하는 시간은 양생(養生)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믿으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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