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
이혜미 지음 / 크레파스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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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딸이 서른셋에 엄마가 돼 아들을 키우느라 애쓰며 지낸다외손자가 태어난 후 단조로운 가족은 사랑을 쏟을 대상을 만나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첫딸 출산 후 복직하여 일하느라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엄마와 함께 지내며 어리광을 부릴 때에 딸은 가고 싶지 않은 보모 집에 맡겨졌다엄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생떼를 쓰는 아이를 뒤로한 채 걸음을 바삐 놀려 일터로 향하였다퇴근하면 부모를 기다린 딸이 함께 놀아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할 일이 많다며 가만히 있으라고 곁을 주지 않았던 게 마음에 멍울로 남아 있다.

   예순넷인 남편은 퇴직 후 초등학교 앞등굣길 교통 봉사로 하루를 시작한다남편은 오지랖이 넓어 이웃에게 관심이 많고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 한다. 학생들과 오래 생활해서인지 아이들을 좋아하여 아침마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가이 맞는다. 섬김의 나눔을 중시하는 남편은 실속 있게 살지 못하여 아내의 타박을 들을 때가 있지만 괘념치 않는다. <<효도하며 살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골수에 사무친 효행을 실천하는 남편이 먼저 떠올랐다. 물음을 던지기 전에 효도는 조건을 따지지 않고 행하여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몸을 챙기지 않고 일하였다. 불사조처럼 강단진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그는 직장 일을 마치고는 아내가 운영하는 슈퍼에서 다시 일하느라 고단할 텐데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일하는 가장으로 열심히 사는 게 무엇인지 입증한다아버지는 딸들에게 배운 것이 없어 육체적 노동으로 고생이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강하였다아버지는 못 배워 고단한 생활을 감내하면서도 딸들에게 많이 배워 세상을 넓게 보고 편히 살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로 혼자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저자의 부모는 베이징으로 무술 유학을 간 딸이 석사 학위를 마칠 때까지 군소리 없이 지원하였고둘째 딸이 재수 끝에 서울대 미대로 진학하기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못 배운 한은 오래 간다고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나 안 시키고 딸 둘을 공부시키기 쉽지 않았을 터인데 부모는 학비와 용돈을 군소리 없이 충당하였다.

   386세대의 부모는 할머니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생활하였지만자식 세대에게 손 벌릴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 세대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는 속담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부모는 끝없는 사랑과 정성으로 자식을 키웠지만부모 생각하는 자식은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차린다어린 시절에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처럼 여기던 자식도 성장하면서 부모와 거리를 두는 게 현실이다자기 앞가림도 힘든 각자 도생하는 시대에 부모는 뒷전으로 밀려나고길어진 노후에 부양의 책임이 지워지면 어쩌나 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슬픈 현실이다.

   길어진 노년에 부모 역시 스스로 책임질 만한 여력을 갖춰야 자존감 있게 생활할 수 있다저자의 부모는 젊은 시절밤낮 없이 일하여 모은 돈을 잘 관리해 검약한 생활로 부를 이룬 부모는 자식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 노후를 대비해 두었다부모는 건물주로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가 있어 큰일을 겪는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자식은 부모 부양에 대한 짐을 덜 수 있어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딸의 마음 한쪽에서는 부모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효심이 꿈틀대고 있는 듯하다.

   부모가 바라는 효도는 거창한 데 있지 않다적적한 노년에 부모는 아침에 걸려 오는 짧은 안부 전화에 마음이 따뜻해지고생일에 전하는 꽃 한 송이에도 기쁨의 미소를 띤다그들의 행복은 큰 보상이나 값비싼 선물에 있지 않다. 다만 자식이 자신을 잊지 않고 하루 중 잠시라도 마음을 써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물질적인 효도에 한정 짓지 말고, 정서적 지지와 따뜻한 관심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효를 실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럴 때 부모의 마음에는 조용히 등불이 하나씩 켜질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부모가 늘 곁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으로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미루며 살고 있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제라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밥을 함께하는 시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제 좀 살 만하니 부모와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지.’

  마음먹었는데 예기치 않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며 회한에 젖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다.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회한 섞인 말이 흰소리가 아님을 안다

효도는 내일로 미루는 다짐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실천해야 할 사랑의 언어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부모를 향한 작은 관심과 따뜻한 한마디면 된다.

  오늘 하루 부모의 안부를 묻고,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웃으며 마음을 나누는 소소한 행동이 쌓여 행복을 이룬다. 각자 처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상의 효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일련의 행동은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큰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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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로마 여행지도 2024-2025 - 수만 시간 노력해 지도로 만든 로마 여행 가이드 총정리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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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볼거리가 먹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 여행자들의 시선을 끈다. 한정된 시간에 봐야 할 문화 유적지를 찾아 강행군하던 20년 전 가족 여행을 떠올리며 <<에이든 로마 여행지도지도>>를 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자유 여행자로 길을 나서는 독자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으로 입국한다. 로마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방법까지 간명하게 기재된 대형 지도를 펴들고 길 위에 섰다.




   이용 날짜에 따라 맞춤형 교통권을 예매하여 가야 할 곳을 찾아 나선다. 판테온 신전이 고풍스런 로마의 골목에 자리하여 성과 속이 조화를 이루어 공존하는 것처럼 표지에는 카페 차림판과 이방인을 응시하는 고양이가 눈길을 끈다.


   옅은 갈색 상자를 열면 대형 로마여행지도, 로마주요지역 여행지도, 가이드북, 트래블 노트, 스티커가 포함되어 여행의 실효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에이든 지도임을 알아차린다. 여행지에서 해봐야 할 목록을 작성하는데 도움 될 체크리스트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장면을 상상하며 유적지를 관람하는 제안을 포함하였다. 콜로세움에서는 25만 명을 수용한 전차 경기를 상상해보고, 아로마 레스토랑에서 콜로세움을 보면서 식사하기, 진실의 입에 손 넣고 사진 찍기 등을 목록에 담았다. 여행하려는 도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에이든 여행 지도는 지도 한 장 들고 가벼이 떠나고 싶은 여행자를 돕는다.


   방수 종이로 제작된 에이든 여행 지도라 비가 내리더라도 비에 젖을 염려 없이 대형지도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에이든 여행 지도의 장점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기록하는 재미를 더하는 플래그 스티커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나 다녀온 곳을 표시할 수 있어 여행자의 여행지를 확인할 수 있어 유용하다.


   곳곳이 박물관이라는 말에 호응하듯 골목을 따라 걸으며 유적지를 찾아 유물을 관람하느라 땀깨나 흘렸던 추억을 곱씹는다. 로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고, 관광 명소, 교통편, 주요 도로 등을 담은 <<에이든 로마 여행지도>>는 여행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필요한 정보를 업데이트한 흔적이 지도에 드러난다.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 책자를 꺼내 들고 긴 비행시간을 달랠 날을 기다리며 여행지도 제작자가 보내는 편지를 읽는다.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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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감정조절력
윤여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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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이 결혼하여 새 생명을 품에 안은 뒤부터 부부는 아들을 양육하느라 쪽잠을 자면서 피곤하다며 아우성이다. 잠이 없는데다 예민한 외손자는 고집을 피우며 엄마 곁을 내주지 않는다. 뜻대로 안 되면 목청껏 울어 층간소음 민원이 들어올까 우려하며 아이를 들쳐 업는다. 아기 띠 안에서 겨우 잠을 붙였다. 자리에 내려놓으려 하면 금세 눈을 뜨는 아기라 다른 집안일을 병행하기 쉽지 않아 피로도가 더 높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잠 다 자면서 아기 키우는 호사는 쉽지 않다며 딸을 토닥인다. 


  산후조리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산모에게 건넨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박혀 있다. 

  “떡잎이 자기주장이 강하네요. 신생아가 크게 소리 질러 우는 바람에 옆에 자던 신생아가 모두 깨어나 운답니다…….”

  태어난 지 사흘째 듣는 아기의 기질은 조리원에서부터 악명 높은 것처럼 보여 괴란쩍었지만 딸은 어쩔 도리가 없다며 잘 부탁한다고만 한 모양이다. 주말에 외손자를 보러 가면 아기는 무난하게 잠 들고 깨어나는 순둥이는 아닌 듯하였다. 


  말을 못하는 아기이지만 귀는 열려 있으니 말로 감정을 조졸해야 하는  이유를 들려주었다. 경험으로 알게 된 감정조절능력은 사회생활의 기초 체력으로 영유아 시절부터 길러줘야 할 영역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만나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감정교육은 시작된다. 부모는 가정 공동 조절자로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감정의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감정을 배워 본 적이 없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배움의 길에 감정 교육이 함께한다. 


  AI시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인 ‘감정‧공감‧관계 형성‧회복탄력성’은 감정을 배우고 훈련할 기회를 획득함으로써 함께 연결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움직이게 하는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가운데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 자기라는 정체성을 깨닫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쌓는다. 감정은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신호로 가치중립적이며, 행동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조절되어야 한다. 화가 치밀어 올라도 폭력적인 행동을 삼가는 것이 사회적 행동 규범임을 알고 폭력을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고 긍정적인 감정만 표현하며 사는 일이 능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 표현에 서툴러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다. 저자는 아들을 키우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육아는 감정을 억누르는 과정이 아니라 감정을 친구로 여기며 행동의 원천이 되는 원료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책임질 권리가 있다. 나와 아이의 감정에 각자의 주인이 있음을 배우고 경험과 상황을 통해 학습되고 구성되는 감정을 공부해야 한다. 


  감정이 흐르는 환경을 만드는 데에서 시작되는 감정교육은 양육자의 감정 주파수가 아이의 정서적 기준점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은 말을 배우기 전부터 느낌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정서적 에너지로 작용한다. 감정 언어는 감정 조절력의 기초 자산으로 표정과 말투, 분위기 등으로 표현되는 점에 착안하여 감정 조절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의 흐름을 정확히 인식하여 내 감정을 솔직히 설명하고,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는지 보여 주는 훈련을 통해 아이는 감정을 조절하고 충동을 통제하며 생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공동 조절자로 자녀와 함께 성장하는 관계 형성을 위한 실천은 감정조절력을 길러주는 일곱 가지 훈련법으로 감정지능을 자라나게 할 수 있다. 

  첫째, 어떤 감정이든 ‘표현해도 된다’고 말해준다. 

  둘째, ‘감정 어휘’를 풍부하게 사용한다.   

  셋째,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넷째, 감정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준다. 

  다섯째, 감정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 

  여섯째, 아이가 감정적인 불편함과 친해지도록 응원한다. 

  일곱째, 부모가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속담처럼 감정은 헤아리기 어렵고 감정을 다루기 어렵다.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터득하는 감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대한 학습은 하지 않은 채 무심히 살았다. 부모는 학습과 연습으로 아이의 감정조절력을 길러 줄 책임이 있음을 지나치지 말고 가정에서부터 아이의 감정조절력 향상을 위한 실천이 따라야 한다. 사회적 관계의 기초인 공감능력은 타인의 가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함으로써 함께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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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 예술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박소현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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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 베란다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바깥 공기를 확인한다.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로 떠오르는 창문은 외부 세계로 향하는 시선이자 통로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피아노 연주자가 되고 싶었던 꿈을 떠올리며 프레드릭 차일드 하삼의 즉흥곡그림을 모두로 창문을 매개로 한 그림을 소개한다. 열린 창 너머로 나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은 향기로운 꽃들이 에워싸는 가운데 피아노를 연주한다. 악보 없이 자유로이 연주되는 즉흥곡은 사방으로 퍼져 경계를 허무는 듯하다.

    창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샤갈은 열린 창을 통해 환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하며 파리의 삶을 즐기려 애썼다. 그는 첫눈에 반한 뮤즈 벨라를 향한 사랑을 캔버스에 담으며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구애해 결혼한 뒤 다양한 색채를 활용한 초현실적 그림을 그렸다. ‘창문을 통해 본 파리작품은 창문을 통해 사랑하는 여인 벨라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았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유가 억압된 채 차별을 겪는 지난함 속에서도 그녀와의 유대와 결속으로 색감을 살린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다.

   열린 창 너머 동일한 복색을 한 몰개성의 군중이 창문 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포도 수확의 달은 자기 본연의 색을 잃어가는 현대인을 표현하는 듯하다. 마티스가 4년에 걸쳐 완성한 대화속 창문 밖의 풍경과 실내의 풍경이 겉돌아 보이는 이유는 부부 사이의 갈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창문 너머 풍경은 나무와 샘물이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는 달리 같은 공간에서 결이 다른 두 사람이 거리를 두고 있을 뿐이다. 창문 너머 푸른 지중해를 품고 살아온 마티스는 아내보다는 예술을 더 사랑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그림에 탐닉하였다.

   달리는 어머니를 여의고 여동생에게 많이 의지한 여동생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창가에 서 있는 소녀속 여동생이 열린 창으로 걸림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 꿈을 펼치길 바라며 자신의 마음을 투영한 듯하다. 죽은 형을 대체하여 세상에 온 달리에 대한 부모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은 그는, 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달라는 바람을 그림에 담았을는지도 모른다. 달리는 예술 활동의 뮤즈인 갈라를 만남으로써 아버지와 절연하고 그녀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으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다.

    방해 없이 한 사람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게 뒷모습이라고 하는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프리드리히의 걸작으로 자연 앞에 미미한 존재인 인간의 고독과 불안, 겸허한 삶의 태도 등이 연상된다. 방랑자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짙은 안개 바다로 뒤덮인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쓸쓸함이 묻어난다. 빛이 새어 나오는 창가로 가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떠올리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소녀를 본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이에게 빛은 별다르지 않은 시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로 자리하기도 한다. 설렘으로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며 밝은 빛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영상을 새긴다. 빌헬름 하르메스회가 그린 실내의 여성은 가식적이지 않은 진실에 다가서고 싶은 화가의 마음을 담았다. 세상의 오욕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으로 세상을 살다가고 싶은 바람은 내면 깊숙이 자리한 천연의 마음에서 흘러나왔으리라.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드넓은 바다를 걸어 건너는 소녀가 보이는 도망치는 소녀는 집을 벗어나고 싶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음을 담았다고 하니 집이 또 다른 억압의 공간으로 자리할 수도 있음을 안다. 바람기 많은 아버지의 외도를 알면서도 묵인하는 무력한 어머니를 보면서 불안은 커졌고, 불안은 창작의 모티브로 작용하였다. 책을 읽는 할머니 뒤, 창문 너머에 서 있는 소년을 그린 야곱 브렐의 창문 뒤의 소년과 함께 책을 읽는 할머니는 책에 집중하는 할머니가 읽고 있는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 하는 소년의 호기심을 담으려 했던 듯하다.

캔버스에 등장하는 선과 옅은 색으로 채워진 그림으로 창문시리즈를 그린 아그네스 마틴은 아래와 위 창문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여백의 미를 담으려 했던 것은 아닐는지........우리나라를 떠나 프랑스로 유학을 간 김환기는 영원한 노래를 통해 가정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책가도의 전통적 의미를 녹였다.

   조그마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 아래 묵상하는 수도사의 성스러운 이미지를 떠올리며 미술관을 찾지 않아도 명화에 얽힌 서사를 들으며 감상한다. 창문을 매개로 한 그림과 작가의 삶을 구성지게 엮어 세상사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밀한 관찰자로 삼촌의 작품을 마지막에 넣어 작품 속 창문과 공간을 수렴하였다. 살다 보면 삶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고, 돌연한 일에 발목 잡혀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떤 것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예술 작품은 번뇌로 들끓는 마음을 식혀 자기 정화에 이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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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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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역사의 진실을 드러낸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먹고 살기 어렵다는 유혹, 심부름을 가다 납치된 소녀들, 부모에 의해 팔려 간 아이들은 군인들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끌려갔다. 그들은 강제로 낯선 땅의 위안소에 수용되어 인간의 존엄을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흐르는 편지속 열세 살 금자는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는 말에 속아 군용 트럭에 실려 갔다. 도착한 곳은 공장이 아니라 지옥 같은 위안소였다. 위안소에 수용된 위안부는 성적 노예로 태평양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의 욕정을 푸는 도구로 영혼을 유폐한 채 지내야 했다. 소녀는 영문도 모른 채 23번 번호를 받고 민간인이 운영하는 위안소에 발이 묶여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갈 수 없는 마음을 담아 흐르는 물결 위에 마음의 편지를 쓴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어머니, 나는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어요.

심장이 생기기 전에…….’

  몸과 영혼은 상처로 성한 곳이 없지만, 마음은 삿된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금자는 정액받이인 삿쿠를 씻을 때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강물에 편지를 띄운다. 그 편지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소녀가 인간으로 남으려는 의지의 증거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출구였다.

 

  하루에 열다섯 명 이상의 남자를 받아 그들의 욕정을 풀어 줘야 하는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숨기고 군인을 받아야 했고, 갖은 욕설과 폭행, 모멸을 견뎌야 했다. 또래 소녀의 묵음을 목격하고 다른 위안소로 이동되는 위안부를 볼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은 톺아만 갔다. 고향으로의 회귀는 어머니의 품을 잊지 않으려는 간절함에서 기인하였다.

 

   총성이 울리는 전장에서도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군인들은 줄을 섰고, 군인이 위안소를 찾지 못하는 경우, 차출된 성적 노예는 부대 주둔지로 이동해 그들의 욕정을 채워야 했다. 총을 맞고 선홍빛으로 물들어 죽어가는 은실을 보며 불안과 공포는 극에 달하였지만, 금자는 속수무책이었다. 강물 위로 흐르는 글자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역사적 증인으로 극악무도한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고 싶은 바람을 흐르는 편지에 담았다. 그녀의 소리 없는 절규와 편지는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상처가 단순한 피해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회복을 향한 증언임을 보여준다. 고통 속에서도 편지를 쓰는 행위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삿쿠를 씻으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던 소녀는 강에 혼자 남겨져,

  ‘어머니, 오늘 밤 나는 아기를 낳을지도 몰라요. 닭띠 아기를요.’

   라고 말하며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마음을 응시한다.

갖은 술수에 넘어가 위안소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들은 군인들에게 시달리며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고대하며 고향과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하여 안간힘을 썼다. 사위어 가는 생명의 불꽃을 부여안고 마음을 다잡고 하며 지난한 시간을 감내한 지옥도의 일면은 씻기지 않은 능욕의 또 다른 풍경이다.

 

   강물 위로 흘러간 편지는 단순한 울부짖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다짐이자 우리에게 전해진 외침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그 외침에 응답해야 한다.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의 진실을 잊지 않고 증언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에 기꺼이 함께해야 한다. 흐르는 편지는 고통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삶을 향한 간절한 외침이다. 소녀가 남긴 편지는 오늘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의 짓밟힌 존엄성 회복을 위한 역사적 복원에 적극적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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